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 내 절교를 받아라 - 10화
내 절교를 받아라
10. 내 절교를 받아라 下
ㅇㅇ고 얼짱 정수현이 ㅇㅇ여상 일진퀸 임진아에게 개털려서 온 날. 나는 언어영역 비문학 지문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상호주의란 “행위자 갑이 을에게 베푼 바와 같이 을도 갑에게 똑같이 행하라.”라는 행위 준칙을 의미한다. 상호주의 원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표현되는 탈리오의 법칙에서 발견된다. 만약 상대방의 밥그릇을 빼앗았다면 자신의 밥그릇도 미련 없이 내주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대칭적 상호주의는 우리의 실제 일상생활에서 별로 흔하지 않다. 오히려 ‘되로 주고 말로 받거나, 말로 주고 되로 받는’교환 관계가 더 일반적이다. 이를 대칭적 상호주의와 대비하여 ㉠‘비대칭적’상호주의라 일컫는다. 그렇다면 교환되는 내용이 양과 질의 측면에서 정확한 대등성을 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비대칭적 상호주의, 라는 글자에 동그라미를 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사실 저 문자 수신음은 지금 네 번째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부재중 통화 2통. 불안했다. 어째서 새벽 한 시에 자꾸 [개수현]이라는 글자가 휴대폰에 뜨는 걸까. 9월 모의고사를 하루 앞두고 나는 결국 엎드리고 말았다. 울고 싶었다.
받아라 1초
[개수현]
너네 집 앞에서 시체로 발견될 거야
[개수현]
전화 1초
[개수현]
무시하자, 무시하자, 무시하고 문제에 집중해야 해... 꼬물꼬물 불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어 눈에 들어오는 문제에 샤프로 줄을 긋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들은 모두... 나를 괴롭히는 보기들로 바뀌어 있었다.
문 14. ㉠비대칭적 상호주의의 예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정수현이 조례부터 야자까지 내 어깨에 기대어 잔다.
② 정수현이 잔돈이 없다고 매일 내 용돈을 가져가서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③ 정수현이 자꾸 내 책에 찹쌀떡을 그려놓아 공부를 방해한다.
④ 정수현이 문제를 풀 때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버린다.
⑤ 정수현이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으면 어떤 또라이짓으로 날 괴롭힐지 모른다.
정답은,
오 번.
결국 휴대폰을 잡고 허겁지겁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웬걸, 이번엔 정수현이 받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느낌이 묘해 설마설마하는 마음으로 슬쩍 대문을 열었더니 툭, 문에 밀려서 고꾸라지는 인기척이 보였다. 가로등도 없는 골목길. 달이 밝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놀라 까무러쳤을 것이었다.
"저... 정수현?"
헉, 이... 게 뭐야.
내 말에 서서히 고개를 위로 드는 정수현의 얼굴 위로 달빛이 아주 가로등처럼 부서졌다. 쥐어터진 눈동자, 사자머리가 된 머리모양, 그리고 터진 입가가 쓰린지 연신 입술을 옴죽거리는 정수현은 얼짱이라기보다는 벌에 왕창 쏘인 사람 같았다.
"괘, 괜찮아?!"
"임진아...조온나 쎄..."
"일어설 수 있겠어?"
"왤케 늦게 왔냐, 찹쌀떡..."
정수현의 팔을 들어 내 몸에 지탱하게 했다. 끙차, 하고 일어서는데 정수현이 비틀비틀거리더니 이내 내 어깨에 고개를 푸욱 묻고 실실 쪼개기 시작했다. 헐. 임진아가 정수현의 머리를 때리기라도 한 것일까. 또라이, 또라이하고 속으로 욕했던 것이 실제로 일어나자 나는 조금 겁이 났다.
