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강림
학교 축제날 공연 금지 당한 밴드가 공연하는 이야기
성진여고의 밤은 고요했던 다른 날들과는 달리 떠들썩한 소리로 가득했다. 성진여고는 기숙 학교로 학생들은 외부와 철저히 고립되어 오로지 학업에만 매진 한다. 마치 중세의 고요한 수녀원과 같았다. 하지만 여름 방학이 오기 전 기말 고사가 끝나고 단 하루 학교는 문을 활짝 열고 외부인을 맞이한다. 오늘이 성진 여고의 축제일 성진제가 있는 날이다. 이때만큼은 학생 모두가 학업의 무게에서 벗어나 맘껏 즐기는 날이었다.
단 하루만 자유를 허락해서인지 성진여고의 학생들은 성진제에 진심이었다. 학생들이 꾸린 학교 축제라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각자가 가진 장기들과 아이디어를 십분 발휘해 매해 기상천외한 이벤트를 열었다. 꽉 찬 내실 있는 축제는 입소문을 타 주위 동네에서도 매해 놀러 올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성진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벤트는 밤에 열리는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에도 예능에 능한 학생들이 올라와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이렇게 떠들썩한 성진여고에도 단 한 곳 평소와 같은 엄숙함을 지키는 교실이 있었다.
열외반
3학년 1반 팻말 위에 임시로 붙인 종이가 조약하게 보였다. 열외 반은 3학년 각 반 중 기말 고사 성적이 좋지 못한 하위권 학생들을 모아 놓은 임시 반이었다.
“너희들이 무슨 축제냐. 고개 박고 공부해라.”
체육교사인 개기름이 평소에 먹던 에너지 드링크를 물처럼 들이키며 열외반의 학생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열외반의 학생들은 창문 너머로 들리는 아이들의 함성 소리에 공부에 집중은 커녕 자리에 앉아 있기도 고역이었다. 그 중 제일 의욕 없는 학생들은 교실 구석 마지막 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3인방 정희, 미란, 보현 이었다.
이들은 메탈 밴드 ‘스쿨 버스터’의 멤버들이었다. 스쿨 버스터는 보컬 정희, 베이스 미란, 드럼 보현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기타 연지로 구성되어 엄격한 성진 여고 내에서 메탈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똘똘 뭉친 메탈 덕후들이였다. 스쿨 버스터는 열악한 성진여고에서 없는 자원으로 연습하고 곡도 만들어 교내에서 미니 앨범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알음알음 알려져 학교내에서 제법 인기있는 밴드로 성장했다. 분위기를 탄 멤버는 맹연습을 하며 성진제에 멋진 공연을 선보이기를 계획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스쿨 버스터의 공연을 불허했다. 메탈 같이 불온한 사상을 가진 음악은 교내의 분위기를 흐릴 가능성 있다나? 그러면서 아이돌 섹시 댄스는 잘만 허가 해주는 학교의 이중성에 치가 떨렸다. 스쿨 버스터 멤버는 항의 했다. 그리고 학교는 이 3인방을 벌주고자 열외반에 처박아 버렸다. 그러나 이대로 우리의 청춘을 날릴 수는 없다. 스쿨 버스터 3인방은 얌전히 이 처사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3인방은 개기름이 마시는 스포츠 드링크에 강력 설사약을 잔뜩 집어넣고 효과가 나오길 기다렸다.
“어? 어? 어어어어?”
교탁에서 거드름을 피우던 개기름이 갑자기 엉덩이를 부여잡으며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아마 한동안은 변기에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좋았어. 가자 애들아.”
3인방은 개기름의 부재에 벌떡 일어나 교실 청소함에 숨겨두었던 기타와 베이스 그리고 전자드럼과 엠프 일체를 꺼내었다. 3인방은 학교에서 공연을 허가 하지 않을 작정이라면 스스로 공연을 열 작정이었다.
“너희들 어디 가는 거야?”
열외반의 임시 반장 지연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언제나 열심히 하지만 성적이 바닥인 성실하고 재미없는 녀석이다. 어머니가 유명한 무속인 이었다. 그래서인지 종종 아무도 없는 곳을 노려보거나 이상한 말을 해 아이들이 모두 지연을 꺼렸다.
“알거 없어. 비켜.”
정희와 아이들은 지연을 지나쳐 가려고 했다.
“옥상 가려는 거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미란이 놀라며 되물었다. 하지만 지연은 답변에 대답 하지 않고 재차 말을 이었다.
“옥상 가려면 너희가 가지고 있는 열쇠로만은 못 열어. 이번에 보안강화하면서 카드키도 같이 사용해야 열려.”
3인방은 앞이 캄캄해졌다. 이 열쇠를 얻기 위해서 얼마나 용을 썼는가? 밤의 경비를 피해 교무실로 들어가 열쇠를 훔치고 복사하기 위해 영화 ‘오션스 일레븐’ 뺨치는 계획을 벌여야 했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런데 카드키가 필요하다고? 3인방 모두가 공연할 기회가 날아갔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그때 지연은 품에서 옥상문을 열 수 있는 검은색 카드키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너?!! 어떻게 카드키를?”
3인방이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지연은 대답하지 않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카드키를 빌려 줄게 대신 조건이 있어.”
“뭐? 무슨 조건.”
“연지의 자리에 내가 서게 해줘.”
“뭐라고?”
연지는 스쿨 버스터 4인 중 기타와 리더를 맡았다. 누구보다도 밴드에 열의가 있었고 출중한 실력을 겸비해 작곡 작사 혼자 해치우는 천재였다. 하지만 연지는 얼마 전 불의 교통사고로 인해 세상에 없다. 이번 공연이 연지의 마지막을 기리는 의미가 있어 남은 스쿨 버스터 멤버들에겐 매우 중요했다. 3인방은 잠시 물러나 회의를 했다.
