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

미완

채홍의 끝자락

비가 멈추지 않는다

잿빛하늘은 모든 걸 집어 삼킬 듯이 퍼부어 대기만 한다

내가 죽을 자리였던가 네가 죽을 자리였던가

네가 죽은 날이던가 내가 죽은 날이던가


“어디 가냐.”

집히는 족족 소매 한가득 쑤셔 넣기 바쁜 이에게 청명이 물었다. 때아닌 장맛비에 발이 묶인 지도 벌써 보름째. 이리저리 떠돌던 녀석이 집구석에 질리기엔 충분한 시간이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어디 가냐고.”

그럼에도 묻는 것은 왜 저를 데려가지 않느냐고 타박하는 것에 가까웠다. 속뜻을 알면서도 조용한 것에 괜히 불안해져 베고 있던 베개를 집어 던지긴 했지만. 원하던 얼굴을 보았으니 반쯤 성공이라 여겨도 되지 않을까.

“아! 왜요!”

아프지도 않으면서 한껏 노려보는 얼굴이 생각 이상으로 낯설었다. 분명 어제도 봤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리워서, 입안 가득한 불만을 삼켜내고 간신히 문장을 만들어냈다.

“네가 말을 안 하잖아.”

“정인과의 약속은 씹고 술 처먹기 바쁜 말코가 할 말은 아니죠.”

“무슨 약속?”

“됐소. 말 안 할 겁니다.”

청명은 급하게 삼매진화를 피워 있는지도 모르는 주독을 날려 보내고, 일어나려는 당보의 장포 자락을 붙잡았다. 날씨가 궂다거나 같은 핑계는 둘째치고 이대로 보내면 안된다는 느낌이 몸을 강하게 지배하기에, 의식보다 먼저 손이 나가고 그보다 빨리 말이 튀어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가지 마.”

“어딜 가는 줄 알고요?”

“어디든. 가더라도 같이 가.”

타인이 보기엔 무심하기 짝이 없는 여느 때의 청명이었지만, 사정없이 흔들리는 호흡과 잡힌 자락에서 전해오는 간절함은 그를 마주한 당보로선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 양반이 미쳤나 하는 생각도 드는 한편, 제가 없던 사이 꽤 외로웠겠구나 싶어서.

“채홍의 끝을 보러 갈 겁니다. 같이 가시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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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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