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古不朽
대만태섭
미츠이 히사시는 귀신을 볼 수 있었다. 아득히 먼 과거 할머님께서 신내림을 받으신 까닭이다. 신내림까지는 아니어도, 신기는 대물림 되어 히사시의 세대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신기가 있다고 해도 어떤 거창한 것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아득히 먼 과거의 일이었기에 히사시의 세대에 이르러서는 아주 흐릿하게 흔적만 남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적인 존재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타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아라.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이었다.
네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네 시야 한구석에 끊임없이 나타날 거란다.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는 골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히사시의 눈을 가려주었다. 네가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끊임없이 네 귀에 감언이설을 속삭이겠지.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는 문지방 너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히사시의 귀를 막아주었다. 네가 특이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순간, 모두가 너를 이상하게 보며 배척하려 들 것이고 그 말을 들은 ‘것’들이 끊임없이 몰려들 거야. 그렇게 말하는 누나는 저기에 무언가 있다며 옷깃을 잡아당긴 히사시의 입을 가려주었다.
알겠니 히사시.
히사시.
미츠이 히사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렴.
눈도, 귀도, 입도, 전부 막아야 해.
*
미츠이가 본 미야기의 첫인상은, 짝짝이 눈썹의 싸가지 없고 거슬리는 새끼. 그리고 귀신이 잘 꼬일 거 같은 새끼.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뭐, 당시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첫 만남 이후에야 추가된 인상이긴 했다. 그러니까, 두 번째 만남 즈음에.
두 번째 만남은 운동장이었다. 미츠이가 일방적으로 발견한 것이니 만남이라고 하기에도 뭣 했다. 수업을 빠지고 교내를 방황할 때, 미야기의 반은 체육 시간이었는지 운동장에 모여 체조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미야기를 찾아내기란 쉬웠다. 어디 그 외관이 인파 속에 숨는다고 숨겨지는 모습이던가. 그리고 미츠이는 그때야 미야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 또한 그때 처음으로 봤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미야기에게 달라붙어 있는 무언가였다. 귀신이라기엔 높았고 신이라고 하기엔 낮았다. 애매한 급을 가진 그것은 언제나 미야기의 곁에 있었다. 등교할 때나, 수업할 때나, 농구를 할 때나, 하교할 때나, 언제나. 미야기를 어미새마냥 졸졸 따라다니는 그것은 삿된 것이 미야기에게 얼씬도 못 하게 만들었다. 터가 좋지 않아 그러한 것들이 득실거리는 북산 고교에서 미야기만은 멀쩡하게 지냈으니. 미야기는 북산 고교에 입학한다면 한 번쯤은 겪는다는 그 흔한 7대 불가사의조차 경험하지 못했다.
그것은 미야기를 발견할 때마다 보였기에, 미츠이 또한 자연히 그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가족인가. 몸집이 작은 걸로 봐서는 꽤 어린 나이에 죽은 것처럼 보이던데. 동생? 아니, 죽은지 5년은 되어 보이니까, 형일 수도. 온몸이 축축이 젖어있는 걸 보면 물에 빠져 죽었을 거고. 꼬라지를 보니까 원귀에 한 발 걸쳐놓은 거 같은데. 그럼 수살귀? 신기하네. 보통, 수살귀는, 물에서 벗어나질 못하는데. 왜 물이 아닌 땅에 있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생각은 이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거슬리는 새끼에게 뭐가 붙었든 미츠이의 알 바는 아니었으니. 다만 그것으로 인해 미야기가 화를 입는다면, 그건 조금 아쉬울 것 같았다.
누군가 미야기를 망가트린다면 자신이어야만 했으니까.
그것에 대한 인식을 고친 것은, 그래. 미야기를 옥상으로 불러낸 후였다. 미츠이는 미야기가 박치기한 이후의 기억은 흐릿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축받으며 옥상에서 내려오고 있었고, 주위에서는 저들이 그 녀석을 혼내줬다며 성화였다. 그게 짜증이 나 부축하는 손길을 뿌리치고선 혼자 집에 돌아왔다.
미츠이 히사시가 집에 돌아갈 때의 루틴은 언제나와 같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들어오기 전부터 작게 들려오던 대화 소리가 뚝 끊긴다. 히사시가 돌아온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러면 히사시는 신발을 대충 벗어두고 곧장 방으로 올라가 다음 날 아침까지 나오지 않는다. 밥은 밖에서 해결하고 돌아오니 가족 식사에 참여할 이유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모여 식사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누군가가 보면 서로 감정이 상할 것이라 하겠지만, 글쎄. 적어도 미츠이 家에선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된 일상이었기에 상할 감정 따윈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그날은 달랐다. 자신이 무얼 하든 신경 쓰지 않던 가족이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현관에 나와 있었다. 그 점이 의아하였으나 미츠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여느 때와 같이 신발을 벗고 방으로 가려던 미츠이를 붙잡은 건 미츠이의 누나였다.
“히사시.”
“……왜.”
“이상한 짓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무슨 말이야 이게? 누나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몰랐다. 미츠이는 질문에 답하기보다 어서 방에 올라가 상처를 치료한 후 침대에 누워 쉬고 싶었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긴 하였어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많이 지쳤기에. 그래서 미츠이는 그 질문을 무시했지만, 그날따라 누나는 끈질겼다. 자신을 놓지도 않은 채 자꾸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츠이는 관심이 없기도 했거니와, 점점 물에 잠긴 듯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절반 이상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미야기에게 뒤지게 처맞은 후유증이 뒤늦게나마 몰려오는 듯했다. 미츠이는 일 초라도 빨리 누나가 자신을 놓아주길 원했다. 그리고 방에 가서 쉬고 싶었다.
“귀찮게 좀 굴지 말고 꺼져.”
손을 털어냈다. 억지로 떼어내기도 귀찮았으므로 알아서 떨어지라는 뜻이 함의된 행동이었다. 말이 이렇게까지 세게 나간 것은 예상 밖이었지만. 피곤해서인지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아, 필터링 기능이 꺼진 듯 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누나는 미츠이의 행동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나 본지,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좀 더 강한 어조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한 번 손목을 잡아왔다. 허. 그 행동을 본 미츠이가 어이없다는 양 웃었다. 웃겼다. 누가 이러면 겁먹을 줄 아는 건가. 어릴 때라면 모를까, 집안에서 가장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재의 미츠이가 자신보다 작은, 그것도 여성인 이에게 겁먹을 이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젠 진짜 전부 귀찮았다. 혀를 한 번 찬 미츠이가 손을 거칠게 뿌리친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다만 큰 소리는 누나가 아닌, 뒤에 장승마냥 서 있던 아버지에게서 튀어나왔다.
“미츠이 히사시!”
시끄러워. 안 그래도 웅웅 울리던 머리였는데.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짚었다. 어지럽고, 울리고, 아프고. 아주 난리군. 빨리 방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 미츠이는 흐릿한 눈을 바로 뜨려 노력했다. 그 때문에 절로 인상이 지어져 싸가지 없는 역효과를 낳긴 했다만.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다른 한 손을 휘적휘적 내저었다. 귀찮으니 다 저리 가라는 의미였다.
“시끄러워. 머리 울린다고. 좀, 조용히, 해……,”
시야가 핑 돌았다. 화로 일그러져있던 얼굴들이 당황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암전.
정신을 차리면 흰색 병원 천장이 보였다. 머리가 징징 울리고 눈꺼풀이 뻑뻑해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 이마를 짚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면 투명한 줄이 따라 올라왔다.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졌다. 손등에 링거가 꽂혀있었다. 고작 쓰러진 것 가지고 입원이라니, 유난이군. 아니, 그냥 엿 맥이려는 작정인가? 링거를 멍하니 바라보던 미츠이가 자조하며 손을 침대 위로 툭 떨궜다.
링거 속 수액이 떨어지는 소리, 일정한 소리를 내며 작동하는 기계들, 코끝에 맴도는 병원 그 특유의 냄새까지. 익숙한 무력함이 몸을 좀먹는 듯한 착각이 인다. 모든 것이 끔찍할 정도로 익숙했다. 당장이라도 병실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
저도 모르는 새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커튼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 붉었다. 온몸이 뻐근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컨디션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미츠이는 침대 위에서 뒤척이며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있는 게 없는 병실에서는 깨어났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창문 밖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정도. 하지만 미츠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좆같은 과거가 떠오르니까. 그래서 다시 눈을 감았다. 온갖 것들을 떠올릴 바에야 잠을 자는 것이 나았으므로.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감았던 눈을 뜨고 고개를 돌리면 누나가 여상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침대 곁으로 걸어온 누나는 그저 미츠이를 내려다만 보았다. 미츠이는 할 말이 있다면 하라는 표정으로 누나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누나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귀신처럼 서 있을 거면 꺼지라는 말을 하려던 찰나, 입을 연 누나는,
“바다를 가까이하지 마.”
말 한마디만을 남기고 병실을 나갔다. 미츠이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코웃음을 쳤다. 뭐라는 거야? 알아들을 수 있게나 말하던가.
그날 미츠이는 꿈을 꿨다. 꿈에서는 미야기의 곁에 붙어있던 그것이 나와, 자신의 위에 똑바로 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타 귀들이 그렇듯 새까만 것으로 뒤덮여 얼굴이 절반 채 보이지 않았다. 몸에서는 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입 안에 흘러 들어온 몇 방울은 짠맛이 났기에 바닷물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바다에 잠겨 죽었구나. 그렇게 말하고자 했지만 나오는 것은 턱 막힌 숨소리였다. 그제야 미츠이는 가위에 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험 삼아 손에 힘을 주어도 움찔거리기만 할 뿐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미츠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누워 눈을 굴리거나 숨을 쉬는 것뿐이었다. 가위에 눌린다는 일과 거리가 멀었던 미츠이였기에, 그저 이 상황이 신기했다. 1분도 채 안 되어 기분 더러우니 빨리 깨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가위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고, 그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미츠이의 머릿속은 잡념으로 가득 차올랐다.
