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이 글은 지난 2022년 1학기에 작가가 들은 교양 강의의 기말 대체과제 제출을 주 목적으로 창작된 글입니다. 해당 과제는 2022년 6월 20일자로 온오프라인 제출이 완료되었으며, 1학기 성적이 산출된 상태입니다. 혼잣말 같은 플롯을 써냈을 때부터 작품을 기대해주신 많은 분들을 위해 온라인으로 공개합니다.

제출하기 전 글을 검토해준 동생과 제목을 정해준 오랜 친구, 그리고 여러 이름들을 빌려준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강하게 고정된 탓에 찌뿌둥해진 팔이며 다리를 길게 늘였다. 스무 번도 넘게 이 짓거리를 했는데도 매번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맞은편에서는 다운이 멀쩡하게 헤엄쳐 나오며 방금까지 누워 있던 워프용 안전 캡슐을 점검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그가 캡슐에서 나와달라는 뜻으로 하는 손짓에 내가 먼저 조종실로 걸음을 옮겼다. 짧은 통로에 뚫린 왼쪽 창 밖으로 떠나올 때의 지구처럼 푸른 빛이 도는 행성이 보였다. 6개월간의 헛다리 끝에 처음으로 마주한 심록이었다. 나는 한동안 창을 붙잡고 얼굴을 비비다시피 하며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를 마음껏 달리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불쾌하지 않은 온기가 바람에 실리고 뺨과 귀를 스쳐 지나가는, 아주 어렸을 때나 느껴본 감각이 바로 앞까지 다가올 것만 같았다.

"거기서 또 뭐 하세요?"

다운은 벽면과 창에 완전히 달라붙은 내게 의문을 한가득 품은 목소리로 물었다. 같은 광경을 몇 번이나 봤을 텐데도 참 한결같았다. 일상이 처지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반응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숨겨져 있던 미지의 개척자라도 된 양 자신 넘치는 손짓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바깥 좀 봐. 이번엔 진짜일 거야."

사실 우리는 개척자가 맞았다. 게다가 이 행성에 도달한 건 우리가 처음이었다. 언젠가 다운이 설명하길, 탐사 경로는 각 탐사대가 광활한 외로움에 빠지지 않도록 일정 주기마다 교차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탐사대가 먼저 다녀간 지역에서는 탐사 진척이나 일상, 인근 행성의 탐사 여부를 담은 메시지가 발견되고, 면대면으로 마주칠 가능성도 충분하댔다. 하지만 이 행성 근처를 지나는 경로를 가진 건 정말 우리뿐이었다.

"어때?"

돌아서는 다운의 표정에 환호나 기쁨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사람이라 속마음도 얼굴과 같을지는 별개의 일이었다. 단 1초도 쉬지 않고 모래폭풍이 부는 행성을 발견했을 때는, 물을 흠뻑 뒤집어쓴 강아지 같은 표정을 하다가도 '정밀 조사에 들일 시간을 절약했다'라며 좋아하기도 했다.

"일단 현장 조사를 해봐야 알겠어요."

그러고는 나를 지나 조종실로 향했다. 나는 마지막까지도 창밖에 시선을 둔 채로 다운을 따라갔다. 이번에는 정말 느낌이 좋았다. 우리를 다시 가족에게로 돌려보내줄, 그리고 어떤 사람이든 새로운 곳에서 삶을 시작할 계기가 되어줄 조사 결과가 나오리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다운은 이미 벨트를 맨 채로 조사 절차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다. 직접 행성에 착륙해 조사하는 건 처음이니 점검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도 화면 아래에 덕지덕지 붙여둔 '필요 샘플 리스트'를 다시 읽었다. 모든 샘플은 최소 2개씩, 하고 되뇌며 바라본 화면의 지도는 두 개의 위성을 표시했다. 크기가 작은 하나는 행성 가까운 곳에서 도는 모습이 보였다. 크기가 큰 쪽은 그보다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때문에 행성에 미치는 영향은 작은 위성과 비슷하거나 더 적을 거라는 설명도 덧붙여져 있었다. 더 정확히 알려면 위성에 장비를 가지고 내려서 이런저런 파동을 쏴 보고 컴퓨터가 그 결과를 계산해주어야 했다. 다운은 전에도 비슷한 일을 해서인지 꼼꼼하고 정확하게 조사를 해서 돌아오고는 했다. 탐사선 안에서 기계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사람도 대부분 다운이었다. 내가 쓸 줄 아는 기계라고는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전부라, 옆에서 돕는다 해도 필요로 하는 공구를 건네주는 일이 전부였다.

