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카

노스캐롤라이나의 인어

싱어레건 리퀘스트

Ate a Wright by 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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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를 찾으러 왔어요. 분홍 눈의 사내가 빙글빙글 웃었다. 인어라니. 21세기에? 모든 비-과학적 소문이 과학으로 증명된 시대에 인어라니. 그런 게 있기라도 한가. 의아하다는 낯을 눈치챘는지 사내가 위스키를 얼음도 없이 스트레이트로 마시며 어깨를 으쓱였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인어 말이에요.”

“… 우선, 여긴 바닷가가 아니라는 것부터 알려주고 싶군요.”

“상관없어요. 그건 물이 제일 메마른 곳으로 가는 버릇이 있거든요.”

“인어를 수렵할 수 있는 동물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다들 동족이 아니니 그래도 된다고 말하던데요.”

“잔인한 말씀을.”

“인간들도 다 그러지 않나요? 시혜적인 태도로 인수의 유별을 논하며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고 들죠. 먹이사슬의 정점에 선 이유가 진화뿐만은 아닐 텐데.”

인간이 만든 칵테일을 마시면서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나. 레건은 더 대꾸하는 대신 새 진토닉을 내놓았다.

“오늘 바 운영은 이걸로 끝내죠.”

“사람을 너무 싫어하네요.”

“… 진토닉은 원래 영업 종료를 알리는 칵테일입니다. 그리고, 곧 새벽 한 시에요. 오가는 마차가 끊길 겁니다.”

“친절하셔라.”

사내가 생긋 웃었다.

“다음에 또 올게요.”

그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진토닉은 건드리지도 않은 채였다.

그 사내는 일대에서 꽤 유명했다. 레건의 바에는 비정기적으로 찾아왔으나 그의 바를 찾는 다른 단골손님들의 말에 따르면 메마른 강가 주변에서 자주 ‘발견’된다고 했다. 빛이 사라진 눈으로 강바닥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인기척을 느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하게 웃으며 안부 인사를 전하는 것이 기이하다고 했다.

또 며칠 뒤에는, 레건에게 시비를 걸며 악담을 잔뜩 늘어놓은 단골이 별안간 찬양을 늘어놓는 일이 있었겠다. 그때도 바 한 구석에 그 사내가 앉아 블루 큐라소를 마시고 있었다. 그 자체로는 기이한 일이었다.

다만 레건의 바가 위치한 마을은 미 서부에서도 가장 메마른 곳이었다. 요는 즉 사막에 정신을 던져버리는 이상자들이 출몰하는 곳이었고, 그런 날씨에 익숙해진 마부나 카우보이들도 종종 정신을 놓아버리곤 했다. 레건은 그의 정신 나간 찬양을 적당히 흘려들었다. 뭐, 어쨌든, 캘리포니아 아닌가? 미 서부에서도 캘리포니아는 유독 비가 오지 않는 주였다. 인어도 뭐, 와전된 소문의 일부겠지. 벨루가의 시체 잔해라던가, 혹은 신기루에 미쳐버린 누군가 중얼거린 말의 잔재라던가…….

음,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파문을 몰고 와 달란 말은 아니었다. 슬레이트 지붕 위로 무언가 떨어지고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끝내 창밖이 어두컴컴하게 물들었다.

“어이고, 웬 비람.”

“처음 보세요?”

“이 사람아, 내가 보안관 생활이 몇 년인데. 그렇지만 서부에서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건 오랜만이로군. 미 동부에서 비구름을 가둔 것이 10년 좀 넘지 않았나.”

“아, 텍사스도 요즘 가뭄이라던데.”

“휴스턴 근처가 가뭄이면 말 다했지. 뉴욕과 워싱턴이 미 동부에 있으니 어쩔 수 없지만서도.”

이 일대에서 비가 내리는 것도 거진 몇 년 만이다. 마른 땅에 이렇게 비가 내려서야 분명 어디선가 물이 넘칠 것이다. 아니면 사고가 일어나던지… 죽어가는 마을이었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몇 없었으며, 그나마 보안관과 여길 스쳐 지나가는 마부들 상대로 겨우겨우 존속을 이어가던 바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곳이었다. 이런 작은 바 하나가 없어져도 신경 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리 옮기게 도와줘?”

“그게 되나요?”