가위에 눌리게 된 원인은 보나 마나 내 위의 이 자식일 거고. 근데 왜 찾아온 거지. 미야기에게만 붙어있던 녀석이. ……아, 그러고 보니 가족이던가. 그럼…… 복수? 웃기지도 않는군. 잘 자는 놈 찾아와서 이 지랄 할 정도로 아끼면, 처음부터 죽지를 말던가.
미츠이는 별 감흥 없이 그것을 바라봤다. 그것은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할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정말 딱 그것뿐이었다. 한참을 그리 서 있다가 사라졌다. 가위에서 풀린 직후 미츠이는 어이없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감언이설을 속삭여 홀리려는 것도 아니고, 해코지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거면 도대체 왜 찾아오는 건데?
그런 미츠이의 생각에 반하기라도 하듯 그것은 매일같이 미츠이를 찾아왔다. 그리고 가만히 내려다만 보다가 사라졌다.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딱 하루. 미츠이의 퇴원 바로 전날. 그날은 무언가 달랐다. 그것은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꿈이었기에 미츠이 또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러고 한참을 있다가 가겠지. 그리고 그것이 제 배 위에 주저앉았을 때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복된 행동만을 하던 귀가 다른 행동을 취했을 때, 그것은 그 귀가 무언가를 결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고. 그 결심이 결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아, 이거 뭔가. 불안한데. 미츠이는 시선을 굴려 그것이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하지만 긴장한 것이 무안하게 미츠이의 위에 앉은 그것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냥 다리가 아파서 앉은 건가? 같은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마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면 한참이나 눈을 마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불안감도 긴장감도 완전히 사라질 즈음. 그것이 미츠이에게 손을 뻗었다. 미츠이는 홀린 듯이 그 손을 바라봤다. 아이의 손이었다. 제 손보다 훨씬 작은. 얼마나 어린 나이에 죽은 거지? 눈앞까지 다가온 손은 아주 잠깐 멈칫하는가 싶더니.
목에 서늘한 온기가 닿았다. 상황 파악을 하기도 전에 숨이 죄어왔다. 발버둥을 치고자 하여도 가위에 짓눌린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폐가 거칠게 팽창했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짓눌린 목울대가 욱신거렸다. 숨이 막힌다. 괴롭다. 투둑, 툭. 수많은 물방울이 떨어져 얼굴을 척척히 적시고 흐른다. 입 안에 짠맛이 가득하다. 눈앞이 흐려지고, 겨우 붙잡고 있던 의식이 끊어질 때쯤.
──미츠이 군!!
째질듯한 비명에 정신이 돌아온다. 허억, 숨을 틀어막는 것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호흡을 할 수 없었다. 폐는 내뱉는 것만을 반복할 뿐 필요한 것을 들이려 하지 않았다. 명멸하는 빛이 어지럽다. 귓가가 울려 제대로 된 소리를 담을 수 없어 귓가가 웅웅 울렸다. 어지럽고, 아프고, 시끄럽고, 메스꺼워서. 의식이 재차 흐려지는 와중에도 사라지지 않는 선명한 생각은.
아. 흘리던 게, 바닷물이 아니라.
눈물이었던가?
*
그날 밤 미츠이의 목에는 얼룩덜룩한 손자국이 남았다. 너무 흉한 나머지 한동안 붕대를 감아 가리고 다녔을 정도로. 미츠이는 퇴원하기 전 병원 화장실에서 그 자국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 자국 위에 제 손을 겹쳐 올렸다. 양손 자국이 남았음에도 미츠이의 한 손에 다 가려졌다. 작군. 그리고 어려. 자국을 꾹 눌러본다. 둔탁한 통증이 아릿하게 올라왔다. 한참을 그리 서 있다 목에 붕대를 감아 자국을 가렸다.
퇴원한 이후로 그것이 미츠이의 꿈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가족에게서도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며 추궁받았지만 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어쨌든 사라졌잖아. 더 이상 안 나타나면, 그거면 된 거 아닌가.
그리고 이다음 이야기는, 다들 알다시피. 미야기의 복귀, 뒤뜰에서의 싸움, 농구부 최후의 날. 마지막으로 미츠이가 농구부에 완전히 복귀하며 ‘미츠이 히사시의 이야기’는 일시적으로 막을 내린다. 평범하진 않지만 겨우 돌아온 일상 속에서 북산 농구부는 현 대회 예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언제나 그렇듯 전국 제패.
*
미츠이가 복귀한 이후로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부활동 중에서만. 부활동 내도록 안 보이던 그것은 교내에서 미야기를 발견할 때마다 미야기 근처를 맴돌고 있었으니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것과의 마지막이 꽤 꺼림칙했기에 미츠이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누가 제 목을 조른 이와 한 공간에서 멀쩡히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이 자신을 해치려 든 이유 또한 명확했기에 더 그랬다. 근데 어지간히 아끼는가 봐. 보통은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행동하지는 않기에.
망자亡者가 생자生者를 해하려 들어선 안 된다. 망자의 행동으로 인해 생자에게 어떠한 피해가 갈 경우, 순리를 어겼다 판단되어 윤회輪廻의 자격을 잃음과 동시에 평생 구천九泉을 떠도는 영혼이 된다.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잊어버리면서, 소멸하지도 못 한 채, 계속. 때문에 갈 때까지 간 것들이 아닌 이상 생자에게 해를 가하려 드는 일은 없었다. 윤회를 돌 자격을 버리고 자신을 잊어버리면서까지 이루고자 하는 일은 아니었으니.
그래서 미츠이에게 그것의 행동은 예상치 못한 것에 가까웠다. 가위에 눌리게 하는 걸로 겁만 주는 것이 아닌 목을 졸라 직접적인 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야기가 소중하다는 뜻인가? 퉁, 퉁. 공을 몇 번 튀기다 3점 슛 라인 뒤에서 슛을 쐈다. 철썩. 공이 림에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미츠이의 머릿속에서는 그것에 대한 생각이 사라졌다.
그들의 행동은 대체로 이해할 수도, 종잡을 수도 없는 것이었으니.
*
밤늦게까지 야간 연습을 한 어느 날이었다. 어지러이 널브러진 농구공들을 정리하고, 체육관 문까지 잠근 미츠이는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을 향해 걸어갔다. 2년간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선 남들보다 배는 더 연습해야 했다. 제일 늦게 귀가하고, 제일 일찍 등교하다 보면 어느새 체육관 열쇠는 미츠이의 손에 들어와 있었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빨리 집에 가서 샤워하거나, 가는 길에 뭐라도 먹을까, 그런 고민을 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바닷가가 보였다.
북산에서 미츠이의 집까지 가는 길에는 해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미츠이는 등교할 때나 하교할 때나 언제나 바다를 보며 걸었다. 밤바다를 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가끔씩 아무도 없는 해변에 서서 멍때리는 일도 허다했다. 농구를 잠깐 그만둔 이후로는 바다를 쳐다도 안 봤지만.
이유를 묻는다면, 그냥 꼬와서 그랬다. 부활동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이른 시간에 하교하게 되는데, 그럴 때면 종종 해변에서 웃으며 뛰노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아 씨발XX들 뭐가좋다고 저렇게 처웃고다녀 개새끼들……. 괜스레 화풀이하게 되어 발걸음을 끊게 된 것이다. 부끄러운 과거였다. ……오랜만에 한 번 들를까. 미츠이는 검은 바다를 잠시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밟힌 모래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신발 벗고 걸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뒤처리가 귀찮게 될 거 같단 예감에 그만뒀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킁, 코를 한 번 훌쩍인 미츠이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일정한 파도 소리도, 시원한 바람도, 바다의 짠내도. 연습으로 고되었던 미츠이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하고 다녔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밤바다를 즐기며 걷고 있자니 우두커니 서 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의아함에 절로 발이 멈춘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몇 발자국 더 다가섰다. 다가가면 갈수록, 뭔가 익숙한 게.
……미야기?
미야기가 해변에 서 있었다. 새까만 밤바다를 바라보는 채로. 미츠이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 멈추어 섰다. 저보다 훨씬 더 일찍 집에 간 미야기였다. 그런 주제에 여전히 교복을 입은 채 해변에 서 있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 녀석, 저 상태로 있다간 부모님이 걱정할 텐데. 미야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미츠이가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왜 이 시간에 저러고 있어서 신경 쓰이게 하는지. 미츠이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 큰 소리로 미야기를 불렀다.
“미야기!”
하지만 미야기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돌아보지도, 움찔거리지도 않고,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소리가 작았나 싶어 좀 더 크게 불러봐도 여전했다. 이상했다. 최근 들어서 미야기와의 사이는 꽤 좋아진 편에 속했으므로, 이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무시하는 걸 상상하는 게 어려웠다. 애초에 미야기는 누군가가 불렀을 때 그 부름을 무시할 만한 성격이 아니다. 미츠이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미야기에게로 걸어갔다. 미야기? 아무리 불러봐도 여전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 미야기 너……. 어깨를 붙잡고 거칠게 돌려세운다. 조금 짜증이 나선 지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들기도 잠시, 미츠이는 미야기와 눈이 마주치고. 그리고 무언가 잘못됐음을 알아차렸다.
미야기의 눈이, 꼭, 홀린 사람마냥 초점 없이 공허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미야기에게는 그것이 붙어 있었다. 때문에 웬만한 것들은 미야기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그랬을 텐데. 왜 미야기가 이런 상태가 됐지? 아무리 흔들고 불러봐도 미야기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공허한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그것의 행방에 대한 의문. 그것은 미야기의 곁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물론 미츠이의 복귀 이후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부활동 시간에 한정된 일이었다. 미츠이는 그것의 행적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날 죽이려고 했으면서. 미야기가 홀리는 것을 그냥 두고만 봤다고?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차라리 자신이 다시 농구를 그만두는 게 더 설득력있었다. 한참을 미야기를 붙잡고 고군분투하던 미츠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단단히 홀린 듯, 정신 차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원인을 찾아내 최대한 떨어트려 놓거나 없애야 할 텐데……. 미츠이는 보고, 듣고, 만질 수는 있었지만, 제령 같은 것은 할 줄 몰랐으므로. 결국 원인과 미야기를 떨어트려 놓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아니면 패서라도 내쫓아야…….
애초에,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거지?
