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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omeda.

구스트앙×블로섬

FARM by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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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omeda.

구스트앙×블로섬

사랑했던 구스. 오랜만이야.

응, 그래. 난 잘 지내. 우리 사이에 전화가 새삼스러울 일이니? 하긴. 전 남편하고 다정하게 통화할 만큼 좋은 사이는 아니지. 너도 들었겠지? 내 딸이 봉인됐다고. 마땅한, 이유도 없이 말이지. 자하드 그 자식…. 뭐? 무슨 쓸데없는 걱정이야? 감히 가주의 전화를 도청하는 짓을 할 만한 사람은 없어. 그리고 아무리 우리 쫌생이 왕이라도 그런 건 안 해. 우리 엔. 엔을 자하드의 공주로 보내라고 했을 때 어떻게든 지켰어야 했어. 그 아이가 눈을 빛내며 공주가 되겠다고 했을 때 우린 엔을 보호해야 했어. 반역해서라도. 네 자식이니 더 잘 알겠지. 그 아이의 뛰어난 통찰력을. 그 머리를. 너를 똑 닮았거든. 자하드의 공주가 얼마나 끔찍한 자리인지 깨닫기까지 얼마나 걸렸을 것 같니. 아무 말 없이 공주의 자리로 보내준 너를 몇천 번을 마음속으로 찢어발겼는지 몰라. 실제로도 우리 관계는 박살났고.

너는 항상 미래를 보고 있었지. 만약 네가 나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것이 최강의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면, 널 죽을 때까지 미워해 볼까 해. 부정하지 않는군. 역시 너는 언젠가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네 얼어붙은 가슴에 죄책감이라는 게 있기는 해? 내 딸을 그곳으로 몰아버린 주제에. 안드로메다에 관해 들어봤어? 하, 네가 모르는 것도 다 있네. 그냥 탑 바깥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안드로메다라는 공주가 너무나 예뻤던 나머지 그 어미가 신의 심기를 건드렸고 신이 안드로메다를 바치지 않으면 재앙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대. 결국, 바위에 꽁꽁 묶여서, 바쳐졌고. 너무나 완벽한 내 딸, 그래서 괴물에게 붙잡혀버린 내 딸. 그런데 괴물에게 딸을 바치도록 만든 사람이 그 아버지라니. 끝까지 엔은 구스 널 원망하지 않았을 거란 게, 날 더 화나게 해. 구스트앙, 넌 엔에게 평생을 갚아도 모자란 죄를 진 거야. ...너도 가슴 아픔이라는 감정을 느낄 줄 알았었어? 마음 붙이고 살 붙이고 살 때도 몰랐던 걸 헤어지고 나서야 알게 됐네. 

구스, 네가 자하드의 공주 같은 거 만든다고 했을 때 네 그 잘난 머리가 돌아버린 줄 알았어. 네가 공주 만들자고 했단 이야기를 들은 하유린이 아주 펄쩍 뛰면서 내 부유성을 부술 듯이 찾아왔던 거 알아? 저 안경잡이 자식이 미쳤다고. 목숨이 13개라도 되는 거냐면서 말이지. 이러다 우리도 그들처럼, 아니 이건 예의가 아니지. 여하튼 나보고 너 좀 말려보라고, 너 까딱하면 자하드한테 모가지 날아갈 뻔했어. 목숨을 소중히 여겨. 이제 서로의 목숨을 노릴 수 있는 건 우리 11명밖에 없는데. 그 자식, 아직도 아를렌을 못 잊었대? 나 참. 우리끼리도 만나고 헤어진 사이가 많은데 그때마다 걔처럼 굴었다간 탑이 남아나질 않겠어. 그런 면에서 넌 참 괜찮은 전남편이지. 이렇게 차분하게 통화도 할 수 있고 말이야. 자하드의 부인을 뽑기 위한 가장 강한 공주 선발전이라…. 그럼 가장 뛰어난 공주가 나올 때까지 비워놓아도 되는 건가? 아, 이거 극비 사항이야? 그래. 그걸 아주 잘 아는 놈이, 내 딸한테 그런 짓을 했어? 네가 몰래 아를렌의 포켓을 엔에게 우연을 가장해서 밀어 넣었어? 애가 미치도록 괴로워할 때 곁에 안 가봤어? 너라면 엔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