"이 프로젝트 준비하던 사람 중에는 너처럼 탐사대원 된 경우가 많아?"

1탐사대 1경력직. 이런 배치가 가능하다면 어떤 팀에서나 기술 걱정은 없겠다 하는 마음에서의 질문이었다. 나 같은 사람으로만 채워진 탐사대는 고작 며칠 만에 사소한 고장으로 쩔쩔매다가, 그대로 미아가 되거나 빈손으로 귀환했을 것이다.

"참 일찍도 물어보시네요."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아주 많지는 않아요. 후하게 잡아도 탐사대 개수 절반이 안 될걸요. 저 포함하면 두 명쯤?"

'포함하면'과 '두 명' 사이에는 어색한 간격이 있었다. 다운도 아주 정확하게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걸 생각하면 많아 봐야 세 명이라는 소리였다. 탐사 프로젝트는 모든 인간의 미래를 건 만큼 세계적인 규모였다. 인구 70억 중에 스물이 못 되는 숫자만이 우주로 나왔대도, 셋보다 곱절로 많았다.

 

그렇게 잡담을 이어가는데, 대시보드 한구석에 붙은 스피커에서 익숙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운이 반사작용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본 음성은 3개월마다 자동으로 재생되는 격려 메시지입니다.」

메시지는 상태를 차근차근 물었다. 24시간을 기준으로 한 수면과 활동이 적절히 지켜지고 있는지, 탐사대원 사이의 관계는 원만한지, 다툼이 있었더라도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해결했는지, 식량 등의 자원은 계획에 맞추어 소비하고 있는지, 탐사선에 결함은 없는지, 정해진 항로대로 진행하는 중인지……. 진작에 녹음된 파일이고, 맞받아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질문 하나가 끝날 때마다 진단하듯이 대답했다. 아마 음성을 넣고 주기적으로 재생하자고 제안한 사람도 이런 효과를 기대했을 것이다.

「지구에서는 탐사대 여러분께 유일한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탐사대 여러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매일 나오지 않아 다행일 정도로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다운은 여전히 기분이 나빠 보였다. 뭐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동시에 양손으로 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는 바람에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대로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한숨을 쉬며 평소대로 목적지를 지정했다. 이어서 그가 화면을 몇 번 터치하자 탐사선은 점차 행성에 가까워졌다. 궤도 높이가 낮아지면서 온도 상승 안내음이 울렸다. 아마도 수증기로 만들어졌을 구름 아래까지 내려가자 표면에서 적당한 온도를 감지했는지 난방장치가 꺼지기까지 했다. 푸른 물 위에는 작은 섬들과 충분히 큰 땅덩어리가 있었다. 호수, 산맥, 지구에서 보았던 환경들이 이곳에도 존재했다. 탐사선 안은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는 내내 조용했다. 단지 카메라가 보여주는 경치가 아름다워서만은 아니었다.

"음… 다들 이유는 있었어?"

나는 결국 죽을 것 같은 정적을 참지 못했다.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직전까지 하던 얘기로 돌아갔다.

"별거 없어요. 원래 월급의 다섯 배 준다는 것밖에는. 그만큼 위험할 수 있다는 거라 많이들 고개를 젓더라고요."

