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희망의 놀이공원
꿈과 희망의 낙원은 눈이 아플 정도로 현란한 원색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색색의 풍선을 든 아이들이 잿빛 도심의 기억을 잊은 채, 환상을 논한다. 보드라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바삐 뛰어가는 그들을 어여삐 여기듯, 드러난 살갗과 옷자락 따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퍽 사랑스러운 정경이었으나, 사람이 여럿 모일 때에는 언제나 그렇듯 웃음만이 감돌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떠난 너머에는 데이트를 위해 옷을 맞춘 연인들이 울고 웃기 바빴다.
모처럼이니 즐겁게 즐길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과 달리, 오늘만큼은 제 코가 석 자다. 제 차림새를 점검해 보던 치유리가 슬쩍 몸을 측면으로 기울였다. 코끝에 걸린 선글라스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짙은 산딸기색 렌즈 사이로 익숙한 인영이 잡혔다. 때마침 팜플렛을 들여다보던 눈길이 이쪽을 향했다.
아, 눈 마주쳤다♪ 운이 좋기도 하지, 반사적으로 휘어진 눈매 사이로 별빛이 반짝였다. “치유리,” 그의 입으로 불린 제 이름이 기뻐, 꼭 붙어 서자 그가 들고 있던 팜플렛이 시야에 닿을 위치까지 내려왔다. 차례차례 몇 가지의 놀이기구들을 짚어내는 손길을 따라 보고 있으려니 머리 위에서 의문이 흘러든다.
“전부 싫으면 다른 거 타도 되고.”
“그건 아닌데… 아키쨩, 오늘 사람 많아 보이는데 괜찮아요?”
“뭐, 이 정도는 괜찮아. 전엔 축제도 보러 갔고, 돌아가자고 하면 싫어할 거잖아?”
“우읏, 그… 그야 돌아가면 아쉽잖아요...”
말끝을 흐린 치유리가 눈을 굴렸다. 단순히 티켓값이나 시간이 아까워서는 아니었다. 애초 티켓은 아키토가 직장 동료에게서 받았다던 할인권을 썼던 것이었고─티켓값 정도는 가볍게 낼 수 있는 재력이 있는 것도 한몫했겠지만─ 시간은 또 내면 그만이 아니던가.
만남이야 언제든 이어갈 수 있다. 사람이 몰리지 않은 날의 놀이공원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에 가깝겠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메시지나 전화, 혹은 서로의 집에서의 만남이야 흔히 있던 일이 아니던가. 그러나 연인이 된 후의 첫 데이트라는 것은 새콤달콤한 울림이 있다.
‘그러니까 배려해 주고 있는 중…이려나요?’
그녀가 아는 타니무라 아키토는 그런 ‘처음’ 같은 것들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직설적이면서도 묘한 곳에서 타인에게 기준을 맞추는 데가 있었으니, 그런 형식적인 것을 신경 쓴다하여도 이상할 것이 없다. 시라미네 치유리는 그가 아는 한, 가장 비효율적이고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일 테니.
“있잖아요, 오늘 기대 많이 했나요?”
저는 했는데. 가슴께가 간질거리고,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맞잡은 손의 온기를 느끼며 걸어나가자 누군가가 놓친 풍선이 그들의 머리맡을 스치고 지나간다. 새치름한 눈매가 가늘게 좁혀지다, 이내 곱게 휘어진다. 진한 속눈썹 사이로 불긋한 눈동자가 반짝인다.
“……뭐, 조금은.”
순순한 대답에 우뚝 걸음을 멈춘 여자가 돌연, 아키토의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아키토오오…….” 바깥에서의, 노골적인 애정 표현에도 질색하는 기미가 없다. 하기사, 제가 하는 것이면 모를까 상대가 그에게 하는 것 정도는 얼추 받아주던 사내였으니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 가자. 바이킹부터 타면 되지?”
소란스러웠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꼭 붙였던 몸을 떼어내자, 하얀 손이 불쑥 시야 안으로 침범했다. 긴 손가락을 다시 얽고, 발을 맞추어 걷는 순간순간이 더없이 소중히 느껴진다. “아키쨩,” 언제나 있었던, 의미 없을 순간이 이토록 특별하게 느껴지다니 마법이라도 부린 것이 아닐까. 기쁨의 음표가 넘실거리는 것 같다. 붙잡은 손을 제 쪽으로 끌어온 치유리가 손가락 마디에 짧게 입 맞췄다.
“역시 오늘도 좋아해요.”
“아직도 고민하고 있어?”
“으으, 그렇지만요.”