난 그 착한 엔이 하얀 이월을 강탈했을 때 눈앞이 캄캄했어. 항상 온화한 그 애가 왜 폭주했다고 생각해. 너야말로 나약한 인간이지. 엔에게 그런 단어를 입에 올릴 자격도 없는 인간. 다른 사람들은 그냥 엔이 미쳤다고들 하지 왜 미쳤는지는 관심이 없더라. 그렇지? 자하드가 대단하긴 해. 사람들의 입을 아주 싹 닫아버렸네. 구스, 무색의 십이월이 어떤 무기인지 들어본 적 있어? 잘 아는…. 아니, 아니! 그만! 아주 잘 알겠어. 후, 넌 여전히 말이 많아. 그래 이 시스템을 처음 만들었으니 나보다 더 잘 알겠지. 응? 나는 엔이 십삼월을 하사받고 얼마 되지 않아 찾아왔어. 엔에게 들었어. 자하드, 그 치사한 자식이 그 미친 무기를 평생 자하드가에 묶여 있으라고 쥐여준 건지. 그건 소유자가 죽기 전까지 분리가 안 된대. 엔이 어딘가 초조해 보이길래 좀 살펴봤지. ...놀랍게도 엔의 몸 안에 흐르는 신수의 흐름이 두 종류였어. 한 사람 안에 두 명의 자아가 존재하고 있는 끔찍한 상태였다고…. 종종 부유성 안에 있으면 우리 엔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는 소문이 들려와. 그때마다 얼마나 총명한 아이였는데, 지금까지는 엔의 자아가 훨씬 강해서 잘 눌러왔을텐데 무엇이 내 딸을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그저 더는 엔이 진실을 좇지 않았으면 했어. 그런데, 엔이 자하드가 덮고 있는 진실을 보았을 때 13월의 망령도 함께 그 진실을 봤을 거란 생각을 못했더라고. 우리 착한 엔은 지난 세월 동안 속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13월의 망령이 폭주해도 막지 않았던 거야. 듣기론 무색의 십이월도 같이 미궁에 봉인했다고 하던데…. 이봐 구스, 벌레 걱정은 하지 말라니. 뭐, 사실 나도 13월의 망령을 이해해줄 생각은 없어. 그냥 거의 모든 것을 손에 쥔 자의 얄팍한 동정심일 뿐이지. 난 그저 내 딸을 이해하려고 할 뿐이고. 그러게, 구스트앙이 뭘 이해하겠어. V라면 단번에 이해해 주었을 텐데. 우리 잘생긴 V는 이미 세상에 없네. ...어라, 구스, 너 지금 질투해?

왜 이렇게 잘 아냐고? 왜, 네가 만든 걸 너만큼 알고 있는 내가 새삼 놀랍니? 푸하하하, 아냐, 난 여전히 공부하는 건 싫어. 너처럼 책속에 빠져있는 건 질색이야. 이럴 때 보면 새삼 우리가 어떻게 잠깐이나마 부부로 있었던 건지 의문이 든단 말야. 그냥 구스 네가 내 딸을 공주로 보낸 그 날부터 조사했어. 그 신탁, 아니 신탁이라고 하기도 싫네. 명령을 받은 네 얼굴 안색이 유난히 나빴거든. 자기가 만든 명예로운 자리에 자기 딸을 보내는 건 왜 내키지 않을까 싶어서. 엔이 자하드의 공주 선발식이 있던 날 화려한 폭죽 아래서 우리는 헤어졌지만,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둘 다 선발식 파티가 있던 날 파티장을 나와 천장의 볼라이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잖아. 맞아. 기밀이니까 조사하는 동안 네 전 부인이라는 지위를 약간 이용했어. 아, 미안. 네 비밀을 하나 캤으니 나도 하나 알려주지. 앞으로 유라시아 가문은 공주선발에 참여하지 않을 거야. 모든 진실을 알고도 허울뿐인 명예를 위해 내 혈족을 공주로 만드는 싸이코 같은 짓은 안 해. 그래. 너 말하는 거야.

