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존 드림] 매화연(梅花燕)
유료

[화산귀환/검존드림] 매화연(梅花燕)

03. 화산

*구화산 시점입니다. 등장인물 스포주의.

*조연은 이름이 따로 없습니다.

*적폐/날조 주의. 캐해석의 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매화연 유료 분과 연결되는 내용 + 청명 시점이 나옵니다. (유료입장)

“여기가 화산..”

매화향이 산 전체에 퍼지다 못해 붉게 핀 매화가 장관을 이룬다. 회색빛 기와와 함께 도가 특유의 정갈함이 느껴지는 정문과 매화 문양이 그려진 담벼락. 중앙에는 대화산파의 현판이 눈에 보인다. 청명과 재회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설마 화산의 행사에 초대될 줄은 몰랐다. 소문대로 험난한 산지에 있는 도관이라 언니들이 지친 기색이지만 연홍 련 역시 크게 오르내리는 숨을 고르며 화산파의 정문을 올려보고 있다. 검무 연습과 산행을 자주 가서 산은 익숙하다 생각했지만 화산의 지형은 정말 험난했다. 체력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런 거리를 계속 타고 했다면 확실히 도사님들이 보기엔 우린 비리비리해 보이겠지. 뒤에서 쉬고 있는 언니들의 앓는 목소리가 들린다.

“씨발 죽겠다…공연 전에 체력 다 빠지겠어. 술 안주면 죽인다.”

“이번 일 받은 새끼 누구야. 가만 안 둔다. 비싼 밥 줘야 될 거다.”

“뭐래, 일당 쏠쏠하다고 받아들인 건 언니거든요? 예전에 구해준 적도 있는데 염치는 챙겨야 될 거 아니에요.”

“염치는 염치고 죽겠는 건 죽겠는거지. 내 나이가 몇인데 이건 학대야! 단장님도 죽어가다 못해 피죽 하나 못 먹은 거지꼴인데!”

“너희들…밖에선 말 가리라고 얘기하지 않았느냐. 그 정도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

“으아악, 단장! 쓰러지지 마요! 댁 들고 가기 무겁단 말이야! 쓰러질 거면 가서 쓰러져!”

응 그래, 참으로 화목하기도 하지…모르는 이들이 보면 부끄럽지만 어쩌겠나. 그녀들은 자신이 오기 전부터 이 악단의 주연들이다. 자신을 월하가인이라고 부르듯 그녀들을 보고 수화폐월(羞花閉月)이라 찬송하지 않던가. 표정들이 잔뜩 우악스럽게 일그러져도 본판이 다들 미인이라 우스꽝스럽진 않지만 저 험악한 말씨와 인성이 오가는 걸 보면 세간이 아는 그녀들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거라 연홍 련은 생각했다. 연홍 련은 제 뒤로 올라오는 그녀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바로 공연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네요, 전날에 오는 덕분에 이렇게 경치를 볼 여유도 생기고.”

“빌어먹게 험난하지만 인정이야. 괜히 화산이 매화가 상징이 아니라더니.”

“도시보다 훨씬 운치야 있지. 산 정상에 도관을 차린 미친놈들인데.”

“아 눈치 좀 챙기셔, 언니.”

연홍 련은 그들의 투닥이는 소리에 쿡쿡 웃으며 주변을 둘러본다. 매화가 안 보이는 곳이 없다. 연홍 련은 서안에서 만났던 청명을 떠올린다. 이런 곳에 지내면 매화 향이 스며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다. 연홍 련은 흐드러지게 핀 매화나무를 멍하니 보고 있다. 이렇게 매화향이 짙은 곳은 오랜만이었다. 화산만큼은 아니지만 매화나무가 많은 곳은 자신의 본가인 연홍세가에도 있으니까. 연홍이란 이름 때문인지 본가엔 붉은색과 연관된 나무와 꽃들이 많다. 연홍의 상징인 산사나무부터 시작해 매화나무, 사과나무, 연꽃, 장미까지. 연홍 련은 연홍의 전경을 떠올리다 기억 너머의 원망하는 목소리에 절로 몸을 떤다.

-네가 감히…

“서월아?”

움찔.

연홍 련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여인과 시선이 마주친다. 연홍 련은 시선이 마주치자 소담한 미소를 짓는다.

