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감성 회신본능

삼국지톡 조인+서서

백업 by 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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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눈을 뜨시고, 옅은 숨이라도 자아내신다면 이 불효자식, 무릎을 꿇고 사죄하겠습니다. 이곳에 온 것을 목숨이 다할 때까지 몇 번이라도 사죄하겠습니다. 부디 저의 어리석음에 대한 용서를. 아니, 용서는 바라지도 않으니, 그 귀에 담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과분하니.

서서는 식은땀을 흘리며 질 나쁜 꿈에서 깨어났다. 똑딱거리던 시계의 예리한 초침이 호를 그려내며 가리킨 것은 오늘이라는 현실. 그렇기에 서서는 금방 냉정을 되찾았다. 다만 빈말로라도 그게 기분이 나아졌다는 뜻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졸린 자국이 역력한 어머니의 목에서는 맥이 전혀 안 잡혔다. 마른 몸에 드러난 핏줄은 미동조차 없었다. 서서는 바랐다. 일어날 리 없는 것을 바랐다. 제발 꿈에서만큼은.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식은땀은 멈출 줄을 몰랐고, 스스로마저도 눈치채지 못한 채 머리카락과 얼굴을 축축하게 물들였다. 그의 어머니는 서서에게 있어 삶의 미련이자 끝나지 않는 후회의 악몽이었다.

이런 씨... 침구를 갈무리하며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뇌었던 욕지거리는 어느 순간 입을 통해 음성을 가졌고 동시에 뒷정리는 끝을 맺었다. 그는 습관처럼 손에 잡히는 폰을 확인했다. 전원을 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부재중 전화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이로부터의.

'조자효?'

자꾸만 울리는 스팸 문자 알림이 거슬려 홧김에 무음 모드로 바꿔 뒀는데, 잊은 채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그러나 전화가 온 시간의 꼬라지를 보곤, 서서는 그 편이 옳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새벽 네 시 오십사 분. 미친 건가. 심지어 두 통이나. 이대로 무시하려 했으나 어째서인지 표시가 계속 눈에 걸렸던 까닭은 뭘까. 그는 결국 폰을 집어 들었다. 한심하다 못해 유치한 발상이었으나, 꿈자리가 사나웠던 탓에 누군가에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혹은... 하소연이라도. 물론 기대조차 안 했지만.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두 번쯤 더 걸어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상투적인 목소리로 저를 기만하듯 귀에 울리는 문장에, 서서는 일순 사고가 정지했다. 아니, 정지했다기보단 과부하가 왔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점멸하는 생각을 나열해도 복잡한 것은 매한가지이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를 놀려먹기 위한 수작. 허나 조인은 그럴 만한 성정이 아니다. 다른 이의 장난인가? 그렇다면 왜 하필 오늘? 오늘이 어떠한 기념일이라는 기억 따윈 없었다. 한참을 더 고민하던 서서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내게 전화한 것은 잊고 그새 번호를 바꾸기라도 한 모양이지. 그러나 의문점은 하나 더 있었다. 어째서 그가 제게 전화를 했는가? 연락처는 어쩌다 보니 거의 모든 장수와 교환하긴 했다만 당연하게도 연락을 주고받을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럼... 술이라도 마셨나 보지. 술 마시고 다른 사람이랑 착각해서 전화를 한 것일 테지. 그가 술이라면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서서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어쩐지 짜증이 치밀어서, 그는 워낙에 막 써서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자잘한 흠집이 난 붉은색 외투를 대충 걸치고 방을 나섰다.

"조인? 자효? 그런 존함을 가진 장군은 안 계십니다만. 이름을 착각하신 것은 아닌지."

묘하게 말투가 거슬리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조조군에서의 제 처지를 생각하니 아주 납득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유비에게도, 조조에게도 속하지 못한 꼴사나운 망령 같은 책사. 그러나 방금 병사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그런 자기연민 따위를 금방 머리에서 지우도록 만들었다.

"농담? 하나도 재미없는데. 그자가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긴 하다만."

"그러니까, 제게 몇 번을 물으셔도..."

상대해 줄 시간은 없으니 이만 가 봐라, 그런 무언의 대답을 읽은 서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나고 자란 배경이 하필이면 난세라 제일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머리 굴리는 재주에 나름의 자신은 있던 그다. 그런 데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빌어먹을 조씨 일가의 구성원을 착각하다니, 하등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차라리 조맹덕의 난잡한 여성편력을 부정하는 게 더욱 그럴듯했으리라. 생각이 변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회피가 아니라 간단한 증명인 것이다.

