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아카이브 드림 작업물 - [SH] 천공

종이비행기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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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 天空, 끝없이 열린 하늘.

 

그것은 우연한 사고였다. 사고의 일치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방주에서, 치명상이라는 단어에 꿰뚫려 생과 사를 오가는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선생뿐이었으니까. 하얀 들꽃에 붉은 무리가 짙게 번진다. 탕, 파열음이 날카로이 창천을 찢고 우리의 그를 갈랐다. 소라사키 히나는, 눈앞의 현실을 목도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언제나 얼음 위 차가운 눈송이 마냥 침착하고 차분한 자태를 유지하던 그에게, 죽음에 한 발자국 다가워진. 누군가의 아니. 누군가가 아니다. 그는 소라사키 히나에게 누군가라는 명명 하에 등재될 수 없었다. 그는, 그가 아닌. 선생. 선생님. 우리의, 나의 선생님이니까. 그리고 선생은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비켜.”

 

 

 

모두가 당황하고 모두가 절망에 찬 비명을 울부짖는 가운데, 금이 가 무너져 내린 하늘이 냉랭한 말을 내뱉었다. 선생의 주변을 둘러싼 모두가 그의 한 마디에 방주를 향해 길을 터 주었다. 게헨나 학원 선도부장의 위엄이란 그랬다. 그가 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위해 빚어낸 액자였다. 그리고, 그 액자를 가볍게 들어내 뒤를 바라보며 제게 웃어 보이는 것은 언제나 선생이었지. 안녕, 히나. 오늘도 고생이 많아. 그런 다정한 면모에 기대고 싶어 한 것은 언제나 저였다. 그래, 붉은 비 웅덩이에 담그고 있는 저 손으로,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장난스럽게 웃던. 선생님의……

 

 

 

벽에 등을 기대고 시체처럼 추욱 늘어져 있는 그를 바라본다. 한쪽 무릎을 꿇고 그 앞에 앉았다. 시체처럼, 이라는 생각은 당장에라도 버리고 싶었다. 그는 시체가 아니다. 살아있다. 살아있다. 살아있어! 죽지 않았다고, 살았다고. 이 정도는 스친 것만도 못하다고, 눈을 떠. 떠서 말해. 언제나처럼 웃으란 말이야, 조금 전처럼 장난치란 말이야! 무너진 하늘의 틈을 먹구름이 메우려 들었다. 진한 보랏빛 눈동자를 여름과 겨울이 저의 자리로 차지하려 들었다. 내릴 것은 비인가, 눈인가. 폭우인가, 폭설인가. 어떤 전투에 참여하건 떨어본 적이 없었던 하늘이 손을 뻗었다. 목을 억세게 쥐고 있는 칠흑빛 넥타이를 풀어주고 싶어서. 저 넥타이를 푼다면, 마치 그가. 다시 한번 숨을 마실 것 같지 않은가……. 그때였다.

 

 

 

“……히나쨩, 울어?”

 

 

 

흠칫, 넥타이로 다가가던 손이 멈추고. 창천은 빗방울 하나를 떨궜던가. 헉, 숨을 들이쉰다. 이것은 숨을 내쉬길 바랐던 이 대신 마시는 숨결이다. 그러니 숨 하나하나가 소중할 수밖에. 그래, 마치 총상 정도는 넘어진 것만도 못한 저와 저희에게 주어진 이 시련처럼. 눈을 깊게 감았다 뜨자 보이는 것은, 언제나처럼 햇빛 한 줌 품지 않은 새까만 눈동자였다. 선생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마치 자신이 키보토스 출신이어서 너희들을 깜짝 놀래켜주기 위해 이런 장난을 벌였다고 말할 마냥. 그는 웃었다. 그는 언제나 웃기만 했다.

 

 

 

“선생, 선생님! 아니, 말하지 마. 그대로 있어. 지금 당장 지혈할 테니까……!”

 

“히나, 쿨럭. ……선생님은, 괜찮아. 그냥… 조금, 졸릴 뿐이야. 히나는… 괜찮아? 다친 곳은……”

 

“나 같은 걸 신경 쓸 시간에, 선생부터 신경 쓰란 말이야……!”

