噂
시로토라 나기사는 어느 날 거울 속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갈수록 아버지를 닮아가는 인상은 점점 더 날카롭고 창백해졌으며, 누가 보아도 영 성격이 좋아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의 성격이 천사처럼 따뜻하고 이해심이 넓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뻔뻔하고 게을러졌으며, 가족에게 반항하는 일은 더더욱 늘었기 때문이다.
‘앨리스가 잠깐이라도 없어진 때가 좋았는데.’
그는 하얀 앞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맹수를 닮은 눈이 거울 속 덩치를 노려본다. 그는 자신의 남다른 능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타인의 마음이라는 것은 감추어져 있는 것이 올바른 구조이며, 그것을 굳이 그 속에서 끄집어내어 제 머릿속에 쑤셔 박는다는 것은 꼭 남의 집에 멋대로 처들어간 강도와도 같지 않은가. 아니, 차라리 그 속에 든 것이 가치있는 정보라면 고민이라도 해보았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타인의 생각이란 티끌만큼도 알고 싶지 않은 과한 정보였을 뿐이다. 그러니 그것을 굳이 읽어내는 능력은 그에게 불필요했다. 차라리 눈 앞에서 사라지는 투명인간이 되는 능력이 그에게 더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언제라도 그와 그 능력을 탐냈을 것이다. 이 능력이 왜 하필 자신에게 왔는지, 그것을 생각하면 이 눈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필요한 사람한테 필요한 능력이 생기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는 그런 무의미하고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방을 나섰다. 늘 그 얼굴을 감췄던 종이가 오늘은 없었다. 이미 한 번 드러난 얼굴이니, 더 감추는 것도 큰 의미는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훤하게 드러난 얼굴은 타인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와. 쟤 드디어 미쳤나봐. 그렇게 철벽 같이 방어 하더니 오늘은 웬일로 까고 나오네.”
“쟤가 시로토라야? 맨날 얼굴 가리는 걔? 우와, 인상 더럽다.”
“저 정도 인상이면 가리고 다닐만 한 것 같기도 해.”
예상대로의 반응이 그의 귓가에 들려온다. 예상은 했으나 그래도 후회됐다. 그냥 가리지 말 걸 싶었다. 뭐 대단한 얼굴이라고 괜히 가려서 이런 말이나 듣고 있는가. 그리고 그의 소문이 곧 신입생들에게도 퍼져나갔다. 소문의 그 괴짜 선배가 얼굴을 드러냈다는 소문은 이제 막 학원에 도착한 어린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소재가 되었다.
“저 성격 더러워보이는 선배는 누구야?”
“시로토라 선배래. 원래 얼굴을 제어구로 계속 가리고 다닌다고 했는데… 오늘은 웬일로 드러냈나봐. 오사카 지부에서 왔다는데, 너 혹시 알아?”
“같은 지부라고 해서 다 알지는 않아… 너도 도쿄 지부를 다 알지는 못하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이름이 시로토라라고? 어디서 들어보지 않았어?”
흔한 소문을 입에 담으며 떠들던 한 어린 학생의 표정이 기시감으로 가득찼다. 그 학생은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그 이름을 떠올리려 미간을 찌푸렸다. 앞에 앉아있던 친구도 그 이름이 낯설지 않은 이유를 생각하고자 온갖 기억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는 사이야? 역시 지부의 선배라던가…”
“아니야, 그건 아니야. 하지만 분명 들었어. 뉴스 같은 곳에서…”
어린 학생의 눈에 의심이 퍼진다. 시로토라 나기사는 이 사실에 대해 알지 못했다. 어린 학생은 애써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앞에 앉은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이, 설마. 그런 우연이 어딨겠어. 그냥 우연이겠지.”
“하지만 시로토라라는 이름이 흔한가?”
“듣고 보면 인상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린 학생은 친구의 말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렸다. 시선 끝에는 소문의 괴짜 선배, 시로토라 나기사가 있었다. 유난히 좋지 않은 인상을 한번 더 머릿속에 새겼다. 어린 학생의 머릿 속에는 뉴스에 종종 모습을 보였던, 흰 머리의 중년 남성 하나가 떠올랐다. 이름도 같은 ‘시로토라’ 였던 그 남성은 저 괴짜 선배와 닮은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딱 보기에도 악인 같은, 사나운 인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 학생은 그가 분명 선한 사람은 아니었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 모여 의심과 추리를 하고 있을 때 쯤, 시로토라 나기사는 복도를 가로질러 다시 제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는 여전히 가족들에게 온 수많은 편지가 쌓여있었다. 그 편지가 시선에 닿을 때마다 그는 괴로웠다. 쓴 약을 물 한 방울 없이 삼켜내듯이 인상이 구겨졌고, 목구멍에서 가시가 피어오르듯이 속이 불편해졌다.
시로토라. 그 이름에 담긴 뜻에 대해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범과 같이 용맹하고 거친 성격을 타고난 이들이 지녀야 할 이름이요, 장차 가족을 이끌고 나아가야 할 차기 가주의 무게였다. 그러나 그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태생과 이름이 그의 삶을 결정한다면, 거기에 그의 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평범한 삶을 추구하고 싶었다. 갈등도, 불화도, 폭력도, 강압도 없는 환경에서 자유를 추구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그가 아직 단호하게 편지를 끊어내지 못한 이유는 하나였다. 그 또한 시로토라였기 때문이다.
시로토라 나기사는 어릴 적 부터 차기 가주가 되는 것에 큰 거부감을 느꼈다. 모두가 그를 나기사가 아닌 시로토라, 혹은 차기 가주라고 부르는 환경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씩 커갈수록, 그는 자신 또한 그 가족의 일원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애지중지 키워온 가업을 가장 믿을만한 이에게 넘기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같은 입장이었다면 그 또한 아버지와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 그래서 시로토라 나기사는 지금 괴롭다. 가족의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먼 섬까지 왔으나, 결국 가족에 대해 이해해버리고 마는 변화가 혼란스러웠다. (이후 그는 이런 상황을 ‘지나치게 세게 온 사춘기’ 라고 표현했으나, 그것은 조금 더 먼 이야기이다.)
시로토라 나기사는 무거운 펜을 들었다. 간만에 편지에 대한 답장을 쓰고자 했다. 처음은 진부한 인삿말. 그 다음은 다음 방학에는 꼭 찾아가겠다는 약속. 이후로는… 늘 같은 이야기.
‘…해서, 저는 역시 그것을 이어갈 생각은 아직…’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누구한테 비난 받는 직업을…’
‘그리고 늘 말하지만…’
마무리 하듯이 펜을 툭툭 흔들었다.
‘총과 칼을 차고 출근하는 것을 직업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아요.’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