"하면 일전에 신야의 유현덕에게 패하여 돌아온 이들의 선봉장은 누구였지?"

"그야... 이 장군님이 아닙니까. 그 차분하신 분의 실책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었지요."

"개소리. 그 전투의 장이 이전 장군뿐이었다고?"

"예. 저를 놀리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하는 일은 그만둬 주시겠습니까?"

그럴 리가. 서서는 발걸음을 옮기며 다시 폰을 꺼내들고 검색을 시작한다. 신야의 전투. 유비. 조조의 패배. 이전. 그리고... 조인曹仁, 조자효曹子孝. 같잖은 이름을 검색하면 도출되는 결과물은 말할 것도 없는 공백. 얼마간의 생각이 끝난 후 내린 결론은 둘로 줄었다. 하나, 어머니를 그리워하여 결국 미쳐 버린 끝에 지금까지 가상의 원수를 만들어내어 망상을 했다. 둘, 어느 날, 조자효가 세상에서 지워졌다.

어느 쪽도 말이 안 되는데. 량이었다면, 통이었다면 좀 더 나은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까. 만학도의 책사가 떠올리는 것은 와룡과 봉추라는 이명을 가진 그의 학우들. 우를 범하여 꺾여 버린 날개를 지닌 자신과는 달리 앞으로 누구보다 높이 날아오를 두 사람을 떠올린다. 그러다 문득 사고는 원점으로. 내가 그의 부재에 이렇게나 신경을 쓸 필요가 있는가? 이것은 전의 질문보다 훨씬 더 답을 내리기 쉬운 질문이었다. 원수고 뭐고... 지금까지, 그리고 이제부터의 행동은 단순히 책사로서의 호기심이 촉발한 미제 사건의 해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궤변이다.

나도 알아, 젠장. 이렇게라도 내 비상식적인 행동을 상식인의 범주로 밀어넣어야 이 더러운 기분이 좀 희석될 것 같으니까... 데워지기 전, 아직 냉기가 남아 있는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자 뇌는 잠깐 침묵하다 이내 다시 빙글빙글 돌아갔다. 조인, 당신은 분명 존재할 거야. 아니, 존재해야만 해. 어쩌자고 모두에게서 잊혀져버린 것도 모자라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머릿속에서 떠돌고야 있는 건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또 끊임없이 궁금해하는 서원직의 미완성된 본질이 질문한다. 아니, 이런 명분보다 그저 서서의 본능이 그를 찾으라 명한다. 주군도 부모도 없는 그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그 자신. 그렇기에 책사는 다만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정말 어디에도 흔적이 없군. 내가 어쩌다 이딴 미친짓을 하게 된 거지."

해가 머리 위에 떠오를 시간이 되었고 붉은색 외투는 별 미련 없이 내팽개쳐졌다. 바람은 이마에 조금씩 흐르기 시작하는 땀을 따라 지나가며 모순적인 온도를 만들어냈다. 이슬 머금은 연병장의 흙바닥은 워커를 더럽혔다. 서서는 텅 빈 그곳을 몇 바퀴 빙글 돌면서 생각의 늪에 침잠했다. 어디로 사라졌나를 생각하는 것은 단계에 안 맞았다. 중요한 것은 이유. 다시 말해 어째서 사라졌냐는 거다. 서서가 아는 한, 그 구식 컴퓨터 같은 사고방식을 가진 책사를 움직이는 것은 단 하나다. 조조의 명령.

그렇다면 조조가 그에게 존재의 말살을 명했다는 건가?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으나 또 걸리는 것은 아까 전 병사의 반응. 서서는 남의 생각을 읽는 데에 능했고 아까의 그것은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적어도 그가 읽어낸 한은. 게다가 인정하기는 죽어도 싫지만 조맹덕은 인재 보는 눈 하나는 짜증나게도 비상한 자다. 그런 자가 조자효 같은 장수를 하룻밤만에 내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고는 가지처럼, 혹은 종이에 떨어뜨린 먹이 번지듯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아, 어쩌면, 조인, 그 자 스스로가 사라지기를 원했다면. 조조에게 있어 제 쓸모를 반추하고 반추하다 결국 스스로가 사라져버리기를 원한 거라면. 눈 앞을 가리던 자욱한 안개가 물러나고, 서서의 눈은 길을 탐색한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무엇이든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