그럼 잘 지내고. 앞으로도 난 너랑 전화하고 싶지 않아. 우린 이혼했잖아? ...어머, 원래 나 제멋대로인 거 알면서. 새삼스럽긴. 내가 부유성 안에만 틀어박혔어도 네가 뭘 하고 다니는지 다 듣고 있어. 너는 날 아직 사랑하잖아. 네가 그렇게 부정해 봤자 변하지 않는 사실이지. 너는 내 재능을 시기하고 미워한다고 탑 방방곡곡에 소문이 났지만, 한편으론 지독한 관심의 한 종류거든. 후후, 찔려? 내 입을 다물게 하고 싶거든 당장 나한테 오던가. 아, 이제는 안 되겠네. 내 가문은 오늘부로 포비더 가문과 등질거거든. 자하드와 온 탑이 너와 내가 사랑싸움이라는 단순하고 감정적인 이유로 갈라섰다고 믿게 하자. 우린 각자의 길을 걷는 거야. 넌 너대로 난 나대로. 구스트앙, 너 지금 지옥 열차지? 들리는 주위 공명만으로도 알겠네. ...네 데이터에게 뭘 건네주려는지 모르겠지만 오래 있다간 관리자님께 들킬 거야. 이왕 보고 오는 거 곧 없어질 내 데이터에게 안부…. 어머, 그럴 시간 없다니 냉정도 하셔라. 그럼 난 됐으니 아를렌의 데이터에게 안부나 전해줘. 그러고 보니 정말 이 세상에 남은 V의 흔적은 하나도 없네. ...V이야기 그만하라고? 알았어. 그 정도 호의는 갖춰주지. 나? 난 지금부터 우리 철없는 탑의 왕에게 반역 한번 해볼까 해. 어휴 몇십만 년 만에 움직이려니 온몸이 쑤시고 아프네. 너도 아를렌의 포켓을 봤으면 알겠지. 아를렌은 죽지 않았어. 그래서 자하드가 꽁꽁 잠가버린 봉인을 풀어보려고. 언젠가 찾아올 왕을 죽일 가시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서. 맞아 아주 오래 걸릴 테지. 짧으면 오천 년, 길면 몇만년이 걸릴지도 몰라. 그렇지만 너도 느끼고 있잖아. 변화하는 신수를, 요동치는 전장의 피비린내를.

내가 보기보다 멀쩡하다고? 넌 지금 나랑 아주 멀리 있으니까 모르겠지만 주변 만 피트 밖에서도 분노로 신수가 떨린다고 분가의 가신들이 찾아올 정도였어. 나에게 그 소식을 전하러 왔던 자하드의 전령들은 이미 시체가 됐고.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맞아. 응, 네 말대로 우리는 죄가 커. 당장이라도 자하드 앞에 가서 치부를 낱낱이 고하기엔 나도 이 탑이 이렇게 변하게 한 것에 관해, 그리고 아를렌과 V에게 적잖이 잘못한 게 많아서. 내 딸, 엔에겐 미안하지만, 당분간은 잠자고 있어 줘야겠어. 그곳이 탑에 해일이 오는 동안 그 어디보다 가장 안전할 테니까.

구스트앙. 엔은 다시 돌아올 거야. 내 딸을 구해줄 페르세우스는 곧 탑의 문을 열고 찾아올 거야. 썩은 매듭을 끊고 새로운 매듭을 이어줄, 아를렌을 꼭 닮은 눈을 가진 아이가. 

모험과 위대함, 그리고 거짓과 진실로 쌓아온 영원할 것 같은 우리들의 왕국

행복과 부유함, 안정에 빠져 모두가 외면하고 있던 ‘언젠가 일어날 일’에 대해서 나는 말하겠다.

탑의 왕과 나의 친우들이여, 분열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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