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7일의 도시 드림 작업물 - [YE]

종이비행기

Commission by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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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7일은 영원히 반복된다. 그것은 지휘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영원불멸의 정의였다. 그리고, 그 정의는 깨질 것이라는 걸. 세 번째 지휘사는 오래 지나지 않아 알아챘다. 눈앞에 떠 있는 1이라는 숫자가 여느 때보다도 붉게 빛나고 있었으므로. 이것은 일종의 경고였다. 전지전능의 존재도, 제가 아닌 다른 지휘사들이 알려준 것도 아닌. 제4의 벽을 넘어선 경고.

 

 

 

동방거리의 지휘사. E는 그 경고를 받아들였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앙투아네트가 잠들어 있는 중앙청이었다. 답지 않게 평화로운 접경도시의 한울이 물을 푼 하늘빛 물감처럼 맑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의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것은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배려인가. 실없는 생각이다. 성스러운 별 교회가 숭배하는, 이 모형 정원의 창조주조차 막지 못할 멸망. 잔존율로도 남지 못할 저의, 우리의 이야기. 모형 정원을 지휘할 수 있게끔 잔존율이 쌓인 세 명의 지휘사. 히로는 숨을 거두었고, 중앙청의 지휘사는 저처럼 이 세계의 끝을 직감한 것으로 보였다. 그 나름대로의 준비를 하며, 중앙청을 방문한 저를 맞이해 주는 모습을 보면. 그래 보였다. 그렇게 보였다.

 

 

상기한다. 접경도시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최초의 신기사를. 기억한다. 그와 나누었던 대화. 상냥했던 그 미소. 다정하기만 했던 목소리. 떠올린다. 동방거리로 저를 보내주며 인사했던 부드러운 미소를, 품에 간직한다. 우리의 마지막이 아니어도 그러안고 있었을 나의 기억아. 모든 것의 끝에 이만 작별을 고하며, E는 중앙청에서 걸어 나왔다. 중앙청의 지휘사는 E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등을 지켜보았다. 모형 정원의 영원을 반복하던 우리가 헤어지게 될 최종장이기에. 어디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마지막이므로. 또 다른 지휘사는 세계의 빛이 꺼지기 직전, 그리 말했노라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할 유음이었다.

 

 

 

다음으로 E가 방문한 장소는 저의 집이자 돌아갈 장소.

 

 

동방거리였다.

 

 

 

모두가 그를 반겼다. 당연했다. 동방거리의 사람들은 모두가 가족이요 서로를 소중히 아꼈으니까. 하물며 제가 지휘사의 직책을 맡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의 가족이라며 어깨동무를 해 줄 신기사가. 신기사가 아니라면 동방거리의 인연들이. 그를 환영했고, 어서 오라 두 팔을 벌렸다. 저를 봄이라 칭하는 이들의 진정한 따스함을 바라보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꾹 짓누른 제게 말문을 튼 것은 웬시였다. 호쾌한 미소를 짓고 있던 가을이 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우리는 가족이잖아. 고개를 숙였다. 벚나무 한 그루가 나뭇가지를 휘어낸다. 벚꽃 한 잎이 지면으로 떨어지고, 그 위를 물방울 하나가 적셨다.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은 그즈음이었다.

 

 

그는 말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의 진실을 밝힌다 해도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 그걸 믿어주는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바뀌는 것은 없다. 모형 정원은 기어이 재구축된다. 어느 가능성이 작은 구멍을 뚫어 그 틈으로 촛불의 빛을 흘려보낸다 해도, 종국에 맞닿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을 상징하는 저 잔인한 숫자이지 않은가. 봄에 내리는 비는 꽃샘추위를 몰고 오지 못했다. 가시지 못한 겨울의 한기는 동방거리에 만연한 봄기에 비하면 턱없이 작았다. 제 가족의 다독임과, 울지 말라며. 우리에게 얼마든지 털어놓으라 하는 목소리. 너는 혼자가 아니라 일컬어 주는 음역대. 잊지 못할 것이다. 잊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잔존율로만 잔재하지 않는, 온전한 저의 추억이므로. 나는 이 추억을 영원히 새기리라, 그리 마음먹었다. 빗줄기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 안녕. E. 교회에 온 걸 보면, Y… 보러 온 거지?”

 

 

 

녀석이라면 예배실에 있을 거야. 가벼우면서도 밑을 파헤치면 드러나는 진중한 목소리가 저를 안내했다. 성스러운 별 교회의 신관에게 그는 알지 못할 마지막 인사를 전한 뒤, 봄꽃 소녀는 교회의 안으로 향했다. 제가 마지막으로 갈 곳은 이렇게 정해져 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제가 자의로 선택한 것조차 신이 터놓은 길. 그렇게 만들어진 게 이 모형 정원이지 않던가. 그 선택지에 놓인 체스 말이 저라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지 않았나. 허나 조물주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인다면 그것은 피조물이 아니라 꼭두각시나 다름없겠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다. 그러니 흥미로워했을 터다. 이것이 인간의 가능성이자, 모형 정원을 부수고 인류의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는 힘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다.

