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매패] 잘못
그러니까, 이건 전부 매드 패러독스의 잘못이었다.
잘못
매드 패러독스가 다른 시공에 불시착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그 시공에 매드 패러독스가 아닌 ‘애드’가 존재하는 건 늘 있던 일이고, 그걸 지나치지 않고 구태여 찾아가 타임 패러독스를 발생시키는 건 매드 패러독스의 취미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방금까지 자신의 몸이 얼마나 고깃덩이와 유사하게 변할 수 있는지. 마족들의 손길로 몸소 확인해낸 매드 패러독스는. 다소 지친 상태였다. 방심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죽지 않았으므로, 겁낼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굳이 이곳이 어디인지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바닥에서 웅크리고 잠을 청하는 건. 매드 패러독스가 내보일 수 있는 오만이었다. 즉사에 이르는 공격을 당해도, 어차피 한 번으로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서. 지금은 다만, 잠들고 싶었다.
어둠 속에 보이는 건, 매드 패러독스의 다이너모가 발하는 옅은 빛 뿐이었다.
“이건 또 뭐야?”
마스터마인드의 눈에, 매드 패러독스가 늦게 들어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은 자주 찾지 않는 연구 자료를 쌓아두는 서재의, 책꽂이와 책꽂이 사이. 그 비좁은 틈에 끼어있는 어린아이의 인영. 결벽증 탓에 먼지 한 톨 없었지만, 러그를 비나가 마바닥에서 웅크리고 잠든 작은 몸체다. 온통 검은 옷에, 검은 서가는 좋은 위장이 되어주었다.
“어이. 일어나봐.”
다이너모가 언제든지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형태로 인스톨된다. 장갑을 낀 손이 인영의 어깨를 건드린다. 남의 연구실에 침입한 괴한을 향한 행동치곤 순했지만, 마스터마인드는 당장은 시체를 치울 생각이 없었다.
“… 아.”
“… 너, 누구야?”
눈을 뜨고, 얼굴을 마주한 순간. 마스터마인드는 깨닫는다. ‘애드’라고. 저 코드가, 세상에 둘이나 존재할 리 없는데. 그렇다면 다른 세계의 ‘애드’가 이동에 성공한 것이다. 이곳이 목표는 아니었겠지만. 그러니까, 이건. 자신을, 이해해줄. 이 세상의 유일한 이해자라고. 그곳까지 계산이 도달하자, 마스터마인드는 조금 더 관대해질 마음을 품는다. 그의 어깨를 움쥐는 게 아니라, 감싸 쥐는 정도의.
매드 패러독스의 심경 변화와는 정 반대의 행동이었다. 매드 패러독스는 ‘애드’를 만날 계획 따위 없었다. ‘애드’는 ‘애드’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같은 뿌리니까. 아마, 저 녀석의 눈이 빛나는 것은 자신과 같은 시작을 공유한다는 이유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매드 패러독스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너무나도. 멀리. 이제 그에게 에드워드이던 시절은 까마득하고, 그 자신이 에드워드가 맞는가에 대해서 의문마저 던지게 되었는데. 같잖은 동질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조금만 자고…”
꺼져줄 테니까, 너도 관심 좀 꺼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매드 패러독스가 다시 눈을 감으면, 부유감이 느껴진다. 몸이 들어 올려지는 감각은 낯설었다. 사람을 안아본 적이 한 번도 없나 보지? 불편함에 뒤척이며 편안한 자세를 찾자, 마스터마인드는 휘청이면서도 간신히 중심을 잡는다.
“이름.”
“…”
“이름 말 안 하면 물에 담버린다.”
“… 매드 패러독스.”
“…… 뭐, 좋아. 패러독스. 난 마스터마인드라고 부르면 돼. 깨어나면,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지.”
“… 보고.”
