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e in the Trap
덫에 갇힌 쥐는 회고한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날 죽여보지 그래.”
마지막 오기로 그렇게 말하긴 했으나, 레이브 비르타넨은 스물 아홉의 삶 동안 여전히 단절을 두려워했다. 생으로부터의 단절, 타인으로부터의 단절, 미래로 부터의 단절. 이쯤되니 자신이 ‘단절의 새싹'이 아닌 이유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ー물론 농담이다, 두려움의 대상일 뿐인데 어찌 그것이 재능이 되겠는가?
어렸을 적부터 자연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자연의 이치, 삶의 법칙. 그 모든 것들을 제 것으로 삼길 좋아했다ー어떤 ‘분석'과는 달리 그걸 파헤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책 속에서 보았던 것은 ’무리 생존'에 대한 내용이었다. 무리로부터 고립된 한 마리의 동물이 억지로 살아가는 모습. 온갖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점차 세상과, 삶과 단절되었다. 그저 생존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내쫓겼기에. 그 광경을 보며 어린 나이에도 본능적인 공포를 느꼈다. 그 광경을 본 부모님은 급하게 달려와ー아동 정서에 좋지 않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로ー 텔레비전을 꺼버렸으나, 레이브 비르타넨은 공포와 동시에 호기심이 생겼다. 단절의 끝은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호기심은 해결되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던 부모님들은 봉사를 다니던 곳에서 가까운 핀란드 대도시 근교의 한 주거지구로 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각종 사회 문제가 가득하고, 사람들이 사라져 비어버린 도시들이 즐비한 이 세계에서 꽤나 나쁘지 않은 곳. 그런 곳이라면 유달리 똑똑했던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모양이지. 본인들의 신념을 위해 잠시동안 새로운 이웃들에게 제 아이를 맡긴 이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판단하고 웃으며 집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그래. 지금와서 변호해보자면 이웃들은 겉으로 보기엔 참으로 ‘좋은 사람’이었고, ‘앞장서서 타인을 위하는 자’였으며, ‘남을 위해 제 한 몸 바칠만한 이’였다. 핀란드의 작은 주거구역ー자신이 태어나기 전으로 치면 ‘시골 군락’과 비슷한 곳일지도 모르지ー에서 모두의 신뢰를 한 몫에 받는 자들. 그런 그들이 살아가는 마을이 유달리 다른 마을에 비해 생존을 위해 도망 온 외지인들이 적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그들의 실책이었다. 핵심을 놓치고 만 부모가 어찌 이후의 상황을 예견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제와서 그들이 정확히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인지 알 방도는 없다. 아는거라곤 그저 ‘정상적인’ 사회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다는 것 정도.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존재들을, ‘평범하지 않은’ 이들은 없애야만 했겠지. 깎아내거나, 아니면 무리에서 내쫓거나. 누군가 속삭이기 시작한다. 있죠, 비르타넨네 아이.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뭐랄까, 자신은 다 아는 마냥 빤히 보는게 소름끼치죠.
정신을 차리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것은 미묘한 시선 뿐이었다. 작은 사회 공동체에서 특이한 존재라는 이유로 따라붙는 꼬리표는 어떻게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소리를 쳐봐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무리에서 고립된 자가 되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었다. 단절의 끝에 존재하는 것은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레이브 비르타넨은 결국 소리치길 멈췄다.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고야 말았다. 여기까지가 책으로 치자면 그의 ‘과거 회상’ 파트였다. ㅡ그런데, 그래서 어쩌라고? 너만 그런 줄 알아? 남들도 다 그러고 살아.
“알아, 안다고. 어쩌면 네가 나보다 더 괴로웠을지도 모르지. 그저 생존의 위협을 겪은 적이 없다는 말에 반박하고 싶었을 뿐이야!”
순간적으로 호흡이 흐트러진다. 그래, ‘위선자’인 레이브 비르타넨이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자신보다 더한 고통을 받은 이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모를리가 없다. 이렇게 말을 뱉은 이유는 그저 과거에 매인 자기위로에 불과하지 않냐는 사실도 알고있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반추하는 이가 모를리가 없지 않은가! 결국 자신이 하는 말은 기득권층이 자신의 불행을 내세우는 전형적인 기만에 불과하다는걸, 잘 알고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정확히 찌른다. 그 사이로 들려오는 것은 어째서 한 번 극복한 불행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가라는 물음. 그 대답은 그 불행은 내게 화상 자국마냥 오래 남아서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히고 있기에. 벗어나려고 했을 무렵 다시 너희들을 보며 그 기억이 떠오르고야 말았기에. 심지어 지금 이 상황에 오래 있다보니 이런 착각까지 드는 것이다: 자신의 앞에서 상냥을 가장하며 뒤에서는 칼을 들이밀던 이들 사이에서 생존해야 했던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고!