 

 

 

비록 그 사랑이 나를 무너뜨린대도.

 

 

 

“이 늦은 시간에 교회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친애하는 E 님.”

밤에 홀로 돌아다니시는 것이 위험한 일에 속한다는 걸, 에바 양께서 모르시지는 않겠죠. 저를 한낱 개미가 아닌, 그가 인식하는 유일한 사람. 동방거리의 지휘사, E로 보는 고스란한 눈빛. 장미 덩굴이 뱀으로 변해 목덜미를 타고 올라가는 소름 끼치는 감각이 현실을 인식시킨다. 모형 정원의 신이 아니라면 짙은 금빛 눈동자에 담길 수 있는 존재는 저뿐이라는 사실이, 예전에는 좋았던 것도 같았다. 허나 이제는 증오로 물든 이 감정을, 저는 헷갈리고 있지 않았다. 분명한 증오다. 이것은 색채가 가득한 세계에서 색을 잃고 상실을 겪은 추기경에게 갖는 혐오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저는 아직도, 봄의 끝에 머무르는 사내를 사랑하고 있다고. 이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애증이나 다름없노라고. 봄의 화신은 마지막까지 사랑을 놓지 못했다. 그렇기에. 마지막을 저의 가족이 아닌 연모하는 이에게 찾아온 것이겠지.

 

 

 

“Y.“

 

 

”부르셨습니까?“

 

 

”……신관님.“

 

 

“그 호칭은 꽤나 오랜만이로군요. 이제 와서 저를 신관님이라고 부르실 마음이 생기셨나요?“

 

 

 

유감이네요. 저는 다시금 E 양을 개미로 여길 마음이 없는데 말입니다.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저는 사내에게 개미가 아닌 E였다. 사랑에 눈먼 소녀. 얼마나 우스운가. 이 얼마나 우습기 그지없는 존재인가. Y는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저를 신관님이라 재차 불러오는 봄 한결에게. 달이 중천에 떠 있는 늦은 시간에 저를 찾아와 무슨 말을 할지 꽤 기대되는 찰나였다.

 

 

 

”좋아해요.“

 

 

 

소녀는 웃었다. 그 어떤 때보다도 더. Y의 본심을 알게 되기 전이었던, 무지몽매한 반짝임을 가지고 있었던 여느 때보다도. 햇살처럼 환한 얼굴이었다. 봄을 닮은 이가 짓는 웃음이란 이 얼마나 온화한가. 봄철마냥 웃으며 제게 사랑을 알리는 그를 보며, 사내는 빛없는 눈동자를 깊이 감았다 떴다.

 

 

당연했다. 눈앞의 소녀가 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은 으레 당연한 것이라서, 벚꽃잎이 떨어진 호수에 감정의 변화 같은 건 일지 않았다. 잔잔하디잔잔한 표면에 파문이란 단어는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사내는 부드럽게 머금고 있던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 봄이 제게 이리 웃어주는 형상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저를 저주한다고 말하던 언성이 우습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수줍어하며 사랑을 속삭이던 모습이 거짓이었다는 마냥, 일그러진 인상. 물에 젖어 드는 목소리. 저주해요. 아직도 귓가에 그 말이 맴돌고 있거늘, 그는 무슨 생각으로 제게 다시금 벚꽃을 흩트리는가. 찰나의 당황에 유지하고 있던 표정이 풀렸을 즈음이었다. 소녀는 웃었다. 머금고 있던 미소를 봄바람에 기울인 채, 입을 열었다.

 

 

 

”좋아한다는 말로 부족한 것 같아서요.“

 

 

 

사랑해요, 신관님. 재차 꺼내 드는 마음을 표하며, 소녀는 얼핏 보아도 당황이 스며든 사내를 바라보았다. 증오하지 않는 게 아니다. 원망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그를 저주했다. 그런데도 좋아한다 사랑한다 말하고 있는 까닭은, 그저.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두 번 다시는 저의 사랑을 만날 수 없고, 이 영원한 7일 속의 윤회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애증에서의 증만을 표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봄은 시들었다 하더라도 봄이었다. 사계의 시작을 알리고, 새싹을 피워내며, 모든 것의 첫걸음을 알리는. E, 그는 봄이자 벚나무였다. 기다란 나뭇가지를 뻗어 제가 애정하는 이들과 저의 사랑에게 그늘막을 씌워주는, 벚꽃.

 

 

 

붉게 물든 숫자가 더욱 진해져 간다. 끝을 알리는 징조였다.

 

대답은 듣지 못해도 좋았다.

 

흐트러진 저 얼굴이 대답을 대신했으므로.

 

 

 

숫자가 0으로 바뀌고, 세상은 암전되었다.

 

영원의 마지막은 사랑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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