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짧은 소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다. 남자는 문 바깥으로 한 발 내딛다 말고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을 보고 멈칫했다. 철문 너머 테라스에는 이미 너덧 명의 남녀가 벤치 대신 대리석 블록 위에 듬성듬성 앉아 있었다. 모두 유명 브랜드의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갖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거나 블록 위에 올려놓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손에 쥔 담뱃갑을 한번 내려다보고 철문 위 ‘흡연가능구역’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흡연 구역이 맞았다.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고 눈만 끔뻑이는 남자에게 모여 있는 무리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신입! 뭐 해? 휴게 쉬러 온 거면 빨리 들어와.”
“아, 네!”
말을 건 이는 이제 막 입사 이틀째인 남자의 직속 상사였다. 신입이라 불린 남자는 상사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하고는 담뱃갑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상사의 옆자리엔 여자가 한 명 앉아 있었는데, 얼굴에 관록과 생기가 동시에 있어 쉽사리 나이나 직급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여자는 신입을 보고는 까르르 웃었다. 눈에 띄게 새빨간 입술이었다.
“이번에 강 팀장님네 새로 들어왔다는 신입이 이 친구예요?”
“그래. 아직 ‘규정집’을 다 읽지도 못한 햇병아리니까 다들 잘 알려줘.”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신입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연신 묵례를 건네던 그가 쭈뼛거리며 물었다.
“저어, 팀장님. 여기가 흡연실이 아닌 건가요?”
“아니, 흡연실 맞아.”
단칼에 대답한 강 팀장이 신입의 표정을 살폈다. 흡연실에서 아무도 흡연하지 않고 커피나 마시고 있다는 것이 영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짧은 한숨을 내쉰 강 팀장이 대리석 블록 뒤 화단에서 한 줌도 안 되는 흙을 집어 들고 손바닥에 올렸다. 불어오는 바람에 흙이 흩날렸다.
“봐. 동남풍이잖아.”
“네……. 그렇네요.”
신입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강 팀장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금방이라도 눈에서 물음표가 나올 것만 같은 신입의 표정에 새빨간 입술을 한 여자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강 팀장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귀찮게 여기는 것에 약간의 한심함을 더한 말투였다.
“지금 담배 피우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어……동남쪽으로 연기가 날아갈 것 같습니다.”
“그건 당연한 사실이고. 중요한 건 연기가 동남쪽으로 날아가면 흡연 구역을 벗어나게 된단 거야. 그래서 오늘은 여기서 담배 못 피운다. 이해했어?”
“아, 네!”
신입이 헐레벌떡 대답하고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검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규정집첫번째’이라고 적혀 있는 자그마한 책이었다. 안쪽은 성경책 같은 얇은 종이 위에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보통 사람은 쳐다도 보고 싶지 않을 분량이었지만, 이마저도 입사하여 일하는 데에 필요한 법령만을 골라 요약한 요약본을 여러 개로 분철한 것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며 방금 말한 규정을 찾는 신입의 뒤로 고참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앉은 이가 손에 든 커피를 홀짝이더니 화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유 팀장님, 오늘 얼굴이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갑작스럽게 지목당한 유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는 화단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블록에 홀로 앉아 있었다.
“……실은, 아내가 임신했어.”
“우와! 축하드립니다!”
새 생명이 잉태되었다니 기쁘지 아니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입이 반색하며 유 팀장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곧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는데, 그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 아버지가 될 유 팀장 역시 착잡한 표정이었다. 또다시 어리둥절함에 빠진 신입을 팔꿈치로 툭 친 강 팀장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으란 성싶었다.
잠시간 침묵 사이로 유 팀장의 한숨 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렸다. 새빨간 입술을 한 여자가 천천히 물었다. 시종일관 신입을 놀려대던 것과 달리 제법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유 팀장님 와이프면……분명 절도팀 박 조사관님이었죠?”
유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 팀장의 아내는 고등법원에서 절도만을 다루는 팀에 속한 조사관이었다. 조사관은 몇 년 전 시작된 ‘신생 법치국가 프로젝트’가 기동하면서 생겨난 직업이었는데, 순식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직업이 되었다. 더 이상 도덕을 믿을 수 없다며 제기된 이 ‘신생 법치국가 프로젝트’는 아무리 사소한 위법이라도 용서 없이 재판대에 세운다. ‘법대로 하라’는 말이 언제 어느 상황에서라도 적용될 수 있게끔 수많은 상황에 대하여 각각의 법률을 만들고, 위반자는 재판하고 법률에 명시된 적절한 형을 받는다. 세상에 백 가지 상황이 있으면 백 가지 법률을 만들고 백 가지 상황을 심판한다. 그것이 ‘신생 법치국가 프로젝트’였다.
새빨간 입술을 한 여자의 말을 시작으로 다들 입이 풀리기라도 한 듯 한마디씩 보태며 순식간에 휴게실이 시끄러워졌다.
“어떡하냐. 임신 초기엔 무조건 휴가 내야 하잖아.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지금 절도팀이 휴가 사용이 가능한 시기인가?”
“아마 아닐걸요. 제 친구가 거기 있는데, 지금 바빠서 죽으려고 하던데요.”
“규정집 다시 읽어 봐. 그쪽은 지금 휴가 못 쓰는 기간이야. 이맘때쯤 일이 몰린다고 하더라고.”