말하자면, 사건은 이랬다. 정수현은 임진아의 남친, 이라 불리는 이 일대에서 제일 훈훈하게 생긴(내 기준으론 그냥 오소리처럼 생긴 놈이었다) 남자애에게 대시를 받았고 그 사실을 거짓말로 속여가며 어장관리를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처럼 하다가 꼬리가 열 개인 임진아에게 잡혀버린 것이었다. 임진아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힘이 셌고 몸이 컸다.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었는데, 그냥 허우적 거리는 팔다리가 아니라 다부지고 강단이 있어서 그 손아귀에 머리채가 한 번 잡히면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길래 애초에 떳떳하지 못한 짓을 왜 했어? 게다가 내 눈엔 정수현이 그 남자애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게 뻔히 보였기 때문에 더 한심해 보였다. 그 순간엔 정수현이 조금 못나 보여서 나는 자각도 못한 채 혀를 찼다. 쯧쯧쯧, 하는 내 소리에 정수현이 웅크렸던 고개를 슬쩍 들었다. 아주 눈이 말벌에 쏘인 것 같다.
"다음엔 날계란 터뜨리듯이 내 머리를... 그렇게 할 거래..."
"어?"
"임진아 그년이..."
"근데 너... 진짜 괜찮아? 걸을 수 있겠어?"
물론 도토리 키재기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정수현이 나보다 키가 큰 건 확실했으므로 나는 비틀거리는 정수현을 지탱하는 게 여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부모님이 깨실까 봐 웅얼웅얼 거리는 정수현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고, 식은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내 방으로 정수현을 데려오는 건 성공한 이후에도 어둠 속에서 구급함을 찾아와야 하는 게 더 문제였다.
"너 여기 잠시 누워있어. 약 가지고 올게."
"합박걱."
입가가 터져서 찹쌀떡인지 합박걱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옹알이하던 정수현이 방을 나가려는 내 발목을 붙잡았다. 그 바람에 나는 문 앞에서 수치스럽게 넘어지고 말았다. 정말 끝까지 말 그대로 발목을 잡아주시는 또라이가 아닐 수 없었다.
문 손잡이에 머리를 박고 때굴때굴 구르며 차마 부모님이 깰까 봐 소리는 못 지르고 입을 틀어막고 눈을 꼭 감고 있는데 갑자기 얼굴 앞으로 숨이 확 닿길래 눈을 살짝 떴다.
"...야! 발목을 잡으면 어떡..."
"그냥 옆에 있어줘."
".... 어?"
"눈이 너무 아파..."
퉁퉁 부은 눈을 가리키며 칭얼거리던 정수현은 이내 내 어깨에 툭 이마를 받으며 안기듯 몸을 기대어왔다. 나는 꼼짝없이 방구석에 어색하게 몸을 기댄 채, 그리고 정수현을 어색하게 안은 채 뜬눈으로 새벽을 지새야 했다.
"내가 계란이라도 가져올까?"
"아니."
"책가방에 입술 틀 때 바르는 연고 있는데 그거라도 발라볼래?"
"김아연."
"응?"
꼬물꼬물, 마치 강아지가 어미에게 파고들듯 몸을 웅크리며 웅얼거리던 정수현이 불분명한 발음으로 내게 말했다.
"나는 그 남자애 별로 안 좋아했어."
"... 그래 알아."
"그냥 하도 흥미가 안 생기니까 그런 놈이라도 만나보자 싶었어."
"응? 무슨 소리야?"
"몰라. 몰라. 나도 몰라."
정수현은 꼭 술이라도 취한 것처럼 웅얼웅얼 거리면서 내 목에 대고 잠시 코를 킁킁 거렸다. 너 씻은지 얼마 안 됐지? 찹쌀떡? 냄새 좋다. 찹쌀떡 냄새...
"그리고 임진아가 엄청나게 화를 내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무슨 생각."
"만약에, 언젠가, 나도, 음."
정수현이 꿈뻑꿈뻑 눈꺼풀을 천천히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너를 화나게 할 일이 있겠지?"
"... 응.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럼, 그때 있잖아."
내가 뭘로 너를 화나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때 너무 많이 화 내진 말아줘. 용서는 바라지도 않을게. 아마 내가 찹쌀떡, 김아연이, 너 화나게 하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
"......"
"김아연. 대답이 없네."
"혹시 머리를 맞았어?"
