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카자

#후루카자 180분 전력 <운명>


내비게이션이 곧 목적지를 알리자 재형은 거기서 차를 멈췄다. 엔진이 꺼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를 가늠하여 주차를 한 그는 품 안에서 총을 꺼냈다. 공사가 중단된 지 오래된 구역은 폐허나 다름없다. 원래라면 대형 쇼핑몰이 들어설 예정이었다. 방문객을 맞아들인 적 없는 탓에 흐린 날에 보니 음산했다. 건물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해 뚫린 부분이 많았고 외부를 차단하는 유리창은 섬뜩하게 깨진 채였다. 붉은색 글씨로 유치권을 행사한다는 현수막이 건물을 에둘러 현상태를 알렸다. 커다란 현수막은 세월 견뎌내지 못하고 너덜너덜하게 찢겨 있다. 건물로 들어가기 전, 재형은 부하에게 문자를 남겼다.

<영영시 별별구 532-1. 삼십 분 뒤 지원요청 바람. 코드3.>

벽에 등을 기대고 심호흡을 한다. 눈앞에 흉물스러운 크기의 조각상을 보며 재형은 십부터 차분하게 수를 센다. 4, 3, 2, 1. 별다른 인기척은 없다. 그는 움직이기로 한다. 들어오는 빛으로 사물을 가늠했다. 깨진 콘크리트와 누군가 몰래 버린 쓰레기, 시위에 사용한 듯한 팻말이 널브러져 있다. 온기라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재형은 사람을 찾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준영과 연락이 끊긴 지 두 시간 째. 상사의 연락두절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나 준영은 통화 도중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십분 뒤 <다시 연락랄게>라는 문자를 덧붙였다.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한 글자가 재형의 신경을 날 세웠다.

재형은 기다림에 익숙했다. 그 근성이 강준영의 오른팔에 충분한 합격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자신이 왜 준영의 오른팔 역할을 맡게 됐는지 의문 가진 적은 없다. 적당한 연차, 업무에 필요한 눈치, 생존으로 세운 공. 그래서 적절한 환경과 노력으로 부여받은 임무를 소화해야 한다고 느꼈다. 평소라면 장점을 살려 준영 말을 이행해야 했다. 글자 하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통을 답답하게 했다. 준영의 차에 숨겨둔 GPS를 탐색했다. 신호는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계가 작동하자 안도감과 동시에 의문이 피었다. 준영의 곁에 있으며 몇 안 되는 궁금증이었다. 준영은 신분을 하나씩 삼킬수록 예민해졌기에 수시로 사소한 위험을 살폈다. 그런데 재형이 붙인 GPS는 살아남아 이곳을 가리키고 있다. 강준영이 작은 기계를 발견하지 못했을 리 없다.

구둣발을 숨죽이며 빛이 닿지 못한 완벽한 어둠까지 살핀다. 한 발, 한 발 내딛을수록 총을 쥔 손에 땀이 차오른다. 부연 먼지를 들이켜면 입안이 바짝 마른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발견한 것은 머지않은 때로, 순간적으로 목구멍이 부어오른 것마냥 침조차 삼키지 못한다. 달려가 확인하고 싶은데 이럴 때일수록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멀리서 봐도 머리카라이 짙은 색이다. 재형은 곧 안심한다. 아무렇게나 떨군 팔 근처에 총을 발견하고 발로 밀어낸다. 그리고 손가락을 코 밑에 조심스럽게 대본다. 숨이 끊어졌다. 머리통부터 흐른 피는 바닥에 짙게 고여있어 추락사라는 결말을 임시로 내렸다. 재형은 시체를 지나 계단으로 향했다.

외부와 차단된 스산한 공간 때문인지, 뜀박질하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켜야 하는 탓인지, 그래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 때문인지 재형은 며칠 전 준영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새벽부터 비가 내리던 날을 재형은 똑똑히 기억했다. 그날 오전, 뿅뿅 시 어느 창고에서 불법 사제 총기 조립을 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다른 사건 용의자와 형량 협상을 하던 중에 나온 정보로 곧장 창고로 달려갔지만, 이미 텅 빈 상태였다. 예상한 바였다. 그리고 강준영과 심재형은 추가 검증을 위해 이동 중이었다. 1차 브리핑을 들으며 현장 사진을 유심히 보던 준영은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고 심재형에게 운전을 지시했다. 재형은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결정에 의문을 품었지만,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심재형. 재밌는 얘기 해줄까?"

