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한가한 일요일 오전, 느긋한 햇살을 받으며 극히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색과 크게 다르지 않은 파자마를 걸친 채 실내용 구두로 주방을 향해 걸었다. 오로지 제 손길만이 묻은 식기와 테이블을 더듬으며 뜨거운 커피를 내리고, 그것이 식을 때까지 채광 좋은 대리석 테이블에 그저 두었다. 수려한 잔에 담긴 커피에선 이따금 햇살에 반짝이는 하얀 김이 예측할 수 없게 춤췄고, 그 불규칙적인 모양을 바라볼 때면 세상 어느 자극도 자신을 괴롭힐 수 없어 안정이 느껴졌다.
타인과 대화하고, 작품을 감정하고, 예산안과 기획안을 검토하는 모든 일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자극을 동반했다. 그저 독서를 할 때에도 작가의 언어습관-가령 '물'을 지칭할 때 '마실 것'이란 단어를 사용하는지, '음료'란 단어를 사용하는지하는 기호부터 시작해, 자주 사용하는 어휘의 빈도, 페티쉬까지-을 파악하게 되고, 작품을 선택하는 출판사의 가치관, 표지의 디자인까지 모두가 자신을 알아달라며 비명을 지르는 일상 중 어떠한 자기 주장도 없이 피어나기만할 뿐인 수증기에는 사소한 의도도 없었다. 기교도, 손길도. 그러니 에드가는 장님이 눈을 뜨면 기쁨에 눈물짓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감각에 깊은 공포를 느낄 것이라 확신했다. 이 고요를 깨는 요란한 시위를 듣는다면 말이다.
그런 그에게 개인적인 공간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그는 문자 그대로 제 물건에 타인의 손길이 닿는 것을 혐오했다. 그러니 견인된 것이 분명한 제 링컨을 되찾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저 '됐다, 다른 사람 손 탄 거.' 그리 생각하고 위생용품 사용하듯 그것을 버린다. 모든 물건을 낭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낭비해도 괜찮은' 필수품들이 몇 있는 것 뿐이다. 한 번 사용한 티슈를 말려 다시 사용하지 않고, 오염된 라텍스 장갑은 세척하지 않는다. 타인이 입을 댄 음식엔 손을 대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위생용품에 대해 떠올렸다. 차고에 박혀 4개의 문을 활짝 열고 새 것 특유의 휘발성 화합물 향을 날리는 마이바흐 S500. 마키야토 베이지의 실내와 포퓰러 우드 트림, 에메랄드 그린의 어두운 차체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에드가의 취향이 담뿍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이제껏 시승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안목만 뛰어난 것이면 얼마나 좋겠는가, 감각까지 신경질적으로 태어난 탓이다.
"슬슬 차고에서 꺼낼 때가 되긴 했지..."
그리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더이상 김을 내지 않는 커피를 들어 그대로 싱크에 부어버린다.
"오늘은 세차나 해야겠네."
거품으로 잔을 씻어 개수대에 똑바로 얹어두었다.
Designer © Joseph Dirand / Photo © Adrien Dirand / AD France n° 119, September/October 2013.
http://www.yatzer.com/joseph-dirand-saint-germain-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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