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中

배우 당보 X 검도 선수 청명 | 현대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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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비밀 연애 중 일어난 일

*청명은 36, 당보는 30

5.16 수정


"진아, 비행기 몇 시 출발이라고?"

"내일 아침 10시요."

청진은 캐리어에 옷과 충전기, 음식을 집어넣고 있는 청명을 질린 눈으로 쳐다봤다. 전화가 왔다며 신나게 달려갈 땐 언제고 잡으러 가야 한다고 짐을 싸고 있는 제 형을 차마 좋게 볼 순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 형이, 그것도 헤어진 전 애인을 잡으러 미국까지 가신다는데 그 얼굴이 사람 하나 묻을 것 같은 얼굴이라 전 애인분께 아주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 애인인 그분과의 전화가 끝나고 형의 표정이나 행동에서 좋은 얘기가 오가지 않은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청명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이 굴던 그가 헤어지자는 말을 했다길래 무심코 오래 버텼네요 라는 말이 나와 온 몸을 맞았지만 그럼에도 그에 대한 원망은 단 1그램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바람핀다는 오해를 하는 것 같다는 형의 말에 청진은 진심으로 당보의 정신건강을 의심하게 되었다. 어딜 봐도 좋은 구석이 없는 제 형을 그 쪽 말고 누가 좋아할 것이며, 형은 한 번에 두 사람을 사랑할 정도의 능력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 그런 기사가 나왔다면 제가 모를 수가 없었다. 제가 몰랐다면 청문형이, 혹은 제자들이, 다른 선수가 발견 즉시 제게 연락을 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는 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 이 경우엔 미국에서 시작된 기사가 아직 한국까지 퍼지지 않은 거겠지.

청진은 청명이 기억하는 대화 내용을 토대로 바람, 환승 등의 키워드를 청명의 이름과 조합하여 검색했다. 한글로는 깨끗하던 검색 결과에 영어로도 검색을 시도했고, 그 결과 온갖 사진과 자극적인 제목들로 뒤덮인 기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누구랑 연애를 해?"

"저도 미치겠습니다. 이 사진은 또 언제 찍힌 건데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저분하고는 촬영 이후로 연락한 적이 없는데."

둘은 당보도 오해 할 수 밖에 없던 누가 봐도 다정한 데이트 사진을 보고 있었다. 당사자도 기억하지 못해 상대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사진. 혹시 카페나 상대에 대한 정보가 있을까 SNS를 뒤져봤지만 전부 추측일 뿐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그때 어땠는지 기억은 나요?"

"뭐 한 게 있어야 기억을 하지. 그냥 검도 수업하고 헤어졌다니까?"

청명은 검도를 가르치라길래 가르쳤고 관련해 말을 나눈 게 다라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청진이 기억하는 영상은 청명의 기억과는 달랐다. 겉보기엔 단순히 검도를 배우는 영상이었으나 그해 방영된 드라마 홍보의 일환으로 은근한 스킨십이 빈번하게 비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드라마가 부상당한 검도선수와 그런 선수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방영했던 터라 드라마가 현실이 된 건 아니냐며 논란이 있기도 했다. 굳이 허리를 끌어안고 자세를 잡아주거나, 서로의 땀을 닦아주고, 흘러내린 머리를 정리해주는 모습이 단순 비즈니스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청명이 상대의 머릴 넘겨주고 5초간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장면은 다각도에서 촬영되어 지인밖에 없던 팔로워를 일주일 만에 10만으로 만들었으니 말 다했지.

"그때 당보 씨랑 싸웠잖아요."

"싸운 게 아니라 오해를 푼 거지."

"오해는 무슨. 제발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매달렸잖아요. 다시는 그런 촬영 안 하고, 경기에만 집중하겠다고 한걸 다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용케 안 헤어졌네요?"

"...졌어."

"네?"

청명은 멍청하게 되묻는 청진을 가만히 응시했다. 이게 놀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만, 바쁘게 기사와 영상을 찾아보는 동생은 정말 듣지 못해 물은 것 같았다.

"헤어졌다고. 반년 정도 당보랑 연락 안 했어."

청진은 쓸데없이 나불거려 필요 없는 정보를 잔뜩 얻어버린 방금의 저를 없애버리고 싶었다. 몇 달 조용하다가 금방 데이트 하러 가길래 아무 문제 없는 줄로만 알았지, 헤어졌다가 재결합한 사이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미친 듯 케이크를 퍼먹더니 술병에 죽으려던 그날인가? 아니면 훈련 내내 멍해 있다 한 소리 듣고 구석에서 혼자 훌쩍이던 그날? 아니면 그 사이? 아니면 둘 다?