“애틀랜타로 옮기게 도와줄 순 있지.”

“조지아 주에 연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말 나온 김에 이 사람에게 술 한 잔 주지 그래요, 바텐더. 호텔 조지아로. 내가 사는 셈 치고.”

사내가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프런트 바에 합석했다.

음, 레건은 보안관을 잘 안다. 이렇게 외진 곳까지 찾아오는 보안관도 몇 없었고, 그 몇 없는 보안관들도 자주 바뀌지 않았다. 이 일대를 지나가는 보급 마차는 열악한 환경과 비례해 급여가 높아졌다. 눈앞의 보안관도 애틀랜타 출신이지 않나. 조지아 주의 풍요로운 삶을 버리고 굳이 보안관을 택할 만큼 고집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뭐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홀려서 정보를 막 불고 있었다. 기분 좋게 취한 보안관이 사양하는 사내의 손에 달러 뭉치를 쥐여주고는 휘청이며 빗속으로 사라졌다. 분홍색 눈에 빗방울을 가두던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소문이 사실이었네요.”

“… 무슨 소문요?”

“조금만 친절하게 굴면 세상을 얻은 듯 거만해지는 권력자요. 저 보안관, 여기서 돈 잘 안 내죠?”

안 내긴 했다. 일대 치안을 지킨단 명목으로 외상만 달아두었을 뿐이지. 하지만 아까의 대화에서도 그런 내용은 없었는데. 달러 뭉치를 눈대중으로 새던 사내는 그걸 그대로 바 위에 내려두었다.

“자, 선물이에요. 저 사람이 마신 술값은 제대로 낼 테니 퉁친단 생각은 하지 말고요.”

“… 됐습니다. 보안관은 제 할 일을 하는 것으로 값을 치렀어요. 이건 부당하네요.”

“그러지 말고요.”

“당신,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하는군요.”

“누누이 말하지만 난 굳이 존중할 필요 없는 것을 존중하지 않거든요. 그렇기엔 내가 아깝지.”

내어줬던 블루 큐라소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파란 술, 회색 코스터. 저 사내는 굳이 회색 코스터를 고집했다. 문득 알 수 없는 기시감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무슨 생각해요, 레건?”

… 내가 이름을 알려주었던가?

노스캐롤라이나의 인어. 마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말이었다. 노스캐롤라이나가 십 년 넘게 비구름을 독점하는 동부에 반기를 들었었다더라, 그 선두에 인어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비가 내렸다더라, 그래서 다들 그 사람이 바다의 신의 자식이라느니, 워싱턴에서 비구름을 뺏어올 사람이라느니, 그런 과장된 소문을 내뱉었다. 가는 곳마다 비가 왔다니, 마치 꼭…….

“그런데 그것도 한, 언제지? 1년 정도 전에 죽었지.”

“그래요?”

“그 인어가 죽었거든. 수장이 없어졌으니 다들 흩어졌지.”

처형? 살해? 암살? 뭐든 간에 동부가 제 권력을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마부들은 시원한 얼음물을 들이키며 저들끼리 떠들었다.

“으음, 기억하기론 진압 작전 때 수장이 총에 맞은 걸로 알아. 정말 인간이 아니었는지 굳은 피가 귀한 보석이 되어가지고는, 어우. 다들 떼부자가 됐지, 아마?”

“그게 진짜 골드러시지.”

“남의 피로 졸부된 건데 블러드러시로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레건은 경박한 웃음소리 사이로 고개를 돌렸다. 먼지로 더러워진 유리가 빗물에 씻겨나간지도 벌써 세 달째다. 평생 때울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벽난로까지 불 피우고 있는 마당에 인어라니. 그것도 이런 사막지대에. 벽난로 근처에서 말랑한 얼굴로 불빛을 쬐던 사내는 레건과 눈을 마주치더니 평소처럼 다정하게 웃었다. … 기이한 일이다. 모래바람과 회전초밖에 없는 곳에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다리 하나가 무너졌단다. 이미 강이 메말라 다리의 기능도 하지 않던 것이다. 강바닥에 드러난 온갖 문구가 적힌 벽돌 -문화재- 따위는 주 정부가 수거했으니 그 다리에 갈 사람도 이유도 없을 것인데, 몇 달 전 그에게 시비를 걸다 불현듯 태도를 돌변했던 취객과 보안관이 다리 밑에 깔린 채 발견되었다. 사람이 없어 발견이 늦었다. 붕괴 원인은 갑작스러운 강수량 증가로 인한 지반 침하… 라던가. 저 사내가 온 뒤로 이상한 일만 자꾸 늘었다.