미츠이의 시선이 자연스레 미야기가 바라보고 있던, 바다 저 건너로 향한다. 자세히 보니 어두컴컴한 바다 위에 한 인형人形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람이라면 바다 위에 설 수 없으니, 아마 미야기를 이 상태로 만든 원인일 것이다. 근데 바다면 수살귀인가? 미야기 이 녀석 수살귀랑 인연이 왜 이렇게 많지? 혹시 몰라 미야기를 제 뒤로 숨긴 미츠이가 인형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일단 낯짝이라도 봐야 피하든 때리든 무슨 수를 쓸 것 아닌가. 인상을 쓰면 쓸수록 나름 잘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아, 좀 더 밝으면 확실히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목을 쭈욱 내밀고,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갔을 때.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내리쬐어 바다가 반짝이고, 파도가 밀려와 미츠이의 신발을 적시자, 아.
그때 미츠이는 깨닫는다.
미야기를 이렇게 만든 것은 그 누구도 아닌 그것이라고.
정신을 차렸을 때 미츠이는 미야기를 끌고 해변에서 벗어난 이후였다. 무슨 정신으로 달렸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몰라 주변을 둘러봐도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간혹 보이던 잡귀 외에 보이는 귀신 또한 없었다. 미츠이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상황을 대략적으로 정리했다. 미야기가 그것에 홀렸다. 왜? 잘 있다가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소중히 여기던 게 아니었나? 아니, 애초에. 미야기가 왜 거기에 있었지? 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지. 바다에 들어가려고 한 건가? 어째서. 죽으려고?
그것의 목표는 미야기를 데려가는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미츠이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왜 데려가려는 거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아꼈으면서, 갑자기? 알 수 있는 것은 없는데 모르는 것은 한가득이었다. ……혹시 나 때문인가? 내가 미야기를 린치해 그것을 자극해서 갑자기 흑화해가지고……. 미츠이는 거기서 생각을 끊어냈다.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이었으나 그 가설을 받아들이기엔 미츠이의 멘탈은 약했다. 아파져 오는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걸 칼로 끊어낼 수도 없고, 뭐 어쩌란 건지. 일단, 제일 급한 건…… 아. 미야기. 미야기는 지금 괜찮은 게 맞나? 미츠이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미야기의 상태를 살폈다. 미야기는 여전히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어딘지 모를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츠이는 조심스레 허리를 숙여 미야기와 눈을 맞췄다. 미야기는 여전히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원인과 멀어졌으니까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야 하지 않나? 왜 여전하지? 미츠이는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머뭇거리며 손을 뻗은 미츠이가 미야기의 어깨를 두드렸다. 미야기. 대답이 없다. 귓가에 울리는 심장 소리가 시끄러웠다. 미야기가 괴이 현상으로 인해 잘못되었을 경우, 미츠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해 무력함만을 느끼는 것은 이제 지겨웠다. 그러니 처음부터 바로 잡아야 했다.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지금부터. 미츠이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펴고선, 다시 미야기를 불렀다. 어이, 미야기.
“……미츠이 씨?”
“미야기?”
“뭐야, 미츠이 씨가 왜 여기에 있어요? 또 제 손목은 왜 잡고 있는 겁니까?”
아무것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의 미야기를 보자 미츠이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여전히 미야기의 손목을 잡은 채로. 갑작스레 주저앉은 미츠이에 화들짝 놀란 미야기가 따라 주저앉는다. 뭐야, 미츠이 씨 왜 그래요? 어디 아픈 겁니까? 무슨 일 있었어요? 오늘 훈련이 너무 과했나? 아닌데, 평소랑 똑같았는데??? 미야기가 종알종알 뭔가를 말했지만 신경 쓸 기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는 길거리 한복판이었고, 미야기는 미츠이를 짊어지고 갈 수 없기에. 미츠이는 정신을 놓기보단 미야기를 추궁하길 택했다.
“……미야기.”
“네?”
“너…… 뭐 최근에 이상한 짓 안 했지?”
“이상한 짓?”
“왜, 신사에서 불경한 짓을 했다던가. 코마이누에게 뭔 짓을 했다던가, 토리이에 낙서했다던가…….”
“미츠이 씨. 혹시 절 10살짜리 애로 보고 있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미야기에 미츠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설명해봤자 미친놈 취급을 할 게 뻔하니 뭐라 더 말을 덧붙일 수도 없었다. 이런 걸 두고 진퇴양난이라고 하던가? 한숨을 삼킨 미츠이가 다리에 힘을 줘 일어섰다. 미야기의 시선이 미츠이를 따라 올라온다. 됐어, 집에나 가자. 데려다줄게. 네? 미츠이 씨가 왜. 혼자 갈 수 있어요! 시끄러, 임마. 이런 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야.
미츠이는 괜찮다고 극구 만류하는 것을 무시하며 기어코 미야기의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 미야기는 불만스러운 얼굴이면서도 감사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작게 허리를 숙이고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미츠이 또한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괜찮았다.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렇기에 미츠이는 대책을 찾기로 했다. 또다시 무력함을 느끼고 싶진 않았으므로. 매사에 최선을 다하여 다시는 후회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므로.
*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다 깨는 것을 반복하기도 했고, 악몽을 꾼 탓도 있었다.
미야기가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꿈을 꿨다. 아무리 잡아당기고 불러봐도 반응 하나 돌아오지 않았다. 파도가 차올라 미야기를 머리끝까지 삼켰을 때, 그리고 그것이 미츠이를 똑바로 쳐다봤을 때. 꿈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왜 하필이면 이런 꿈을 꿨지. 미야기는 바다를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어떡하냐…….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미츠이가 시간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등교 준비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잠이 부족하니까 졸리네. 수업 시간에 잠이나 잘까……. 양키는 그만둔 주제에 양키 같은 생각을 하며 하품을 쩍 하던 미츠이는 야스다와 함께 걸어가는 미야기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미야기. 자연스레 어제의 일과 간밤에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어제는 별일 없었던 건가? 야스다와 장난을 치며 걷는 모습을 보니 별일이 있었던 거 같지는 않지만, 미야기에게서 직접 듣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기에 손을 들어 미야기를 부르려다가, 한가지 미시감을 느끼고 자리에 멈추어 섰다. 무언가 부족했다. 미야기를 볼 때마다, 항상 있던, 무언가가……, 아.
없다. 그것이 없다. 미야기를 어미새마냥 졸졸 따라다니던 그것이 없었다. 왜? 도대체 왜? 왜 없는데? 진짜 왜???? 어제 그런 일이 있었기에 더 혼란스러웠다. 데려가는 것을 포기했나? 아니 근데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해? 끈기 있게 살아!! 끈기 있으면 안 되지만!! 포기한 거면 오히려 좋지만!!!
다만 그것의 행적을 생각하면 고작 한 번의 실패 가지고 포기할 거 같진 않았다. 그러면 왜 없는 거지? 의문 위에 의문이 쌓인다. 결국 완성된 의문의 탑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해서, 미츠이는 탑을 무너트리는 대신 외면해버리고 싶었다. 애초에 미츠이는 미야기와 아무 사이가 아니었다. 고작 부활동 후배, 조금 더하여 자신이 아주 많은 잘못을 한 상대. 딱 그 정도의 사이였다. 미츠이가 신경을 써가면서까지 챙길 필요가 없단 소리였다. 하지만 그랬다간 미야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고, 무슨 일이 생겼다간……. 머릿속에 떠오른 가정을 지워낸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지나가 버린 과거도, 알 수 없는 미래도 아닌 일어나고 있는 현재다. 미츠이는 미츠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됐다.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야겠다만은.
*
미츠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미야기 관찰이었다. 그것의 힘은 막대했기에, 그것이 사라진 지금 미야기에게 어떠한 영향이 있을지 몰랐다. 부활동 시간에는 농구에 집중하되 미야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2학년 층으로 내려가 미야기를 찾았다. 하교는 무조건 같이. 집에 가는 방향이 비슷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야기는 안 밀릴 거 같아도, 조금만 강하게 밀어낸다면 쉽게 밀리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미야기와 붙어 다니는 일은 꽤 쉬웠고, 미츠이는 학교에 있는 시간 중 수업 시간을 제외하곤 전부 미야기와 함께 보냈다.
그로 인해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미야기는 정말 엄청나고 굉장하고 위험하게 귀신이 잘 꼬이는 체질이라는 것. 그것이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래서 계속 붙어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대체 사람이 어떻게 하면 쉬는 시간마다 귀신이 한 놈씩 붙어있지? 이쯤 되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팔자에도 없는 보디가드 노릇을 하고 있어서 더 그랬다. 수업 시간 내내 다리를 달달 떨던 미츠이가 수업 종료종이 울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2학년 층으로 달려가는 일은 이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저 멀리서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지만,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한테는 제 성적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하나 있어서요.
뭐라도 해보겠다고 쟁여온 부적은 매일 아침 부활동 시간에 미야기의 가방 앞주머니에 들어갔다. 다만 하루가 지나면 싹 다 불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레전드 비효율적 일이었다. 가족들의 도움-이상하게 가족은 미츠이의 돌발 행동에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을 받아 얻어낸 꽤 효능 좋은 부적이었는데도.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었나 이 자식은? 뭐가 문제지 진짜? 이게 바로 뭐, 호이호이 그런 건가? 근데 좀 과하지 않아? 미츠이는 남은 부적 개수를 세어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분명 서른 장 정도 받아온 거 같았는데 벌써 열 장 채 남지 않았다. 이게 맞나 싶다.
지금껏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던 미츠이는 허공을 향해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인 것 마냥 따봉을 날렸다.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는 것처럼. 아무것도 풀리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세어라, 미츠이 히사시.
뭐, 어찌 되었든. 미츠이는 미츠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 노력에 보답하듯 미야기는 지금까지 아무런 일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것 또한 존재를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미츠이도 처음에야 날을 세우고 경계했지만, 그것이 보이지 않는 날이 늘어나면 날수록 미츠이의 경계심 또한 줄어들었다. 다만 그럴 때면 미야기는 어김없이 바다로 향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공허한 눈으로. 그러면 미츠이는 항상 미야기를 붙잡아다가 뭍으로 데려왔다. 미야기의 그 행동은 꼭 미츠이에게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는 것 같았다.