"뭐 옛날 일이고, 지금은 잘 사귀고 있잖아."

아뇨, 현재 진행형인데요. 청진은 불쑥 떠오른 말을 억누르고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건 어느 날인지가 아니었다. 재결합에 실패한 청명을 맞이할 미래를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기사는 최대한 빨리 내려보겠습니다. 입장문은 소속사랑 맞춰서 낼 거니까 그 부분도 어필하십쇼. 사진은... 어떻게 잘 해명해보시고요."

"무슨 입장문? 당보랑?"

"공개 연애 하시게요? 허락은 받았습니까?"

"소속사랑 뭐 한다며."

"제가 말한 건 여배우 쪽 입니다. 그쪽은 모르고 있을 텐데 저희 쪽에서 갑자기 부인 할 순 없잖아요."

"아. 그렇지."

이제야 알아챈 듯 한박자씩 늦는 대답에 청진은 밀려오는 두통의 기운을 느끼며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저걸 보내도 될까? 지금도 사고회로가 전부 한 사람에게 쏠려있는 저 인간을, 보내는 게 맞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진은 청명을 막기는커녕 날개를 달아 주었다. 매니저를 통해 호텔의 같은 층에 방을 잡았으며, 청명에게 잡혀있던 두 달간의 모든 일정을 취소시켰다. 만일을 대비해 근처 분위기 좋은 식당과 술집을 정리해주었고, 상황에 따른 적절한 해명과 형이 도착할 때쯤 입장문을 내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에 더해 무조건 같이 돌아오라며 한 달 치 짐을 싸주기까지 했으니 청명으로선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던 것이다.

"넌 왜 항상 그런 식이야?"

앞서가던 남성의 손을 잡아 제 쪽으로 돌려세운 여성이 물었다. 다정한 커플 같지 않게 싸늘히 내려보던 녹안의 남성은 잡힌 손을 뿌리치며 지긋지긋하다는 듯 대답했다.

"또 뭐가 문젠데."

"내가 많은 거 바랬어? 사과 한번 해달라는 게,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어, 내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이럴 거면 오늘 데이트는 왜 하자고 했어? 저번처럼 핑계나 대지, 왜 나와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하... 네가 데이트 하자며. 다른 커플들처럼 영화 보고, 카페 가고 싶대서 지금 해주고 있잖아. 뭐 내가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해야 끝나는 건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지금 내가 사과하나 받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아니면 뭔데. 고작 사과하나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면,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지. 나도 좀 알자."

"고작?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래, 넌 그 잘난 자존심밖에 모르지. 그걸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눈물을 가득 머금은 눈이 한 뼘 위의 남성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자신과 다른 무감정한 얼굴에 꽃다발을 던져버리고 성큼성큼 화면을 빠져나갔다. 남은 건 갈색 머리의 남성이 떨어진 꽃다발을 내려보는 장면뿐이라, 금방 화장을 고친 배우의 신호에 맞춰 촬영은 재개되었다.

스텝들은 남성의 연기에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손으로는 조금씩 주변을 정리했다. 카메라 앞에 홀로 선 배우는 NG 한번 내지 않는다는 그 당보라, 이번 씬도 곧 마무리하겠네 싶었던 것이다. 표정도 무표정으로, 아무 대사 없이 내려보기만 하면 되는 장면이라 시간이 끌릴 요소도 없었다.

그렇게 수 초가 흐르고, 감독의 신호가 떨어지기 직전 울긋불긋한 뺨을 타고 하나의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설마 NG인가? 대본에 없던 눈물 연기에 스텝들은 잔뜩 긴장한 채 이어질 감독의 말을 기다렸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눈물 연기는 금방 감정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아 그만큼 촬영이 늘어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감독은 당보의 연기를 만족스러워 했고, 모니터링 끝에 나온 수고의 말에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저녁 드시고 가십니까?"

"바로 호텔로 가죠."

어제보다 훨씬 지쳐 보이는 모습에 매니저는 군말 없이 호텔로 차를 움직였다. 뭐라도 드셔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그러다 오늘 아침을 또다시 맞이하는 것보다 차라리 푹 주무시는 게 나아 보여서. 거울을 통해 당보의 상태를 확인하고, 자동차가 멈춘 틈을 타 몰래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며 자신을 위로했다.

