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어느 전쟁터의 풍경

화산귀환, 마교와의 전쟁 날조

※ 화산오검 올캐러 지향… 이지만 쓴 사람이 백청을 했음(주의)

※ 걍 동룡이가 청명이 대신 맞고 쓰러져서 욕먹는게 보고싶었다네



전쟁터가 두려운 이유는 다름이 없다. 모든 것이 갑작스럽기 때문이다.


적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 찾아오고, 치뤄야하는 전투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난전 뿐이다. 눈 앞의 적에게 집중하면 등에 칼이 박히고, 도망치려 뒤를 돌면 마주친 적에게 목이 베인다.

뛰어난 무예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에게 최선의 전투를 치루게 해주지 않으며, 어진 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에게 숭고한 최후를 안겨주지 않는다.

백천은 그러한 전쟁터의 생리를 스스로가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지.

백천은 자신의 복부에 꽂힌 검을 내려다보며 그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사숙!!”


비명처럼 튀어나온 부름에 백천은 입안에 고인 피를 삼키며 웃었다. 그 목소리에 걱정이라곤 한톨도 담겨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 배가 뚫렸는데 잔소리부터 하고싶더냐, 이놈아?

이를 악물며 배에 박힌 검날을 움켜쥔 백천은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이미 반정도 시체 꼴로 서있던 마교도의 머리는 일격에 잘려나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큭…!”

백천의 몸이 무너졌다. 몸을 뒤틀 때 마다 날붙이가 내장을 휘젖는 감각이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의 검에 의지하며 주저앉은 백천은 숨을 몰아쉬었다.

이 꼬라지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화산파는 마교부대의 서안 진입을 막기위해 곤륜산과의 경계에서 전투를 치루고 있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이어진 소모전 끝에 마교의 부대장(部隊長)이 모습을 드러내자 화산 역시 총력전을 개시했고, 당연하게도 선두엔 청명이 있었다.

들판에서 벌어진 난전 속의 청명은 항상 그랬듯 신들린 사람처럼 날뛰어댔다. 마교도들을 도륙하고 그들의 우두머리를 몰아붙이는 청명의 모습에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장을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사제들을 엄호하던 백천은 적들의 기세가 조금 씩 위축되고 있음을 눈치챘다. 이미 수적으로 우세한 마교도들이 굳이 공세를 전환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청명과 부대장의 싸움이 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전장을 압도하고 있다는 확신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제서야 백천은 청명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순간 보인 것이 청명의 등을 향해 달려들던 마교도였을 뿐이다.

생각할 틈은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청명을 대신해 마교도의 칼을 받아낸 뒤였으니까.

백천은 제 배에 박힌 검을 뽑아냈다. 입과 복부에서 피가 왈칵 쏟아져나왔다. 출혈이 생각보다 심해 쓴웃음을 짓고 있을 때였다.

콱!

땅에 무언가 사납게 박히는 소리가 들렸다. 

땅에 박혀 있는 것이 암향매화검이란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고개를 돌린 백천의 멱살을 잡아올린 청명은 잔뜩 일그러진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처…”

“미친새끼야!!!”


백천이 차마 말을 붙이기도 전에 청명은 노성을 쏟아냈다.


“뒤지고 싶어? 누가 검을 배때기로 받아, 누가!!”

“……”

“죽어보고 싶었던거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그딴 생각 할 틈도 없이 연화봉 꼭대기에서 던져줬을텐데!! 어? 지금이라도 던져줘? 곤륜산에서 굴러서 내려와 볼래?!”

청명은 씩씩거리다 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애초에, 사숙이 도와줘야할 정도로 벅찬 상태도 아니었어.”


사실이었다.