“아... 죄송해요. 땀이 식어서 조금 오한이 들었나 봐요.”

“숙취 앓은 지 얼마 안됐잖아. 너도 들어가서 쉬는 게 좋겠다.”

“네, 언니도 쉬어야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인 역시 다정히 웃으며 연홍 련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연홍 련은 여인의 쓰다듬을 받은 채 품에 있는 손수건을 꺼내 여인에게 내미니 연홍 련의 손을 잡는다.

“아서라, 나보다 네가 써야지. 얼른 들어가자꾸나. 숨도 돌렸겠다 어디 상판대기 한번 봐야지.”

“네?”

연홍 련은 의아하게 여인을 보니 여인의 미소가 비뚜름하게 미소 짓는다.

“감히 네 동생을 골골이게 하다못해 돈 뜯어먹은 새끼 얼굴을 봐야 되지 않겠니. 도사란 놈이 양민의 돈을 뜯어내? 어떤 말코 새끼인지 얼굴이라도 봐야겠구나.”

저기 언니…그건 이미 제가 사기로 해서 그런건데.. 그렇게 곡해하시면 제가 곤란한데…

물론 청명과 마신 술값은 상상 이상이었지만 점주가 자신을 알아보고 값을 받지 않으려 하길래 값은 확실히 치렀다. 손익계산은 확실해야 뒤끝이 없다는 언니들이지만 자신을 숙취에 앓게 한 것도 모자라 청명이 먹던 술값을 계산해줬다는 게 못마땅했는지 화산의 일이 들어왔을 때 눈을 빛내던 분이 옆에 있는 그녀였다. 연홍 련은 핏대를 세우며 날을 세우는 여인의 손을 잡아 팔을 감싸안는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언니가 나서면 모양이 이상해지잖아요. 제가 해결할 테니 걱정 마세요.”

여인은 마음에 들지 않은 지 미간을 찌푸리며 연홍 련을 힐긋 인다.

“네가 미덥지 않은 건 아니지만, 선물로 다과도 만들지 않았니? 그 청명인가 하는 도사한테 줄 거니?”

연홍 련은 놀란 마음에 여인을 보는 눈이 동그래진다. 여인의 눈이 가늘어지자 연홍 련은 오해를 샀다는 민망함에 옅게 빨개진 뺨으로 손을 내젓는다.

“네?! 아니요. 그건 새로운 장문인께 드릴 선물이에요. 도사님들이 술을 좋아한다 했으니 약주 하실 때 먹기 좋을 거 같아서요.”

청명에게 다과를 줄지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화산의 장문인을 축하해주는 자리다. 이름이 청문이라고 했던가. 화재 사건이 있었을 때 그 분도 있었다는 말에 선물을 고민하다 고른 게 직접 만든 다과였다. 주인공이 아닌 청명에게 다과를 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받아줄 거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연고를 줄 때도 거절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갑자기 선물을 주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고. 술을 가져오는 게 좋았을까도 싶지만. 대 문파의 행사에서 술 선물이야 흔히 오가는 물건이고, 다른 물건을 사서 가자니 은혜를 입은 부분이 있으니 그건 성의가 부족한 것 같다. 뭣보다 술 선물은 언니들이라면…

‘내가 먹을 술도 부족한데 어딜 술을 가져다줘!?’

..하며 따질 사람들이라 다과를 고른 건 어찌 보면 선택지가 정해진 무난한 답이었다. 연홍 련의 대답에 가늘어진 여인의 눈이 풀리면서 연홍 련의 뺨을 손으로 문질인다. 보드라운 뺨을 쓸어 잔머리를 귀에 걸어 정리해주니 연홍 련의 턱까지 내려온 매화무늬의 귀걸이가 햇빛에 반짝인다. 이리 신경 쓰지 않아도 제 눈엔 이미 충분히 은방울꽃처럼 청초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이렇게 귀걸이까지 맞춰서 끼고 온 막내가 퍽 귀엽다. 말씨가 조곤조곤해 보여도 화산에 오는 게 이 아이에게도 의미가 크다는 것이겠지. 그게 연심이든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든 평소보다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어릴 때부터 봐온 여인의 눈엔 잘 보였다. 여인의 눈이 곱게 휘어진 채 화산의 정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래, 알았다. 네가 그렇다 하니 믿어주마.”