다운은 한참 뜸을 들이더니 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착륙 지점으로 넓은 평지 한가운데를 지정했다. 1킬로미터쯤 걸어가면 숲이, 그리고 숲과 이어지는 산이 있는 곳이었다. 채집할 것은 숲에 더 많겠지만 다운의 선택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무를 부러뜨리는 것보다야 풀을 몇 포기 태우는 일이 훨씬 나았다.

"저는 가족들이 편하게 살았으면 해서 나오게 됐죠. 그 돈이면 서벅서벅한 지구에서도 의식주 걱정만큼은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정말 현실적인 이유였다. 나도 숭고한 정신으로 지원한 건 아니었지만, 다운은 탐사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움직였던 사람인데도 프로젝트 이야기는 덧붙이지도 않았다. 찜찜한 마음에 입을 떼기 무섭게 탐사선이 육중하게 착륙했다.

"여러 환경이 만나는 곳이라 사는 생물이 많을 거예요. 여기서 적도 방향으로 꽤 걸어가면 바다도 있고… 그것도 염수인지 담수인지 확인해야 할 텐데, 이따 제가 할게요."

그리고는 부하 직원을 격려하는 상급자처럼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렇게까지 사무적인 태도로 나오면 바로 할 일을 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

 

출입문 바로 앞의 차폐막 안에서 주섬주섬 보호복을 꺼냈다. 오랜만에 벨트 없이 발을 디디고 설 일이 생겨 기뻤다. 보호복에는 안전을 위해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움직이는 데에 아주 불편하지도 않았다. 무겁고 두꺼운 기존 보호복은 탐사 효율을 떨어뜨릴 게 분명하니, 다른 무엇보다도 공을 들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덕분에 온갖 공병과 채집 도구가 든 가방 2개를 양쪽 어깨에 둘러메고, 작은 가방을 하나 더 챙길 수 있었다. 소독이 끝나고, 밖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마자 보호복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6개월 만의 진짜 바람이었다. 걷는 느낌은 지구와 비슷했다. 지구에서 어떻게 걸었는지를 정확히 기억해낼 수는 없었지만, 걸으려면 힘을 내야 했고, 그리 힘을 들이지 않아도 양 발바닥이 땅에 붙어있다는 점이 같았다.

"아. 아. 잘 들리나요? 도중에 끊기지는 않고요?"

이리저리 걸어보며 확인하는 도중에, 왼쪽에 낀 이어폰에서 다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당장 내가 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간단하게만 대답했다.

"응."

"좋아요. 그럼 샘플 채집을 부탁드려요. 저는 그동안 위성들을 조사하고 돌아올게요. 익숙한 회색빛 땅이라 생명은 없을 것 같지만… 참, 간섭 때문에 도중에 쌍방향 통신을 한 번 끊을 거예요. 다시 연결하면 알려드릴게요."

안내는 그걸로 끝이었다. 평원을 한참 걸어 거리를 벌린 후에 신호를 주자 탐사선이 이륙했다. 충분한 거리였을 텐데도 열기가 훅 끼쳤다. 그 뒤로 일정하게 멀어지는 탐사선을 보면서도 걱정을 놓지 못했다. 다운이 힘없는 말을 하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는 느낌 탓이었다. 그래도 일은 평소처럼 꼼꼼하게 해오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당장은 그를 믿고 신세계를 돌아다니며 필요한 것들을 모아야 했다.

 

발목 높이까지 무성히 자란 풀 사이로 온갖 벌레가 지나갔다. 땅을 기는 것들은 핀셋으로 충분히 잡을 수 있었지만, 긴 다리로 뛰어다니는 것들은 잡기 힘들었다. 결국 큰 스포이트처럼 생긴 도구를 꺼냈다. 공병에 한 마리씩 넣고 잽싸게 뚜껑을 닫은 뒤에는, 채집 장소는 어디인지, 뭘 넣었는지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운 좋게 서로 다른 성별을 채집했다면 다운도 좋아하겠지만, 지구 곤충도 잘 모르는 나에게 외계 곤충을 구분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게 곤충 여덟 종에, 두 종류의 풀을 챙겼다. 땅바닥을 쳐다보느라 한참 굽히고 있던 등은 햇볕이 내리쬐어 따뜻하다 못해 뜨거울 지경이었다. 보호복 안의 공기도 따끈해졌지만 땀이 지나치게 나거나 불쾌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이 점점 마음에 들었다.

