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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토주인] 조각글

아쿠네코 라토x주인♀️

Scarlet by 스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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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응, 왜 그래?"

"아까 본 인간들은 왜 주둥이를 비비고 있었을까요?"

결코 악의가 담기지 않은 순수한 질문. 그렇지만 그 말에 묵직한 타격을 맞은 나는 방금 마셨던 홍차를 다시 찻잔에 마신 그대로 뱉고 말았다. 베리언이 이 자리에 없어서 다행 망정이지. 만약에 그가 이런 자신을 봤더라면 "주인님..." 하는 안타까운 목소리와 함께 조금 곤란한 얼굴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어린 조카에게 아이는 어떻게 만들어지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딱 이런 기분일까. 대체 어떤 인간들이 이토록 순수한 라토 앞에서 눈치없이 주둥이를 비벼댄걸까. 나는 이름모를 커플을 저주하며, 은근슬쩍 여기 없을 그의 스승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그, 글쎄. 나중에 미야지에게 물어보는 게 어때?"

미안해, 미야지. 나는 눈을 꾹 감으며 그에게 속으로 닿지 않을 사과를  건넸다. 그렇지만 이건 양육자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리 말하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자기 위안을 하는 것도 잠시,

"그렇지만 미야지 선생님도  어쩐지 질문을 피하셔서."

그래, 이미 물어봤구나. 애들 가르치는 일만 수십 년 해온 미야지에게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한걸까. 어쩐지 곤란해하며 시선을 내리까는 미야지의 모습이 언뜻 눈앞에 스쳐 지나간 듯한 기분이 들어, 나는 미간을 꾹꾹 문질렀다. 네게 떠넘기려 해서 진짜 미안해, 미야지.

"... 그래서 미야지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조금 더 크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상하죠, 전 이미 다 컸는데 말이죠. 라토는 그리 말하며 맑게 갠 하늘처럼 새파란 눈동자를 굴렸다.

... 이거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하나. 나는 말을 이어나가는 대신 하하, 어색하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빨리 주제를 돌리면 어떻게든 이 불편한 대화에서 빠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라토는 코 앞에 나비가 날아들기만 해도, 순식간에 집중력을 잃고 나비를 쫓아가는 아이니까. 대충 그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면 금새 잊어버릴 법도 한데.

"그래서 주인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저의 주인님은 총명하시니까."

그러나 라토는 자신의 바램과 달리, 아무래도 이 대화를 쉽사리 끝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이를 어쩌면 좋담. 나는 머리를 재빠르게 굴리며 이 난관을 헤쳐나갈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라토는 내게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자신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성큼 다가와 제 앞에 있던 찻잔 받침을 옆으로 치워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가 자유분방한 움직임으로 테이블 위에 털썩 앉았다.

"주인님, 왜 그렇게 부끄러운 표정을 짓고 계신건가요?"

마치 곤란한 질문을 받으신 것처럼, 저랑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시고. 그리 말하며, 라토가 생글생글 웃는다.

이거 어쩌면 좋담. 알고 있다고 대답하면 분명 그 의미를 알려달라 할 테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해도 감이 좋은 라토에게 금방 거짓말임이 들통날 게 뻔하고. 이게 바로 빼도 박도 못한 상황이라는 거구나. 나는 차를 마시는 척하며 라토의 시선을 피했지만, 라토는 개구쟁이처럼 상체를 기울이며 자신과  다시 눈을 마주쳐 왔다.

"주인님, 피해도 소용없답니다? 어차피 주인님은 제게서 도망칠 수 없으니까요."

그 말대로, 라토의 질문으로부터 내가 도망칠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내 입으로 라토에게 입맞춤이 뭔지 설명하는 것도 역시 좀...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눈 가리고 아웅 하기. 라토에게 들켰을까? 그가 있는 방향으로 힐끔 시선을 돌리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자연스럽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나는 그리 되뇌며, 평소처럼 조용히 홍차를 홀짝였다.