*
밋치랑 료칭은 엄청 붙어 다니네.
연습 중 쉬는 시간, 나란히 앉아있는 미츠이와 미야기를 보고 사쿠라기가 그런 말을 했다. 미야기는 그 말에 미츠이 씨가 일방적으로 달라붙는 거야! 하며 질색했다. 그 말이 맞긴 했다. 미츠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미야기는 다가오는 일이 없었으니. 다만 그 언행 하나에 왜 그리 기분이 상했는지. 인상을 슬 찌푸린 미츠이는 힘들어서 기대는 척 미야기를 제 몸으로 꾹꾹 눌렀다. 기우뚱 쓰러지다 버티는 건지 일정 높이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어쭈구리. 미츠이는 힘을 좀 더 실어 미야기를 눌렀다. 미야기에게서 불만 어린 소리가 터져 나왔으나 미츠이는 상관하지 않았다. 결국 둘의 유치한 싸움은 미야기가 미츠이의 옆구리를 세게 때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짜증을 잔뜩 낸 미야기는 공을 들고 코트로 복귀했다. 사쿠라기가 그런 미야기의 뒤를 부산스레 따랐다. 료—칭! 패스해 줘, 패스! 아악, 하나미치 너까지 그러기냐! 사쿠라기가 미츠이를 따라 하듯 그 거대한 몸으로 미야기를 짓눌렀다. 미츠이는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붙잡고 사쿠라기를 응원했다.
“더 해라 더 해, 아주 쥐포로 만들어버려!”
“미츠이 씨 진짜 죽고 싶죠?! 하나미치 너는 좀, 떨어져!!!”
“으하학! 견뎌 료칭, 내 사랑이야!”
“진짜 둘 다 미쳤나 봐!!!!”
공은 저만치 굴러간 지 오래였고, 이제 미야기는 사쿠라기를 반쯤 업은 모양새였다. 그 꼴을 보며 낄낄 웃던 미츠이는 옆구리를 문질렀다. 얼마나 세게 때린 건지 아직도 얼얼했다. 티셔츠를 들어 올려 옆구리를 확인한 미츠이가 벽에 툭 기대며 부러 엄살을 떨었다.
“저 녀석 말이야. 선배를 함부로 대하기나 하고 말이야. 어? 이게 말이 되는 거냐. 내일 멍이라도 드는 거 아냐?”
“하하, 하지만 미츠이 네가 잘못한 것도 맞아.”
“시—끄러. 알고 있다고.”
코구레의 말에 입을 꾹 닫았지만. 언제부터 듣고 있었던 거야, 이 녀석. 괜스레 민망해져 스포츠 드링크를 따 마셨다. 시원한 스포츠 드링크가 버석하게 마른 입 안을 적셔주었다. 이제야 좀 살겠네. 대충 입가를 닦아낸 미츠이가 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의외네.”
“뭐가?”
“너랑 미야기. 사쿠라기가 말한 것처럼, 너희가 붙어 다닐 줄은 몰랐거든. 아카기랑은 네가 미야기를 협박해서 같이 다니는 건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었어. 야스다랑 아야코도 알게 모르게 꽤 걱정했었고. 미야기도 그렇고 너도 그럴 만한 인물이 아니란 건 알아.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야. 너희가 친해 보여서. 미츠이는 코구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쿠라기와 미야기는 어느새 원온원을 하고 있었다. 페이크로 사쿠라기를 뚫는 미야기를 바라보다, 미츠이는 중얼거렸다.
“저 녀석이 다 받아줘서 그래.”
둘의 관계는 미야기가 받아주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 관계였다. 미츠이도 그걸 모르진 않았다. 그걸 알고 있으니 어디까지 받아주나 더 뻗대는 거 같기도 하고. 스포츠 드링크를 전부 마신 미츠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쿠라기가 막 3점 슛을 실패한 참이었다. 사쿠라기를 놀리며 저가 시범을 보여주겠다는 미야기의 슛 또한 실패했다.
저 멍청이들, 어깨에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고 몇 번을 말하냐!!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사쿠라기와 코구레의 말은 미츠이를 하루종일 따라다녔다.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로 미야기와 붙어 다녔었나? 미츠이는 지난 과거를 되짚어봤다. 조급함에 제대로 신경 못 쓰긴 했지만, 확실히…… 과할 정도로 붙어 다닌 거 같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런 쪽으론 아예 무지한 미야기를 내버려 두는 건 개울가에 어린애를 방치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러니까, 미츠이가 이렇게 미야기에게 신경 쓰는 것은. 불가항력과도 같은 일이란 뜻이다.
무엇보다, 미야기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농구부를 쉬게 된다고 가정해보자. 미야기가 없으면 북산 농구부의 포인트가드는 누가 할 것이며-미야기가 뛰어난 포인트 가드이긴 하나 야스다의 실력 또한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 문제아들은 누가 또 다스리고-처음부터 아카기가 했다-, 누가 미츠이에게 패스를 보내줄 것인가-이건 미야기만 할 수 있는 일이긴 했다. 미츠이는 아직 대부분의 부원과 데면데면했으니-. 북산 농구부를 위해서라도 미야기는 사지 멀쩡히 학교에 올 수 있어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북산 농구부를 위해서였다.
……정말로?
*
미츠이는 그 이후로도 미야기를 집중 마킹하며 살았다. 그 둘이 떨어져 있는 일이 더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우스갯소리로 미츠이를 찾으려면 미야기에게, 미야기를 찾으려면 미츠이에게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굳이 따지자면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 우스갯소리도 아니었다. 물론 미츠이야 농구하랴, 공부하랴, 미야기 챙기랴. 몸이 세 개여도 부족할 지경이긴 했다만, 그것은 미츠이가 이겨내야 할 일이었다.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냐.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새 현 예선 대회가 끝나갈 무렵이었고.
북산은 인터하이 출전권을 쟁취해낸다.
*
“그러고 보니 료타, 오늘 생일이지?”
“어? 어……, 그렇지.”
미츠이는 미야기를 부르려다가 멈칫거렸다. 미야기는 야스다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돌아가서 조용한 부실은 꽤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선명히 전달했다. 그래서 둘의 대화를 몰래 엿듣고 있는 거 같아 기분이 묘했지만, 그것보단 오늘이 미야기 생일이라는 사실이 더 묘하게 다가왔다. 미야기, 오늘 생일이구나. 왜 말을 안 한 거지. 다른 놈들도 알고 있나? 말했다면 다들 분명 축하해줬을 텐데. 오늘도 미츠이는 미야기와 하루 종일 붙어 다녔지만, 미야기에게 축하를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미야기의 생일이 오늘인 것을 지금 알지 않았을 것이다. 축하받는 게 부담스러운 건가? 저 녀석, 은근히 낯을 가리니까. 근데 농구부한테까지 낯을 가리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미야기가 자신을 부르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미츠이 씨! 왜 대답을 안 하는 겁니까?”
“아, 어어. 미안. 좀…… 딴생각을 하느라.”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그리한답니까. 그건 그렇고, 언제 온 거예요?”
“……방금.”
“거짓말.”
눈을 가늘게 뜬 미야기가 미츠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 시선에 눈을 도르륵 굴리던 미츠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뭐가 중요하냐. 집에나 가자. 그러며 미야기의 등을 가볍게 쳤다. 누가 봐도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한 이의 행동이었으나 미야기는 별말도, 추궁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같이 그럽시다, 하며 야스다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일 보자 야스. 응, 료타. 내일 보자.
미츠이는 집에 돌아가는 길 내내 힐끔거리며 미야기를 바라봤다. 오늘이 생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신경 쓰여 어쩔 수 없었다. 생일이라는 사실을 방금 알게 되어 준비한 선물 같은 건 없었지만, 적어도 축하한다는 말쯤은 건네고 싶었다. 그것이 미츠이의 최선이었으니까. 다만 미야기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듯싶어 쉽사리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오늘 안 좋은 일이 있었던가? 우물쭈물 눈치를 보던 미츠이가 큼, 몇 번 헛기침하고선 조심스레 미야기를 불렀다.
“미야기.”
“네?”
“너…… 오늘 생일이냐?”
잠깐의 공백.
“네. 말 안 했던가요.”
그리고 침묵. 미츠이는 눈썹을 삐죽거렸다. 여기서 끝이야? 별다른 말 없이? 보통, 선물이라던가, 축하라던가. 그런 걸 요구하지 않나? 미츠이에게 생일 선물과 축하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미야기의 반응이 건조하다고 느꼈다. 생일이 달갑지 않은 건가?
“뭐, 선물이라던가. 필요하지 않아?”
“제가 애입니까? 됐어요. 부담스럽고.”
“아니, 그래도. 생일인데…….”
자연스레 말끝이 흐려졌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더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미츠이는 섬세한 인간이 아니었으므로. 둘의 사이에서 대화를 주도하는 것은 미츠이였기에, 미츠이의 말이 끊기자 자연스레 대화 또한 끊겼다. 침묵 자체가 불편한 것은 아니었으나 이러한 상황에서 찾아오는 침묵이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결국 헤어져야 할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둘 다 대화의 서두를 트는 법이 없었다. 미츠이는 갈림길이 나오고 나서야 우뚝 멈추고선, 몰래 미야기의 안색을 살폈다. 언제나와 같은 평온한 얼굴이었다. 아니, 아닌가? 뭔가가…… 있는데.
“그럼 미츠이 씨, 저는 이만 가볼게요.”
“어, 어어. 내일 보자.”
꾸벅, 작게 고개를 숙이는 미야기에 얼떨결에 대답한 미츠이가 눈을 깜박이다 인상을 슬 찌푸렸다. 이 상태로 미야기를 보내기엔 뒷맛이 좋지 않았다. 오늘 내도록 보았던 미야기는, 쭉 미묘하게 저기압이었으므로. 미야기는 제 감정을 숨기는 것이 능해 티가 나진 않았지만 미츠이는 왜인지 모르게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붙어 다닌 시간이 있어서 그런가? 뒷목을 만지작거린 미츠이가 미야기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노려본다. 이렇게까지 노려보면 금세 반응이 돌아오곤 했는데, 지금의 미야기에게 반응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확실했다. 오늘의 미야기는 어딘가 이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쓸데없이 신경 쓰였다. 젠장, 숨길 거면 좀 똑바로 숨기던가. 어설프게 숨기니까 이렇게 신경 쓰게 되는 거 아니냐. 한숨을 내쉰 미츠이가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선.
