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AKCU by 에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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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이유를 물어. 그런데 납득시킬 이유가 있는 건 아니라서.”

 

청보랏빛 눈동자가 데로록 굴렀다. 사내의 갤러리에는 사라진 대학 동기와의 사진 대신, 직장 동료들과의 사진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시라미네 치유리가 아는’ 타니무라 아키토답지 않은 결과였다. 허나 ‘사람들이 아는’ 타니무라 아키토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유가 꼭 필요한가요? 그냥 싫다고 말해주면 이해해줄 텐데.”

“다 너희들 같진 않거든. 그리고 너도 질문 많이 하는 편 아닌가? 자기는 안 그런 척을 하네….”

“전 좋아하는 사람들만 궁금해하는 거고요. 애초에 아키쨩은 내숭을 너무 많이 부려요.”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우리들’을 특별 취급했고. 정말 싫었다면 타협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여전히 인정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 목 아래로 제 의문을 녹여낸 여자가 갸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액정 너머의 온유한 미소가 눈에 콕 박혔다.

 

처음, 그의 갤러리에서 이것을 목도했을 적에는 그 미소 자체에 놀라움을 느꼈더랬다. 그는 자주 웃는 사람이었으나 이런 식으로 웃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두 번째로는 저희에게는 허락하지 않던 기록에 질투심이 치솟았고. 그리고 그다음은?

 

 

시라미네 치유리는 그가 제게 앨리스를 썼음을 인식한 순간을 떠올렸다. 그와 그녀는 그때부터 쭉 그들이 정반대에 선 인간임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구태여 상대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한 적도 없었다. 그들의 교류는 탐구와 재미, 긴 인연으로 이루어진 정 따위가 전부였다.

 

만일 그들이 나고자란 곳이 학원이 아니었다면. 둘 중 한 명이라도 앨리스가 사라졌다면, 무수히 많은 만약이 현실이 되었다면 그들의 인연은 진즉 끝나버렸을 테지.

 

그러나 두 사람이 나고자란 곳은 학원이었고 앨리스는 졸업식까지 사라지지 않았으며, 타니무라 아키토는 그의 전부를 지우는 ‘실험’을 가하지 않았다. 너한테 쟤들을 어떻게 지워? 잊지도 않을 거면서. 그건 그 또한 지워지지 못할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의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타니무라 아키토는 변했나? 아니오, 타니무라 아키토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기록을 싫어했고 기억의 연속성이 이어지길 원치 않았으며, 타인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타니무라 아키토는 변했다.

 

시라미네 치유리는 그의 변화가 무대 위와 밑이 뒤바뀌었을 뿐이라고 여겼었다. 그는 무대 위와 밑을 구분 짓고자 했고, 설령 무대 위의 삶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보편적인 인간상’으로 여겨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판단했다.

 

왜 그렇게까지 해요?

하지만 이쪽이 더 편해.

여전히 시라미네 치유리는 이해하지 못할 사고방식이다.

 

“전에도 말했지 않나. 난 좋은 집에서 적당히 내가 쓸 돈 갖고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면 충분하다고.”

“……그것도 그렇지만요,”

 

상념이 길었던 탓인가. 액정에서는 빛이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여자의 시선은 그것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뒤늦게야 그것을 눈치챈 시라미네가 느릿한 손길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있죠, 아키쨩.” 가볍게 운을 뗀 여자가 소파의 팔걸이에 등을 기댄 채, 옆자리의 사내를 훑었다.

 

외관적으로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섬 밖으로 나온 뒤로 길게 길렀던 머리를 잘랐고, 종종 안경과 장갑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타니무라 아키토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제 표현을 빌리자면 ‘수상한 미인’이어야 했을 청년에게서는 드문드문 다정이 얽히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뒤바뀌어도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던 친우가 변했다. 이 변화를 달게 반겨야 할까? “아키토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답을 알 수 없어 여자는 눈을 끔뻑였다.

 

“아키쨩은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어려운 사람인 거 알아요?”

“뭐, 그거야 나도 그럴 텐데.”

“에― 저처럼 알기 쉬운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요? 꼬박꼬박 당신 질문에 답도 해주잖아요.”

“답이랑 이해는 별개지, 나도 네 질문에 제법 솔직하게 답해주는 편이지 않나.”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은 없긴 한데요.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하지 않았다고 여겼다면 그건 죽은 사람이거나, 그 변화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아주 오래전에 체득한 사실이 다시금 비눗방울처럼 솟아올랐다.

 

그렇다면 타니무라 아키토는 그의 변화를 인지하고 있는가? 흠, 멀뚱히 사내를 바라보던 시라미네가 데굴 눈을 굴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답잖게 부끄러움이라도 타는 것인지―그 타니무라 아키토가?―, 혹은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아키쨩은 가끔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지금도 그렇고. 그게 변칙적이라서 짐작하기가 어렵달까, 오해하기가 쉽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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