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소설

230606 E님 드림 4천자

HL 드림 ?못방 수위 X (당일마감)

모든 해결사 협회의 정점, 하나 협회에 직접 의뢰를 넣기란 만만치 않다. 그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최소 도시 악몽 정도는 되어야 말단 하나를 보낼까 말까 하는 수준이니. 도시의 재해에 대한 위험도를 매기고, 사무소와 해결사 전원의 등급을 관리하는 중추 – 그런 만큼 이 의뢰가 특별한 것이다. 한낱 도시 질병이 1급 해결사 두 명의 관심을 끌다니…

 

“최악이군.”

“네, 최악이네요.”

 

이유도 있고 흥미도 있었다.

 

우선 ‘도서관’을 도시의 별로 지정하느냐 마느냐로 하나 협회가 소란이라는 게 그 이유다. 찬성파는 그들이 W사의 특이점을 입수한 이상 과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반대파는 날개끼리 특허 전쟁으로 싸웠는데 그것도 도시의 별로 지정할 거냐고 과거의 사례를 들먹였다. 솔직히, [캐릭터 2]와 [캐릭터 1]는 그런 싸움에 전혀, 전혀 끼고 싶지 않았다. 다른 별들과 잔향악단이 도시를 휘젓는 마당에 그딴 게 중요한가.

 

그리고 이 의뢰가 다른 도시 질병처럼 위협적이지는 않으나, 그 주변에서 행방불명된 사람들과 해결사의 수가 도를 넘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심상치 않다. 어떤 1급 해결사는 행방이 묘연한데, 어떤 9급 해결사는 사지 멀쩡하게 나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혹시나 해서 그 해결사를 조사해 봤지만, 다른 도시 질병급 의뢰를 해결해 보겠다고 객기를 부리다가 죽었다. 그건 그 녀석이 멍청한 거지만…

 

떨어져 보니 알겠다.

그런 입 싼 녀석도 살았는데 다른 사람이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를.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야 나갈 수 있는 방!♡’

 

두 면이 유리, 두 면이 벽으로 된 평범한 방이었다. 뒤틀림으로 추정되는 이곳의 사건명은…‘진실의 방으로’. 유리를 통해서는 다른 방을 볼 수 있었는데, 문 앞에 걸린 표어는 다양했다.

 

‘키스하면 나갈 수 있는 방’ - 행방불명된 두 명의 1급 해결사가 등을 돌리고 싫다고 버티고 있었다. 확실히 둘 사이가 안 좋기는 했지.

 

‘사과해야 나갈 수 있는 방’ - 어떤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매달리며 애원하고 있었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 걸로 보아 거짓말인 모양이다.

 

심지어는…‘섹스해야 나갈 수 있는 방’까지. - 하도 어이가 없는지 두 사람이 서서 그 명패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런 자들에 비하면 [캐릭터 2]와 [캐릭터 1]는 천국에 떨어진 셈이었다.

그렇지만,

 

“어째서 나갈 수 없는 걸까요…”

“…모르, 겠군.”

 

[캐릭터 2]가 시선을 피한다. 명패를 보자마자 ‘좋은 동료’라고 말했는데 문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도시 질병급 뒤틀림, 부수면 그만이라 생각하여 벽도 문도 마구 때려봤지만…의미가 없다. 옆 방(그러니까, 키스하면 나갈 수 있는 방)의 사이 안 좋은 1급 해결사 콤비도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뭔가 깨달았는지 무기를 꺼냈지만, 유리고 벽이고 문이고 죄다 공격이 먹히질 않는다. 베도 찔러도 때려도 무슨 일 있었냐는 양 흠집 하나 나지 않으니, 괜히 도시 악몽으로의 상향 조정이 안건에 올라온 게 아닌 것 같았다.

 

“내구만으로는 도시의 별을 아득히 뛰어넘을지도 모르겠군.”

“그쵸, 뒤틀림 중에는 이런 것도 있는데…사전 조사가 부족했어요. 미리내 부장님, 해롤드 씨…저희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면 걱정하실 텐데…”

“미리내와 해롤드라면 도서관 조사 때문에 정신이 없을 거다. 그러니, 녀석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문제는, 이 방이 우리에게 무얼 요구하고 있느냐다.”

“무얼…요구하고 있냐고요?”

“솔직하게 말했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캐릭터 2]가 헛기침을 했다. 누가 봐도 어색한 모양새지만 [캐릭터 1]는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듯했다.

 

“않으니, 좀 더 범위를 좁혀보도록 하지.”

“범위를 좁혀본다면?”

“최근의 나는 어땠는지 물어보고 싶군.”

“평소와 같았던 것 같아요. 저는 어땠나요?”

“…평소 같았던 것 같군.”

 

두 사람이 어이없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래서 언제 나가지? 그들의 마음에 짙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정적이 이어지고, 어색함이 스멀스멀 몰려온다. 정말 뭘 말해야 하지?

 

“다, 다른 건 어떨까요?”