롤러코스터 줄의 사이에 선 치유리가 제 머리끝을 매만졌다. 간만에 올려묶은 머리칼의 감각이 낯설었으나,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렸던 머리는 얼추 정돈된 지 오래였다.
“놀이기구 타면 어떻게 되는질 까먹었지 뭐예요….”
디즈니랜드라는 환경을 바탕으로 활동성을 중시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함정이 있었다. 아니, 이 경우에는 그녀가 다른 부분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고 봐야 하리라.
도쿄 디즈니랜드는 테마파크를 표방하고 있다지만 엄연히 놀이공원에 속한다. 그리고 놀이공원에서 흔히 탑승하는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자이로드롭 같은 기구들은 강한 바람을 동반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히 그 피해는 옆 사람이나 뒷사람이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바이킹이야 앞뒤 좌석 간의 사이가 넓었으니 그렇다 친다고 하더라도 롤러코스터는 그럴 수 없다. 360도 회전이 예사인 놀이기구에서 남자친구를 지킬 수 있는가? 시라미네 치유리는 장고 끝에 아니오를 써내렸다.
“저는 괜찮은데, 아키쨩이 불편하잖아요. 동그랗게 말아서 머리핀으로 고정하면 어떻게든….”
“별로 아프지도 않으니까 됐어.”
“아키쨩…!!”
“그보다는 입에 들어가서 불쾌할 뿐이고.”
“아키쨩…….”
상냥할 거라면 쭉 상냥해주면 안되나요? 글쎄… 생각해 보고. 퉁명스레 중얼거린 사내가 짓궂은 미소를 덧그렸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태도다. 심술쟁이라 툴툴거리던 여자가 머리칼을 다듬었다. “으음….” 얇은 금사처럼 기다란 머리채가 보리 이삭처럼 곱게 땋였다. 순식간에 레몬 맛 폰데링 두 개를 만들어 낸 치유리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모양새를 확인했다.
“어때요? 흐트러지진 않았나요?”
“잘 어울려. 근데 거울 없이도 잘 묶네, 너.”
“그야 머리 만지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는걸요♬”
아키쨩도 익숙한 일이라면 가능할걸요. 웃음 섞인 목소리가 나풀나풀 춤을 춘다. 잠시 생각에 빠진 사내를 두고, 텐션을 회복한 치유리가 빙그르르- 제 자리에서 한 바퀴 몸을 돌렸다.
곧잘 하던 행동이었으나, 팔랑거리는 차림새 일색이던 평소와 달리 뷔스티에에 반바지라는 단출한 차림인 덕에 넓게 퍼졌다 가라앉은 것은 얇은 가디건 하나뿐이다. 그것이 생소하고도 재미있다며 또 까르르 웃는 여자를 두고, 아키토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나한테 익숙한 일이라면 앨리스 정도인 것 같은데.”
“에엑─. 진짜요? 따로 연습해 본 것도 없어요?”
“다른 일과 동시에 할 만큼 숙달된 행동이라면 딱히. 그렇게까지 연습할 일도 없지 않나. 요령을 찾으면 쉽잖아.”
“이거 저에 대한 배신이에요.”
“대체 어디가.”
으으, 아무튼 치사해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던 여자의 입술이 결국 댓발 튀어나왔다. 복어처럼 부푼 뺨과 입이 퍽 우습다. 어이없는 사유로 맹비난을 당하고 있음에도 아키토의 태도가 여상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좀 골려볼까, 아니면 적당히 상대해 주고 말까. 귀찮음과 장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느른히 내리깐 눈동자 속에 이채가 엇돈다.
“너도 앨리스 쓰면서 다른 일 많이 하잖아.”
“조금 다르지 않나요? 제가 롤러코스터 타면서 앨리스를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네 경우엔 대형 사고 아냐?”
앨리스를 쓰며 롤러코스터라니. 어떤 노래를 부르던 간에 감정이 아닌, 대상의 행동만을 제약할 수 있는 여자의 능력을 떠올려 보자면 대참사 밖에 그려지질 않는다. 허공으로 용솟음치는 롤러코스터 열차를 떠올려 보던 아키토가 비죽 웃음을 덧그렸다.
“우으읏… 아키쨩!”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속에서 장난기를 읽어낸 치유리가 발을 동동 굴렀다. 제 나름대로의 언짢음을 표현한 행동이었으나 위협이란 일랑 느껴지지 않는 작태다. “이따 미니마우스 머리띠 써주세요...” “뭐… 써주는 거야 어렵지는 않은데.” “약속한 거예요?” 그러나 원체 발화점이 높지 않은 두 사람의 대화가 으레 그러하듯, 자그만 약속 하나로 사건이 종식됐다.
