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당보청명] 네가 그 암존이냐? 한 판 뜨자!

암존신룡. 암존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청명이가 당보와 재회합니다.

Pumpkin Time by 화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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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접적으로 700화대 초반부의 스토리 언급이 있습니다. 

※ 손풀기용 퇴고X 단문. 

당가의 암존暗尊이 귀환했다.

그 어디에도 퍼지지 않은 이 소식은 당가의 제일 친한 문파인 화산의 장문인과 장로, 자주 당가를 오갔던 오검에게만 비밀리에 전해졌다. 갑자기 당가주 처소의 문을 두드리며 나타난 당보는 한눈에 그를 알아본 당조평과 당가에 남아있던 낡은 초상화에 의해 사실 확인이 됐음을 밝혔다. 당가 측에서도 어쩌다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의견을 묻고자 연락을 넣은 것에 가까웠으나 이 소식이 청명에게도 전해진 것이 문제였다. 안색이 변한 청명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당가로 가봐야겠다고 주장했다. 연통보다 본인들의 발이 더 빠르니 가서 확인하는 게 더 편하다는 것이 그가 내세운 이유였다.

그 당가주가 사실 확인을 마쳤다고 했으나 청명은 당장이라도 당가에 쳐들어가 그놈의 얼굴을 봐야 했다. 청명이 누구던가. 지난 전쟁으로 친우고 사형제고 모두 잃었던 이다. 저 또한 한 번 십만대산에서 죽었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100년이라는 시간 뒤에 이리 돌아오지 않았던가. 순리에 벗어난 것은 청명 본인만으로도 충분했다. 떠나보낸 인연들이 그립기야 하지만, 저와 비슷한 고통을 그 누구도 겪지 않길 바랐단 말이다. 하나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청명은 진정 그 사람이 당보가 맞길 바라는지, 아니길 바라는지 알 수 없었다. 

"…뛰어가는 게 더 빠를 텐데, 굳이 이렇게 수레를 끌고 갈 필요가 있나."

"우리가 대뜸 빈손으로 당가를 방문한 것을 알면 당가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눈치채는 사람이 생길 수 있으니까. 이런 식으로 눈속임을 하는 게 좋지."

"그거야 그렇긴 한데…."

다른 누구도 아닌 청명이니 수레를 준비한 이유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저 마음이 급해 투덜거리는 것일 뿐이다. 

 이는 당장 사천으로 뛰쳐가려던 청명을 붙잡은 좋은 핑곗거리였다. 이제껏 청명을 지켜본 입장에서 어지간해서는 안색이 변하지 않는 청명이 평상시와 달라지는 데에는 화산의 제자를 위협하는 이를 상대하거나 지난번 화산의 검법을 섞어 쓴 진양건을 마주쳤을 때처럼 충격적인 일이 있을 때 말고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청명이 차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현종과 오검이 생각해낸 것이 수레를 챙겨야 하니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준비는 다 된 듯하구나. 청명아, 타라."

익숙하게 수레를 끌 준비를 하는 오검을 바라본 청명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레에 올라탔다. 


빠르게 달리는 수레에 탄 청명은 뒤척거리며 흐릿해진 제 친우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사람은 누군가를 잊게 될 때 목소리와 얼굴부터 잊는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꿈에서는 그나마 선명히 보이던 얼굴들도 눈을 뜨는 순간부터는 흐릿한 인상만 남는다. 이런 상태인데 사천으로 뛰쳐가 녀석을 만난다고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까? 본능을 억누르고 이성을 챙기기 시작하자 하나둘씩 떠오르는 문제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당가에 당보 녀석의 초상화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진즉 한 번 보여달라고 했을 텐데….'

워낙 가문에 얽매이는 것을 안 좋아하는 것 같아 초상화는 무슨, 추혼비만이라도 당가에 잘 돌아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더니. 꼴에 태상장로에 암존이라고 초상화도 남겨둔 모양이다. 

초삼의 얼굴은 매화검존 시절 청명의 얼굴과는 다르다. 청명이 당보를 알아본다고 해도, 당보는 청명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냅다 내가 매화검존이다, 하기에는 같이 가는 이들과 당가 사람들의 귀도 있으니 이를 말하지 않고서도 녀석이 제 정체를 짐작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청명이 중지로 미간을 꾹꾹 눌러댔다. 

말이 쉽지, 그걸 어떻게 하냐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기야 하지만, 그걸 하기엔 제 낯짝이 그리 뻔뻔하지 못했다. 청명이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밑져야 본전이지.'

청명은 또라이처럼 보이더라도 녀석에게 제 정체를 가장 확실히 알려주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당군악에게서 당보가 옛날에 쓰던 처소에서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청명이 쏜살같이 달려 나가 문을 부수고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 청명이 처소로 달려오던 시점부터 느낀 기척에 문을 열고 나오던 당보와 문을 부수고 들어온 청명의 시선이 얽혔다. 청명의 뒤로 야, 이 미친 놈아! 하는 욕설과 함께 검은 무복을 입은 무인 네다섯명이 따라 들어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명은 검을 들고서 당보를 향해 말했다.

"네 녀석이 암존이냐? 내가 강한 놈과는 한 번 붙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미친놈이라서, 한 판 떠줘야겠어."

당보와 처음 만났을 때 대뜸 내뱉은 말을 응용했다. 이 말을 알고 있는 이는 당보를 제하면 청명이 유일할 테니까. 게다가 어지간한 또라이가 아닌 이상 이런 식으로 다른 문파원에게 비무를 청하는 놈도 없고. 저 뒤에서 미쳤냐면서 붙잡고 말려대기 바쁘지만, 청명이 알 바는 아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당보의 두 눈이 커지더니 낮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 년 정도를 움직이지 않아 굳었던 몸이 슬 풀리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해도 한때 별호에 존尊을 달았던 녀석이다. 당보 정도의 무인이라면 현재 청명의 무위 수준이 느껴질 것이다. 수준에 맞춰 적당히 상대해줄 테니 이 비무를 끝맺고 나중에 둘이서 이야기를 좀 나눠보면 되겠지. 비무 수락에 뒤돌아 거리를 두던 청명이 그리 생각하던 찰나에 당보가 피식 웃어대며 말했다.

"내 생전 이겨보고 싶었던 인간이 딱 하나 있었는데, 한 번 죽어보고서야 그 기회가 생긴 것 같군. 어떻소, 소도장. 지는 쪽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

저 미친 새끼, 저거……. 내가… 저 또라이 새끼를 얕봤구나.

결국 청명이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검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청명이가 당보에게 대사 응용해서 치는 거 보고 싶어서 쓴 글이라 이 이후로는 어떻게든 됐겠거니 하는 중(무책임)
당보/암존귀환은 항상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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