“극복을 자랑스러워하기엔 나는 여전히 두려워. 완전히 평범한 사람으로 의태하지 못했기에. 언제든지 다르다는 이유로 내쳐질 수 있다는 것이. 10년이 지나 내가 더이상 모르는 너희가 나를 내칠수도 있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내 목을 옥죄여 와.”
10년 전, 처음으로 타인이 자신을 내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죽음을 바라보는게 아닌, 자신이 평범한 존재가 아니더라도 생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에게 편지를 썼다. 연락이 돌아오는 것은 일부에 불과했다. 그럴 수 있다. 다들 바쁠 시기이니까. 자신은 운이 좋았던 편이니 그들도 자리를 잡을 시간이 필요하겠지. 허나 회색의 뇌세포는 제 의도와는 달리 새로운 가정을 세웠다. 너희도 날 버릴 생각이야? 참으로 어린아이와도 같은 생각이었다.
사람의 내면에는 부모 역할을 하는 자와 어린아이의 역할을 하는 자가 분리되어있고, 여기서 어린 아이의 역할을 하는 자아를 ‘내면 아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의 부적절한 경험은 상처를 받고 그 과정에서 생긴 욕구를 미성숙한 태도로 표출하는 내면 아이를 만들어낸다. 이런 내면 아이를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완전한 하나의 성숙한 자아가 만들어진다. 허나, 레이브 비르타넨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가정의 정답을 보고싶지 않았다. 자신의 유약한 부분을 떼어냈다. 올마이가 되었다.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단절되지 않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하지만 도망친 끝에 도달한 곳은 결국 이곳이었다. 올마이는 당신에게 전혀 자라나지 못한 레이브 비르타넨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당신의 앞에서 이리 처절하게 벽을 긁으며 도망치려 하는 쥐새끼를 봐라. 오만하고 이상론을 떠들고 있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이 그저 두려워서 구석에 숨어버린 자그마한 아이만이 남아있지 않은가? 그 아이조차 지금 제 어른쪽 페르소나를 흉내내며 얄량한 ‘위선자’ 짓이나 하고있고. 당신은 그 마지막까지 짓밟기 위해 논한다.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 허나 그 안에 있는 정신은 정말로 ‘이타성'을 계승한 것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이유가 훨씬 더 많지 않은가? 네가 말하는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은 정말로 ’이타적인‘ 행동이 맞는가. 모든게 다 맞다고 치자. 그러면 그 ’이타'의 말로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행하는 이들은 그저 자신의 생존을 담보로 쓴 멍청이들이 아닌가.
“그래, 속상해. 헤어지고 싶지 않아.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도 않아. 타인을 위하는 이의 생존을 뺏어가면서 살아있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더 나아. 이런 나를 보면서 넌 그렇게 생각하겠지. ‘어리석은 위선자’라고.”
언어를 생존을 위한 방패로 활용하는 자는 칼로 의태하여 사용하는 이를 이길 수 없다. 당신처럼 대화의 주제를 바꾸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그저 바닥을 바라볼 뿐이었다. 얄량한 껍데기를 내세운 오리나무는 그 속이 썩어 문드러져 텅 빈 것을 들킨 이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역시 잡아먹히자. 포기하자. 자신의, 당신의 언어로 치면 재수없는 자아마저 부정당한 채로 완전히 무너지면 편할지도 몰라.
“그렇다면 지금 실컷 비웃어. 어린 아이와도 같은 날, 네 생존의 거름으로 써먹기나 해보시지.”
헌데, 말을 내뱉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고개를 든 여덟 살 남짓의 레이브 비르타넨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괴물이 아닌 당신의 얼굴이었다. 원래라면 비웃어야 할 타이밍임에도 어떠한 표정도 짓지 못한 채 과거를 회상하며 담담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괴물이 아닌 틀림없는 산티노 페라리였다. 제 또래의 당신이었다. 나는 모르는 당신의 과거였다. 자신과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 ‘같은 부류'의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있었다.
ㅡ라고, 레이브 비르타넨은 어쩌면 거대한 착각일지도 모르는 생각을 하고야 말았다.
Mice in the Trap
덫에 갇힌 쥐는 입을 연다.
'‘저기 있잖아, 너도 무서웠어?“
살기 위해 쥐를 잡아야만 하는 고양이를 향해.
“네가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래야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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