“아키쨩 오늘은 밝은 옷 입었으니까, 밝은색의 머리띠도 잘 어울릴지도요~?”
“너무 눈에 띄는 건… 디즈니랜드에서 이걸 따져봤자 의미 없나. 그보다, 넌 이것도 밝은색으로 쳐?”
“에~ 아닌가요?”
슬쩍 몸을 뒤로 물린 시라미네가 가볍게 위아래를 훑었다. 가벼운 검은색 반팔 티에 품이 낙낙한 남방셔츠, 짙은 쪽빛의 청바지까지. 죄 밝다고는 할 수 없는 색감이다. 아키토가 지닌 고유의 색채를 조합하자면 더욱 그러했으나… 평소의 옷차림을 떠올린 치유리의 고개가 기우뚱 기울어졌다.
“하지만 아키쨩의 평소 옷보다는 밝은 편이잖아요?”
“따지자면 그렇긴 하지. 근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냐?”
“아하하, 그치만 디즈니랜드에서 치마랑 구두는 불편하잖아요~ 아키쨩이 절 업고 다닐 수도 없고요.”
“가끔 내 성별을 잊는 것 같은데, 너 정돈 들 수 있어.”
“에~ 그치만 상상이 안되는 걸요.”
콕콕, 아키토의 팔뚝을 찔러 본 여자가 키득키득 잔웃음을 흘렸다. 타니무라 아키토는 빈말로도 마냥 가녀리다고만은 할 수 없는 체격임에도 시라미네는 그와 제 동기들을 비쩍 마른 구관 인형처럼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것을 익히 알고 있는 사내가 가볍게 손을 퉁겼다.
따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둥그런 이마가 뒤로 밀려난다. “아야! 아키쨩…??” “우리 차례 됐네, 가자.” 제 이마를 붙잡은 치유리가 억울함을 그득 담은 눈빛을 보내건 말건, 그가 저벅저벅 걸음을 옮겼다. “아앗, 같이 가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녀의 다급한 외침만이 그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여러 놀이기구를 타며 온몸으로 바람을 맞이한 두 사람이 향한 곳은 기념품점이었다. 직전까지 비명을 질러, 정신없는 와중에도 미니마우스 머리띠에 대한 집념을 잊지 않은 여자의 탓이었다. 기어이 그의 머리 위로 앙증맞은 머리띠를 씌우는 데에 성공한 치유리가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이런 게 어울리는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닌가.”
“제 얼굴을 보고 귀여워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요? 아키쨩이라서 좋은건걸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쿠키가 든 틴케이스를 집어 든 여자가 고개를 기울였다. “토와쨩이랑 키코쨩한텐 바나나빵 보다는 쿠키가 낫겠죠? 틴케이스도 귀엽고….” 동그란 틴케이스에 프린팅된 앨리스가 반짝반짝 빛을 냈다. 홀로그램이라도 덧입힌 것일까, 혹은 가게의 조명이 마법을 부린 것일까.
“걔네가 그걸 귀여워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아하핫, 뭐어- 사실 케이스가 마음에 안 들어도 잘 먹어준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요.”
그럼 유쨩한테는 바나나빵이랑 텀블러로 할래요,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철제 케이스 위로 슈크림빛 종이 상자가 얹혔다. “아키쨩은 안 고르나요? 동료분들한테라던가….” “고민 좀 해보고. 물건이 너무 작거나 크면 들고 가기 귀찮거든. 아기자기한 건 내 이미지와도 안 맞고.” “에~ 그런가요?” 앙증맞은 크기의 오르골 따위를 들여다보던 여자가 눈을 끔뻑였다.
백색 조명 아래, 밀크 초콜릿색 벽돌과 진열장을 등지고 선 사내는 퍽 이질적인 데가 있었다. 원체 서늘한 미인인데에 더하여 그가 지닌 고유의 색채 자체가 워낙 어둡고도 푸르른 탓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개연성을 만들어 내는 얼굴이 있고, 불행히도 타니무라 아키토는 그 아주 소수의 경우에 해당이 됐다. 덕택인지 시라미네 치유리의 콩깍지는 줄어들 줄을 몰랐다.
“그치만, 지금 그 머리띠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애초에 아키쨩은 쿠로미랑 있어도 위화감이 없고.”
“뭔 소리야…. 그건 너한테나 그럴걸.”
“에~ 그럼 귀엽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어요?”
“없어.”