협박이 진심이라는 걸 알면, 이 나른함에서 벗어나기 싫은 매드 패러독스로서는 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치사한 자식. 꼭 도미네이터랑 닮았군. 그러고 보면, 그 자식한테 마스터마인드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던가. 다른 시공의 생각을 방해하는 건, 부드러운 천의 감촉이다. 이불 위에 그대로 내려두고, 새 이불을 꺼내 그 위에 덮어준다. 답잖은 친절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는 뻔했다. 지의 편안함에, 매드 패러독스는 눈을 감는다. 미래의 귀찮음은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다.
그를 잠에서 깨운 건, 냄새였다. 허기짐을 잊은 지는 오래였지만, 음식의 냄새를 분간하는 정도는 가능했다. 유황 냄새에 익숙해졌던 코가, 토마토 스프와 올리브유, 고기 냄새에 반응한다. 평온한 가정집에서나 날 법한 냄새다. 그래 봐야 연구실이면서.
“일어났으면 식사하지.”
“필요 없어.”
매드 패러독스는 어느새 벗겨진 자신의 신발 대신, 침대 옆에 놓여있던 푹신한 실내화를 신고 냄새의 근원지로 향한다. 거기에 있을 사람을 찾아서. 그냥 떠나도 그만이지만, 간만의 친절에 대한 보답이었다. 모처럼의 수면에 기분이 나아진 것도 한몫했다.
“왜? 여섯 시간 넘게 잤으니, 배가 고플 텐데.”
“난 식사가 필요 없는 몸이거든.”
“그럼 거기 앉아있기라도 해. 난 식사가 필요한 몸이니까.”
제멋대로인 행동에 반발할 법도 하지만, 애드의 성미는 뻔한 일이었기에 매드 패러독스는 얌전히 그 앞에 앉는다. 위치 접시에는 냅킨이 단정하게 올려져 있다. 그 주변에 정찬용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양새다. 크고 깊은 수프용 스푼과 전채용 나이프와 포크. 생선용, 그 안에 고기용.
“어디에서 구했어? 가문의 문양은, 이제 구하기도 힘들 텐데.”
“도안만 그릴 수 있으면, 의뢰는 어렵지 않으니까.”
위치 접시의 테두리에는 명백한 그레노어의 문장이. 그러니까, 매드 패러독스가 멋대로 시간의 문장으로 쓰고 있는 그것이 새겨져 있어서. 마스터마인드의 의도를 속삭이기에 충분했다. 난 네가 누구인지 알아. 그리고, 난 네게 호의적으로 굴고 싶어. 애석하게도, 매드 패러독스는 그러한 고상한 행위에서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지만. 아직 앳된 애드를 짓밟을 생각까지는 없었기에 얌전히 장단을 맞춰준다.
“그래서? 뭘 원해?”
“아니지. 그건 이상하잖아. 내가 너한테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해서, 네가 들어줘야 하는 처지는 아니잖아?”
“내가 그걸 들어줄 수도 있지.”
“네 호의에 기대는 것은 언제고 깨지기 마련이야. 그러니까, 우리. 거래하자.”
식기가 부딪히는 소음은 없고, 대화 소리만이 조곤조곤 오간다. 단정히 전채 요리를 한 입씩 넣고, 콩소메를 느리게 떠먹는다. 완전히 삼키고 나서, 하나씩 대답해나가는 건 과거의 잔재다. 매드 패러독스의 안에서 침잠한 지 오래된 향수가, 둥실. 떠다닌다.
“무슨 거래를 하고 싶은데?”
“나랑 주기적으로 대화하는 거래. 나는 네게 날 제공하고, 넌 내게 널 제공하는 거야.”
“웃기지도 않는 말장난이군.”
나이프가 바로 세워진다. 느리게, 고기가 잘려나간다. 여전히, 식기는 마찰하지 않고, 식당은 고요해진다. 마스터마인드는 붉은기가 드러나는 고기의 단면을 푹. 포크로 찍는다. 점성 있는 소스에 찍어, 매드 패러독스에게 그걸 들이미는 건 본능의 속삭임이다. 저걸 인간처럼 대우해. 그러면,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거야.
“먹지그래?”
“전채도, 수프도 없이 메인 디쉬부터?”
“상관없잖아. 순서를 안 지킨다고 회초리를 들 사람도 없고.”