물론 매니저는 배우가 머무는 호텔이나 개인정보를 유출하면 안된다는 것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매니저로 일하는 5년 동안 촬영 전엔 절대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연락하기도 전에 준비를 끝내 저를 기다리던 사람이. 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난 거로 모자라 퉁퉁 부은 눈으로 하는 첫마디가

"미안합니다. 폰이 망가져 시간을 못 봤네요."

이었다면. 거기에 더해

"혹시 술 냄새 많이 납니까? 뺀다고 빼봤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라고 말하다 저 혼자 눈물을 훌쩍인다면 누구든 저처럼 행동할 거라고 확신 할 수 있었다. 늘 밝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우울에 잠겨 죽으려고 하는데 살리려면 뭐를 못하겠는가.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1

매니저는 도착했다는 문자를 남기고 조심히 잠든 당보를 깨웠다. 아까부터 사라지지 않는 1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차올랐지만, 이 이상 끼어드는 것이 마냥 좋을 것 같진 않았다.

"내일은 안 오셔도 됩니다. 종일 방에만 있을 거니까 무슨 일 있으면 그쪽으로 연락하세요."

당보는 졸린 눈을 비비고는 짐을 챙겨 차에서 내렸다. 걱정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얼굴에 애써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면 어서 들어가시라는 목소리가 금방 뒤를 이었다. 이윽고 당보가 엘리베이터에 탄 것까지 확인한 매니저는 이 또한 문자에 남긴 뒤 호텔을 떠났다.

"하아..."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당보는 내내 짓고 있던 미소를 벗어던지고, 잔뜩 지친 얼굴로 벽에 머릴 기댔다. 아침부터 몸도, 정신도 멀쩡하지 않은 상태로 일을 하려니 온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잠깐의 여유만 생겨도 불필요한 생각들이 머리를 헤집어대 틈만 나면 대본을 읽었고, 그 결과 생각은 멈출 수 있었으나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시야가 흐려지는 부작용이 생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하루를 보냈다.

지금이라도 술을 사 올까? 조용히 올라가는 숫자를 보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남은 와인도 몇 병 없었고, 그렇다고 룸서비스로 시키기엔 귀찮았기에. 하지만 금방 관뒀다. 어차피 이 상태면 뭘 먹어도 금방 취해 쓰러질 거다. 이걸 취했다고 봐야 할지 지쳐 쓰러졌다고 봐야 할지는 모르지만, 결과는 같으니 상관없었다.

타이밍좋게 열린 문에 당보는 조심히 주변을 살피고 객실이 있는 복도로 걸어갔다. 괜히 마주쳤다가 말이라도 걸면 상당히 곤란한지라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서둘러 방으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두 번의 코너를 돌고 마주한 복도에서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고, 가장 이 곳에 있으면 안되는 사람이 눈앞에 보여 당보는 저도 모르게 발을 멈췄다.

아니야. 말도 안 돼. 어제까지만 해도 한국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미국에 있어.

당보는 현실을 부정하며 힘겹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조용한 복도에 울리는 발소리는 누구나 돌아보기에 충분했고, 그건 눈앞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저 인간이 지금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 내가, 헤어지자고 한걸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자꾸만 올라가는 시선을 애써 내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복도를 걸었다. 문에 반쯤 기대있던 사람이 몸을 완전히 세우니 목적이 저인 건 분명해 마음속으론 차라리 팬이기를 바랬다.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겠지. 옷도 처음 보는 옷이고, 모자 때문에 얼굴도 잘 안 보이잖아. 그러니까... 그냥 무시하자.

마침내 문 앞에 다다른 당보는 아무렇지 않게 문고리를 잡았다. 제가 옆에 서도 아무 말 없는 상대에 내심 실망하고, 들어갈지 말지 눈치를 보다 시선이 딴 곳을 향할 때 재빨리 문을 열었다. 저 혼자 들어갈 틈만 열어 몸을 들이밀고자 했으나, 이는 자신과 방을 가로막은 두툼한 팔에 금방 무산되었다.

"잠깐 얘기 좀 해."

"저는 할 얘기 없습니다."

"10분. 그 정도는 내줄 수 있잖아."

"안 되겠는데요. 제가 좀 바빠서."

당보는 문 사이를 가로막은 팔을 밀어도 보고, 당겨도 봤지만 원래 존재했던 것처럼 청명의 팔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청명의 팔 아래로 몸을 숙여 들어가기를 시도했고, 안타깝게도 문 앞을 차지한 청명의 다리에 막혀버렸다.

"뭐 하자는 겁니까."

