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이베르 남작님께
※ PC환경 열람을 권장합니다.
마침내 실비는 하나의 결심을 맺었다. 그것은 타인이 본다면 작고 초라해 보이는 말이었으나 넓은 양피지 위로 지도를 그리기 시작한 것과도 같다. 실비는 철저한 계산을 비롯한 치밀함이나 담대함은 가지지 못했으나 남 못지않은 결단력이 있었으며 진솔함이 무기였다. 행동으로 옮기기에 힘든 일은 없었지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길면 하룻밤 정도일까. 생각을 무르며 초조함을 애써 감춘다. 실비에게 오래 남는 것은 특히나 이런 계획에 있어 결코 좋지 않았다.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깃펜 끝이 까딱까딱 움직이고 그림자 남듯 검은 글씨가 줄을 이으면, 그 위에 푸른색 연기가 덧씌워진다.
내용은 길지 않았다.
신중하게 고른 종이는 깨끗하고 부드러웠다. 자세히 이르지 못해 외람되오나 후일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햇빛을 머금은 잉크가 따스한 빛을 냈다. 단 한 번, 그대의 검과 지혜를 빌려주세요.
글씨가 남겨진 자리에 물기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에 마땅한 보수 역시 약속드리겠습니다.
흔들리는 양촛불이 금색 밀랍을 녹였다. 힘을 빌려주실지, 혹은 그러지 않을 것인지의 선택은 맡기겠습니다.
밀랍 위로 룩스와는 다른 모양의 인장이 새겨졌다. 어떤 선택을 하든 당신을 원망치 않겠습니다.
창문틀에 잘 길든 매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이 편지는 곧장 불태워주십시오.
실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전서응의 날개를 한번 부드럽게 쓸어준 뒤 편지를 묶어주면, 매는 곧 힘찬 날갯짓을 하며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실비는 창 앞에 한참 동안 서서 매가 떠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곧 해가 저물 시간이지만 축제가 한창인 거리는 밤늦게까지 북적일 터다. 차마 직접 만나서 전할 수 없으니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닿기를 바라는 것과, 기도뿐이겠지. 실비는 신을 믿지 않았으나 손을 모았다.
- 카테고리
-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