“어이, 미야기! 생일 축하한다!”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 질렀다. 아마 주변 주택에서는 미츠이의 목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화들짝 놀란 미야기가 미츠이를 돌아봤다. 동그랗게 떠진 그 눈이 웃겨 미츠이는 웃음을 터트렸다. 재빠르게 달려온 미야기가 미츠이의 멱을 틀어잡는다. 어이코, 하고 몸이 살짝 휘청임과 동시에. 당신 진짜 미쳤어요?! 이 밤에 시끄럽게 뭐 하는 짓이에요! 부끄러운 건지 살짝 벌게진 얼굴로 미야기가 소리 질렀다. 네 목소리가 더 큰 거 같은데.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바락바락 화를 내는 미야기에 미츠이가 다시 웃었다. 네 생일인데 원하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어쩔 수 없잖냐.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해요?! 무어라 더 말하고 싶어 입을 열다가도 지금 시간을 생각한 건지 입을 꾹 다물고 씨근거린다. 어쭈구리, 지 목소리가 더 큰 걸 이제 깨달았나 보지. 바닥을 기어 다니던 기분이 단박에 솟아올랐다. 유쾌한 기분으로 미야기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숨을 푹 내쉰 미야기가 미츠이를 노려본다. 눈빛으로 사람 하나 죽이겠네.
“화 풀어라, 미야기. 소리 지른 건 미안해. 하지만 네 생일을 축하하고 싶었어.”
“그러면, 그냥 평범하게 말해도 됐었잖아요.”
“그건 재미없잖냐.”
“당신 진짜…….”
미야기의 눈썹이 가팔라지며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어허. 주름 생긴다, 인상 쓰지 마. 엄지로 미간을 꾹꾹 눌러주자 반사적으로 미야기의 눈이 감겼다. 얌전히 손길을 받는 모습에 장난기가 샘솟아 미간을 펴주던 엄지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파드득 놀라며 튀어 오르는 꼴이 제법 웃겼다. 금세 서너걸음 정도 떨어진 미야기가 잔뜩 경계 어린 기색으로 미츠이를 노려봤다.
“야, 너 그러고 있으니까 길고양이 같다.”
“지금 진짜 뭐라는, 하……. 한 대만 때려도 됩니까?”
“폭력 반대. 그리고 안 싸우기로 약속했잖냐.”
“제가 일방적으로 때리는 거니까 싸우는 건 아니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그럼 더더욱 안 되지.”
칫, 아쉽다. 고개를 슬쩍 돌리며 중얼거린 그 말에 진심이 담겨있다는 것을 눈치채기란 쉬운 일이었으나, 부러 눈치 못 챈 척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그런 미츠이에 미야기의 표정이 금세 짜증으로 물든다. 정말이지 알기 쉬운 녀석이었다.
“됐어요, 전 이제 진짜 집에 갈 겁니다. 미츠이 씨도 빨리 집에 가세요. 걱정하실라.”
“아, 그래야지. 내일 보자, 미야기.”
“예, 내일 봐요. 그리고, ……고마어요.”
“뭐라고 했냐, 너? 못 들었어.”
사실이었다. 미야기는 정말 작게 중얼거렸으니까. 미츠이가 한 발자국 다가가자, 미야기는 눈을 깜박이다가 씩 웃었다. 어딘가 익숙한 표정이었다. 내가 저런 표정을 짓는 미야기를, 본 적이 있나?
“됐어요. 한 번 못 들었으니 끝입니다.”
“뭐? 야, 그런 게 어딨어!”
“여기 있죠. 어쨌든 전 갑니다, 미츠이 씨도 늦지 않게 들어가세요!”
“뭐? 야, 잠깐, 어이 미야기!!”
황급히 붙잡으려 해도 미야기는 이미 저만치 달려간 후였다. 하여간 빠른 놈. 미츠이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 미야기가 아주 작은 점이 되고 나서야 뒷목을 벅벅 긁었다. 뭐, 어쨌든. 축하한다고 했으니 된 거지.
*
깜박, 깜박.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미츠이는 바다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바다? 웬 바다. 자연스레 내려다본 바다는 기이할 정도로 새까맸다. 바다 위에 서본 적은 없지만, 천해淺海가 이리 까맣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바다는 아주 깊숙이 들어갔을 때야 볼 수 있는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심연深淵을 닮았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던데. 내가 생각하는 바다는 이렇게 까만 건가? 그간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이런 색을 띠는 게 부자연스럽지만은 않은 거 같기도 하고. 별의별 일이 다 있었으니까. 바다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기억났다.
네가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또한 널 들여다볼 것이다.
그 말을 떠올리자 바다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 같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있으니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드네. 꺼림칙한 기분을 지워내기 위해 발로 바다를 헤집으면 움직임에 따라 물결이 일었다. 퍼져나가는 물결을 멍하니 바라보다 미츠이가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찰박, 물소리는 났지만 발등 이상으로 빠지진 않았다. 걸어도 괜찮겠네. 미츠이는 자연스레 걸음을 옮겨 바다 위를 걷기 시작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고, 목적지 또한 몰랐지만, 일단 걷다 보면 뭐라도 나올 것이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뭔 놈의 바다가 이리 넓은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사위 어디를 봐도 바다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돌고 있을 수도 있었다. 제자리에 멈춰선 미츠이가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내뱉는다. 꿈이라 그런가, 정신적 피로는 있어도 육체적 피로는 없었다. 이 몸 그대로 현실로 가져가서 농구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전 상양과의 경기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던 미츠이가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낸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하늘을 잠깐 바라보던 미츠이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걷자. 아주 조금만. 그 후에도 아무것도 안 나오면, 그냥 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리지 뭐.
다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슬슬 정신적으로 완전히 지쳐갈 무렵 저 멀리 무언가가 솟아있는 보였다. 정확한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던 미츠이가 화색을 띠며 둔덕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형상이 선명해졌다. 이윽고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까이 가도 괜찮은 게 맞나? 싶은 의문이 들었고, 그 사람이 미야기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저도 모르게 달리고 있었다.
미야기가, 왜, 여기에?
가까이서 본 미야기는 축축하게 젖은 상태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황급히 무릎을 꿇고 앉아 가슴께에 귀를 가져다 댔다. 쿵, 쿵, 쿵. 일정한 박자로 심장이 뛰고 있었다. 손을 들어 코 밑에 가져다 대면 숨결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잠들어 있는 거 같았다. ……놀래라……. 미츠이는 비틀거리며 미야기 위에 엎어져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때서야 미츠이는 자신이 숨을 멈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귓가에 쿵쾅거리며 울리는 심장 소리가 시끄러웠다.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뭐 하나 잘못되어서 전부 물거품이 된 줄 알았어…….
파들거리는 팔이 힘을 줘 상체를 일으킨 미츠이가 미야기를 내려다본다. 미야기는 평온한 표정으로 조용히 자고 있었다. 왁스 칠도 안 하고, 눈썹에 힘도 안 주고 있으니까, 어려보이네. 그런 생각을 한 미츠이는 흘러내린 곱슬머리를 천천히 쓸어 넘겨주었다. 이마를 지나, 얼굴선을 타고 천천히 쓸어내리면 간지러운 듯 살풋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고등학생이 아닌 중학생 같았다.
근데, 왜 미야기가 내 꿈에 나타났지?
그 의문을 깨달은 순간, 찰박.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소리였다. 미츠이가 이곳을 걷는 내내 들은 소리였으니 당연했다. 찰박, 찰박, 찰박. 멀찍이서 들리던 소리가 가까워진다. 이 공간에 미츠이와 미야기를 제외한 누군가가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미츠이는 지금 다가오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것은 미츠이가 지금까지 살며 쌓아온 경험에 의거한 것이었다. 타인의 꿈에 들어와 자유의지로 움직일 수 있다면, 결코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여기는 사방이 광활하게 뚫린 바다 위였다. 어딜 가든 금방 발견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츠이는 잠들어있는 미야기를 내려다봤다. 미야기를 데려가면서까지 도망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야기를 놓고 갈 수도 없었다. 어떤 미친놈이 저 하나 살자고 무방비한 후배를 버리는가. 적어도 미츠이에겐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차라리 같이 잡히고 말지. 아니, 애초에. 내 꿈이니까 내가 목적인 거 아냐? 미야기는 안전하지 않을까.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는 와중에도 소리는 가까워져만 갔다. 미츠이는 미야기를 붙잡은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질끈 감으면, 찰박이는 발소리가 멈췄다. 슬며시 눈을 떠 고개를 살짝 올리면 바로 눈앞에 자그마한 발이 있었다. 작다. 작아. 왜, 아, 혹시, 설마.
머리 한구석을 스쳐 지나가는 가설을 부정한다. 가장 유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미츠이는 다시 눈을 감고 싶었다. 이 상태로 꿈에서 깨어나길 빌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이상하게도 눈은 감기지 않았다. 누군가가 얼굴을 붙들고 잡아당기는 것 마냥 고개가 올라간다. 다리를, 빨간 반바지, 검은 나시티를 지나서. 그래서, 그리고, 마침내.
아.
왜 항상 최악의 가정은 틀린 적이 없는 걸까.
반사적으로 미야기를 끌어안았다. 미츠이가 지금껏 미야기와 내도록 붙어있던 이유가 무엇인가. 미야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전전긍긍하여 그런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것과 미야기를 떨어트려 놓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미야기를 데려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한 건데.
그간의 노력이 기어코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미츠이는 억울할 지경이었다. 이러긴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미야기를 지키려고 했는데.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되돌릴 수 없고 미츠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미츠이는 영적인 무언가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에게 불과했으니. 하여 그것이 저를 가만히 내려다볼 때 미츠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야기를 최대한 끌어안아 제 몸으로 가리는 것이었다. 끌어안은 팔이 떨리는 것은 미야기를 놓지 않게 힘을 줘서일까, 아니면 미야기를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뽀글, 뽀글, 뽀글. 그것이 입을 열 때마다 수포가 터져 나온다. 귓가에서 들리는 수포들이 터지는 소리가 어지러워 말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미츠이는 필사적으로 미야기를 끌어안았다. 데려가지 마. 그러지 마. 가족이잖아. 소중한 동생이잖아. 그러니까, 제발……
내가 아니야.