숲의 초입까지는 40분쯤 걸어야 했다. 더 빨리 걸을 수도 있었지만, 주변을 구경하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매일을 시커먼 공간 속에서 보내다가 여러 색채로 가득한 세상에 나왔으니 당연했다. 게다가 이렇게 싱그러운 풍경은 지구에서도 더는 만끽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면 익룡에 가깝게 생긴 작은 생물이 무리를 지어 날았다. 꼭 철새 떼 같았다. 새들은 숲으로 향했다. 산으로 향하는지도 몰랐다. 오른쪽 하늘을 높게 가로막은 산 너머에 있을 그들의 목적지를 생각했다. 흐르는 강을 따라 자리 잡은 온갖 동물들이 이 행성이 제공하는 자유를 누리는 상상도는 내가 지치지 않게 해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숲은 공기부터 달랐다. 울창하게 퍼진 그늘이 항성의 따가운 광선을 촘촘하게 막아냈다. 방금까지 열기에 구워지다 와서인지 도리어 춥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 속으로 역사적인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환영 인사를 받기 딱 좋은 타이밍에, 멀리서부터 평지로 나오던 낯선 네발 동물 하나가 나를 보고 숲으로 다시금 뛰어 들어갔다. 그것이 이곳에서 문명을 이룬 지성체가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다운의 말을 빌리자면,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문명이 있는 행성은 우리의 목표에 해당하지 않았다. 인간이 오려면 원시적인 문명이든, 첨단을 이루어낸 문명이든, 인간과 대립할만한 상대가 없어야만 했다.

평원에서도 느꼈지만, 이곳의 식물들은 모두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갈색으로 자라난 나무줄기나, 돌 위에 붙어있는 녹색 이끼들, 축축한 갈색 흙과 낙엽 위로 실처럼 엉겨 붙은 곰팡이는 지구의 산에서도 항상 봐 왔었다. 첫 번째 목표는 나무껍질이었다. 칼로 눈높이에 붙어있던 작은 조각과, 같은 나무의 다른 부분을 떼어내 각각 병에 넣었다. 새 병을 꺼내 들고 푹 꺼진 풀숲들을 찾아다녔다. 이런 곳에는 동물이 머물렀을 가능성이 컸다. 정말 한참을 뒤적거린 끝에 겨우 분변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겨우 이걸 찾겠다고 돌아다니면서 채집한 곤충, 이끼, 곰팡이, 나뭇잎, 동물 사체가 훨씬 많았다. 그래도 내가 돌아본 곳에서는 가공된 물건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렇게 많이 움직였는데도 없다는 건, 문명 또한 없으리라는 뜻이었다. 우리의 긴 여정은 곧 끝날 것이다. 다운이 오늘따라 예민하게 굴었다는 점이 약간 걸렸지만, 당장은 좋은 부분만 보고 싶었다. 때마침 통신이 다시 켜지고, 다운이 보고를 겸해 말을 걸었다.

"위성과 행성 문명에 대한 조사가 끝났어요. 곧 해수를 확인하러 갈 건데, 어디 계세요?"

"아직 숲이야. 좀 깊이 들어와서, 나가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

지나온 방향을 돌아보니 까마득했다. 끝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뭘 지나쳐왔는지는 정확히 기억했다.

"음, 길은 알고 계시죠?"

"당연하지. 조사 결과부터 말해줄래?"