청명은 부대장과의 싸움에서 확실히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배후에서 달려든 마교도 역시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으나, 직전에 공격을 막았던 왼쪽 팔이 움직이지 않는단 것을 동시에 눈치 챈 탓에 반응이 반박자 늦었을 뿐이다. 옆구리 정도는 내어줄 각오로 공격을 감행하려 할 때, 백천이 뛰어든 것은 그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백천의 등장에 청명이 한눈을 팔았다고 생각했는지, 부대장은 끝을 내겠다는 듯이 공격을 퍼부었다. 묵직하게 떨어지는 검은 확실히 위협적이었으나 동작이 큰 만큼 빈틈이 많았고, 청명의 검은 그 틈을 놓칠 정도로 무디지 않았다.

내려치는 검에 아슬아슬하게 스친 청명은 역수로 움켜쥔 검을 마교도의 가슴에 꽂아넣고 그대로 목을 향해 그어올렸다. 상체가 반으로 쪼개진 마교도는 단말마 조차 뱉지 못한 채 쓰러졌다.

결과적으로, 백천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청명에게 도움이 됐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청명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무모하게 자신을 구하려 들다 배에 바람구멍을 낸 백천을 보고있자니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의 우두머리를 몇합 일찍 죽이는 것과 우리 지휘관이 부상을 입는 것. 두 일의 경중을 굳이 말로 설명해줘야 아나? 멍청하고 미련한 진동룡 같으니라고!

청명은 속으로 그를 잘근잘근 씹어대며 욕을 했다.

그런 청명의 속내를 모를리가 없는대도 백천은 실없이 웃었다. …어이가 없었다.


“…웃어? 웃음이 나와 지금?”

“팔팔한 걸 보니 잘한 짓이다, 싶어서.”

“자아아알한지잇? 내 얘긴 콧구녕으로 들었어?!”

“청명아.”


멱살을 잡고있는 청명의 손을 가만히 잡아 물리며 백천은 몸을 일으켰다. 언제나 기이할 정도로 깨끗함을 유지하던 그의 무복은 흙먼지와 피를 뒤집어 써 해지고 더러워진데다 본인은 배에 구멍이 뚫려 지금도 피를 쏟아내고 있거늘, 백천의 입가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지쳐보였지만 안도한 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더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

“……”


상대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죽음. 그렇기에 전쟁터는 더 없이 두려운 곳이라는 걸 백천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끝내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네가 패배할 리 없다는 것을, 죽여도 죽지 않는 놈이란 것을 알면서도 이리 미련하게 달려든 것을 보면 말이다.

그 꼴을 보고있자니, 차라리 대신 베이고 말지.

백천은 착잡함을 삼켰다. 자신은 여전히 제 사질을 따라잡기엔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면서.


맥이 풀린 표정의 청명을 힐끗 본 백천은 그 뒷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쓰러져있는 부대장이 죽은 것을 확인하자 그는 부상따윈 당한 적 없는 사람처럼 소리쳤다.


“우두머리는 쓰러트렸다! 퇴각해라!!”

“예!”

“윤종아!”

“예, 사숙! 청자배, 부상자들을 수습해라! 서둘러!”


백천의 퇴각 신호에 화산의 제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명 역시 다시 검을 잡으려던 찰나였다.


“…청명아.”

“응? 왜…으아악!”


아까까지 멀쩡히 서있던 백천이 고꾸라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머리부터 박는 걸 막은 청명은 백천을 눕혀놓고 상처를 살폈다. 상의는 물론 하의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피가 아직도 복부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과다출혈로 삼도천에서 물장구를 쳐야할 판이다.


“…이 꼴을 하고도 폼이 잡고 싶디?”

“이놈이 아까부터… 그래도 내가 네, 사숙…인데…”

“동룡이는 조용히해.”


안그래도 하얀 얼굴이 점점 더 하얗게 질려갔다. 힘겨운 듯 가빠지는 숨소리와 달리, 고동소리는 점점 옅어지는 것만 같았다. 청명은 움직일 수 있는 팔로 상처를 막아보려 했지만, 지혈할 천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 흘러나오는 피를 막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러다 죽으면 누가 기뻐한다고.”