뭐?
*
허억,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일어났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축축했다. 뭐, 이딴, 꿈을.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 한참을 그리 앉아있었던 거 같다. 당장이라도 걸으면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날 거 같았고, 품속에 있던 온기가 선연했다. 이렇게까지 현실적인 꿈이 있을 수 있나?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미츠이가 느리게 숨을 내쉬며 시계를 확인했다. 23시 44분. 하루가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다시 잠에 드는 것이 맞았다. 내일은 히로시마에 가는 날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 출발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불안했다. 미친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 미야기가 안전한 것을 봐야 마음놓고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츠이는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에 걸쳐져 있던 겉옷을 챙겨 입었다. 아무리 여름이라 하여도 밤 날씨는 꽤 쌀쌀한 편에 속했으므로. 큰 대회를 앞둔 지금 이러한 일로 컨디션을 망치게 되어서는 안 됐다. 이미 망치고 있는 거 같긴 하다만. 가족들은 다 자고 있으니, 최대한 조용히 나가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1층으로 내려온 미츠이는,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누나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누나? 왜 깨어 있어?”
“히사시.”
“아니, 이상한 짓 안 해. 그냥 산책만 하고 돌아올 거야. 아마, 12시 전에는,”
“료타 군 때문이지?”
그 말에 횡설수설 변명을 하던 입이 꾹 다물렸다. 미츠이 家의 여성들은 신기를 좀 더 강하게 물려받는 성향이 있었다. 하여 가끔씩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히 무언가를 맞추어내곤 했다. 누나의 말에 따르면 본능적으로 깨닫는 것에 가깝다고 했다. 아마 지금도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미야기와 만난 적 없는 누나가 이름을 알고 있는 것도 모자라 미츠이가 나가려는 목적까지 알고 있었으니. 거짓말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건 지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멋쩍게 뒷목을 만지작거린 미츠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츠이의 긍정에 누나는 한숨을 내쉬는 듯하더니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누나? 무슨 일 있어? 미츠이의 누나가 이럴 때는, 결코 좋은 일이 있지 않았다. 애초에 좋은 일이었다면 이렇게 반응하지도 않겠지. 미츠이는 불안한 감정을 애써 숨기며 누나를 바라보았다. 말을 고르는 듯 머뭇거리던 누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료타 군이 죽으려고 하는 거, 히사시 네가 생각하는 이유가 아니야.”
“뭐?”
“굳이 따지자면, 료타 군 자체의 문제고…… 그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냥, ……원인 제공자 정도. 늦게 말해서 미안해. 하지만 나도 확신이,”
“아니, 그게 아니라. 방금 미야기가 죽으려고 한다고 했어?”
“……아.”
누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신을 차리면 미츠이는 이미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누나의 말이 둥둥 떠다녔다. 죽으려고 한다고? 그 누구도 아닌, 그 녀석이? 왜? 아니, 애초에.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틀렸다니 무슨 소리야. 그것에 홀린 게 아니라고? 그럼 그 녀석이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멀쩡했으면서, 갑자기, 왜. 어째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슬아슬하게 쌓아 올린 의문의 탑이 전부 무너져내린 기분이었다. 의문은 늘어만 가는데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은 확실한 건,
미야기를 찾아야 한다는 것.
이전 같았으면 대체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지 막막했겠지만, 지금의 미츠이는 미야기가 어디에 있을지 알고 있다. 애초에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지금껏 봐온 게 있으니까. 정신없이 달려 도착한 곳은 츠지도 해변이었다.
미츠이가 자주 들렸던 바다이며,
——미야기!!!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미야기를 발견한 장소이기도 했다. 미야기는 언제나처럼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이다, 아직 안 늦은 건가? 숨이 턱턱 막혀왔다. 조금 달린 것 가지고 이 꼬라지라니. 망할 미츠이 히사시. 머저리 같은 미츠이 히사시. 왜 농구를 쉬어가지곤! 뚝뚝 흘러내리는 땀을 대충 닦아낸 미츠이가 숙이고 있던 허리를 폈을 때.
미야기가 바닷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미츠이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고 목에서 피 맛이 났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미야기가 죽으려고 한다.
미츠이의 머릿속은 그걸로 가득 차 엉망진창이었다.
미야기를 따라 파도를 가르며 나아갔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발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미야기는 이미 허리까지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줘 파도를 헤쳐 나아가, 손을 뻗어서 미야기의 손목을 붙잡았다. 나아가려던 몸을 갑작스레 멈추게 한 반동으로 미야기의 몸이 덜컹인다. 어느새 바닷물은 미츠이의 허리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미야기를 멈췄다는 점에서 일차적 목표는 달성했지만, 미야기의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는 상태로 공허했다.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원인마저 부정당하고 나니 그나마 보이던 방안조차 전부 사라졌다. 어두컴컴한 숲 속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알 수 있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어떡하지. 뭘 어떻게 해야 하냔 말이야. 하나도 모르겠어. 붙잡힌 이후 미야기는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미츠이는 울 듯한 표정으로 미야기를 붙들고, 미야기의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대었다.
“……미야기. 정신 좀 차려봐라. 네가 왜 이러고 있냐. 네가 이러면, 난 어떡하라고…….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 봐라. 어? 미야기. ……미야기…….”
……료타……. 미츠이 답지 않은 가냘픈 목소리였다. 미야기가 들었다면 쫄았습니까? 하며, 잔뜩 놀렸을 정도로. 하지만 미야기는 그러지 못 했다. 아무 것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 하는 상태였기에. 작게 코를 울린 미츠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미야기의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이 없었다. 료타. 가볍게 이마가 맞닿는다. 두 손으로 미야기의 얼굴을 감싼 미츠이가 축축한 눈꺼풀을 깜박인다. 제발 뭐라도 말해봐라. 놀려도 짜증 안 낼테니까, 제발. 뭐라도 말해봐……. 눈물이 볼을 축축히 적시고 떨어진다. 절로 고개가 푹 숙여졌다. 미야기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려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리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미츠이 씨?”
익숙한 목소리. 반사적으로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린 미츠이와 미야기의 눈이 마주친다. 부담스러운 듯 양 고개를 살짝 물리는 것까지 미야기 같았다. 갑자기 제정신으로 돌아온다고? 왜? 이유가 있나? 아니, 그것보다. 진짜 제정신인 게 맞나?
“미야기, 정신이 드는 거냐.”
“아니, 이게 무슨. 제가 왜 여기 있어요? 미츠이 씨는 또 왜 여기, 잠깐. 설마 울어요? 대체 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니, 그것보다, 여기 바다잖아!”
미야기가 주변을 휙휙 둘러보다가 경악한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양 행동하는 미야기에 미츠이는 한 번에 긴장이 풀려 잠깐 휘청거렸다. 어, 어어. 미츠이 씨 왜 그래요? 미야기가 손을 뻗어 미츠이를 부축했다. 미츠이와 미야기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힌다. 진짜 미야기다. 제정신인, 자신을 똑바로 보는 진짜 미야기였다……. 긴장이 한 번에 풀린 탓인지 제대로 서 있기 어려웠다. 미츠이가 천천히 무너져 내리자, 미야기는 이제 미츠이를 부축하는 것이 아닌 받아 안은 상태였다. 미츠이 씨? 괜찮은 게 맞습니까? 이름을 불러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미야기가 이상함을 느끼고 미츠이의 이름을 한 번 더 부르기도 전에, 미츠이의 입이 먼저 열린다.
“죽지 마.”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둑이 터진 것 마냥 두서없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난 네가 필요해. 미야기 료타, 네가 필요하다고. 네가 없으면 난 농구를 다시 할 일도 없었는데. 너로 인해 내가 다시 살아났는데. 날 살린 네가 죽어버리면,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냐. 그러니까 미야기. 죽지 마라. 나랑 함께 있어. 그리고, 같이, 농구 하자고…….”
그러고선 미야기를 껴안으며 그 어깨에 이마를 툭 기대었다. 미야기는 머뭇거리다 미츠이를 마주 끌어안았다. 그리고 어깨가 축축히 젖어들어, 미츠이가 다시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미츠이 씨, 설마 또 우는 겁니까? 왜, 어째서, 당신이 우는 건데요. 제발 울지 마세요. 전 우는 사람을 달래는 법 따윈 모른단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허둥거리며 등을 쓸어내리는 손길이 다정했다. 미츠이는 그 손길을 받으며 미야기를 좀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하고자 하는 말은 많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미야기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 난. 그 누구도 아닌 네가.”
끌어안고 있던 미야기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혹여 미야기가 도망칠까 싶어, 미츠이는 팔에 좀 더 힘을 줘 미야기를 끌어안았다. 도망가지마. 여기 있어라. 죽지도 마. 내가 볼 수 있는 곳에 있으란 말이다…….
“……도대체, 누가, 죽는다는 겁니까…….”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미츠이는 허탈히 웃었다. 미야기가 자신에게 한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너 말이야. 나보고 제일 과거에 얽매여 있다고 했으면서……”
누구보다도 과거에 얽매이는 건,
“네가 나보다 더하잖냐…….”
바로 당신이잖아…….
그때 한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이었을까. 미츠이는 미야기를 꽉 끌어안은 채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미야기는 미츠이의 옷깃을 꽉 붙잡은 채 놓으려 하지 않았다. 허리까지 차오른 파도가 옷을 적셨다. 미츠이는 미야기를 여전히 끌어안은 채, 그리고 가끔씩 토닥이기도 하며. 바다를 딛고 서 있는, 제 앞의 소년이 전하고자 하는 말을 그대로 읊는다.
미안해.
내가 죽은 건 네 탓이 아니야.
그러니까, 료타. 이제 널 용서해.
널 위해서 살아.
괜찮아, 료타. 괜찮아…….
*
내가 형 대신 살아있어도 괜찮았던 걸까?
