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이야기
레스진 800일 기념로그
그 날은 유독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유진은 추적하던 범인 한 명을 놓치고서 온통 비범벅이 된 채였다. 그녀는 지독한 피로감을 느끼며 경위서를 작성했다. 폭언이란 폭언이 모두 그녀에게 향하였다. 모든 것이 그저 멀게만 느껴졌다. 둔감한 추위를 느끼며 유진은 제 집으로 향하였다. 안 젖은 곳이 없이 가라앉은 머리칼은 더 이상 우산도 필요없다는 착각을 하게 하였다. 유진은 그대로 비를 맞으며 걸음을 옮겼다. 집에 들어서면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떨어져 내렸다. 실내의 불이 켜져 있었다. 아레스가 안쪽에서 기척을 내며 나타났다. 흠씬 젖은 유진을 보고, 아레스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유진. 무슨 일이에요.”
“오늘 좀... 힘들었어요.”
유진은 자신의 상황을 인지할 새도 없이, 아레스의 어깨에 제 고개를 기대었다. 아레스는 그것을 밀어내지 않았다. 가볍게 그녀를 안아주던 상대는 수건을 가져와 머리를 털어주었다. 감기에 걸리겠다는 말과 함께, 아레스는 유진을 꼼꼼히 말려주었다. 그녀는 말없는 유진을 한동안 보살펴주었다. 취약해진 느낌의 유진은, 생기를 잃은 듯하여. 아레스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풀어낼 줄 몰랐다. 유진은 제 입술을 꾹 깨물다 아레스를 끌어안았다. 일찍 자야겠어요. 그러한 말을 하는 그녀는 일말의 기운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씻고 자요. 이대로 자면 감기걸립니다.”
“...”
아레스는 손을 잡아 유진을 욕실로 데려갔다. 갈아입을 옷은 가져다 둘테니 씻고 나오라는 말이 있었다. 유진은 느릿이 고개를 끄덕였다. 뜨거운 물을 틀면 문이 닫혔고, 움직이는 소리가 있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제 뺨에 물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눈을 문지르면 아릿함이 느껴졌다. 긴 하루였다. 누구에게 설명하더라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터였다. 그녀는 새삼 바깥에 있을 아레스에게 들릴까 소리를 죽였다. 얼른 침대로 가서 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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