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도사 귀농일지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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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로 내려왔다 해도 혼자서만 지낸 건 아니었다. 이제껏 많은 사람이 도망갔던 귀신 들린 땅에서 혼자 멀쩡한데다 집을 짓고 이사까지 온 청명은 그야말로 마을 사람들의 초유의 관심사였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버리고 중년에서 노년층만 남은 마을에 나타난 이십 대 후반의 청년은 어딜 가도 주목의 대상이었다. 거기다 예의도 바르고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하고 농사도 꾸준히 짓는 청년이라는 점이 추가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그대로 청명을 향한 호감도가 된 것이다.
“명아, 아가 집에 있나.”
청명의 집에는 직접 키운 작물을 나눠주려는 어르신들이 종종 찾아왔다. 오늘은 근처에 사는 유 씨 할머니가 찾아왔는데, 분홍색 누비 조끼에 꽃무늬 스카프를 멋지게 두른 어르신의 손에는 한 손으로 들기에도 벅찬 커다란 짐이 들려 있었다. 유 씨 할머니는 백아 밥 주다가 달려 나와 문을 연 청명의 품에 검은 비닐봉지를 턱 하니 안겼다.
“한의원 가는 길에 이거 주려고 잠깐 들렀다.”
“이 정도면 부추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요리를 다 해 먹고도 남을 것 같은데…”
“아직도 뼈밖에 없어 비실비실한 데 많이 먹고 살 좀 쪄야지.”
청명이 유 씨 할머니는 너털웃음을 짓고는 한의원 갈 시간에 늦었다며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돌아갔다. 집으로 들어가 싱크대에 봉투를 내려놓자 백아가 호기심에 다가와 코를 킁킁거린다. 청명이 한 줄기를 뽑아 입에 대주자 백아는 먹는 대신 흔들리는 부추 잎을 잡으려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었다. 기어코 붙잡은 부추를 이빨로 갈가리 찢어버리는 백아의 배를 간지럽히며 청명이 피식 웃었다.
“어쭈, 잘도 잡네.”
“낏?”
“그나저나 이 부추를 다 어쩐다…”
청명은 부추를 절반 정도 꺼낸 뒤 나머진 흙이 묻은 상태 그대로 냉장고에 넣었다. 커다란 스뎅 그릇에 쓰다 남은 부침가루와 밀가루를 모조리 털어 넣고 바삭한 건새우와 매콤한 청양고추를 잘게 다진 뒤 가루와 섞는다. 양파와 당근과 홍고추는 얇게 채 썰고 부추는 깨끗이 씻은 뒤 손가락 길이로 자른다.
청명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냉동실을 뒤져 손질된 오징어와 홍합살을 꺼내 찬물에 씻었다. 준비한 해산물과 준비한 다른 재료들과 달걀까지 그릇에 넣은 뒤 살짝 많나 싶은 정도로 물을 붓고 멸치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주걱으로 재료가 뭉치지 않게 잘 뒤적여준 뒤, 가지고 있는 것 중 제일 큰 국자를 꺼내 달궈진 프라이팬에 반죽을 부었다.
지글지글 달궈진 기름이 반죽을 만나자 고소한 향이 온 부엌에 가득 퍼진다. 재료들이 잘 익도록 뒤집개로 전을 꾹꾹 눌러 익히던 청명은 커다란 그릇에 전으로 이루어진 탑을 쌓고 나서야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부추 양념간장과 시원한 막걸리 한 병이 낮은 밥상 위에 놓였다. 마당이 한눈에 보이는 거실 유리창을 활짝 연 청명은 옆자리의 백아에게 육포 한 조각을 챙겨준 뒤, 입 안에 고인 침을 삼키며 전을 한 입 크게 뜯었다.
건새우의 감칠맛과 쫄깃한 오징어와 홍합, 달달한 양파와 향긋한 부추가 입안에서 조화롭게 뒤섞인 부추전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맛있고, 엄청나게 뜨거웠다.
“앗 뜨거!”
급하게 따라둔 막걸리로 입 속을 진정시키고, 이번엔 제대로 후후 불어 식힌 뒤 느긋하게 갓 만든 부추전의 맛을 음미했다. 창틀에 몸일 기대 편히 앉자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며 뺨을 간지럽혔다.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요리가 정말 많이 늘었다. 다음에 부모님이 오시면 맛있는 거라도 만들어 드려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예 뒤로 벌러덩 드러눕자, 육포를 더 먹고 싶었던 백아가 청명의 배 위에 똑같이 드러누워 애교를 부렸다.
“안돼. 너 오늘 몫은 다 먹었잖아.”
“키이이!”
“이따 저녁 먹을 때까지 참아.”
시무룩해진 백아가 터덜터덜 내려와 청명의 옆에 딱 붙어 몸을 둥글게 말자, 청명은 삐졌냐 백아를 놀리며 부추전을 한 입 더 베어 물었다. 이런 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네. 청명은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평온하고 평화로운 일상의 감각을 조금이나마 되찾은 기분이었다.