 

그런 와중에 [캐릭터 1]가 소심하게 말을 꺼냈다. [캐릭터 2]는 말하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인다.

 

“다른 거라면 어떤 거지.”

“오, [캐릭터 2] 씨는 제 외모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캐릭터 2]는 신사답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해 왔다. 그런데 이런 사태에 직면하다니. 아무리 타인이 떠미는 거라고 해도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니,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캐릭터 1]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않고 대답할 수 있을까. 먼저 [캐릭터 1]의 얼굴을 꼼꼼히 살피기로 했다. 상기되었는지 살짝 빨개진 얼굴에, 긴 백발의 머리카락, 그와 잘 어울리는 새하얀 피부, 반짝이는 백안…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이 실례였던 걸까. [캐릭터 1]가 살짝 고개를 돌린다.

 

“너…는…”

‘삐용!’

 

[캐릭터 2]는 용기를 내어 말하려고 했다. 그러나 문 아랫부분이 분리되더니 덜컥, 하고 두 사람 분의 식사가 나온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캐릭터 2] 씨!? [캐릭터 1]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듯 문 쪽으로 몸을 돌린다. 말할 타이밍을 완벽하게 놓치고 말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군. 일단 먹고 생각하지. 너야말로 배고프지 않나?”

“딱 맞춰서 나온 것 같아요. 네, 일단 먹고 생각해요.”

 

[캐릭터 2]가 다시 되도 않는 헛기침을 내었다. 역시 [캐릭터 1]는…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캐릭터 1], 이번에는 내 쪽에서 묻고 싶다.”

“네, [캐릭터 2] 씨.”

“나의 얼굴은…네가 보기에 어떻지.”

 

복수하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 [캐릭터 1]의 얼굴이 다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번에는 [캐릭터 1] 쪽에서 한껏 쪼그라진 태도로 [캐릭터 2]를 훑어본다. 깔끔하게 뒤로 묶은 머리카락은 그의 신중한 성격을 보여주는 듯하다. 강인한 인상이 느껴지는 얼굴과 검고 매끈한 피부, 큰 키에 떡 벌어진 체격, 중후한 목소리까지. 솔직히 [캐릭터 1]가 [캐릭터 2]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호감밖에 없다…호감이라, 그렇다면 이 마음을 그에게 전하면 나갈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캐릭터 2]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저, [캐릭터 2] 씨를 이러저러한 이유로 좋아해요!

나는 [캐릭터 1], 너를 좋은 동료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죽고 싶어!’

 

미리내 부장과 해롤드가 애타게 기다릴 거라는 생각은, [캐릭터 1]의 마음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나 이 방은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면서 이 방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전혀 없다. 키스하지 않는 1급 해결사가 제풀에 지쳐 쓰러진 것을 보아라. 그리고 하잘것없는 9급 해결사가 아무렇지 않게 빠져나온 것을 생각해 보아라.

 

그때, [캐릭터 1]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친구의 행방을 쫓는 [캐릭터 2]는 죽을 위기를 몇 번이고 넘어왔다. 옆에서 보는 [캐릭터 1]가 아찔할 정도로…콤비라고 언제나 함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도서관, 백야, 흑주, 뒤틀림…종국에 그 모든 걸 연결한 [캐릭터 2]가 아닌가. 결국 도서관으로 떠나고 말 것이다…

 

‘여기에 있으면…’

 

적어도 안전하지 않을까.

 

“[캐릭터 1], 얼굴이 빨갛군. 몸이 아픈 건가?”

“아, 아뇨! 그냥 생각을 좀…”

 

위험한 생각이었다. 이래 봬도 하나 협회의 해결사 된 몸. 심지어 1급 해결사 아닌가. 도서관의 초대장만 오지 않는다면 그곳에 들어갈 방법은 없다고 했다. 그러니, [캐릭터 2]가 초대장을 받지 않는다면 도서관이 그를 해칠 일도 없지 않은가…

 

“잠깐, [캐릭터 1]. 이 소리 들리나?”

“네?”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다. 이것은…”

 

하나 협회 특유의 검은 광물이 무언가와 부딪치는 소리. 그것은 천장 위로부터 들려와, 천천히 두 사람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에 금이 간다. [캐릭터 2]와 [캐릭터 1] 역시 그것에 화답하듯 자신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천장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해롤드였다. 미리내의 지시가 있었던 걸까. 천장이 무너짐과 동시에 시야가 점멸하더니, ‘진실의 방으로’ 입구에 세 사람은 뚝 떨어진다.

 

“그냥 힘으로 들어온 건가요, 해롤드 씨…?”

“도시 질병 레벨의 의뢰에 너희들이 애먹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렇게 나오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있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도움에 감사한다. 하마터면 저 방에서…”

 

…하루 종일 있을 뻔했어. [캐릭터 2]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와 달리, [캐릭터 1]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잠깐이었지만 그를 속박하려 했다니…운 좋게 찾아냈다, 운 좋게 나왔다는 말이 오가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유 모를 불안이 [캐릭터 1]를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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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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