**

“다들 준비됐나?”

“단장, 우리가 무슨 한두 번 하는 사람인 줄 알아요? 부르면 나가기만 하면 되요.”

“비파도 다 조율 끝냈고요.”

“한 번 더 점검해두거라. 정숙한 행사니 실례되지 않게 주의해야 된다.”

“네네, 정숙하게 옷이나 살펴둘게요.”

“언니 여기 꽃이 빠졌어요.”

화려하게 치장한 여인들이 저마다 앉아있다. 한명은 부채를 살랑이며 앉아있고 또 한명은 비파를 품에 안아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대앉는다. 또 한명은 손가락에 연지를 찍어 바르고 있으니 연홍 련은 그 뒤에서 매무새를 만져주고 있다. 연지를 다 바른 여인이 고개 돌려 연홍 련에게 웃어 보인다.

“우리 서월이 착하기도 하지, 너도 발라줄까?”

“괜찮아요. 공연 전까지 유지되야 되니까 한 번 더 고정해둘께요. 불편하면 얘기해주세요.”

연홍 련 역시 공연을 위해 단장을 끝마쳤다. 이마에 화전을 그리고 하나로 땋아진 머리엔 아이들이 꽃으로 꾸며준 듯이 매화꽃이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었다. 허리춤엔 검무를 위한 장식용 목검과 함께 허리띠를 장식한 붉은 수실이 엿보인다. 단장을 끝마친 여인은 연홍 련의 모습에 히죽 웃는다.

“서월이도 아주 힘을 줬네? 검무로 화산의 검을 표현하는데 매화꽃을 사용한다 했던가.”

“장문인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신 덕분이죠. 손님들이 좋아하면 좋겠네요.”

“아무렴 이곳의 유일한 꽃들인데 당연히 좋아하겠지. 거기다 서월이 실력이라면야.”

연홍 련은 여인의 말에 조금 쑥스럽게 웃는다. 그녀들이 자신에게 이런 신뢰를 보일 때마다 연홍 련은 이곳에서 지낸 시간이 감사했다. 검만 잘 쓰는 어린애가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이들이니까.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들은 자신이 그리는 이상향과도 닮았다. 그만큼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연홍 련은 항상 생각해왔다. 탁. 부채를 접은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여인들을 향해 말한다.

“다들 일어나렴. 생명의 은인 분들께 약소하지만 보답 할 시간이다. 화산의 검처럼 화려하게 한번 보여주자꾸나.”

여인의 말에 그녀들이 일어나 발걸음을 옮긴다. 관사에서 나오는 그녀들이 화산이 마련해 준 무대에 올라온다. 연홍 련은 비파를 들고 주변을 둘러본다. 

이 사람들 중에서 그도 보고 있을까. 보고 있다면 좋을 텐데. 연홍 련은 그녀들의 신호에 맞춰 비파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비파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여인의 목소리가 도관 내 울려 퍼진다. 마지막은 연홍 련이 일어나 검을 꺼내 검무를 추기 시작한다. 그녀는 제 앞에 마주하고 있는 여인과 시선을 맞추며 미소 짓는다. 두 사람의 검무에 따라 칼날이 반짝이며 이들의 머리에 장식된 매화꽃이 흩날리는 모습은 날카롭지만 화려한, 화산의 검에 대한 경애가 담긴 춤사위였다. 이들의 무대가 끝났을 땐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함께 화산의 취임식은 그렇게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

“화산의 장문인을 뵙습니다.”

“아..! 월하가인을 뵙습니다, 좀 전의 춤은 정말 잘 보았소.”

연홍 련은 예의를 갖춰 포권 후 고개를 든다. 도관을 쓴 정갈한 사내가 인자한 미소를 짓는다. 이 분이 청문 도사님이구나. 수염이 드문 하게 나 있음에도 인자한 인상인 게 한눈에 도기를 가진 도사님이란 걸 알 수 있다. 연홍 련은 소담히 웃으며 고개 숙인다.

“도사님들께서 어여쁘게 봐주시니 영광입니다.”

“소문으로만 들어왔지만 감탄했소이다. 검을 따로 배우신 것이오?”

“연습의 성과이지요. 도사님들께서 초식을 보여주신 덕분에 보다 완성된 춤을 보여드릴 수 있었습니다.”