이어폰 너머에서 다운이 한숨을 쉬었다. 금속 위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소리도 들렸다. 다운이 침착하게 결과를 설명했다. 우선 두 위성에서는 생명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큰 위성은 작은 위성보다 훨씬 적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두 영향의 합은 달보다 컸으나 행성에 재난이 찾아올 정도는 아니었고, 내가 반나절쯤 멀쩡히 돌아다니며 본 것들이 그 증거였다. 숲을 빠져나가는 내내 온갖 정보가 쏟아졌다. 이 행성이 살기에 적합하다는 내용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어떤 문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식도 있어요. 해저를 포함해서."

"뭐?"

좋은 예감이 실제로 이어지자 오히려 꿈 같았다. 일단 비명처럼 되묻고는 숲을 빠져나가는 내내 몇 번이고 진짜냐고 확인했다. 다운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모든 질문에 진짜라고 답했다. 숲이 끝나가고 있었다. 막 내렸을 때보다 한참은 무거워진 가방을 짊어지고 평원으로 나오니 우리의 탐사선이, 곧 우리를 집으로 데려다줄 탐사선이 보였다.

 

차폐막에서 보호복을 급하게 벗고, 가방을 챙겨 탐사선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분석실로 달려갔다. 가져온 병들을 자동 분석기의 팔에 하나씩 꽂았다. 팔에 달린 버튼으로 뭘 넣었는지만 선택하면 분석기가 알아서 처리해 결과를 알려주는 식이었다. 마지막 공병까지 꽂아 넣고 작동 시작을 누르려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헉… 하… 진짜 금방 오셨네요… 후……."

다운이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들어왔다. 반대쪽 손에는 물이 든 병 여섯 개를 올린 트레이를 들고 있었다. 문으로 뛰어가 잽싸게 트레이를 낚아채고는 분석실 구석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이건 내가 넣을게. 넌 저기 앉아서 쉬어. 바닷물 맞지?"

다운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비척비척 걸어가는 모습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다시 작업대로 돌아와 남은 분석기 하나에 여섯 개의 병을 모두 꽂았다. 작동 버튼을 누르자 분석실의 모든 기계가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상연 씨."

숨을 고른 다운이 옆으로 다가와, 곧 메일 듯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잡아 오는 손이 차갑고 축축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전부터 말하려고 했었는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인류가 이 행성에 정착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실 어떤 행성에도 새롭게 정착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결국에는 다 망쳐버리고 말 테니까."

몸이 푹 꺼지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화를 내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갈 곳 잃은 시선을 겨우 다운에게 고정해두는 것이 전부였다.

"상연 씨, 부탁이에요."

다운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도 애절하게 들렸다. 이렇게 말한 적이 없으니 당연했다. 나는 우리가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었다. 인간이 살 행성을 찾고 알린다는, 그 목표 안에서라면 자세를 낮추어가며 부탁할 필요가 없었다.

"이대로 지나가면 안 될까요?"

무심코 분석기마다 달린 화면을 바라보았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실시간 동기화 설정은 꺼둔 상태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짓말을 한대도 지구에서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인간을 저버리려고 여기까지 나온 게 아니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는 모르더라도 나에게는 가족이 있었고,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제발… 인류와 지구를 위해서요…"

더는 참을 수 없어 분석실을 박차고 나왔다. 보호복을 입는 동안에도 다운은 쫓아올 기미가 없었다. 화풀이라도 하듯 착륙지에서 한참을 걸었다. 탐사선이 손가락 마디보다 작아 보일 때가 되어서야 바닥에 드러누웠다. 풀밭은 여느 침구와도 비하지 못할 푹신함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진득한 노란색 하늘을 배경으로 간혹 익숙지 않은 생김새의 날벌레가 지나갔고, 산에서부터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는 이곳에서 자꾸만 지구를 떠올렸다. 지금이 아닌, 과거에 살아보았던 지구가 계속해서 겹쳐졌다. 그리고 억지로 살아가는 인간의 지역과 그런 인간들이 버린 지역으로 철저히 나눠진 지금의 지구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사는 지역 어딘가에서 내 가족도 삶을 꾸렸다. 다운의 가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도 다운은 이후의 삶을 포기하려 들었다.