진지하게 걱정이 되었다. 임진아가 혹시 정수현의 머리를 너무 심하게 때린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고분고분하고 조곤조곤하게 서정적인 대사를 읊는 정수현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ㅇㅇ여상 임진아에게 존경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정수현을 한순간에 얌전한 강아지로 만들다니. 도대체 얼마나 줘팬 걸까.
그리고 난,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가만히 정수현을 바라보았다. 나도 화나면 무서워, 라고 말을 할 참이었다. 조금 분위기를 잡아야 했다.
"풉."
아, 그런데... 하필 이런 기회에... 웃으면 안 되는데... 웃으면...안...
"푸흐흐흐..."
"죽고 싶어, 찹쌀떡?"
"아...으...미안..흐흐..으...흐흐...그게..으흐흐흐..."
아 어떡하지. 웃음이 멈추질 않아. 눈두덩에 호두과자를 얹어놓은 듯 퉁퉁 부어있는 정수현이라니.
"푸흐흐흐하하하하!"
"......"
"크크큭...아아...으...미안...푸후후흐..."
결국 나는 웃었다. 그것도 정수현의 얼굴 바로 앞에서. 가까스로 고개를 돌리며 웃어대는데 다행히 정수현도 자기가 우스운 꼴은 아는지 뭐라 반박하진 않고 그냥 욕지거리를 중얼중얼 뱉을 뿐이었다.
"그래. 네 말대로 해볼게."
"오, 진짜?"
정수현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꼭 백 원짜리 동전을 넣어 돌리면 나오는 캡슐뽑기에서 아주 좋은 장난감을 발견하고 웃는 모양 같았다.
"그게 그렇게 좋을 일이야? 나한테 무슨 짓을 하려고..."
나는 겨우 웃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그리고 최대한 진심을 담아 정수현에게 당부했다. 제발 앞으론, 좀 정상적으로 살란 말이야. 제발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좀 살아줘. 친구를 괴롭히지도 말고, 남의 남자친구 꼬시지 말고, 공부도 좀 하고...
"응."
정수현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다시 내 어깨에 이마를 묻고 몸을 웅크렸다. 새벽 두시. 이대로 잠들면 분명 지각할 거 같은데, 정수현이 자꾸만 꼼지락 꼼지락거리며 품을 파고들어서 지각이고 나발이고 일단 잠을 푹 자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정수현이 신경 쓰여서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나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잠에 들락 말락 하는데, 내 어깨에서 정수현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내가 너를 좀 놀라게 할지도 몰라."
스르르...눈이 감기는 그 찰나에 정수현은 진지하게, 담담하게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분명 내 손이 더 따뜻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찬바람을 맞았던 정수현의 손바닥이 더 따뜻했다. 그 느낌이 마치 손난로 같아서 나는 내 손을 잡은 정수현의 손에 슬며시 깍지를 꼈다. 새삼 또라이치고는 작고 여린 손아귀의 느낌이 묘했다.
"받아주진 않아도 좋으니까... 용서는 해줘야 해."
-
".....나가."
"찹쌀떡. 일단 내 말을 들..."
"나가라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앞이 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다. 배신감에, 속상함에.
나는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아이였다. 내는 법도, 그렇게 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믿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내가 조금 힘들고 말지, 하고 넘어가면 만족스럽진 않아도 내가 신경 쓰일 일은 없으니까.
정수현의 수백 가지 또라이짓에도 내가 가까스로 절교를 참은 건 그 이유인지도 몰랐다. 이제 조그만 또라이짓은 놀라운 축에도 들지 않을 정도로 행동해왔던 정수현에게 익숙해졌기 때문도 있었다. 우정이 용납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경계. 그 경계가 어딘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든 이제 정수현의 친구로서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정도, 습관이 된다. 그리고 습관은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믿었는데...
나는 정말 노력했단 말이야.
너를, 너를 이해하려고...
그런데 방금 그 한계선이 어딘지 똑똑히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야..."
"....."
"....."