화산의 관사에 머물 수 있게 된 것이 이 이유였다. 화산의 행사이니만큼 이들에게 인상 깊은걸 보여주고 싶었고, 가장 익숙한 건 그들이 추구하는 검일 거라 생각해서 도사님들께 초식을 보여줄 수 있을지 부탁하니 흔쾌히 보여주셔서 다행이었지. 인사를 나눈 연홍 련은 청문을 바라보았다. 수염이 생기긴 했지만 단정히 도관을 틀어 길게 내려온 머리를 보니 확실히 그때 청명 도사와 함께 있었던 도사님이었다. 친해 보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분이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저... 외람되지만 장문인. 한가지 여쭈어도 되겠는지요.”

“물론입니다, 무슨 질문이오?”

청문은 흔쾌히 웃으며 연홍 련에게 대답하니 조금 주저하듯이 입을 열었다.

“혹시... 청명 도사님은 어디 계시는지 아십니까?”

청명이란 단어에 인자하게 웃던 청문이 경직된다. 어라, 물어보면 안되는 거였으려나. 경직된 청문은 목을 가다듬어 침착하게 연홍 련에게 묻는다.

“큼, 어쩐 일로 찾는 건지 물어도 되겠소?”

“그게..”

연홍 련은 조금 주저한다. 전날에 머물 때부터 느꼈지만 이상하게 청명이 보이지 않았다. 대 문파의 행사이고 사람이 많아서 안 보이는 건가 싶었지만 창문을 통해서 주변을 둘러볼 때도, 식당에서 음식을 받을 때도 없으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보였다면 그거대로 언니의 눈에 들었다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좀 겁나긴 하지만은. 화산의 행사에 화산의 도사가 빠질 리는 없을 텐데. 어디 아프시기라도 하신 건가? 궁금하긴 하지만 청문의 낯을 보니 괜한 질문을 한 거 같기도 하고. 연홍 련은 뺨을 긁적이다 머쓱하게 웃는다.

“…아닙니다, 단순히 궁금해서 여쭈어본 것이니 괜한 질문하여 송구합니다. 실은 장문인께 드릴 게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제게 말입니까?”

청문이 의아하게 묻자 연홍 련은 고개를 작게 끄덕인 채 소매에서 준비한 선물을 건넨다.

“화산에는 술을 금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약주 하실 때 드실 수 있는 다과를 만들어봤는데 괜찮다면 받아주실지요.”

“아니, 뭘 이렇게까지... 직접 만드셨다는 것이오?”

청문은 생각지 않았는지 연홍 련이 건네는 선물에 그녀와 선물을 번갈아본다. 연홍 련은 청문의 반응에 조금 난처하게 웃는다.

“혹시 단 건 좋아하지 않으십니까? 달지 않은 거라면..”

“아, 아니 그게 아니라!……그으... 감사히 받겠소, 낭자.”

청문은 목을 가다듬으며 쑥스러운 듯이 연홍 련이 건네준 다과를 받는다. 청명처럼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받아주었다. 연홍 련은 안도감에 작게 손을 모아 웃는다.

“마음에 드시면 좋겠군요. 그럼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장문인.”

“감사하오, 낭자 덕분에 무사히 마무리 지었습니다. 조심히 돌아가길 바라겠소.”

연홍 련은 청문에게 포권하여 인사하니 청문도 맞포권하여 인사한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다음에라도 기회가 있길 바래야겠지. 연홍 련이 몸을 돌려 나가려니 창문을 통해 누군가 불쑥 나타났다.

“사형…사제 배고픈…응?”

응? 연홍 련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올려보니 눈이 동그래진다. 당신이 왜 거기서 나와? 청명 역시 연홍 련을 보고 놀란 건 마찬가지인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청문은 청명의 등장에 다그치려다 그의 반응이 의아한지 청명에게 묻는다.

“청명이 네…둘이 아는 사이더냐?”

한참을 연홍 련을 보던 청명은 청문의 질문에 흠칫 이며 머리를 긁적이며 떨떠름히 말한다.

“그…그 왜, 산채에서 화재난 적 있었잖아요.”

“화재?”

청문은 화재란 말에 생각나는 일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고 있으니 연홍 련이 고개를 돌려 청문에게 덧붙여서 말한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으나, 예전에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장문인도 같이 계셨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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