"이런... 곤란하네요. 총명한 주인님이라면 당연히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

다행히 라토는 자신의 처세술에 보기 좋게 넘어간 모양이었다. 라토는 눈을 마주치기 위해 제게로 숙였던 상체를 뒤로 거뒀다. 아무래도 급한 불은 끈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그렇다면, 직접 해볼까요?"

뭘? 뭘 해봐? 그의 질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내가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는 사이, 라로는 검지로 자기 입술 피어싱을 톡톡 쳤다.

"역시 모르는 건 직접 부딪쳐서 알아보는 게 좋겠죠. 미야지 선생님은 제가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 하셨지만..."

저는 참을성이 없어서요. 괜찮죠, 주인님? 눈 깜짝할 새 그의 잘생긴 얼굴이 코 앞까지 다가온 것을 보고, 나는 그제야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자, 잠깐만. 라토가 싫은 건 아닌데, 갑자기 이렇게 갑작스럽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푸흐흐... 주인님. 겁먹으셨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이 다칠 일은 없을 거랍니다. 주인님은 저의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나긋나긋한 그의 달콤한 목소리에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하다. 그런 말을 하며 진지한 얼굴로 조금씩 제게로 다가오는 라토를 보고 있자니 떨리다가 해야 할지, 아니면 긴장된다고 해야 할지. 어쩐지 맨정신으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만 첫 키스를 앞둔 소녀처럼 눈을 꽉 감고 말았다.

"라토."

그때였다. 익숙한 목소리가 라토를 멈춰 세운 건. 입술 바로 앞에 따뜻한 숨결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콩콩 뛰는 자신의 고동 소리 속에서 살며시 눈을 뜨자, 백발의 단발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묶은 구릿빛 피부의 남성이 곤란한 얼굴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주인님을 곤란하게 하면 안 된다고 했잖니."

"... 미야지 선생님."

그 말씀대로네요. 조금 전까지 사냥감을 노리고 다가오는 포식자 같던 그의 살벌한 표정은, 어느샌가 누그러져  다시 생글생글 웃는 어린아이의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벌렁거리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하아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야지가 오지 않았더라면, 방금 진짜 라토랑 키스할 뻔했어. 진짜로 하지도 않았는데 맥이 쭉 빠진 자신과 다르게, 라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즐겁게 미야지와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예전에 스쳐 지나가듯 들은 적 있는 것 같다. 순백의 종이는 그 어느 색도 품지 않았기에 아름답지만, 그렇기에 그 어떤 색으로도 쉽게 물든다고. 라토의 순수함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어린아이 같은 그의 행동거지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미소가 나오다가도, 그의 거침없는 행동력이 사소한 자극을 쫓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수레바퀴처럼 멈출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했으니까. 만약 오늘 라토가 키스를 제안한 상대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였다면 정말로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번졌을지 모른다.

'이 일은 라토를 위해서라도 나중에 미야지에게 말해둬야겠다.'

그리 다짐하던 찰나,

"어제 분명 주인님과 입을 맞추면 안 된다고 일렀을텐데."

"죄송합니다. 호기심이 동하는 바람에 그만."

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두 사람의 대화에, 나는 머리가 새하얗게 백지처럼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 미야지가 라토한테 입을 맞추면 안된다고, 했지.

근데 라토는 분명 미야지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방금 전까지 즐겁다는 듯 히죽이며 상체를 숙여 자신과 눈을 마주치던 라토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설마 그건, 일부러 다 알면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순식간에 목까지 열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라토, 너... 너...!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니, 잘 익은 토마토처럼 얼굴을 잔뜩 붉힌 주인님이 할 말이 많다는 듯한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라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분명히 다 큰 성인이라고.'

아무래도 주인님은 그 사실을 자꾸 망각하시는 것 같아서, 저답지 않게 조금 짓궂은 장난을 쳐버렸네요. 하지만 주인님의 그런 얼굴을 보면 자꾸만 멈출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주인님, 다음부턴 조심히 해주세요?

'미야지 선생님이 항상 주인님 곁에 계속 있어주시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 밑의 결제선은 채널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라지더라도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결제란입니다. 아래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장본의 금액은 글자수에 맞춰 책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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