진짜진짜진짜요? 어, 진짜로. 약하게 팔을 흔들자 그의 머리 위로 자리 잡은 새까만 동물귀 머리띠가 앙증맞게 흔들렸다. 새빨간 스팽글 리본이 조명의 빛을 받아 반지르르한 빛을 냈다. 흠, 역시 귀엽기만 한데. 남몰래 입 안으로 투덜거리는 사이, 사내가 쿠키 상자 서넛을 집어 들었다. 해맑게 웃는 미키마우스가 커다랗게 새겨진 상자였다.
“이 정도 갖다 두면 알아서 잘 먹겠지.”
“그 쿠키 맛있으니까 분명히 다들 맛있게 먹어줄걸요♪”
“그런 의미는 아니었지만… 뭐, 남기는 것보다는 낫나.”
“그쵸~? 맛있으면 좋잖아요~”
각자가 고른 기념품을 든 연인이 나란히 카운터로 향했다. 한가득 쌓인 상품들은 죄 아기자기한 디저트들이다. 계산을 마치고, 성심껏 포장을 이어가는 직원을 지켜보던 아키토가 입을 열었다.
“물품 보관함에 넣고 가자.”
“좋아요! 앗, 아까 저기서 쿠키에 아이스크림을 끼워서 만든 걸 팔더라구요. 정리하고 나면 먹으러 갈래요?”
“그래.”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던 태양이 지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오렌지색의 빛무리도 사라지고, 검푸른 물감을 풀어낸 하늘이 도시를 물들였다. 창문 틈으로 스며든 밤바람이 커튼 끝을 흔들고는 스쳐 지나간다.
“관람차 예뻤죠? 여기서 맛보는 야경도 괜찮지만, 역시 그런 풍경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넌 공연 때문에라도 자주 가지 않았나?”
“퍼레이드요? 으음… 그렇긴 하지만, 거긴 별로 안 높아서요.”
창가를 들여다보던 치유리가 풀썩, 침대에 걸터앉았다. 매트리스의 반동으로 양다리가 가볍게 튀었다.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놓치지 않게 꾹 쥔 여자가 재잘재잘 말을 이었다. 원체 동기 중에서도 유달리 말이 많은 여자였으나, 직전까지 함께 했으면서 그리 할 말이 많을까 싶을만큼 이야기는 끊길 줄을 몰랐다. 액정 너머의 상대가 간간히 답변을 돌려주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듣자하니 월요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다던가. 모처럼의 주말을 데이트로 허비하게 만든 것 같아 덜컥 걱정이 들었으나 타니무라는 언제나 그렇듯 무덤덤했다. 장본인이 그렇다 보니 호들갑을 떠는 것도 바보 같아지기 마련이다.
‘그럼 일 끝날 때까지 말 상대 노릇이나 해봐. 거의 답 못 할 것 같지만,’
‘에~ 그거 말 상대가 아니라 라디오 DJ 같은데… 그거면 충분해요?’
그럼에도 통화를 이어가는 것은 배려하듯 던진 제안 때문이었다. 친구들의 근황부터 디즈니랜드에서 느낀 시시콜콜한 좋고 싫은 일들까지. 그날의 이야기, 함께 맛본 풍경들이 방울방울 퍼져나간다.
“팝콘도 맛있었죠. 밀크 초콜릿 맛이라고 해서 처음엔 무슨 맛일까 고민했었는데… 그거, 꽤 인기라나 봐요. 손이 끈적끈적해지니까 아키쨩은 싫어할 것 같지만.”
“맛있긴 했어.”
“다음에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지 도전해 볼까요? 아, 그렇지만 팝콘은 역시 영화랑 같이 곁들여야 좋은데….”
영화에 초콜릿 팝콘, 그리고 감자튀김을 같이 곁들이면 이상하려나요. 달고 짠 것을 같이 먹으면 질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노래하듯 읊어가던 목소리가 드문드문 끊기기 시작했다. 뒤늦게 피로가 몰려오기라도 한 것인지 눈꺼풀이 무겁다. 으음, 조금 더 곁에 있어 주고 싶은데…. 마음과 달리 수마를 이겨낼 방도가 없다.
“……있죠, 아키쨩.”
“응,”
“오늘도 사랑해요.”
그러니까…. 웅얼거리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작은 숨소리만이 이어진다. 영원히 끊기지 않을 것 같던 이야기꾼이 사라지자, 긴 정적이 이어졌다.
“……치유리, 자?”
밤은 고요한 시간이라, 한 사람이 잠든 침묵의 통화는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이따금 흘러나오는 잠꼬대와 노트북의 타자 소리만이 스피커를 채웠다. 미완성된 문장을 갈무리한 사내가 가벼이 덧붙였다.
“자나보네, 잘 자.”
꿈 없이도 포근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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