“식기 쓰는 순서부터, 속도까지 배워먹은 대로 굴던 놈이 할 말은 아닌데.”
“너한테 잘 보이고 싶었거든.”
정적으로만 보이던 마스터마인드가 어설프게 웃는 순간, 매드 패러독스는 실감한다. 에스커가 아니다. 에드워드다. 그레이스의 아들. 어리고, 풋내나는. 겉만 익은 고기를, 매드 패러독스는 고개를 숙여 받아먹는다. 소스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 디저트는?”
“체리. 어때?”
“너답네.”
그게 무슨 의미냐던가, 되물을 여지가 넘쳐났지만 마스터마인드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아, 이제. 나는, 너를 가졌다. 나를 대가로, 너를 묶어냈다. 만족스러운 성과에, 마스터마인드는 손수 핑거볼에 손을 담다가 체리를 집어 매드 패러독스에게 건넨다. 그다지 긴 테이블이 아니어서 가능한 행위였다.
“먹을래?”
“… 필요 없대도.”
매드 패러독스는 얌전히 체리를 받아먹었다. 순순한 항복 선언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씻고-필요 없다던 매드 패러독스를 억지로 욕실에 밀어넣고 갈아입을 옷까지 준비한 뒤에, 마스터마인드와 매드 패러독스는 한참을 신경전을 했다. 욕실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더니, 마스터마인드의 등 뒤에서 파열음이 울렸다. 허공을 깨고 나오는 어린 인영에 한숨을 쉬고, 마른 세수 끝에 마스터마인드는 매드 패러독스를 옆구리에 끼고 손수 세수를 시켰다. 길고양이를 목욕시키는 것만큼이나 힘들고, 귀찮았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한 침대에 눕기까지 세 시간이 걸렸다.
“좁아.”
“침대는 이것뿐이야.”
“바닥에서 잘래.”
“안돼. 감기 걸린다.”
“안 걸려. 안 죽어.”
“난 걸려. 그리고 추워.”
“난 따뜻하지도 않은데 왜? 그리고 너, 날 경계하던 것 아니었어?”
그제야 랠리가 멎는다. 침묵은 잠시다. 매드 패러독스의 얇은 허리를 끌어안은 제 팔을 더 단단히 고쳐 잡으며, 작은 정수리에 고개를 파묻는다. 잠이 깬 듯, 또렷한 목소리다.
“내가 잠든 동안 네가 깨서 돌아다니면 곤란하니까. 구속이야.”
“아하. 네 팔로, 말이지.”
“그래.”
“… 하아.”
거래에서 위배된 것은 없으므로, 악마는 얌전히 눈을 감아준다. 함께 잠 들 건 아니지만, 성가심을 참아주기 위해서는 눈을 감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호흡이 일정하게 들려오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맞닿은 몸에서 맥박이 전해진다. 그게 점점 느려지고, 차분해졌을 때. 매드 패러독스는 마스터마인드를 들여다본다.
거래는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었다. 아직 아무것도 잃지 않은 마스터마인드와,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매드 패러독스는. 마스터마인드의 감정을 아무리 더해 보아도, 평행을 이루기에 그른 거래였으니까. 하지만, 마스터마인드는 머리를 잘 굴렸다. ‘애드’의 근간을 이루는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건 마스터마인드와 매드 패러독스 모두에게 해당하는 뿌리였다. 그 추 하나가, 평행을 만들어낸다.
“영악한 놈.”
매드 패러독스는 빤히 마스터마인드를 바라보다가,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손을 넣는다. 쿡. 회로의 시작을 건드리고, 그 선을 따라 주욱. 훑어내린다. 마스터마인드는,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인다. 장난은 적당히 칠까, 손을 떼려던 찰나. 휙, 몸이 돌아간다. 매드 패러독스를 안은 채로, 반대로 몸을 돌린 것이다. 한순간에 마스터마인드와 벽 사이에 껴버린 매드 패러독스는 헛웃음을 짓는다. 아주, 제대로 된 구속이었다.