“연지의 자리를 함부로 남에게 내주다니. 절대 안 돼.”
누구보다 연지를 따르던 보현이 펄쩍 뛰었다. 미란도 동의의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임시 리더인 정희는 둘을 진정키며 말했다.
“하지만 공연을 하지 못하는 것보단 공연을 진행하는 걸 연지는 더 바랄거야. 항상 연지가 뭐라 그랬는지 기억하지?”
“죽어도 공연하고 죽고 죽어서도 공연하자.”
3인은 이구동성으로 연지가 매번 주창하던 말을 동시에 내뱉었다. 미란과 보현은 한숨을 쉬면 정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 * *
삐빅 철컥
카드키와 열쇠를 동시에 사용하자 옥상의 문이 열렸다. 스쿨 버스터 삼인방은 악기와 장비를 옥상에 풀어놓고 바삐 공연 준비를 했다. 각종 선을 엠프와 악기에 연결하고 음량을 체크했다. 지연은 그 광경을 지켜보다 물었다.
“너희들 공연 하는 걸 알겠는데. 기타 없이 어떻게 공연하려고 했어?”
“아 그거? 연지가 연주는 녹음 해둔 게 있어서 그걸 켜놓고 공연하려고 했지.”
어느새 옥상 꼭대기에 무대가 완성 되었다. 보현은 연지의 기타를 지연에게 내밀었다.
“소중히 써. 그보다 너 기타는 잘 쳐?”
“피해는 안 가게 할게.”
“그래? 근데 우리 밴드 노래 들어본 적 있어?”
“몇 번은?”
지연은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연지의 기타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3인방은 지연이 기타를 잡는 걸 보고 걱정이 앞섰다. 모든 게 어설퍼 보였다. 기타를 처음 잡아 보는 것 같았다. 3인은 뒤에서 지연이 정 방해가 되면 기타 코드를 뽑아버리기로 합의했다. 잠시 후 스쿨 버스터 3인방과 지연은 각자의 자리에 섰다. 옥상 아래로 학생들과 외부인이 넘치는 운동장이 보였다. 운동장 단상 위에는 섹시 댄스를 추는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자 간다.”
드럼인 보현의 신호에 맞춰 연주가 시작되었다. 학교 음향 시스템과 연결된 악기들의 연주음이 학교라는 거대한 엠프의 힘을 빌어 운동장 끝까지 울려 퍼졌다. 스쿨 버스터의 첫 곡 ‘지구인 다 죽어.’의 파괴적인 기타 리프가 학교 운동장의 함성을 먹어버렸다. 운동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어느새 연주에 이끌려 하나둘 학교 본관 앞으로 모였다. 일부 선생들은 연주를 막으려고 학교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3인방이 본관을 돌며 미리 학교 출입문을 막고 문고리에 대걸레 하나씩을 끼워두었다. 아마 들어오려면 한참 뒤에나 가능 하리라. 지연은 생각 보다 연주를 잘했다. 아니 상상이었다.
‘뭐야 엄청 잘하잖아?’
3인방은 지연의 기타 솜씨에 놀랐다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아니 그뿐만 아니었다. 연주하는 모양새가 연지와 너무 비슷했다.
“야! 연주에 집중 않 해?”
오히려 지연은 놀라 넋 놓고 자신을 보는 3인방을 채근했다. 정신이 퍼뜩 든 3인방은 서둘러 보조를 맞추어 연주를 진행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마치 지연이 아니라 연지와 함께 연주하는 것 같았다. 눈물이 주륵 흘렀다. 그토록 원하던 무대에 같이 연지와 함께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연주는 계속 되었다. 4인 모두 한 몸이 되어 연주했다. 드디어 마지막 곡을 할 시간이었다. 신곡 ‘신화의 세상에 우리 모두가’ 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멤버 외에는 이 노래가 밖으로 나간 적이 없어 지연은 연주가 불가능할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지연이 선제적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완벽한 신곡의 첫 소절이었다. 3인이 모두 놀라는 가운데 지연은 어서 연주하라는 듯이 손짓했다. 마지막 신곡까지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와아아아
본관 아래 모인 관중들의 환호가 옥상을 넘어 하늘까지 찔렀다. 공연을 끝낸 멤버들은 관중들 향해 손 짓 했다.
“오늘 모두 수고했어. 너희들 최고 앞으로도 열심히 해.”
지연이 3인의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때 지연이 마치 연지처럼 보였다. 살아있는 연지가 눈앞에 있었다. 연지는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다시없을 청량함. 그리고 마치 연극의 무대가 끝나듯 지연을 비추던 조명이 꺼졌다.
“연지야!!”
모두가 지연을 연지라 외치며 달려갔다. 그곳에는 마치 줄 끊어진 인형처럼 주저앉은 지연이 있었다. 3인은 누가 뭐라 할 것없이 지연을 없고 양호실로 달렸다.
* * *
“정신 차렸어?”
이제 막 눈을 뜬 지연의 주위에 스쿨 버스터 멤버들이 둘러앉았다. 3인 모두 묻고 싶은 게 많은 얼굴이었다. 지연가 입을 열었다.
“어찌나 간절히 부탁하던지 말이야.”
지연이 영혼을 보고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연지는 영혼이 되어 지연에게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그럼 지금 연지는?”
“응 무사히 성불했어.”
아 연지는 이제 없구나. 3인의 마음이 아려왔다.
“그리고 밴드 부탁한데.”
정희, 미란, 보현은 지연을 가운데 두고 얼싸 앉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가운데 지연은 당황한 기색 없이 그들을 보듬었다. 창밖으로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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