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작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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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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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의 수호자는 더는 심해를 수호하지 못한다.

 

인간은 시간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과거를 발판 삼아 현재가 지탱하고, 끝내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마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그리고, 그는 과거로의 침잠을 두려워했다. 옛 기억에 골몰 되는 것은 검푸른 심해와 다름없기에. 그는 심해의 수호자이면서 역설적이게도 심해를 두려워했다. 그는 시간으로 완성되지 못한 사내였다. 깊디깊은 심해가 그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법소년이었다.

 

 

 

정년퇴직이란 곧 일선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는 마법소년으로 활동할 수 없음을 뜻했다. 그런데도.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에 붙들려 두려움에 떨어도. 꿈을 상징하는 미래 같은 건 그러쥘 마음조차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법소년이다. 이제는 마법중년이라고 해야겠지.

 

정년퇴직이 다 무슨 소용일까. 겨울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내는 사계를 사랑할 줄 알았다. 그렇기에 사창에 들어갔다. 동료를 지켰다. 사람을 도왔고, 인명을 구했다. 비록 그것이 두려울지라도. 저의 마스코트와는 결별한 지 오래였으나, 그의 파트너와는 영원히 함께하리라는 것을. 그는 모르지 않았다. 그것뿐이랴. 뒤를 돌아보면 등 뒤를 맡길 수 있는 전우가 있었고, 앞을 바라보면 한평생. 두 번 다시는 꾸지 못할 거라 체념했던 꿈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을 우리는 희망이라 불렀고, 그는 처음으로 한없이 가라앉던 몸을 움직여 빛을 향해 유영하기 시작했다. 그래, 희망을 향하여. 그는 마법소년이자 마법중년이었으나, 결국 하나의 인간이었다. 시간으로 구성된 인간 말이다. 심해의 수호자는 영웅이 되지 못할지언정 바다의 주인공은 그 자신임을. 그것을, 그는 과연 깨달았을까. 그래서 광명을 바라보기 시작했을까. 저의는 그 자신만이 알 것이었다.

 

영영 사라지지 않을 과거가. 햇빛이 들지 않는 심해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잊지 못하겠지.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괜찮을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동료들과 함께하는 자신을 믿었다.

 

 

 

심해의 수호자는 심해에서 헤엄쳐 나와 천해로 나아간다. 그는 더 이상 심해의 수호자가 아니었다.

 

 

그에게 가장 걸맞은 칭호는,

 

 

바다의 지배자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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