기억 속에 남은 절대영도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 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충의, 아주 가끔씩 장수 특유의 호전적인 분노 같은 것이 있을 뿐. 서서는 그 분노를 자아낸 것이 거의 대부분 자신이라는 사실 따위는 치워버리기로 했다. 이제 와 그것을 새기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니라 그의 기억을 되감기 위함이기에. 본래 역지사지라고 하지 않던가. 아니, 역지사지라기보단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의 단편적인 잔해를 퍼즐 조각처럼 이어붙인 끝에 처음으로 맞춰진 것은... 아, 미친. 서서는 결심을 번복할까 두 번쯤 진지하게 고민했다. 거기 책사실 있는 복도잖아. 경우에 따라선 조조의 앞보다 더 꺼려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복도 끝자락의 서고에 가득 들어찬 병법서와 각종 전투 기록 및 보고서. 서서는 며칠 전 이곳에 있는 조인을 본 일이 있다. 책이 종류별로 나열된 넓은 실내는 다시 한 번 조조군의 행정력을 실감케 했다. 서서는 주변을 대충 살폈다. 수경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던 시절, 장학금을 조금이라도 더 타 보겠다고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던 익숙한 책들이었다. 이런 신세가 되어 다시 생각해 보니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게다가 서서의 눈을 사로잡은 건 그런 책들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분명히 이 근처에, 그래. 전략을 짜고 설명하는 커다란 탁자가 책장의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가늘지만 형태가 또렷한 손이 마치 바둑을 두듯 기물들을 이곳저곳으로 움직인다. 조자효 장군. 장군도 이곳에서 전략을 회의했겠지. 일전의 그 바보 같은 진은 아마 지혜 주머니라곤 없는 유비군에 대한 과소평가- 혹은 호전적인 그의 장수들에 대한 과시와 도발이었을 테지. 그러니 이제 장군의 최선을 다해 봐. 자, 여기에는 골짜기가 있다. 주변은 숲이지. 나에 비해 장군에게는 대규모의 군대가 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어떤 전략을 펼칠지 예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마치 정말 눈앞의 그와 대국을 하는 것처럼, 서서는 한동안 홀린 듯 기물들을 움직이다 탁, 하고 최후의 손놀림을 만들어냈다. 결과는 물론 이제 와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서서의 승리였다. 이후 들어온 다른 이름 모를 책사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기는 했으나 그는 그걸 가볍게 무시했다.

군대 내에는 연병장이 여럿 있었다. 아까 전 서서가 거닐던 곳은 규모가 작고 시설이 낙후된 데다 구석탱이에 박혀 있어 잠깐 생각을 정리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다시 말해, 조금 더 규모가 큰 다른 곳은 군사들의 발길이 끊길 일이 없었다는 거다. 발 닿는 대로, 조인의 행적을 예측하며 걷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의 덩어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저렇듯 한 몸처럼 행동하는 이들을 데리고 진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아니겠나, 장군? 속으로 자아낸 비웃음이 자취를 감춘 것은 시선 끝에 약간의 모순을 발견한 탓이다. 저 진의 구조, 분명히 선봉장이 하나 더 있어야 하지 않던가. 그러니까 저기, 중앙에, 누가 봐도 빈 장소가 있지 않나. 그 누구도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한 기묘한 광경. 그 원인인 단 하나의 부재가 서서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런 식으로 상기시키고픈 건 아니었는데. 쓴웃음이 허파를 타고 흘렀다. 실마리의 초입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었다.

