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시의 정열
아오야기 세이지 로그
배구를 그만둔 데에 큰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단순히 때가 되었으니 그만두었을 뿐이다. 그리 생각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히카루였을 적-부터 즐겁게 하던 배구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체벌의 수단이 되었고, 그 수단으로 전락한 배구가 일시적으로 싫어졌을 뿐이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그 꼴을 당하기 싫어서, 가 맞았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늦은 밤이라 그런지 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밤 열한 시 삼십 분, 과거를 추억하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었다. 추억? 체육창고에 갇히고 체육관에서 맞던 기억을 추억이라고 할 수 있나. 안경을 벗어 책상에 내려놓고 펜을 잠시 손에서 떼어놓았다.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은 이미 뼈에 새겨져 방심했을 때 자리가 없는 공간에서 물건이 튀어나오듯 톡 튀어나오곤 했다. 아오야기 히카루. 그래, 히카루였을 때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잖아. 난 세이지니까. 하지만 배구를 할 때는 즐거웠다. 친구들과 취미로 배구를 하거나, 후배들의 자세를 봐 주거나, 그 선배들과 하던 배구가 싫었던 거지. 승패에 관련 없이 즐거워야 할 배구를 그 선배들은 승패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이기면 잘 넘어가는 거고, 지면 군기에 고생하는 거고. 나중에 들어보니 그 선배들, 배구 쪽으로 진로를 잡을 생각도 없었단다. 솔직히 말하자면 허무했다, 내가 이러려고 배구를 그만뒀나. 고등학교 배구부에 그 선배들이 한 명도 없었다면 입부했을 걸 그랬지. 아니, 그래도 안 했으려나…. 그래도 열정적으로 했는데 말이야. 놓았던 펜을 다시 잡았다. 배구는 미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워할 수 없는 것. 불을 끄는 게 무서워졌어도, 문이 잠길 수 있는 공간에 혼자 들어가는 게 무서워 진 것도 배구 탓은 아니었다. 그건 온전히 사람 때문이고, 배구 탓은 아니잖아. 문제집에 가득 써진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 내려가며 생각했다.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갑자기 배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약간의 후회가 밀려올 뿐이었다. 잔뜩 웃으면서 코트 안을 뛰어다니는 것도, 공을 튕겨내는 것도, 토스를 보내는 것도 할 수 없어졌다는 사실에 밀려오는 후회. ‘우리 팀’ 이 없다는 건 유치원 때와 초등학교 때, 중학교 때까지 소속될 수 있는 팀이 있었던 자신에게는 상당히 낯선 감각이었다. 약간, 맡은 반이 없는 학교의 체육 선생님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다시 팀에 소속될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생각하며 문제를 풀어 내려간다. 3번의 답은 23, 4번의 답은 5번, 5번의 답은 1번…. 순간 불이 꺼졌다. 악! 머리를 감싸고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 미안해, 오빠. 자는 줄 알았어, 미안해. 응? 여동생의 미안함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가 오빠가 자면 불 끄고 오라고 해서…. 오빠 이 시간이면 자잖아. 하는 세나의 목소리는 안절부절함 그 자체였다. 괜찮아, 불 안 꺼도 돼. 오히려 자신이 여동생을 안심시킨 채로.
여동생 세나가 나간 후 공부의 능률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순간 어두워진 방이 아른거렸다. 이 상태로는 공부를 하기에도 애매했기에 펜을 내려두고 문제집을 덮었다. 자자, 그냥 자는 게 나아. 공부를 하고, 배구 생각도, 정열로 가득찬 행동을 한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열두 시 반이었다. 내일은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배구나 할까, 약속을 잡아 볼까. 침대와 이불 사이에 몸을 끼워 넣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겠지….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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