“… 패러독스?”
마스터마인드는, 드물게 단잠에서 깨어났다. 세 시간이면 깼을 잠이, 여덟 시간에 이른 것도 당황스럽고 바깥이 환한 낮인 것도 당황스러운데. 가장 당황스러운 건, 품이 텅 비었다는 것이다. 상체를 갑작스럽게 세우자 고질적인 저혈압이 찾아온다. 암전하는 시야 속으로 보이는 건 연구실의 풍경이지만, 이질적인 존재는 없다.
“매드 패러독스. 어디 갔어?”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평소와 같은 연구실의 풍경은 적막하고, 단정하다. 흐트러짐도, 변화도. 이변마저도 없다. 오직 달라진 것은, 마스터마인드만이.
파열음이 울린다. 허공에서 작은 인영이 떨어져 내린다. 피와 먼지로 더러워진 옷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스터마인드는 그 몸을 다급하게 받아 구른다. 그 밑에 깔려 바닥을 구르고, 더러워졌음에도 마스터마인드의 낯은 불쾌함이 보이지 않았다. 되려, 희열이 보였으면 모를까.
“너…!”
“… 아. 너인가. 그러니까… 아크 트레이서?”
“마스터마인드야. 그 정도는 기억하지그래?”
“… 몰라. 돌아왔잖아.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다리가 뒤엉키고, 어설프게 바닥에 손을 짚고 상체를 든 마스터마인드는. 마치, 자신이 그를 덮치는 모양새가 되었음은 무시한다. 비강을 찌르 비린내는 명백히 피를 가리킴에도, 육안으로는 큰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다이너모를 불러올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마스터마인드는 피가 묻은 옷자락 근처를 손으로 더듬어낸다. 장갑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드문 일이다.
“… 상처는 없으니까 그만해.”
“피가 이렇게 많이 묻었는데?”
“다른 놈들 거야.”
“거짓말. 하나도 안 다쳤을 리가 없지.”
“없던 일이니까 상관없잖아.”
“상관있지. 환상통이라는 게 괜히 있는 줄 알아?”
신경질적으로 매드 패러독스의 코트를 벗기고, 옷이 찢어진 영역들을 살핀다. 허벅지와 발목의 자상. 무릎의 관통. 터져나간 듯한 팔의 절반. 상처가 없다고 해도, 고통도 없을 수는 없다. 잘게 경련하는 말단부가 그의 고통을 알린다. 이 몸도, 신경이 살아있긴 하다고. 주인에게 반항하는 몸이 매드 패러독스는 마뜩찮았다. 평온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불쾌감을 드러낸다. 말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 잘 아네?”
“상식 수준뿐이야. 내가 의사도 아닌데, 전문적인 것까지 알 게 뭐야. 하지만, 네게 휴식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하지.”
“… 씻을래. 찝찝해.”
“그래. 다녀와.”
비틀거리며 걸음을 내딛는 몸이 보기 좋게 휘청인다. 쿵. 벽과 머리가 부딪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마스터마인드가 놀라 달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라면 그를 밀어냈을 손이, 힘없이 늘어진다.
“… 어지러워.”
“못 움직일 상태면 말을 하라고…!”
“움직일 수는 있었어. 방금 근육이 다 파열돼서 그렇지.”
빛이 터지고, 시간이 되감긴다. 파랗다 못해 보라색으로 물들었던 피부가 온전히 돌아오지만, 경련하는 근육은 이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작게 중얼거린 욕설이 마스터마인드의 귀에 선명히 들린다. 한숨을 내쉬고, 마스터마인드는 기꺼이 작은 몸을 안아 든다.
“씻겨, 줄게.”
“… 마음대로 해.”
옷이 벗겨지는 것은 분명 매드 패러독스인데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마스터마인드의 몫이다. 낯은 멀쩡해도, 뾰족한 귀 끝이 붉게 물들었다. 매드 패러독스는 그 귀끝을 빤히 바라본다. 이성도 아니고 동성에, 그다지 다를 거 없는 몸인데. 아, 아니다. 다를 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뻔히 보이는 균열. 자신에겐 익숙하지만, 그에게는 긴장될 법도 했다.