끝없이 던지던 물음. 그 답변은, 아마도.
*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에서 물이 새어 나와 모래를 짙게 물들였다. 이 정도면 그냥 맨발로 걷는 게 더 낫겠는데. 미츠이가 옷의 물기를 짜내며 중얼거렸다. 미야기는 그런 미츠이의 옆에 서서 아무 말 하지 않고 똑같이 물기를 짜낼 뿐이었다. 분위기를 풀어내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해볼까 싶었으나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미츠이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으니까. 이럴 때는, 가만히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고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여름이라 하여도 물에 젖은 채 장시간 있는 것은 좋지 않았다. 전국 대회가 바로 코앞이었기에 더더욱. 미츠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제가 입고 있는 겉옷의 존재를 깨달았다. 수심이 그리 깊지 않았기에 가슴께까지 쫄딱 젖은 미야기와 달리 미츠이는 허리 부근까지만 젖었고, 그래서 겉옷이 꽤 보송한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야기를 이 상태로 냅뒀다간 크게 앓을 거 같아 미츠이는 제 겉옷을 미야기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엑, 뭡니까?”
“감기 걸릴라, 덮어.”
“아, 아뇨. 미츠이 씨가 덮는 게…….”
“난 몸에 열이 많아서 괜찮아. 뭣보다 그렇게 젖은 주제에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 말에 미야기는 몇 번 입을 어물거리다 옷깃을 그러쥐었다. ……감사합니다. 미츠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옷을 좀 더 단단히 여며주었다. 됐다. 떨어지는 손을 따라 미야기의 시선이 움직이는 것을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 주머니 속에 손을 넣었다. 미야기의 시선 또한 금세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다. 미츠이도 이야기도 입을 열지 않았다. 미야기에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고, 미츠이는 그런 미야기를 기다려 줄 의향이 있었다.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좋았다. 내일이어도, 모레여도, 일 주 후, 한 달 후, 혹은 몇십년 후가 되더라도. 미츠이는 기다릴 수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볼을 간지럽히고 지나갔다. 미야기는 멍한 얼굴로 바람을 맞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미츠이 씨.”
“어, 엉? 왜 부르냐 미야기.”
불릴 줄 몰랐던 미츠이였기에 반응이 반 박자 정도 늦었다. 삐그덕거리는 미츠이를 한 번 바라본 미야기가 바다를 바라봤다. 말하기를 망설이는 듯한 기색이었다. 무얼 그리 망설이는지 몰랐으나, 미츠이는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미야기가 스스로 말을 꺼낼 수 있을 때까지. 한참을 그리 있던 미야기가 어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는 게 있다면, 전부 말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미야기는 미츠이를 곧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마주하던 미츠이가 천천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처음 만났던 그날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전부. 미야기는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기만 했다. 미츠이가 마침내 이야기를 끝맺었을 때, 미야기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미츠이 씨가 본 건, 소짱, 아. 미야기 소타라고, 제 형이에요.”
“너 형이 있었구나.”
“네. 지금은, 미츠이 씨도 아시다시피, 없지만.”
미야기의 입이 다시 꾹 다물렸다. 더 이상 무언가를 말할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미츠이 또한 그런 미야기를 이해했다.
어떠한 것들은 너무 오랫동안 묻어둔 나머지 꺼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침묵이 버릇처럼 자리하게 된 것이다. 미야기에게 그것, 그러니까. 미야기 소타가 그럴 것이다. 미츠이는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것뿐이지 눈치가 없는 게 아니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미야기는 앞섶을 끌어내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미츠이가 머뭇거리며 미야기의 손을 잡았다.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미야기의 손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다. 미야기. 미츠이가 반대쪽 손으로 미야기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손에 닿아오는 피부가 축축했다. 기실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서는 아닐 것이다.
“당신도 진짜 바보 같아. 그 누구도 아닌 형이, 소짱이, 그럴 리가 없잖아요…….”
“아, 그래, 그렇네. 내가 멍청했어.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울지마라 미야기. 네가 울면,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다…….”
미야기는 웃지도 울지도 못 하는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가 파들거리며 떨렸다. 그런 미야기에 미츠이의 얼굴 또한 울 듯이 일그러졌다. 미츠이는 그 얼굴이 못내 보기 힘들어 미야기를 꽉 끌어안았다. 놀란 듯 버둥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이내 얌전해졌다.
“울지마, 미야기. 미안해. 내가 미안해…….”
“안 웁니다, 누가, 운다는 겁니까……. 미츠이 씨나 울지 마세요. 울보 같으니라고.”
“누가, 아냐, 그래, 내가 울보하마. 내가 네 몫까지 울어줄 테니까, 그러니까 넌 울지마.”
끌어안은 작은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허공을 가르던 손이 겨우 미츠이의 옷을 꽉 붙잡았다. 참았던 숨을 느리게 뱉어냈다. 이제 미츠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이후의 일은 오롯이 미야기가 감내해야 할 일이었기에. 그 무엇도 아닌 미야기의 개인적 사정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미야기. 내가 했으니까 너도 할 수 있어. 넌 나보다 배는 더 대단한 놈이잖냐.”
가볍게 이마가 맞닿는다. 여전히 얽혀있는 손에 힘을 줘 좀 더 단단히 잡아낸다.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미야기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정도는 되어줄 수 있었다. 미야기가 자신을 의지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지만, 네가 힘들 때면 얼마든지 의지해도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것은 지금의 미츠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었으므로.
“그리고, 정말 못 견딜 거 같을 때는, 날 활용해라.”
멍하니 눈을 꿈벅이던 미야기가 허탈하게 웃었다. 저를 똑바로 보고 있는 이 사람은 언제나 예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자신을 수렁에서 꺼내주었다. 중학생의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는 미야기에 미츠이의 눈동자 속에서 불안이 어른거린다. 미야기, 어서 대답해. 기어코 대답까지 종용한다. 하여간, 순 제멋대로야. 미야기가 깊게 심호흡하고,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며.
“쓰러질 때까지 활용해 먹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하나도 안 귀여운 놈.”
“하하, 얘기 먼저 꺼낸 건 미츠이 씨입니다. 무를 생각은 마세요.”
“누가 무른다냐? 네가 무르라고 해도 절대 안 물러.”
언제 그랬냐는 듯 분위기가 가벼워진다. 평소처럼 투덕거리던 둘은 미츠이가 가볍게 재채기를 함으로써 조용해졌다. 돌아갈까요? 그러자, 슬슬 춥다. 옷도 대충 마른 거 같고. 몸에 묻은 모래같은 것들은 대충 털어낸 둘이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헤어져야 할 갈림길이었다. 미츠이 씨도 들어가세요. 저도 들어갈게요. 옷은, 내일 빨아서 돌려드릴테니까. 오늘 길 내내 붙잡고 있던 손이 쓱 빠져나갔다. 미츠이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반사적으로 미야기의 손을 붙잡았다. 화들짝 놀란 미야기가 돌아봤다.
“데려다 줄게.”
“예? 됐어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시끄러워, 걱정되어서 그런거니까 그냥 받아들여.”
미츠이는 극구 만류하는 미야기를 억지로 끌고 걷기 시작하자, 작게 한숨을 내쉰 미야기가 불만스레 투덜거렸다. 당신, 진짜 똥고집이에요. 너만 할까. 난 당신만큼은 아니거든요?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
“여기까지면 됐습니다.”
아파트 정문 앞에서 미야기는 그리 말했다. 미츠이는 마음 같아서는 집 안까지 들어가는 걸 보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걱정할거라며 자신을 보내려는 미야기에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부모님은 자고 있겠지만 누나는 깨어있었다. 야밤에 겉옷 하나만을 들고 갑자기 뛰쳐나왔으니 지금쯤이면 또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닐 지 걱정하고 있을게 뻔했다. 미츠이 또한 걱정을 끼치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에 오늘만큼은 미야기의 말을 곱게 듣기로 했다. 대신 너 들어가는 것만 보고 갈게. 그렇게 조건을 덧붙이긴 했다만. 그 말을 들은 미야기의 눈썹이 가팔라지다 다시 돌아온다. 됐습니다. 제가 최대한 빨리 들어가죠 뭐. 미야기는 그렇게 말하며 제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미츠이가 아, 하고 작게 탄식한다. 바다에서 그 난리를 피우고 바람까지 맞아서일까. 가로등 아래에서 본 미야기의 머리는 엉망진창이었다. 곱슬이라서 그런가 더 엉망처럼 보였다. 이렇게 보니까, 닮았네, 초코 푸들. 물론 미츠이는 그 생각을 말로 꺼내는 대신 미야기의 머리를 정리해주고자 했다.
“미야기. 가만히 있어라. 머리가 엉망이잖냐, 너.”
미츠이는 손을 뻗어 엉망으로 흘러내린 곱슬머리를 천천히 쓸어 넘겨주었다. 복슬거리는 갈색 곱슬머리가 손길이 닿을 때 마다 정리되어 간다. 이마를 지나, 얼굴선을 타고 천천히 쓸어내리면, 미츠이 씨? 의아하게 부르는 미야기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왜 그래요?”
“어? 아니, 그. ……너 왜 아직도 젖살이 남아있냐?”
“이게 대체 뭔 소리에요 대체?”
황당하다는 듯한 미야기에 미츠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바보같은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뭐. ……그런게 있다. 어색하게 눈을 굴린 미츠이가 미야기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들어가기나 해. 빨리 씻고 자야할 거 아니냐. 미츠이의 행동에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삐죽이던 미야기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츠이 씨도 얼른 돌아가세요.”
“너 들어가는 거 까지만 보고 진짜 갈테니까 걱정 마라.”
“유난은.”
피식 웃은 미야기가 등을 돌려 걸어간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츠이는 아, 하고 작게 탄식을 내뱉더니, 미야기! 하고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아직까지 할 말이 남아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뒤 돈 미야기에 미츠이가 입을 눈썹을 삐죽였다. 하여간 하나도 안 귀여운 놈 같으니라고. 뭐, 그거마저 좋지만. 주머니 속에 손을 푹 찔러넣은 미츠이는 배에 힘을 주고선.
“죽지 마라.”
