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청명] 가락지








   모처럼 날이 좋은 날이었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 그 선명한 색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리도 날씨가 청명한 것까진 좋았으나, 이런 날씨에 나들이를 나오기 좋다고 생각한 것은 당보와 청명 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화음엔 발 디딜틈도 보이지 않았다. 사천에서 간만에 건너온 정인을 데리고 느긋하게 거리나 돌까, 했던 청명의 계획이 와장창 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정말 시장통이긴 하다. 입가를 소매로 가린 당보가 힐끔, 청명을 바라보았다. 조금 망연한 기색까지 보이는 것 같아서, 당보는 웃음이 새려는 것을 간신히 눌러참았다. 그리곤 반댓손으로 청명의 손을 꾹 쥔다.

   "사람이 많으니,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이러고 있는 게 좋겠소."

   "애 취급이냐?"

   "허어, 그런 것은 아니였소만, 혹시 찔렸, 악! 손, 손 너무 꽉 쥐지 마시오! 부러지겠소!"

   청명이 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당보의 손을 움켜쥐니 당보가 펄쩍 뛰었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당보가 급히 농담이라며 정정한 후에야 청명의 손에는 힘이 풀렸다. 고통에 찔끔 고인 눈물을 소매로 콕콕 찍어 훔친 당보가 먼저 걸음을 뗀다. 어느 새 청명의 손가락이 당보의 손가락 사이로 얽혀들어 깍지를 끼고 있었다. 그것이 간질간질 기분이 좋아서, 당보는 꿈틀대는 입꼬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몰리는 인파를 능숙하게 피해가던 두 사람이 돌연 걸음을 멈췄다. 정확히는, 걸음을 먼저 멈춘 건 청명이었고, 당보는 그를 따라 얼결에 걸음을 멈춘 쪽이었다. 매화빛 눈동자가 여러 장신구가 놓여있는 가판대 위를 향해 있었다. 당보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옛날에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꾸미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던 그가 장신구에 관심을 보이니 놀라지 않고 베기겠는가.

   "장신구 사시려고?"

   "응."

   다소 성의 없이 뱉어진 대답에도 당보는 그러려니 했다. 청명은 이미 올려진 물건들을 살피는 데에 정신이 없어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진중히 가판대 위를 살피는가 싶던 청명이 돌연 자신이 쥐고 있던 당보의 손을 쥐고 주물주물대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손가락을. 당보는 이건 또 뭔 짓거린지 알 길이 없었으나 일단은, 얌전히, 청명에게 제 손을 맡기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가 싶더니, 무언가 알아내기라도 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던 청명이 다시 가판대 위를 시선으로 훑었다. 별 망설임도 없이 뻗어진 손이 녹빛의 옥 가락지 두 개를 집어든다. 똑같은 모양이지만, 크기는 다른 가락지. 그것을 내려다보던 당보가 드물게 눈을 동글게 뜨며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조금 크기가 큰 가락지 하나가 당보의 왼쪽 약지에 끼워졌다. 마치 제 자리를 찾아간 양, 가락지는 당보의 손가락에 딱 맞았다.

   "좋아, 잘 맞네."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며 만족스레 웃는 청명을 멍하게 바라보던 당보의 얼굴이, 불이라도 당겨진 듯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붕어마냥 입을 뻐끔대던 당보가 어버버 하는 사이, 청명이 남은 가락지를 제 손에 끼우려는 양 굴자,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당보는 급히 그 손길을 잡아챘다.

   "내, 내가…… 내가, 끼우게, 해, 해주시, 오……."

   답지않게 말까지 더듬어가며 뱉은 말에, 청명은 순순히 가락지와 자신의 손을 당보에게 내밀었다. 아직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탓일까. 청명의 약지에 반지를 끼우는 당보의 손이 달달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지려던 청명은, 알맞게 끼워진 가락지 위로 입을 맞추며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는 당보로 인해 쏙 들어가고 말았다. 웃음은 빠르게 흩어지고, 당보처럼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청명이 반댓손을 들어 제 얼굴을 꾹꾹 가렸다.



   "…… 그리도 좋냐. 그만 좀 봐라."

   청명의 손을 꼭 잡은 체, 반댓손에 끼워진 가락지를 연신 이리저리 돌려보는 당보 때문에 민망해지는 건 청명이었다. 그리 좋은 가락지도 아니였건만, 당보는 천금보다 더 희귀한 보물이라는 양 굴었다. 더 좋은 것을 마련해줄 걸 그랬나, 하고 짧은 후회가 스칠 정도였다. 정식적으로 혼례를 올린 사이는 아니였지만,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청명과 당보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임을. 그런데도 나눈 가락지가 없는 게 문득문득 아쉬운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을 기회삼아 하나 마련했건만, 생각보다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좀 더 일찍 해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참을 그리 보던 당보가 그제야 손을 내렸다.

   "그래도 이렇게 덥석 줄 줄은 몰랐는데, 형님은 여전히 분위기라곤 탈 줄 모르는 구려?"

   청명이 어이없는 눈으로 당보를 쳐다보았다.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히죽이는 게, 슬슬 장난기가 도는 모양이다.

   "아, 싫으면 내놔!"

   생각보다 격하게 돌아온 반응에 당보가 어라, 하며 곧장 두어걸음 물러났다. 정말 가락지를 뺏을 기세였던지라, 당보가 급하게 제 왼팔을 뒤로 숨긴다.

   "아니! 누가 싫댔소?! 사줬다 뺏는 게 제일 치사한 짓이오! 이제 이건 제 것이니 아무리 형님이라도 도로 가져갈 수 없소!"

   "이리 안 와?!"

   왁왁대는 청명을 피해 히익, 소릴 내던 당보가 사람들 사이를 피해 우다닥 달아났고, 청명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그 뒤를 쫓았다.

   화음에서의 조금 요란스러운 소란이 일었던 어느 오후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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