"예에."

"넌 점괘를 믿어?"

재형은 출근길 편의점에서 계란과 에너지 드링크와 조간 신문을 구매했다. 요즘 세상에 핸드폰으로 간편하게 볼 수 있어도 재형은 신문을 고집했다. 계란을 한입에 넣고 씹는 동안만 헤드라인을 중심으로 세상살이를 대충 훑었다. 그 속도는 계란 두 개 분량이었고, 맨 마지막 장은 에너지 드링크를 꿀꺽꿀꺽 마시며 곁눈질로 봤다. 오늘의 운세는 언제나 한 귀퉁이에 자리했다. XX년생 새로운 길을 조심하라. 재형은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는 타입이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좀 전 준영과 차를 타며 땡땡시는 한 번도 안 가봤지, 를 생각했지만. 그리고 그는 조수석에 상사를 태우고 낯선 길로 향했다.

"아뇨."

올초 어머니가 재형의 사주를 보고 왔다며 너 올해 삼재란다, 그래도 결혼 운이 금년에 들어왔다더라, 등의 얘기를 들었지만 굳이 준영에게 말하지 않았다. 준영은 타인의 입에서 나온 인생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고독사 할 팔자래."

"예?"

내 팔자에 저승사자가 있는데, 올해 기운이 세서 죽을 수도 있다나 봐. 난데없는 시작한 말에 재형은 자칫하면 악셀을 세게 밟을 뻔했다. 준영 씨, 그게 재밌는 얘기예요? 재밌지 않아? 재밌다기 보단 놀라운데요.

"누가 그래요?"

"삼천장군이란 사람이."

"아, 요새 방송에 자주 나오는 사람이죠?"

재형은 아는척 했다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했다.

"일부러 찾아본 건 아닙니다만, 한창 연예인에게 점으로 암 진단을 했다고 들었어요."

“주말에 유명한 탐정이랑 같이 티비 프로그램에 나왔다더라고."

"아마 케이블 채널이었을걸요. 미제 사건을 다루는 프로그램인데, 탐정과 점쟁이, 전문가가 다양한 각도로 본다는 특집을 했습니다. 풀어낸다고 했지만, 결국 본질에 접근도 하지 못했습니다. 실제 사건을 예능으로 풀어낼 생각 하다니 참."

장난도 아니고. 혀를 차던 재형이 더욱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점쟁이가 그래요? 준영 씨가 고독사 할 거라고?"

"유명한 탐정이랑 같이 와서 얘기하다 내 점을 봐준다더니 생년월일을 물어봤어.“

"물론 그 생년월일 정보는...”

"가짜였지."

"완전 돌팔이네요."

"하하, 그렇게 말할 것까지 없잖아."

”준영 씨는 믿어요?“

“글쎄…”

사주라느니 팔자라느니 헛소리라고 줄줄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준영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런데 그 사람 말대로 이 모든 게 정해진 운명이었다면..."

준영은 생각에 빠졌는지 말을 잇지 않았다. 곁눈질로 준영을 봤을 때 준영은 그저 미소를 띠고 차창을 보고 있었다.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한줄기의 바람을, 그는 기분 좋게 맞고 있었다. 침묵으로 뒷말을 삼킨 탓인지 재형에게 덧없는 웃음처럼 느껴졌다. 준영은 그때 어떤 운명을 삼켰을까. 물어볼까 재형이 고민하던 차에 준영은 대수롭지 않게 아, 다음 길목에서 우회전. 저기 김밥집 맛있는데 이따 먹고 가자, 라고 말했다. 김밥은 맛있었다. 간장으로 조린 어묵과 우엉이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기억을 되짚으며 재형은 층계를 하나씩 올라갔다. 괜히 쓸데없는 말을 들어서. 그럴수록 난데없는 불안만 차올랐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길. 지금이라도 핸드폰 화면에 준영의 이름이 뜨고, 심재형 지금 어디냐고 무섭게 묻기를. 그러며 1층에서 본 시체가 강준영이 아닌 사실에 안도한다. 목구멍이 텁텁했다. 그 순간 물먹은 구름 사이로 한 발의 총성이 울려 퍼진다.

