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귀환

[청명소소] 아니라니까요?

Pumpkin Time by 화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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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귀환 220화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손 풀 겸 가볍게 쓴 단편. 퇴고 X.

 

 

 

청명의 시선이 주위를 빠르게 훑었다. 제 주위를 둘러싼 이들의 수와 전력을 대강 파악한 청명이 연신 앓는 소리를 내며 한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그런 청명의 앞에는 비도와 독을 잔뜩 챙겨온 당군악이 눈만 웃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비도를 날릴 듯한 기세였다.

“자네를 절친한 친우로 생각해 믿고 소소를 화산으로 보냈거늘…….”

“아니! 그러니까 아니라니까요?!”

어쩌다 청명이 당가 무인 무리에 둘러싸여 억울해하는지를 설명하자면, 이는 약 일주일 전의 수련 중 쉬는 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땀을 식히며 널브러져 있던 청자배 몇몇이 멍하니 한 곳을 응시했다. 의약당에서 막 빠져나온 당소소가 청명을 불러세우더니 무언가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렇게 보니까 또 의외로 안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데.”

“지금이야 소소가 흙먼지 구덩이에서 구른다지만, 그래도 사천당가 가주의 고명딸이잖아. 청명이 녀석도 인상을 구기고 살아서 그렇지, 가만히 있으면 꽤 괜찮고.”

“참, 사형. 청명이와 소소가 혼인할 뻔했다는 게 진짭니까? 조걸 사형이 그러던데.”

"나도 들었다. 청명이가 소소한테 쫓기느라 바빴다더라."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새삼스러운 마음에 곽회가 한 마디를 툭 내뱉자 다른 이들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만약 소소가 그렇게 화산에 왔으면 어땠을까?" 

 "제가 뭘요?" 

"그러니까, ……응?"

이제까지 나누던 대화 내용을 말해주려던 도인명의 움직임이 일순 멈추었다. 이상하다, 들리면 안 될 목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언제 속닥거렸냐는 듯 차디찬 침묵이 내려앉았다. 

“……우, 우와악!”

삐걱대며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길래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몰라요?”

“수련 부족인 거 아냐? 어딜 화산에서 방심하고 앉아 있어?”

청명의 퉁명스러운 말에 화산이니까 방심하지, 어디서 이렇게 방심하겠느냐고 대꾸하고 싶었으나, 남 이야기를 하느라 그 당사자가 지척까지 다가올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라. 무리 중 누구도 두 사람의 시선을 온전히 마주하려 하질 않자, 그들의 낯에 호기심이 일렁였다.

“우리 사형들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리도 즐겁게 하느라 그랬을까?”

……이건 솔직하게 빨리 부는 것이 사는 길이다. 희번뜩한 청명의 눈을 본 곽회가 질끈 눈을 감은 채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너, 너희 둘이……!”

 "우리 둘이 왜요?"

"둘이 혼, 혼인할 뻔했다고 전해 들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진짜 딱 그 정도만 이야기했다!"

"마, 맞아. 우리 문파가 혼인이 가능하긴 해도 혼인한 사람은 거의 없잖냐!"

"그래서 신기해서……." 

생각보다도 더 요란한 반응에 언제적 이야기를 꺼내냐며 발끈하려던 두 사람이 순간적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빛보다 빠르게 장난기 어린 시선을 교환한 두 사람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우리가 사형, 사숙들한테 따로 말 안 했었던가요?”

“그런가 본데? 저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언제 시선을 교환했냐는 듯, 두 사람이 의아해하며 태연히 말을 주고받았다.

“우리 부부예요. 저희끼리 몰래 혼인했거든요. 아무도 모르게.”

그리 말한 소소가 냉큼 청명에게 기대더니 눈앞의 사형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심스럽게 팔꿈치로 청명을 툭 건드렸다. 어쭈? 청명이 힐끔거리며 소소를 내려다보다가 자연스레 그녀의 어깨를 감싸 당겼다.

“뭐, 그렇게 됐어.”

방금 말이지. 청명이 뒷말을 삼키고서 낄낄대며 장난스레 웃었다.

"뭐, 뭐라고?"

아, 표정 진짜 재밌네. 새하얗게 질린 사형들의 얼굴을 살펴보던 두 사람이 깔깔댔다. 그 웃음소리에 얼어붙었던 이들이 장난임을 알아채고 안심하려던 찰나,

“자, 우리는 바쁘니까 이제 가요. 상공.”

뻔뻔한 소소의 호칭에 청명 또한 잠깐 삐끗했으나, 다행히도 눈앞의 사형제 중 그 움직임을 눈치챌만한 정신을 붙들고 있는 이가 없었다. 소소의 입에서 흘러나온 호칭에 순식간에 충격에 휩싸인 이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 모습이 우스워 두 사람은 연신 깔깔댔다.

작은 눈 덩어리 같은 그 장난이 눈사태를 일으킬 줄도 모르고.

고작 저 장난 한 마디로 이 상황까지 끌어냈다고 한다면 그 소문을 들은 이들 또한 코웃음을 쳤을 테지만, 그 직후에는 우연히도 청명과 소소가 둘이서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았고, 이동 중에 몇 번 부딪히기도 했다. 이미 귀띔을 받은 이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두 사람에게로 향했고, 그렇게 점차 장난에서 헛소문으로, 헛소문에서 ‘진짜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될 만한 일로 부풀려진 것이었다. 그리고 화산과 깊은 연을 맺고 있는 당가에 이 소문이 퍼지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당소소는 비무 아닌 비무가 끝나자마자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당가 사람들을 헤집고 나와서 청명을 의약당으로 끌고 왔다. 왼팔과 종아리, 옆구리에 붕대를 감은 청명이 찢어진 옷자락을 꿰매고 있는 소소에게 연신 투덜댔다. 

"진짜 억울해. 장난은 네가 먼저 쳤잖아."

"받아준 사람은 사형이거든요? 저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나, 뭐."

"당가주님한테 죽을 뻔한 거 저 멀리서 구경만 하고 있고. 부부는 동생공사해야 하는 거 아냐?"

"에이, 설마 진짜 죽이기야 하겠어요?"

"진짜 죽을 뻔했거든?"

"하여간 엄살은. 자, 옷 수선 다 됐어요."

옷에 붙은 잔실까지 털어낸 소소가 옷을 들고 침상에 걸터앉은 청명에게로 다가왔다. 옷을 받아든 청명이 가만 팔을 들썩이나 싶더니 도복을 대충 어깨에 걸쳤다.

"옷 안 입고 뭐해요?"

"아, 팔꿈치 쪽까지 붕대가 감겨 있어서 팔이 잘 안 굽혀진단 말이야. 입혀주던가."

"어휴, 내 팔자야. 팔 들어요."

청명이 얌전히 팔을 들자, 소소가 청명의 옷을 받아 들고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 순간 조금 열려있던 문 틈새로 헉,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작은 소리에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이 퍼뜩 떨어졌고, 청명이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둘의 사형들이 저 멀리 재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청명이 드물게 당황한 낯으로 뒤돌아 멍하니 서 있는 당소소를 바라보았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소소."

"…네."

"……우리 망한 것 같은데? 이제 진짜 해명도 안 먹힐 것 같은데?"

작은 장난에서 우연에 우연이 겹쳐 두 사람의 사이에 관한 오해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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