바닥에 떨어진 생리대를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정수현의 표정은 차라리 나보다 훨씬 놀라워 보였다. 6년 동안 처음이었다. 네가 당황할 때도 있구나, 정수현. 네가 나랑 비슷한 표정을 지을 때도 있었어. 그래... 차라리 지금은 평소처럼 그 무미건조하고 또라이같은 능청스러운 표정을 지어주면 좋으련만.
".... 너 임신 아니야?"
"......"
"솔직히 말해!"
"..... 응."
그리고 정수현에 대한 내 경계선이 보였다. 그건 데드라인이었다. 분명한 한계선. 눈을 때굴때굴 굴리며 내 팔을 잡은 손을 흔들흔들하는 정수현. 심장이 뛰었다. 운동을 하지도, 커피를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단지 가만히 있는데도 심장이 뛴다. 쿵쿵쿵쿵, 심장이 너무 뛰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찹쌀..."
"나가."
"내 이야기 좀 들어 봐."
"나가라고!!"
나는 정수현이 흔드는 팔을 뿌리치고 집 한구석에 있는 정수현의 짐을 멋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타인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리포트를 쓴 적이 있었지. 철학 수업이었고 전제는 없었어. 가족이든, 친구든 간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했던 그 시간.
나는 너를 떠올렸어, 정수현 바로 너를.
아무리 또라이에 사이코 같은 친구라도...그래도...너를 이해한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너는, 너는, 내게 소중한 친구였고-
네게도 나는...
나는...
"고작 이거야?"
나는... 뭐였을까?
"고작 이거냐고."
내 목소리의 끝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너한테 6년간 시달리며 친구로 있어준 결과가?"
".... 야."
"넌 임신이 장난이야? 내가 그렇게 우스워?"
목이 멘다.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이제 '정수현 때문에'라는 글자로 더 이상 힘들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힘든 거 천지니까. 온통... 나를 힘들게 하는 것 천지니까. 지금 이 시기에 친구 때문에 내가 울어야 하나, 싶어서... 그래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왜 가만히 있는 나를 이렇게 못살게 굴어. 안 그래도... 정말 내 인생은 충분히 힘들단 말이야.
"자. 콜택시 불러줄 테니까 그거 타고 가."
정수현의 짐가방을 내밀었다. 늦은 밤. 그래도 남아있는 미운 정이 혹시나 밤길이 위험하지 않나 싶어서 걱정이 되었다.
정수현은 한참 동안 제 앞에 놓인 짐가방을 쳐다보더니 이내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빠르게, 말없이, 담담하게.
어쩌면 기회일까.
너랑 절교를 시켜줄 절호의 기회를, 하늘이 들어주는 걸까?
재킷을 걸친 정수현이 슬쩍 나를 쳐다본다. 가만히, 마치 망부석처럼 가만히 서있는 나를. 그리고 뒤돌아선다. 무겁게, 낮은 한숨을 쉬면서.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짜증을 내며 흔들어대던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그 등에 대고...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정말, 마음을 담아서. 아니, 내 모든 힘을 짜내어, 간절하게 들리도록 신에게 빌며,
"절교하자."
현관 앞에서 주춤하던 정수현의 뒷모습이 보인다. 아주 느리게 나를 향해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도 여과 없이 다 보인다.
"이 시간 이후부터."
그러다 이내 떨구어지는 고개.
"다시는 보지 말자. 절교야."
너무 지쳤어. 화내기도 싫어. 다시는 나 찾지도 말고 연락하지도 마, 하는 말이 꼭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것처럼 절절하고,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나왔다.
제발 떨지 않길 바랐던 목소리가 분노로 떨렸다. 순간 마음이 울걱거리며 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눈이 뜨거워졌다. 그새 울분을 참지 못하고 눈물이 차오른 까닭이었다. 무슨 감정일까. 순수한 분노도 아닌, 어떤 서러움과 배신감,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섞인 감정이었다.
"네가..."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정말 미워... 정말 미워... 그리고 널 친구랍시고 곁에 둔 나도 미워."
현관에 우뚝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정수현의 눈을 무시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쓸쓸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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