"얘기 좀 하자고."

"전 할 말도 없고, 들을 말도 없습니다."

당보는 자꾸만 날카로워지려는 말을 몇번이고 곱씹어 그럴듯한 말로 내뱉는데 성공했다. 나쁜 사람 하기 싫어하시니 친히 헤어지자고 해줬건만 뭐가 또 불만이신지. 이 상황에도 미안해 하나 없는 머릿속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시는지.

오직 분풀이에 불과한 말들 뿐이라 가까스로 참아냈지만 정제된 말로는 이 지긋지긋한 소모전을 끝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띵 소리와 함께 말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청명의 팔이며 다리를 때리기도 했다만 비키지도 않고 힘을 주는 게 아닌가.

"안 비킬 겁니까?"

"얘기한다고 해주면."

"미쳤어요? 사람 오잖아요."

"같이 들어가면 되겠네. 그럼 문제없잖아."

"장난치지 말고 빨리 팔 치우라고요."

아무리 꼬집고 찔러도 청명은 어깨를 으쓱하기만 할 뿐 행동에 변화는 없었다. 이대로면 정말 기사 1면에 얼굴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라 순간의 자존심과 앞으로의 커리어를 저울질한 결과, 청명을 방에 들일 수 밖에 없었다.

자유로워진 문을 열고 당보는 곧바로 소파로 걸어가 몸을 기댔다. 들어오자마자 한 병 비우고 잘 계획은 불청객에 의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무리 우리가 헤어진 사이라지만, 추태를 부려 안 그래도 바닥인 호감도를 혐오로 끌어내릴 필요는 없으니. 어느 정도의 예의는 우리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다.

"얘기 안 해요?"

당보는 제 옆을 두드려 아직도 현관 앞에 서서 볼 것도 없는 방을 둘러보는 청명을 불렀다. 찌푸린 얼굴을 보면 또 뭐가 마음에 안 드신 건 맞는데 평소처럼 엉덩이를 붙여오니 원인이 나는 아닌가 하고. 옆에 앉은 청명의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아 10분 타이머를 맞춘 뒤 신호를 주었다.

"나는 너랑 헤어지기 싫다."

"... 계속해요."

"폰 확인해보면 알 텐데 기사 전부 내려갔어. 한국은 조용해서 그런 기사가 난 줄도 몰랐고, 사진이 찍힌 것도 어제 알아서 출국하기 전에 진이랑 형이랑 얘기해서 입장문도 냈다. 사람들이 럽스타그램이니 뭐니 하는데 스토리 올린 것도 네가 해달래서 한 거야. 너 보여주려고 찍고, 올린 거라고."

"네에."

"목격담이라고 나온 사진은 지금 어디 카페인지 알아보는 중이다. 상대가 누군지도 확실하지 않아서 찾아보는 중인데 배우 쪽도 본인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한 거 같더라고. 사진 각도가 절묘해서 그렇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고 자부할 수 있어. 대회 시즌이라 케이크를 살 리도 없고, 샀어도 너랑 먹지 거기서 그분이랑 먹지는 않았을 거야."

"응."

"그, 잠깐 이것 좀."

청명은 또 뭘 해명해야 할지 고민하다 당보가 쥔 핸드폰을 가져갔다. 형이 하는 말은 당보 씨 성에 차지 않을게 뻔하니 여차하면 기사에 나온 스토리나 해명하라는 청진의 말이 떠올라서. 힘없이 넘겨지는 핸드폰을 받고 유독 반응이 컸던 스토리를 하나씩 넘기며 말을 이었다.

"이게 어제 올린 스토린데. 여기가 검도장 근처 공원이거든? 이번에 벚꽃이 예쁘게 펴서 너도 보여주려고, 전에 남친짤 뭐 그런 거 갖고 싶다 그랬잖아. 그래서 거기 잘 찍는 애한테 부탁했던 거야. 검정 후드티 하나로 커플룩이니 뭐니 하는 건 넘어가고. 기사에 내가 최근에 카페를 다닌다고 하던데 다 얘들이 사다 준 거 올린 것 밖에 없다. 영화 티켓은 네가 좋아하는 거 재개봉한다 그래서 진이랑 보러 간 거고. 이건..."