“그럼 어떡해? 애를 낳을 거면 커리어를 전부 포기할 각오를 하고 응급사직을 하거나, 아니면 애를 지금 지우거나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말이 쉽죠. 사법부면 완전 엘리트인데, 그걸 어떻게 포기해요. 아기도 그래요. 아무리 요 몇 년 새 순화되었다곤 해도 지우는 게 그렇게 자유로울 순 없는 거죠.”
“아니, 합법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잖아.”
“그렇지만 둘 다 유 팀장님이랑 아내분은 상처받기만 할 일이잖아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쩔 수 없지. 법을 위반할 바에야 개인이 상처받는 게 백 배는 나은 일이야. 그러라고 법이 있는 거고, 그 법 만들라고 우리가 여기 있는 거잖아.”
“둘 다 왜 그래. 뭐, 유 팀장님 잘못이 아예 없다기엔 그런 법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조심하지 않은 탓도 있고…….”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법과 개인은 동등해야죠.”
“법은 문명의 극치이자 문명 그 자체야. 넌 인류 역사가 한 개인보다 무가치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그만! 둘 다 진정해. 너희가 목소리 높일 일 아니야.“
“……어쩌실 거예요? 유 팀장님.”
유 팀장은 여전히 어두운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흥분하여 자기네들끼리 말다툼을 시작하던 이들이 하나둘 그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소란이 차츰 가라앉자 침묵이 맴돌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유 팀장이 석상처럼 가만히 굳어 있으니 나머지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따라서 입을 다물 뿐이었다. 공중에서 눈동자들이 바쁘게 굴러다녔다. 누가 먼저 이 분위기를 깨고 유 팀장에게 말을 건넬지 마치 내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저라면 와이프더러 애를 지우라고 해요.”
시한폭탄 같은 분위기를 깨고 새빨간 입술을 한 여자가 말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유 팀장님도 일정 기간 육아휴직을 하셔야 하잖아요. 박 조사관님도.”
신입이 번뜩 무언갈 생각해 내고 규정집을 꺼내 들었다. 출산과 육아 휴직에 관한 규정이 분명히 1장 어딘가에 있었다. 팔락팔락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두 분 다 휴직하시는 건 무리니까, 둘 중 한 명이 커리어를 포기해야 하고 높은 확률로 박 조사관님이 될 텐데, 그건 너무 아깝잖아요? 아이는 두 번 가질 수 있지만 지금 그 일을 하는 건 두 번 못 해요.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직업이라고요. 법을 다루는 엘리트니까.”
마치 오늘 날씨는 맑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태연한 목소리였다. 법을 다루는 엘리트라고 말할 땐 심지어 결의에 찬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나라면 그렇게 할 거예요. 어려운 일이 아니죠. 임산부 칸에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앉았을 때 신고하는 것처럼, 양보할 필요가 없는 좌석을 양보해달라고 거칠게 구는 노인을 신고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에요. 법규를 무엇보다 최우선 가치로 생각한다면요.”
그가 말을 마치자 또다시 정적이 시작되었다.
더 이상 인간의 미덕과 도덕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아주 세세한 사항까지 법으로 정해 놓는 ‘신생 법치국가 프로젝트’가 시동 걸린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 다방면의 사람들이 허리가 휠 정도로 고생한 끝에 대한민국에는 ‘법을 어겨선 안 된다’는 신념이 새겨졌다. 그와 함께 법만 지킨다면 기존 사회에서 통용되던 미덕이나 도덕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또한 퍼져나갔다. 누군가는 이것을 부작용으로 보았고, 누군가는 보다 새로운 ‘법이 진리인 나라’로 나아가는 긍정적인 신호로 보았다. 어떤 것이 옳은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법으로 정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제 겨우 프로젝트의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인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대한민국은 그런 과도기에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알람이 울렸다. 강 팀장의 네모난 스마트워치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익숙하게 화면을 터치해서 소리를 끈 강 팀장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벌써 점심시간이 끝날 때가 되었네.”
“그러게요. 3분 45초 남았을 때 출발하죠. 아니면 정시에 못 들어가고 문 앞에서 시간 보내야 하니까.”
누군가가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늘 같은 시간에 이 테라스에 와서 초 단위로 맞추어진 같은 시간에 출발한다. 벌써 일 년이나 된 루틴이었다.
신입의 바로 뒤에 앉은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팔다리를 쭉쭉 늘리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사법부 후기청소년팀에 근무한 지 올해로 막 2년 차가 된 참이었다. 그녀가 새빨간 입술을 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도 규정대로 30분 동안 햇빛 받았네요. 처음 입사했을 땐 이런 게 정말로 지켜질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러게. 나도 그 부분을 만들면서 이게 정말 될까? 싶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매일 지키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인간은 규칙이니 법이니 하는 걸 사랑하나 봐.”
“제발 좀 그랬으면 좋겠네요. 바깥 사람들은 맨날 법 어기고 잡혀 오기나 하던데요, 뭘. 정말 사랑했으면 제가 한가했겠죠?”
진담을 반 섞은 농담이 오갔다. 두 여자가 서로 마주 보고 키득키득 웃었다. 강 팀장은 이미 새빨간 입술에 다시 화장을 덧칠하는 여자의 뒤로 슬그머니 빠져나와 철문으로 향했다. 고참들의 기에 잔뜩 눌려 있던 신입이 어깨를 펴고 강 팀장의 뒤꽁무니를 쫓아갔다. 액정 속 초침이 정확히 열두 시 이십육 분 십오 초를 가리키는 순간, 철문이 또 한 번 열렸다가 닫히고 테라스는 다시금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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