by 숭
총 14개의 포스트
작열하는 태양이 정수리 바로 위에 있는 것을 보아하니 어느새 정오가 다 되어가는 듯했다. 건조한 바람이 한 번 불 때마다 뺨을 스쳐 생채기를 내는 거친 모래알의 감각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갔다. 표피를 긁고 가는 횟수도 지금까지 합하면 열세 번째 정도였던 것 같다. 세계의 종족들이 본디 가지고 있는 피부라는 것 자체가 모래가 아무리 베어내도
* 크리그어 2부 및 TFR 스포 포함. Inspired - A Stranger 겸아, 내가 너 봐줬다. 늘 제 손에 감돌던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손가락 틈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은 사무치게 시렸고 코끝을 스치던 초목의 향을 뒤덮은 곳엔 비릿한 철내음이 만연했다. 상실을 말하자면 연륜 있는 세월이 아니었음에도 견딜 수 없는 공허함이 오랜 추억의
윤해주가 뛰어내린 뒤의 헬기는 그 상공에서 체감할 수 있는 최저 온도를 넘어 유난히 싸늘했다. 어떤 논쟁이 있었고, 어떤 책임이 있었으며,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것이 절대다수의 당연하고 효율적인 선택이었으니까. 다무는 것은 남은 자들의 마지막 양심이었고 아득한 헬기 아래를 쳐다보지 않았던 건 알고 있는 바를 구태여 서로
그는 꽤 장대한 서사시를 가지고 있었으나 책으로 엮어내면 한두 편에 불과한 외전에 더 가까웠다. 꽉 담아내어 하나하나 구경하라고 드러내기엔 어느 비현실적인 이론처럼 잠깐 보았다 말아도 되는 이야기였다. 그냥 이랬구나, 까지가 적당한. 그래서 서단혜는 입을 다물었고 이해를 요하지 않았다. 물음표를 던지면 적당한 눈웃음으로 무마하고, 느낌표가 나
뭐 해? 과제. 진부해. 여자는 핸드폰의 화면을 껐다. 장신구 하나 없는 마른 손가락으로 불 들어오지 않는 검은 화면을 두 차례 톡, 치더니 품 속에 핸드폰을 넣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캔버스를 무감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남자의 일상에 여유란 가뭄 속 드물게 내리는 소나기 같다는 것을 유년시절부터 이해했음에도 둘
" 그런 생각을 했어. " 노을 진 하늘의 채도가 낮아진다. 빈 교실엔 늦은 오후의 적막이 감돌았다. 의도된 것처럼 의문스럽게 오태은은 지칭 없는 모호한 대명사를 읊조렸다. 창가에 걸터앉아 땅거미 지듯 기어 다니는 빛을 등지고 선 오태은의 몸에 그림자가 더욱 드리워졌다.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흘러내려 제 얼굴을 가리는 검은 머리칼을 정리
미지에 고독함을 끼워 넣는다. 세월이 묵을수록 희미해져 가는 이름은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에겐 남은 단어가 없다. 과거의 활자들을 고통스레 뜯어낸 채 새로 채운 자음과 모음은 단순화된 개체를 일컫는다. 그리 ■■■이 지워진 자리엔 마법사만이 홀로 남았다. 단정한 머리 위에 큰 모자를 뒤집어쓰고 땅에 끌리는 망토를 몸에 둘렀지만, 맨
감정은 인간의 뇌를 먹었던 만성적인 질병이었다. 사람이란 존재는 태생부터 짊어지던 잇자국 하나 때문에 그것을 결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이론 하나를 근본으로 고립된 공간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던 불안한 우리들은 고질적으로 발병했던 질환을 앓고 있었다. 공통된 사람으로 눈을 깜빡이고 손을 잡았던 감각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의 흉터를 알았다. 일
잃어버린 삶을 누구에게 찾아야 할까 생각하면 내 남은 미래를 더욱 열심히 살아야지 막연하게 떠올렸던 긍정은 막을 내린 인생에 마침표처럼 찍혀 남았다. 광야를 떠안았을 때 마주한 심정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아무도 알 수 없는 인간의 심리는 위장할 수 있다면 거짓만 남아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바꾸어 낀 지 오래된 색안경을
측은지심, 감정을 축약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인가. 본디 존재함의 시초인가. 사랑을 어찌 사랑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단어를 쪼개면 불순물처럼 침천했던 변화들. 인간임에 태생부터 쥐고 있었던 감정과, 사유와 그리고 마음. 그것 전부 획일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진작에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니 인간이란 존재는 항상 극단에만 몰려있지 않다
관조는 타인의 눈과 겹쳐진다. 시점을 바꾸어 비추어지는 색이 동공에 물들고 나면 그것은 줄곧 흑백이었음에 문장의 시제를 바꾼다. 현재에 안주하는 과거는 여상히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그것은 세상 만물이 가진 공통점일 것이라고, 서단평은 증명 같은 영원의 단서를 떠올릴 때마다 목격했던 타자의 인간적인 유약들을 곱씹었다. 족지에 낭자한 흉은 칭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