<탕!>

동시에 심재형은 “젠장!”하고 거친 말을 뱉었다. 기척을 숨기기 위한 노력은 이제 필요 없다. 재형은 다리를 뻗어 계단을 세 칸씩 짚어 오른다. 발에 장애물이 차이긴 했지만, 그따위에 쓸 여력은 없다. 소리의 잔상을 쫓아 끝까지 올라가자 땀이 습기와 엉켜 쉼 없이 흐른다. 공기 중에 엉킨 퀴퀴한 냄새가 콧구멍을 후볐고 그 속에 비린 냄새를 맡는다. 역광 끄트머리에 인영이 아슬아슬하게 엉켜있다. 뚫린 벽으로 찬 바람이 귀를 생생하게 스친다.

“꼼짝 마!”

재형은 총을 겨눴다. 화약 터지는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두 발의 총성이 교차했다. 총알이 재형에게 닿지 않고 어딘가 부딪혔다. 상대는 고통을 토하며 몸을 비틀었다. 재형은 죽음을 목격할 기회가 많았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남자는 치명상을 입었다. 재형은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상대를 조준하는 눈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거기서 떨어져.” 좁혀오는 거리에 상대는 다급하게 총을 들었지만 몸체는 무너졌다. 노려보길 포기하자 씨발, 씨발, 그런 욕을 흐느끼며 발을 흔들었다. 더러운 신발에 금빛 머리카락이 밟힌다. 그저 분노를 표출하는 행위가 아니라 준영을 밀어내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준영은 서서히 지평선에 걸쳐졌다. 힘없이 늘어진 준영만 보였다. 어느덧 재형은 바닥을 박차고 달리는 중이었다. 평생 신기록으로 남을 속도로.

혼자 죽을 운명이래. 재형은 그때 느낀 감정을 확신했다. 분노. 당신은 이따위에 굴복할 남자가 아니란 것을 증명해 왔고, 증명해야만 한다.

급속도로 거리가 좁혀지자 남자가 다급하게 총을 들었지만, 재형이 한 발 앞섰다. 재형이 날린 한 발이 남자의 머리에 정확하게 꽂힌다. 순간, 재형의 시야가 확장된다. 머리에서 붉은 혈을 쏟아내며 뒤로 넘어가고 준영 또한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못한 차처럼 스르륵 움직인다.

“안돼!“

절규 끝에 한 손에 묵직한 것이 잡혔다. 안도도 잠시 오른팔을 타고 통증이 찌릿찌릿 올라왔다. 다른 팔을 뻗어 발목 위를 잡았다. 양팔로 성인 남자를 지탱하자 어깨가 빠질 듯 아팠다. 재형은 그 고통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떨어지지 마. 떨어지지 마. 간절함을 뱉었다. 중력에 이끌려 재형도 난간으로 끌려갔다. 콘크리트 바닥에 쓸릴 때마다 몸이 불타올랐다. 온힘으로 다리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어 종아리를 잡는다. 힘을 끌어낼수록 뼈가 부서지는 고통이 전신을 지배했다.

“내가, 당신을 절대, 혼자 죽게 하지 않아!”

재형은 허리가 끊어지고 어깨가 빠지는 기분이었다. 아프고 또 아프다. 목숨의 무게는 이다지도 고통스럽다.

“그게 당신의 운명이라고 해도! 내가 혼자 두지 않아!”

그러니 제발.

“강준영!! 일어나!!”

죽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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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댓글 1


  • 움직이는 카피바라

    잠입수사관 이름을 크게 불렀다며 혼나는걸 시작으로 후속편이 필요해요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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