이 행성은 해가 금방 저물었다. 타오르는 하늘은 산 저편까지 물러나고, 반대쪽 하늘에서부터 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개의 달이 빛나는 모습은 평생 본 적 없는 절경을 만들었다. 워프용 안전 캡슐에서 일어난 순간부터 멋지다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가족들에게도 이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많은 사람이 바라봐주길 바랐다. 이 모습을 공유하고 감상을 나눌 사람을 원했다. 다운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데, 이어폰으로 잡음이 들렸다. 다운이었다.

"이어폰도 착용하시고, 통신도 안 끄셨네요."

그 말이 꼭 비아냥처럼 들려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듣고는 있었다.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분명 궁금하시겠죠."

얼마나 긴장했는지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인간이 살 수 있어요. 대기 중 기체 비율이 지구와 유사하고, 해수는 충분히 차갑고, 토양도 비옥해요. 반도체에 들어가는 몇몇 원소나 희토류 같은 자원이 아주 넘쳐나지는 않지만, 지금과 같은 소비 수준을 유지한다면 몇십 년 정도는 쓸만할 거예요."

꼭 대답을 바란 듯한 침묵이 있었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어색하게 다음 말이 이어졌다.

"물론 그걸 다 쓴 뒤에는 또 다른 행성으로 옮겨가게 될 거고… 혹시 하늘 보고 계세요?"

"응."

"아름답죠?"

물론 아름다웠다. 10년 사이에, 평생을 본 하늘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일어나봐요."

못 이기는 척 힘쓰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다운이 걸어오며 손을 흔들었다. 보호복만 입었을 뿐, 헬멧은 벗은 상태였다. 그 모습을 따라 나도 헬멧의 밀폐 장치를 풀었다. 여느 때보다 상쾌한 공기가 필터를 거치지 않고 쏟아져 들어왔다. 맡은 적 없는 짙은 풀냄새가 났다. 서늘한 밤공기가 뺨을 훑고 지나갔다. 이어서 헬멧을 벗어 무릎 위에 올려두자 벌레 울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렸고, 반사되어 돌아오던 내 얼굴도 사라졌다. 아무것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정체 모를 동물의 찢어지는 울부짖음도, 스산한 새 소리도 그저 노래처럼 느껴졌다. 시선을 어디에 두든, 무엇에 집중하든 절경의 연속이었다. 채집을 위해 돌아다니던 낮에도 마찬가지였다. 이 행성은 내가 기대하던 것 이상의 가치를 가졌다. 한참 넋을 놓고 둘러보고 나서야 다운이 왜 그런 소리를 했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참 멋진 곳이에요."

힘겹게 걸어온 다운이 바로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 탓에 꼭 감탄이 아닌, 한탄처럼 들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늘의 어떤 별을 모아도 지구에서와 같은 별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지구가 아닌, 인간이 살 수 있는, 인간을 살아가게 할 새로운 행성은 그런 곳이었다. 어떤 환상과 신화와 전설도 남지 못한 채 우리 종을 어떻게든 연명시키기 위한 도구로 전락할 운명이었다.

"넌 이 풍경이 망쳐질 걸 걱정하는 거지?"

"정답이에요."

다운은 말을 잇지 않았다. 덕분에 생각을 더 할 수 있었다. 인류가 어떤 종류의 역사도 간직하지 못하고 다른 행성들을 전전하며 희생시킬 바에는 지구에 남는 편이 나았다. 우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해서 인류가 바로 사라지지도 않을 터였다. 게다가 다른 탐사대가 또 다른 행성을 찾아 보고한다면 우리가 저지른 일탈은 인류로부터 이곳만을 보호하는 데에 그쳤다. 그만큼 사소한 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서 풀이 붙은 부분을 탁탁 털었다.