청진이 짚어준 것과 기사에서 본 것을 위주로 해명을 하다 보니 금방 1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에 청명은 당보 몰래 타이머를 정지시켰다. 눈치채지 못했는지 얌전히 제 말을 듣고 있는 당보에 긴장하며 해명을 이어가던 중

"이 꽃은 지금도 우리 집에 있어. 애초에 너 주려고 샀던 거고,"

순간 어깨에 기대어진 온기에 말을 멈췄다. 눈가는 붉고 그새 늘어난 병들은 안 봐도 뻔히 그려지는 상황이라, 몸이 안 좋으면 다음에 얘기하자고 할 것이지 뭐 하러 방에 들이고 그러냐. 하고 들을 이 없는 원망만 늘여놓았다. 그리고는 잠든 당보를 품에 안아 천천히 침대로 걸어갔다.

"...응?"

침대에 눕히자마자 눈을 뜬 당보는 제 생각보다 가까운 청명의 얼굴에 눈을 깜박거렸다. 제 등을 감싼걸 보면 소파에서 옮겨준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가까울 필요는 없지 않나 해서.

"아니... 너 침대에 눕혀주려고."

"아, 좀 피곤해서... 얘기는 끝난 거죠?"

청명은 끄덕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차마 선택할 수 없었다. 끝났다고 하면 이대로 쫓아낼 테고, 아니라고 하면 피곤한 애를 붙잡고 귀찮게 하는 꼴이라 어느 쪽도 달가운 선택지가 아니었다.

"어디까지 기억나는데."

"사진 막 보여주던 것 까지요.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 안 나고."

"다시 말해줘?"

"됐습니다. 형님이 다 했으면 끝난 거죠. 이제 가도 됩니다."

진이가 문제라고 했던 것들을 전부 해명했음에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 청명은 초조하게 타들어 가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어떻게 그냥 가라는 말이 나올 수가 있냐. 적어도 헤어지지 않겠다던가, 아니면 다시 들어보겠다던가 정도는 해야하는거 아닌가.

"진짜로 가?"

"네."

즉각 내어진 대답에 청명은 한 뼘 정도 거리에 있던 얼굴을 서로의 숨이 섞일 정도로 가까이 했다. 마주한 눈에서는 선명한 애정을 읽어내고, 흔들리는 호흡에서 미약한 긴장감을 잡아내며. 기껏 고개를 숙여주어도, 아득바득 돌아가려는 네 본심을 헤아리고자 했다.

"...왜? 나 사랑하잖아. 기사도 다 오해였고, 그분이랑은 정말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니까."

"전 해명하라 한 적 없는데요."

"그러면 왜 들인 건데."

"... 모르죠. 이 지경이 되어도 멍청하게 기대하는 것 밖에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이번엔 좀 다를까 했는데 형님은 여전하시니."

애매모호한 대답에 청명은 코앞의 녹색 눈을 보고, 입술을 한번 봤다가 다시 눈을 마주했다. 제가 생각하는 기대가 맞냐고 동의라도 구하듯 고개를 숙이면 언제나처럼 눈을 감아오니, 그대로 입술을 눌러 기대에 부흥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 몸에 손을 대거나 입을 열어주진 않아서, 장난치듯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 쪽쪽 거렸고 금세 풀어진 얼굴로 웃음을 참는 당보를 볼 수 있었다.

"정답인가?"

"완전 틀렸습니다."

"뭐야. 아니라고?"

"순서가 틀렸다는 생각은 안 듭니까?"

"... 사랑해?"

"반만 맞았어요."

당보는 표정을 숨기지도 않고 아주 재밌다는 듯 청명을 올려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한대 쥐어박았을 얼굴이 오늘따라 사랑스러워 마주한 눈을 피하면 커지는 웃음소리는 덤이었다.

"자꾸 놀리지 말고 알려주지 그래."

"제가 그랬잖아요, 이게 다 제 잘못이냐고."

제 가슴을 콕 콕 찔러대며 설마 까먹은 건 아니죠? 하고 재촉하는 눈빛에 청명은 비로소 정답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가장 쉬운 길을 굳이 돌아가게 만든 제 동생과 기필코 오붓한 시간을 보내주리라 다짐하면서, 반쯤 걸쳐있던 몸을 온전히 침대 위로 올렸다.

"마음 상하게 해서 미안해. 다짜고짜 화부터 낸 것도 미안하고..."

청명은 가슴 위에 올라온 손을 제 얼굴 쪽으로 당겨 은색 반지 위에 입술을 댔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익숙하고도 낯설어 우승이라도 한 것 같은 묘한 흥분감을 주었고.

"사랑해, 진심이야."

"네에, 저도 사랑해요."

뒷목을 감싸 안은 허락에 참아왔던 애정을 마음껏 퍼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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