* * *
청명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새벽에 부지런히 일어나 더워지기 전에 잡초를 뽑으려고 주섬주섬 장화를 신고 있는 도중 핸드폰의 불빛이 요란하게 번쩍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이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를 거나 싶어 발신자를 확인하니 건축과 친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뭐야, 이 꼭두새벽에. 무슨 일 있어?”
[청명아, 너 혹시 우리 유튜브에 올렸던 동영상 원본 가지고 있어?]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친구는 인사를 할 정신도 없는지 냅다 본론으로 들어갔다. 당시 촬영과 편집은 친구가 모두 전담했던 터라 청명이 없다고 말하자, 수화기 저편에서 ‘끄아아…’ 하는 비명과도 같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대체 뭔 일인데?”
[나 최근에 이사했잖아. 그때 촬영 원본이 든 외장하드를 잃어버렸나 봐…]
“그건 안됐긴 한데, 유튜브에 올려둔 편집본 보면 되는 거 아냐?”
[나 유튜브 계정 정지당했어…]
“뭐? 어쩌다?”
친구는 침울한 목소리로 이유를 모르겠다 답했다. 청명 역시 지난 일 년간의 기록을 담은 만큼 영상이 내려간 것에 아쉬웠으나 자기보다 더 우울해하는 친구의 앞에선 차마 티를 낼 수가 없었다. 그거보다 더 좋은 집 만들고 찍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다음에 한 번 내려오면 고기 구워줄 테니 힘내라 말하는 청명의 위로에 친구는 침울한 목소리로 그러겠노라 답했다. 그렇게 이 일은 무사히 일단락되는가 싶었는데…
“뭐야, 동영상 어디 갔어?!”
도심의 고등학교. 담당 과목 선생님의 어쩔 수 없는 출장으로 자습 중이던 어느 일학년 교실. 작게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와도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되던 교실에 갑자기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으나, 정작 소음의 원인이 된 당사자는 시선 따위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없다, 없어.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잘 있었던 동영상이 한순간에 증발해버렸다. 구독 리스트에서도 채널이 완전히 사라져버려서 남은 흔적이라곤 더 이상 재생할 수 없는 영상이란 화면만이 나오는 시청 기록뿐이다. 부들부들 떨던 남학생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외쳤다.
“내 말코 동영상 어디 갔냐고…!“
과거 당가의 태상 장로이자 암존이라 불리며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풋풋한 17살 고등학생일 뿐인 당보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비슷한 시간, 어딘가의 중학교에서도 좌절의 비명을 지른 이들이 있었으니.
”사, 사숙! 큰일 났어요!“
”학교에서는 선배라고 부르라니까. 무슨 일인데?“
”청명이 나왔던 그 동영상, 지금 채널 내려간 것 같은데요?!“
”뭐라고?!“
동아리실에 모여있던 아이들이 화들짝 놀라 자기 폰을 꺼내 들거나 옆 사람의 화면을 함께 쳐다보았다.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 동영상의 흔적에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제일 먼저 이변을 알아차렸던 일학년 명찰의 조걸이 안절부절못한 채 이제 어쩌죠? 하고 울상을 지었다. 옆에 있던 같은 명찰의 윤종과 혜연이 진정하라며 조걸을 달랬으나 두 사람의 표정 역시 굳은 채 풀릴 줄 몰랐다.
전쟁이 끝난 후 청명은 단전이 깨지고 한쪽 팔을 잃은 채 남은 평생을 요양과 투병으로 보내야만 했다. 화산 밖을 나가는 건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처참한 상태였으나 청명은 살았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두는 안타까운 마음에 하루하루 속을 앓았다.
청명이 보고 싶었다. 자신이 지킨 평화를 온전히 누리지도 못한 채 누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문파의 막내가 너무나 그리웠다.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가 보고 싶었다. 여섯 명이 전부인 동아리 방에 마련된 일곱 번째 의자는 해소되지 못한 그리움의 증거였다.
새롭게 개설된 청명의 유튜브가 무럭무럭 성장해가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알고리즘의 축복을 받지 못한 한 명의 고등학생과 여섯 명의 중학생이 좌절과 슬픔의 눈물을 삼키고 있던 그 시간.
”사형, 이것 좀 보시죠.“
”련주님.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깔끔히 정장을 차려입은 두 남자가 각자의 상사가 있는 방으로 들어선다. 청진과 호가명. 다르지만 비슷한 두 사람이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놓으며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청명 사형을 찾은 것 같습니다.“
”화산검협을 찾았습니다.“
태블릿의 액정 너머로 보이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다. 서로 다른 의미로 표정을 굳힌 청문과 장일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청명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 이상, 반드시 그를 찾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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