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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주인] 조각글

아쿠네코 유한x주인♀️

Scarlet by 스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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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내가 사는 세계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수줍은 얼굴로 그리 말하는 주인의 얼굴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주인의 잔에 차를 따르려던 유한의 손이 허공에서 멎는다. 그녀를 생각하며 어제 저녁부터 냉침해둔 녹차가 주전자 안에서 제 맘처럼 일렁이는 게 느껴진다.

어째서 제게 그런 것을 말씀하시는 거죠?

가시 돋친 말이 창포물로 관리된 그의 매끄러운 입술에서 튀어 나갈 뻔했지만,  유한은 그 정도로 성급하지도, 철없지도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차분히 "그렇군요," 하고 집사가 건넬 만한 대답을 할 뿐. 그러나 주인은 평소보다 말이 없어진 유한을 보고도 그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한 듯,  성가시게 말을 걸어오는 앵무새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 사람은 정말이지 다정하고, 상냥하면서도 배려심이 넘쳐. 게다가 자기 관리를 잘하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던지."

주인의 눈동자에서 설렘의 빛이 아른거린다. 주인은 사랑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런 이채를 띄곤 했다. 데빌 팔라스. 무우, 그리고 집사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그렇게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씀하신다는 건 정말로 달콤한 사랑에 퐁당 빠지셨다는 이야기겠지요. 유한은 어쩐지 가슴이 시큰거리는 기분이 들어, 제 가슴에 손을 올려본다. 쿵, 쿵, 제 가슴은 평소처럼 힘차게 뛰는데도, 왜 당장이라도 뜯어져 나갈 듯 위태롭게 느껴지는지.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이라. 자기관리라면 자신도 남들보다 뒤처진다곤 생각해 본 적 없다. 대체 자신과 그 남자는 어디가 달랐던 걸까. 실제로 본다면 주인님께 어울리는 남성이라 납득할 수 있을까. 한번 시작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자문자답을 이어 나간다. 결국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해할 수 없다'로 귀결될 뻔한 그때,

"유한, 괜찮아?"

얼마나 멍하니 서 있었는지 자각조차 못 하고 있던 때에, 주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이름을 부른다. 유한은 그제야 생각의 고리에서 빠져나와, 자신이 추악한 망상을 하고 있단 사실을 깨닫는다. 직접 본 적도 없는 상대를 멋대로 깎아내리고 재단하다니. 이러니 주인은 자신에게서 매력을 찾지 못한 게 아닐까. 유한은 그만 자조 섞인 웃음을 흘린다.

"... 이런 이야기는 제가 아니라 다른 집사님께 상담하는 게 어떨까요."

"응? 어째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그리 행복하게 웃는 당신을 보고 있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본심을 뱉고 싶었다. 이 불편한 자리를 빨리 벗어나,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지금 당장 아무에게나 모의전을 신청하고 검을 휘두르고 싶은 기분이니까. 이토록 솔직한 감상을 토해내면 아마 다정한 당신은 괴로운 미소를 지으며 미안하다고 하겠지. 잘못한 건 당신이 아닌데도.

유한은 열렸던 입을 꾹 다물며, 뻗어나갈 뻔한 말을 입 안에서 으득 짓씹으며 목 너머로 삼켰다. 분명 넘어가는 건 없을 텐데도 모래를 삼키는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저는 부끄럽게도 남녀관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주인님께 어떤 조언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주인님은 자신을 믿기 때문에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아닌가. 그런데도 자신은 질투에 삼켜져 순간의 충동으로 이기심을 드러낼 뻔했다. 이토록 해로운 감정을 품은 집사는 멀리하는 게 좋으리라.

그러나 그의 무해한 주인은 심복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활짝 웃어 보인다.

"괜찮아! 딱히 조언을 바라고 하는 말은 아냐. 그저 말할 곳이 필요했으니까. 유한과 대화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져서,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거든."

그러니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듣기만 해도 괜찮으니까. 그리 말하는 주인님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마치 짙은 어둠에 삼켜진 제 심연 구석구석까지도 빛을 내려주는 태양 같아서. 유한은 쓰게 웃는다.

아아, 나는 정말 최악의 남자구나. 주인님은 이리도 순수한 마음으로 날 걱정해주시는데...

"정말로 감사합니다."

유한은 여전히 욱신거리는 가슴 위로 손을 올리곤, 칭찬에 감사를 표하듯 깍듯이 경례한다. 주인에게 신뢰받는 것 이상으로, 집사에게 과분한 칭찬은 없으니까.

그러니 당신의 그러한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나의 이 마음이 선을 넘는 일이 없기를. 부디 이 관계에 안주하지 못하고 이 위태로운 관계를 내 손으로 직접 부숴버리지 않길.

'내가 언제까지나 당신의 곁에 있을 수 있길.'

유한은 그리 생각하며, 자신의 아린 가슴을 꽉 움켜쥔다.


* 밑의 결제선은 채널에 문제가 생기거나 사라지더라도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결제란입니다. 아래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소장본의 금액은 글자수에 맞춰 책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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