“안 잡아먹는데.”
툭 뱉은 말에, 지퍼가 주욱. 내려간다. 마스터마인드는 자신이 언제 머뭇거렸냐는 듯, 익숙하다는 것처럼 슈트를 벗겨 낸다. 매드 패러독스가 능숙해보이는 자태에 헛웃음을 짓자, 평온을 가장한 낯으로 균열의 옆. 어깨의 끝자락에 손을 얹는다. 저 가면 뒤의 얼굴이 얼마나 일그러져 있을지를 상상하면, 매드 패러독스는 그저. 죽을 때까지 웃을 수 있을 만큼 즐거웠다. 어리고, 어리석구나. 치기 어린 모습에, 상냥함을 베풀어줄 마음이 조금은 생겨난다.
“누가 겁이라도 먹은 줄 알고? 그냥. … 넌, 몸을 드러내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가. 하고.”
“새삼스럽게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잖아. 동성인데.”
“… 동성이긴 했군?”
“무의미하긴 해도. 성별은 있지.”
나신이 된 패러독스를, 소매만 걷은 마스터마인드가 안아든다.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누이고 부드러운 스펀지로 표면을 문지른다. 균열을 피해 더듬는 손길은 조심스럽다. 균열 가득한 도자기를 대하는 게 더 거칠 만큼이나.
“아무 것도 안 물어봐?”
“물어본다고 알려주긴 할 거고?”
“… 귀찮아졌어.”
“그럴 거면서.”
부드럽게 씻기고, 조심스럽게 머리를 감긴다. 몸에 남은 물기를 다 닦아내고, 머리를 손수 말려내면서. 마스터마인드는 귀 끝을 붉힌 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손수 고른 잠옷을 매드 패러독스에게 입히고, 자신도 엇비슷한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을 때가 되어서야 입이 열린다. 내일의 식사는 무엇이 좋은지, 음식을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와 같은 것을 묻는다. 그를 끌어안고, 한 침대에 눕고 나서야 마스터마인드는, 매드 패러독스에게 묻는다.
“오늘 밤에, 떠날 거야?”
“글쎄…”
“적어도 내가 일어나고 나서 가. 놀라잖아.”
“고민은 해볼게.”
마스터마인드가 그 어중간한 답에 영원한 잠을 바라게 된다는 것을, 매드 패러독스는 알았다. 하지만, 어린 것에게 베풀 수 있는 아량은 그가 귀찮지 않은 선이었다. 차라리 자신의 목을 베는 것이 더 길게 붙드는 길일 텐데. 거래를 깨지 않으려는 발악이라면, 안쓰러움 한 톨 정도는 더 내어줄 수 있었다.
닭이 울기 전, 매드 패러독스는 다른 시공으로 향했다.
마스터마인드는 잠들지 않았다.
매드 패러독스가 두 번째 돌아왔을 때, 마스터마인드는 그가 좋아한다고 답했던 음식을 함께 먹었다. 사실 그것은 애드가 좋아하던 음식임을, 둘 모두 알았다. 둘은 함께 씻고, 같은 잠옷을 입고. 한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닭이 울고 나서, 매드 패러독스는 떠났다.
마스터마인드는 잠들지 않았다.
매드 패러독스가 세 번째 돌아왔을 때, 마스터마인드는 그의 품에 자신을 욱여넣고 쓰러졌다. 이대로 전원이 꺼질 것만 같았다. 이성을 놓치고, 의식도 잃을 것 같은데. 그가 사라질까 두려웠다. 마스터마인드는, 매드 패러독스의 목을 감싸쥐고 잠에 빠진다. 매드 패러독스는 헛웃음을 짓는다. 건방진 애송이.
닭이 우는 순간, 매드 패러독스가 떠났다.
[너는 내 목줄이 될 수 없어.]
마스터마인드는 닭의 목을 비틀었다.
“다녀와.”
“… 그래.”
닭은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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