 

 

 

지금 선생님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말을 하는 거야? 그것은 물기 어린 소리도, 분노에 찬 소리도 아니었다. 그저 침잠한 음역대였다. 부서진 하늘의 조각이 허공에 머무를 리 없지. 거대도시연방에 떨어져 세상을 망가뜨린다. 천공 天工 에 생긴 천공 穿孔 은 온 세상에 장마를 쏟아 내리고, 열대야를 맞이했으며, 냉혹한 추위를 가져다줄 것이었다. 소라사키 히나에게 선생님의 존재란 그랬나. 이것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직면하기에 생긴 절망과 무력함인가, 아니면 하늘에게 선생이란 그만큼. 그만큼……

 

 

 

선생님이 좋았다. 자신을 오롯한 자신으로 봐주는 선생이 좋았다. 이것은 동경도, 경외도, 부러움도 아닌. 그저 곁에 있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다. 선생님이 장난치듯 머리를 헝클어뜨리면서도 손을 떼고 나면 머릿결을 정돈해 주던 그 손길이,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의지하듯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믿는다는 말 하나로 기대는 것이. 자신이 일을 하고 있으면 그저 곁에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어찌나 큰 위안이 되는지. 그래, 저는 선생님을 좋아했다. 올바른 어른. 누군가를 맞는 길로 이끌어 주고, 길을 잃으면 안내해 주며, 넘어지면 손을 뻗어 일으켜 세워주는. 모두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당신에게, 아주 작은. 하얀 들꽃의 씨앗만 한 질투심을 품기도 하였나. 그러나 그것은 피어나지 않은 꽃 한 송이. 지금은 그저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박애를 향한 순정. 그리고 그 박애가 지금, 저의 눈앞에서 지려 한다.

 

 

 

“히나,”

 

 

 

선생님은 괜찮아. 이것 봐.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끝내 입가에서 혈을 토하기 시작한 그가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붉은 꽃과 함께 번져가는 미소를 지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정말이야, 히나쨩. 그만 말해. 정말이래도 그러네. 선생님은 그냥,

 

졸릴 뿐이야. 저를 안심시키려고 하는 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으나, 그 말에. 그 말에, 하늘에 금 한 조각이 더 가 버렸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툭, 이번에는 반대쪽 보랏빛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안 돼. 왜 저는 이리도 무력한가? 언제나 경외심으로 바라봐지던 제가 어찌 이리도 무력해서, 당신의 손을 놓아야만 하는지. 눌러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 나온다. 억누르고 억누르던 감정들이 소중한 이의 죽음 앞에 막을 새도 없이 댐은 뚫린다. 안 돼, 눈 감지 마. 선생. 선생님. 눈 감으면 안 돼. 평소라면 숨 안으로 틀어막혔을 말들이 쉼 없이 쏟아져 나온다. 창천의 사계가 쉼 없이 몰아친다. 매서운 폭우가 내리고, 그 폭우는 진한 한기에 얼어붙어 한파를 일으키며, 봄이 올 새 없이 열대야는 모든 것을 증발시킨다. 소용돌이친다.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저의 감정이 어지럽게 얽힌다. 날 두고 떠나지 마. 선생님이 없으면 나는 어떡하라고. 알잖아, 선생님. 선생님이 없으면, 나는. 나 같은 건. 나는…….

 

 

 

“히나쨩.”

 

 

 

괜찮아. 그 말에. 결코 괜찮지 않을 당신의 말에. 저는 울었던가. 폭우는 쏟아졌던가. 억수가 내렸다. 괜찮다고 하지 마. 말하지 마! 말하면 안 돼. 선생, 죽지 마. 가지 마…….

 

정말 괜찮다니까. 선생님은 그냥… 자고 일어나는 것뿐이야. 조금만 잘게. 히나, 선생님 믿지? 선생님이 히나를 믿는 만큼, 히나도 선생님을 믿어줄 거지? 응, 히나가 오늘따라 솔직하네. 히나가 우는 건 처음 봐…….

 

지금이 장난칠 때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믿고 싶어서였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면, 우리처럼. 저처럼, 멀쩡해질 거라는 얕은 믿음을 품고서. 그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천공 穿孔, 구멍이 뚫림. 또는, 구멍을 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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