오후의 시작은 훌쩍 넘었지만 아직 저녁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닌, 딱 그 정도의 시간이었다. 해는 지기 직전까지 발악하듯 대지를 비추고, 서서의 발은 후원에 있다. 제각각의 색을 가진 꽃들이 조화를 이루며 길을 따라 나 있었고 키가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었다. 과연 황제를 손아귀에 붙들고 온갖 권력을 누리는 자다운 장소. 페인트가 꼼꼼하게 칠해진 벤치에 대충 걸터앉아 지친 다리를 잠깐 쉬게 해 주자니 또다시 불어오는 바람이 금상첨화였다. 그의 흔적과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이곳을 찾은 이유라 하면 스스로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잠깐 눈을 감아 시각을 차단하자 예리해진 귀에 들리는 것은 수많은 이들의 삶이 만들어내는 소리이다. 그것이 서서에게는 그저 제 인생을 파탄낸 철전지원수에게 동조한 무지렁이들의 소음, 혹은 희생당한 이들의 울음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흘려들었던 그 소리의 사이에서 아주 미세한 저음, 그것을 책사의 청각은 놓치지 않았다. 그 즉시 꼬고 앉은 다리를 풀곤 벤치에서 일어나 근원을 찾아 헤멘다. 대답해. 어디에 있지? 서서는 홀로 문답했다. 여기서부터는 이성이 아니라 직감의 영역이다. 사라진 이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기묘한 감각이 그를 얽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에서 나무의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거렸다. 개화할 시기는 이미 지나 그것이 벚나무인지도 서서는 몰랐다. 그러나 그는 단지 외쳤다. 당장 나와, 조자효. 그것에 화답하듯 그림자가 아른댔다. 희미한 어둠의 점멸을 녹색의 눈이 놓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히고 남자의 거구가 드러났다. 여전히 무감각한 파랑의 눈은 뜬 채였지만 그 무엇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붉은색의 군복은 주름 하나 없이 상의를 감싸고 있어서, 서서는 약간 표정을 찌푸렸다.

"장군, 대체 어디에 있던 거지?"

"사라지기를 원했다. 실제로 그러했고."

"그렇다면 아예 계속 그림자 속에 처박혀 살지, 이제 와 나온 이유는."

"한참을,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가...... 그래, 딱 그 목소리였던 것 같군."

괜한 짓을. 잠시 인상을 찡그린 책사는 잠자코 장군의 말을 듣기로 했다.

"내가 정말, 주군께 필요한 존재인가 생각하다 새벽에 잠시 나왔다가 문득, 다시 내가 저 달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이가 된 것 같아서... 나는 주군에게 해를 가져다줘야 하는 자인데도 겨우 달 하나를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기억이 없다. 아마 그때 사라지고 싶다고 빌었던 것 같군."

"빌었다면 누구에게."

"답은 간단하지. 내 유일한 하늘에게 빌었다. 결국 이루어졌고."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조맹덕은 장군이 사라지는 것 따위 하등 원하지 않았을 텐데."

띄엄띄엄 끊기는 말소리였으나 뜻을 전달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서서가 가진 의문점은 하나 더 있었다. 제 눈 앞에서 흔들거리는 핸드폰 화면. 서서의 손이 잡고 있는 그것은 부재중 전화의 알림이었다.

"그럼 이것은? 어디, 제 독 같은 생각에 빠져 술이라도 처마시고 나랑 다른 이를 착각하기라도 한 건가?"

"술은 마시지 않는다. 그것을 입에 댄 이들의 결과는 역사가 말해 주는 법이지."

"별로 궁금하지는 않았는데. 아무튼, 그럼 제정신으로 이딴 짓을 벌였다는 건가?"

"알 수가 없군. 아, 그래... 이제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생략된 목적어를 상기시키자 돌아온 것은 긍정. 서원직은 허, 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숨을 뱉었다. 짜증이 치밀었다. 그의 태도도, 그 깡통 로봇 같은 사고도, 그것에 하루 종일 휘둘린 저 자신도... 여전히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은 조인에게로 서서는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들어차지 않은 탁한 수면 같은 눈동자에 그제서야 무언가가 자리를 잡았다. 그게 바로 자신이라는 건, 서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장군, 귀 열고 잘 들어. 앞으로도 이딴 개 같은 짓을 하면 그땐 정말 무시해버리겠다."

나도 내 행동이 이해가 안 돼. 어째서 이깟 일 따위에 마음이 흔들려서, 지금도 이렇게. 으득 이를 갈며 혼잣말인지도 모를 말을 한참이나 중얼거리곤 서서는 다시 말했다. 그러니 내가 제정신인지를 시험하는 짓 따윈 두 번 다시 하지 마. 역류하는 감정의 혼합물 따위를 얄팍한 표정으로 숨기고 있는 그를 마주하곤, 조인은 그저 무감각하게 숨을 뱉을 뿐이었다.

"그래, 이제야 진정 장군다운 반응을 보이는군..."

구름 뒤에서 벗어난 달로부터 차가운 빛이 내렸고, 서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저 증명을 완수했다는 기묘한 불만족에 안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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