잠시간 말없이 누워있는 제 어린 사숙을 바라보던 청명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내, 확고한 의지를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사고! 퇴로를!”

“…맡겨둬.”

청명의 목소리에 순식간에 다가온 유이설은 두 사람을 뒤로한 채 마교의 잔당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치 않다는 듯, 짧은 대답을 남기고.

“돕겠습니다, 사고!”

“…백자배! 움직일 수 있는 놈들은 사매를 엄호해라!”

조걸이 그런 유이설의 뒤를 따라 달렸고, 뒤늦게 다가온 백상이 상황을 살피다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유이설과 조걸을 필두로 백자배들은 후미를 견제, 퇴각로를 확보하고 그 틈에 청자배들은 부상자들을 들어 날랐다. 서로의 비호를 받으며 화산의 제자들은 침착하게 전장에서 이탈했다.


“소소! 사숙, 소소 어딨어요?!”

“소소는 의약당원들과 후방 배치였잖느냐! 어, 얼른가자. 이러다 사형 죽겠다!”

“이놈아, 너도 업혀! 그러고 끌고가면 사숙 상처만 벌어진다.”

“대사형은 내가 챙기마. 부상자는 얌전히 업혀!”

“아, 알았어! 업히면 되잖아요, 업히면!”


한팔로 백천을 들쳐매고 가려는 청명을 겨우 진정시킨 윤종은 사숙들에게 두 사람을 맡기고 다시 들판을 둘러보았다.


“아이고, 사형…. 꼴이 이게 뭡니까! 그러게 적당히 나대시라니까!”

“…어? 어어어! 자자자잠깐만! 내 검 어디갔어? 검!! 누가 내 검 좀 챙겨!”

“이미 챙겼다, 이놈아! 넌 검수라는 놈이 검을 놓고다녀?!”


뒤에서 들리는 전장과 어울리지 않는 시끌벅쩍함은 흘려들으면서.


“조걸아!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라!”

“예!”

“부상자들은?”

“수가 그리 많지 않아 거의 수습이 끝났습니다.”

“응.”


윤종의 대답에 유이설은 검을 고쳐잡았다.

측면에서 파고들려는 소수의 마교도 무리는 조걸과 백자배들의 손에 의해 차단되었고, 퇴로를 지키고 선 유이설은 다가오려는 적의 목을 지체없이 베어넘겼다. 지휘관을 잃은 마교도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서서히 전선에서 물러나고 있었다.


“우리도 가자.”

“예? 하지만 아직 대치중인 적들이…”

“…얼마 안남았어.”


마교도들의 살기는 한참 전투가 벌어지던 도중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금 검을 맞대고 있는 유이설은 알 수 있었다. 공격하는, 혹은 방어하는 칼날에 이전과 같은 날카로움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들 역시 언제까지 대치를 이어갈지 망설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의 검이 근처에 남아있던 적의 목을 모조리 떨어트리기 무섭게, 이미 거리를 벌리고 있던 마교도들이 하나 둘 전선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화산의 제자들을 바라보는 눈엔 독기가 가득했으나 달려들진 않았다. 그들 역시 퇴각 신호를 받은 것이다.

적이 물러난 걸 확인한 유이설은 조용히 납검했다.


“가자.”

“…예.”


유이설이 이끄는 백자배 무리를 윤종과 조걸이 후방을 경계하며 뒤따랐다. 그들은 신속하게 들판 위에서 모습을 감췄다. 승리했단 사실조차 숨기듯이 조용하게.

방금까지 난전이 벌어졌던 들판엔 시체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 죽음을 슬퍼하는 애곡도, 승리를 축하하는 포효도 울려퍼지지 못한 채로.

마치 그 모든 죽음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처럼.

흔하디 흔한 전쟁의 단편이었다.


+ 어느 막사의 풍경

소소한테 들켜서 다 같이 사이좋게 대가리에 대침을 박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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