"이제 돌아가려고요?"

"그래야지. …하지만 지구는 아니야. 인간과 이 행성을 위해서라도."

방금까지만 해도 암울하게 묻던 다운의 얼굴이 환해졌다. 고맙다는 말을 얼마나 들었는지 세기도 어려웠다. 우리는 분석실에서 병들을 폐기하며, 탐사를 시작한 이래로 가장 즐거운 대화 시간을 가졌다. 행성의 궤도를 떠나면서는 우리가, 특히 내가 한 모든 생각을 담은 메시지를 남겼다. 앞으로 방문할 탐사대들이 이 말에 공감하며 같은 선택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지구에는 조사 결과를 조작해 인간이 살 수 없다는 보고를 보냈다. 남은 항로는 아직 길었다.

 

새로운 방랑을 시작한 지 몇 주 되지 않은 날이었다. 우리는 다시 익숙한 푸름을 지닌 행성을 만났고, 착륙 없이 궤도를 돌며 형식적인 조사만 할 생각이었다.

"이 행성을 먼저 다녀간 탐사대가 남긴 메시지가 여섯 개나 있어요. 그 말은 저희 빼고 전부 다녀갔다는 거죠. …들어볼래요?"

나는 대답 대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첫 번째 메시지의 주인은 자신들을 딜런, 그리고 카멜리아라고 소개했다.

「…여러분 눈앞의 아름다운 행성이 보이실 겁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인간이 살아가기에 적합하죠. 하지만 이곳에는 인간이 정착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이 행성에서 인간이 살 수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아득한 느낌에 잠깐 메시지를 정지했다. 다운을 돌아보자 꼭 '이 사람들도?'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마저 들어봐야겠지?"

단 한 번의 긴장된 끄덕임과 동시에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우리는 이 행성에서 인간에 의해 망가지기 이전의 지구를 보았습니다. 이런 표현이 발아래 행성에게는 실례가 되겠지만, 앞으로 이 메시지를 들으실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려니 별다른 방도가 없네요. 그리고 우리는 논의 끝에 행성이 간직한 아름다움을 차마 짓밟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의 모습이 인간에 의해 어떻게 변질될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후에 오시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만 저 땅에 발을 내려보세요. 헬멧을 벗고 폐 깊은 곳까지 호흡해보세요. 풀과 흙, 바다와 모래알을 모두 만져보세요. 그럼에도 이 메시지가 와닿지 않는다면 지구에 보고하셔도 좋습니다. 탐사에 행운을 빕니다.」

메시지의 주인은 다른 행성을 보고 우리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아직 메시지가 5개나 더 남아 있었다. 나는 홀린 듯이 다음 메시지를 재생했다.

「두 번째로 도착한 은샘물, 은냇물이 기록합니다. 앞선 탐사대의 의견에 동의하며, 보고 없이 다음 경로로 향합니다. 현재까지 저희가 발견한 거주 가능 행성은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제예나와 발로이시 탐사대가 '인간을 배신하는 기분이지만, 이쪽이 조금이나마 옳은 일 같다'라며 이전의 기록 또한 보고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릴리와 명옥, 지아가 함께하는 탐사대에서는 '각자의 행성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생명이 인류만큼이나 소중하다'라고 말했다. 캐시와 스텔라는 '도저히 이 행성을 인간의 손으로 망칠 수 없겠다'라고 생각했으며, 가장 최근 다녀간 올리버와 에디트, 슈트라우스 탐사대는 '앞선 의견들에 감화되어 모든 보고를 포기하겠다'라고 했다.

우리 또한 다시 돌아올 그들을 위해 메시지를 남겼다. '이전에 발견한 행성을 비슷한 이유로 보고하지 않았으며, 이번에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우주에는 열여섯 명의 인간을 태운 일곱 대의 탐사선이 떠돌았다. 그들이 지구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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