그나저나 지반 침하라니. 이런 마른 곳에서는 지반 침하가 아니라 산사태나 홍수가 일어날 확률이 더 높을 텐데. 침하에 휘말린 집 몇 개가 구덩이 속으로 사라졌으므로 레건의 바 한구석에는 간이침대가 놓였다. 침대는 점차 수를 늘리더니, 이제 집 잃은 사람들은 적당히 테이블을 치우고 남은 공간에 이불을 펼치고 잠을 청했다. 레건은 자처해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밤을 새우는 역할을 맡았다. 사내는 종종 우산을 든 채 바를 찾았고 그때마다 “어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 제가 볼게요.” 하며 레건을 다시 프런트 바로 내쫓았다. 구두코에 빗물 하나 튀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레건의 바에는 여럿을 먹여 살릴 만큼의 식료품이 없었다. 그마저도 있는 것은 안주류가 대부분이었다. 레건은 제 몫을 나누어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여섯 명 남짓한 수라 다행이었다. 조금 더 많았으면 다들 굶었을 것이다.

“필요해요?”

“… 비를 받아 마시며 견디는 건 최후로 미뤄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 저렇게 홀로 동떨어져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이야기를. 사내의 말 앞에서 ‘몫을 나누어 배분하는 것’을 찾은 레건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다들 무뢰배잖아요.”

“일부러 한밤중에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왜요?”

“상냥하다는 뜻이니까요.”

무뢰배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칠지 않고서야 살아남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레건은 첨언하지 않았고 사내는 눈만 깜박이다 “그런가.” 한 마디만 내뱉고 스툴 의자를 돌려 그를 등졌다. 바텐더가 선호하지 않는 자세였다. 그런 자세면 낯을 확인하기가 어려웠고, 자연히 손님과의 교감이 어려워진다. 사내가 무슨 기분을 느끼고 있을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럼, 레건 씨.”

“… 네, 손님.”

“내가 당신을 위해 뭔가 하면 그것도 상냥하다 해주실 건가요?”

“아마도 그렇겠죠.”

“왜 가정형이에요?”

“제가 그걸 도움이라고 느껴야 상냥하다고 말씀드릴 테니까요.”

“날 상냥하다고 말하는 건 그렇게 쉬우면서요?”

“네.”

상냥하지 않을 수도 있지. 말마따나 지금 잠든 이들은 전부 ‘무뢰배’였다. 레건이나 눈앞의 사내 정도는 한 손으로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근력이 강했다. 굳이 깨어있는 시간대에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건은 그의 악의보단 선의를 좀 더 높게 쳐주고 싶었다.

“그럼, 이것도 선의로 봐주셔야 해요, 레건 씨.”

소방용 손도끼를 한 손에 든 사내가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훔쳐 털어냈다. 무뢰배. 죽어도 괜찮은- 하지만 같은 인간이잖아! 빗물인지 핏물인지 알 수 없는 것에 흠뻑 젖은 사내가 웃었다.

“당신이 숨겨둔 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

“그래서 내가 말해줬죠. 그런 건 없다고. 매일 밤마다 뭘 하던 건 구조 신호를 보내는 거였다고. 그런데 안 믿더라고요. 아, 가끔은 정말… 인간은 머저리보다도 멍청하게 군단 말이야.”

아무렇게나 내던진 도끼가 피 웅덩이에 떨어지며 철퍽거리는 소리를 냈다. 빗물에 젖어 창백해진 뺨에 손이 닿았다. 몸서리쳐질 정도로 찬 손이었다. 그럴 수 있을 리가 있나. 인간의 피가 그리 빨리 식진 않을 텐데. 이 비가 모든 걸 삼키지 않고서야…….

… 사내의 손은 아무것도 젖어있지 않았다. 장대비 속에서도, 저 피 웅덩이 속에서도.

“내가 찾으러 왔다고 했잖아요.”

레건은 그제야 엉망인 바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새빨간 바닥이 온통 찬란하게 반짝였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인어가, 여기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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