그리 말했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미야기에게 전하고자 하여 꺼낸 말이었다. 그래서 미츠이는 미야기가 자신에게로 돌아와 주먹을 내밀었을 때, 그 행동의 의미를 깨닫지 못 했다.
“……뭐냐?”
“엑. 미츠이 씨, 설마 주먹 인사 모르는 겁니까?”
“아니 그건 알지. 근데 그걸 왜 지금 하냐는 뜻이다.”
미야기는 눈을 깜박였다. 굳이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겁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어벙한 표정으로 서 있는 미츠이에 미야기는 부러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 없긴. 이럴 땐 그냥 주먹을 맞대면 되는 겁니다, 바보같은 미츠이 씨. 그러며 손수 미츠이의 손을 빼어내 손가락을 접어줬다. 미츠이는 여전히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꽤 많이 어정쩡하게 주먹을 내민 자세가 되었다. 그런 미츠이에 키득거리며 웃은 미야기가 미츠이의 주먹에 콩, 하고 제 주먹을 맞부딪혔다. 미츠이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제 주먹을 한 번 바라보고, 다시 미야기를 바라보며 무어라 말을 꺼내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미야기가 처음보는 얼굴로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으라고 염불을 왜도 안 죽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 모습을 보자 미츠이는 하고 싶은 말이 전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 이네.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미츠이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미야기의 눈썹이 삐죽거렸다. 미츠이 씨, 하고 운을 뗀 말이 끝맺어지는 일은 없었다. 미야기가 다시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뭐, 됐습니다. 미츠이 씨도 빨리 돌아가세요. 저도 갈 테니까. 아. 옷은 빨아서 나중에 돌려주겠습니다. 그리 말한 미야기는 작게 허리를 숙여 인사 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츠이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 소란을 피우는 누나를 진정시키고, 다시 씻고 침대에 누워 미츠이는 생각했다.
저 녀석, 그런 표정으로 웃을 수 있었구나.
*
그날 밤 미츠이는 꿈에서 소타를 만났다. 미츠이가 아는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난 소타는 미츠이의 옆에 주저앉아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미츠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옥상 린치와 농구부 최후의 날 이야기가 나왔을 때 미츠이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료타는 몰라도 난 아직 용서 안 했어. 그 말에 미츠이는 잠깐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 생각만.
마침내 이야기가 끝났을 때, 소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젠 가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미츠이는 저도 모르게 그런 소타의 팔목을 붙잡았다. 왜 붙잡냐는 듯한 얼굴에 미츠이는 어물거리다 입을 열었다.
미야기는, ……죽고자 해서 그런 건가요.
그 말에 소타가 미소를 지었다. 죽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냥 도망치고자 한 곳이 바다였을 뿐이라고. 료타가 의지할 수 있던 유일한 인물들이 바닷속에 잠들었으니까. 아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미야기가 그렇게 된 것엔 본인 잘못도 있다고 담담히 고하는 표정은 평온했다. 미츠이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한 건 더 이상 없어? 그 말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소타가 씩 웃더니, 주먹을 꽉 쥐고 내밀었다. 뜻 모를 행동에 가만히 있자 소타의 눈썹이 치솟았다. 미츠이는 그런 소타에게서 미야기를 발견해냈다. 형제가 맞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미츠이를 상념에서 꺼낸 건 소타의 목소리였다.
주먹인사, 몰라?
아. 아.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훅 높아진 미츠이에 시선이 반전됐다. 작다. 미야기와 키가 비슷한가. 주먹을 꽉 쥐어낸 미츠이가 멈추어 섰다. 막상 하려고 드니 주저되는 탓이었다. 미야기에게 한 잘못에 더불어 소타가 한 말이 있으니까. 료타는 용서해도 자신은 용서 안 했다는 말. 그 말이 맞았다. 자신은 평생을 속죄해도 모자랄 잘못이 있는데, 내가……. 그런 미츠이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소타는.
괜찮아.
그렇게 말했다. 미츠이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다가 하하, 힘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형이고 동생이고, 형제가 쌍으로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다. 주먹을 내밀어 가볍게 부딪히자, 소타가 환하게 웃었다. 미츠이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료타를 잘 부탁해.
*
잠에서 깨어난 미츠이가 가만히 눈을 깜박였다. 그러다 손을 들어 올려 바라봤다. 소타와 주먹 인사를 나누었던 그 손이었다.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핀 미츠이는 허탈히 웃으며 손을 툭 떨궜다.
동생을 린치한 놈에게 잘 부탁한다니. 미야기 가는 대대로 배짱이 두둑한 사람들 뿐인가?
*
주어진 이야기는 바뀌는 일이 없으니, 인터하이는 예정대로 흘러갔다. 풍전 전의 승리, 최강 산왕의 몰락, 지학 전의 완패, 2차전에서 막을 내린 첫 인터하이. 히로시마에서 돌아오는 버스는 다들 잠에 든 탓에 조용했다. 며칠간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탓도 있을 것이다. 미야기 또한 그랬다. 현 대회 예선 경기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뛰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잠에 든 미야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츠이가 허리를 숙여 미야기의 가슴께에 얼굴을 가져다 댄다. 쿵, 쿵, 쿵. 심장이 여전히 일정한 박자로 뛰고 있었다. 잠시동안 그 소리를 듣다가, 자세를 바로 하고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던 미야기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자신에 비하면 훨씬 작은 손이었다. 조심스레 깍지를 껴 잡아본다. 따뜻했다.
미야기는 살아있다.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미츠이는 그 사실에 못내 안심했다. 미야기가 바다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 어지간히도 충격적이었나보다. 이렇게 살아있음을 확인하려 드니까. 천천히 심호흡하며 몸에 힘을 쭉 뺀 미츠이는 버스 의자에 푹 기대었다. 카나가와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내 버스 안은 고른 숨소리와 작게 뒤척이는 소리로 가득 찼다.
*
“뭐야, 미츠이 씨랑 제가 왜 깍지를 끼고 있어요?!”
“………………네가 잠결에 잡았어.”
“거짓말!!! 공백이 수상해!!!!!”
*
그 이후로도, 여전한 채로. 미야기는 새로운 주장이 되었고, 북산 농구부는 윈터컵 대비 훈련을 시작했다. 미츠이와 미야기는 여전히 같이 하교했으며,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다가도 배가 고프다 싶으면 근처 편의점에서 무언가를 사 먹었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어져 왔던, 그리고 이어질 일상의 연속이었다.
*
“미츠이 씨.”
“엉?”
“……소짱 말이에요.”
“아, 엉. 형님이 왜.”
미야기가 소타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윈터컵 예선이 끝난 전국으로의 티켓을 쟁취해낸 날이었다. 미츠이는 미야기 스스로가 소타의 이름을 입에 올릴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미야기는 자신의 속내를 꺼내는 일이 드물었기에. 하여 미츠이는 아주 살짝 당황하였으나, 곧장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는…… 본 적 없죠?”
“어…….”
주어는 없었지만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그래서 미츠이는 그 물음에 곤란한 듯 시선을 피하며 목덜미를 매만졌다. 그런 미츠이에 미야기는 힘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말 안 해도 괜찮습니다. 죄송해요. 괜한 걸 물어서. 그렇게 말한 미야기는 주먹으로 미츠이의 등을 가볍게 치고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후련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미츠이는 미야기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아마 더 이상 여기에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말하면, 알지?」
아무렴 제가 설마 모를까 봐요……. 미츠이는 제 어깨 위에 올라오는 작은 손을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소타는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와 같이 미야기의, 그리고 미야기 家의 곁에 머무르고 있었다. 원귀의 모습은 벗어난 채로.
솔직히 미츠이 또한 소타가 성불한 줄 알았다. 그날 이후 전국 대회를 진행하는 내내 보이질 않았으니까. 그래서 훈련 중 쉬는 시간에 소타를 봤을 때 미츠이는 자신이 너무 힘든 나머지 헛것을 보고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소타가 다가와서 잘 지냈냐고 묻기 전까지. 목 끝까지 올라온 비명을 꾹 참아낸 게 다행이었다. 비명을 질렀다간 미친놈 취급을 당할 뻔 했으니. 그리고선 인적 드문 곳에서 소타와의 면담같은 것을 가졌다.
미츠이는 그때 소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미야기와 똑 닮은, 아주 어린 아이였다. 12살에 죽었다고 했었나. 그제서야 소타의 나이가 실감이 났다. 어렸구나. 사람이 가는 것에 순서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없는 게 아닌가. 그 생각이 얼굴에 다 티가 난 것인지 소타는 그런 표정 짓지 말라며 웃었다. 그 날은 별 다른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그냥, 료타에게 자신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뿐. 미츠이 또한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이제야 겨우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에게 어떻게 네 형은 아직 네 곁에 있다 말할 수 있겠나. 때문에 미츠이 또한 소타의 말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잘 지내는 듯 하였으나…… 문제는 그 후에 있었다.
미야기가 말하던 소타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려낸 듯한 이상적인 형의 모습에 가까웠다. 다정하고, 믿음직하고, 멋지고, 잘생기고, 어쩌구 저쩌구. 하지만 미츠이가 본 소타라고 하면…… 딱 그 나잇대의 어린애였다. 장난치기를 좋아하고 호기심 많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12세 아이. 그리고 소타의 장난기는 대부분 자신을 볼 수 있는 미츠이에게로 향했다. 수업 도중에 갑자기 나타난다거나, 사각지대에서 농구공을 가지고 논다거나-남들이 봤을 때는 농구공이 자기 혼자 통통 튀는 걸로 보였을 것이다-, 미팅 도중에 미야기의 뒤에서 장난을 친다던가. 온갖 방법으로 미츠이에게 장난을 치고는 했다. 그런 소타에 차마 화는 못 내고 애원 정도는 해보았다만, 바뀌는 건 없었다.
결국 미츠이는 혼자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 하고 고통받고 있었다……. 미츠이는 하고 싶은 말과 함께 눈물도 꾹 삼켜내며 웃었다. 그 모든 일이 있었던 만큼 그냥 제 업보니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불꽃남자 미츠이 히사시에게 이런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아마도.
*
“저, 근데. 대체 어딜…… 다녀오신 건지.”
「아~……. 아빠한테 빨래 당하고 왔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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