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사냥꾼

손경수G by 손경수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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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찾아오면 으래 산등성이에는 무지개가 걸렸다. 소년은 밭일하던 손을 멈추고 일곱 빛깔의 아름다운 아치를 쳐다보았다. 이마에 붙은 흙을 손으로 털어내고 허리 숙여 김을 매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정말 아버지는 무지개 보물을 찾았을까요?”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늘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소년은 아버지에 대해 잘 알았다. 소년의 아버지는 이 일대에서 유명한 모험가였다. 동네의 술집에서는 심심하면 소년의 아버지에 대한 믿기지 않는 모험담이 마치 전설처럼 회자 되곤 했다. 해가 뜨는 아침에 난공불락의 미궁을 홀로 돌파하고 저녁 해지기전에 검은 용의 둥지에서 보물을 훔쳤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과 궁금증이 동시에 들었다. 왜 아버지는 우릴 버렸을까? 궁금했지만 이 궁금증을 해소해줄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모험가로서 이룰 수 있는 수많은 업적을 쌓은 후, 전설로만 알려진 무지개 보물을 노렸다. 무지개가 시작하는 곳에 잠들어 있다는 보물, 무지개 보물은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확히 어떤 보물인지 알지를 못했다. 혹자는 어떠한 소원도 들어줄 수 있는 보물이라고도 했고 다른 자는 천지를 갈라버릴 강력한 무기일거라고 주장했다. 주장하는 바는 달랐지만 하나 같이 동의하는 바는 무지개 보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일의 보물일 거라는 거였다.

소년의 아버지는 무지개 보물에 대한 여러 정보를 취합한 끝에 5년 주기로 정확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믿을 만한 정보상의 말을 듣고 보물을 찾는 여정에 나섰다. 소년이 아직 어머니의 태내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당시 현장에 있던 동네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어머니는 떠나는 아버지를 붙잡지 않으셨고 한다. 그저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잠깐 지켜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을 뿐이었다. 

만삭인 어머니를 뒤로한 소년의 아버지는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올해로 19년째 소년이 이제 막 성인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이 때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소문은 무성했다. 무지개의 시작을 찾아 헤매다 결국 객사했을 거라는 흉흉한 소문부터 결국 무지개 보물을 찾았고 보물의 강력함으로 인해 신이 되었을 거라는 황당한 이야기까지 하지만 믿을만한 소식은 없었다. 

소년은 곁에 없는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을 계속 키워나갔다. 어머니와 함께하는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틈을 내서 남몰래 산과 들을 다니며 체력을 다졌다. 밤에는 촛불 하나에 의지해 모험가가 습득해야할 지식들이 담긴 책을 탐독했다. 그리고 마침내 20살이 되던 해 소년은 짐을 꾸렸다. 아버지와 같은 모험가가 되기 위해 그리고 무지개 보물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떠나겠습니다.”

20살, 이제 막 성인이 된 소년은 어머니에게 작별을 고했다. 문설주에 기대어 아들의 인사를 받은 어머니는 소년의 아버지를 떠나보내 그때와 똑같이 잠시 그를 쳐다보다 집안으로 들어갔다. 멀어져가는 소년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 *

 

남루한 복장을 한 외지인이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외투는 여러 곳을 기워 너덜너덜해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한지 오래였고 신발은 더 이상 신으면 안 될 지경으로 헤져있었다. 외투와 신발뿐만 아니라 그가 입고 있는 모든 옷이 누더기 져 있었다. 실상 거지나 다름없는 몰골이었다. 허나 옷은 양호한 편이었다. 외지인의 얼굴은 모진 세월의 풍파를 받았는지 거칠고 주름지고 상처투성이였다. 동네 아이들은 외지인의 얼굴을 보고 함부로 다가가지 못했다.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외지인은 동네 공터를 가로질러 마을 외곽에 있는 한 집에 멈춰 문을 두드렸다. 

허리가 굽은 여인이 지팡이를 짚으며 나왔다. 주름이 자글자글하고 백발이 성성한 여인은 아무말 없이 외지인을 집으로 들였다. 황혼이 물들고 초승달이 산등성이 위로 고개를 들이밀 때까지 둘은 거실 벽난로의 불타는 장작을 말없이 노려보았다. 이윽고 장작이 재가 될 때쯤 외지인은 입을 열었다. 

“왜 제가 집을 나갈 때 한 마디 안하셨습니까? 결국 무지개 보물 따위는 없었습니다.” 

외지인 아니 이제는 중년이 된 소년이 노년이 된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꺼져가는 장작 불을 보며 느긋이 말했다. 

“말보다는 경험으로 깨우치는 것이 제일 빠를 때가 있는 법이지. 내가 말렸다면 너는 내 말을 들었겠느냐?”

어른이 된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꺼져버린 장작을 쳐다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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