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신곡/커플링Coupling

[카노X아토]#매일매일_800자_챌린지(3)

카노 아오구X아토 하루키

2023.05.23~2023.06.01까지 작성한 카노X아토 연성 10편입니다.

!!세포신곡 본편델씨은자막간까지 스포일러 주의!!


01.

아토 하루키가 수족관에 갔을 때는 평일 오후였다. 딱히 몸이 아프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이전의 임무건으로 시간외 근무가 너무 많이 쌓였다며 오토와 사무소 소장이 직접 휴가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그야 좀 밤을 새긴 했지만, 여기저기 숨어다니느라 고생 좀 하긴 했지만, 마지막에 범인과 육탄전까지 벌이긴 했지만 그건 좀 형평성이 안 맞지 않나요?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그런 말을 한 댓가로 아토 하루키는 하룻동안의 근무 권한을 박탈당했다.

집을 청소할까, 식물을 돌볼까. 갑작스런 휴가 앞에서 서성거려보았으나 공교롭게도 집은 이미 깨끗했고 식물들은 한 점 나무랄 데 없이 건강했다. 나 워커홀릭인가… 그런건가…. 멍하니 자아성찰을 하는 사이 시간이 흘러간다. 문득 수족관을 떠올린 것은 그날따라 하늘이 너무 맑았던 탓인지도 모른다.

여름도 아니고 주말도 아닌 수족관은 한가한 분위기다. 아토 하루키는 몇 층으로 나누어진 전시관을 둘러보며 해양생물들의 습성이나 생태 등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나고야 최대 크기라는 말은 허언이 아닌지 마지막 구역으로 들어갔을 무렵에는 오후 3시가 거의 지나가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거대한 수족관에서 군락을 이루며 유유히 춤춘다. 거대한 상어들이 수족관 속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먹이가 주어지는 걸 알기 때문이라던가? 하루키의 얼굴에 푸른 물그림자가 지고 작은 생명체의 그림자가 그 위를 스쳐지나간다. 이 풍경을 보여주면 뭐라고 했을까. 잠시 생각하던 하루키는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커다란 전시관을 가로질러갔다.

어차피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설령 하루키가 그걸 바란다 하더라도.

02.

카노 아오구는 가끔씩 아소 코지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나마 아토 하루키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함께 있을 때에는 조용하다는게 다행이었다. 근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토 하루키는 어느날 본질적인 의문에 빠지고 카노 아오구는 그의 시야 약 35도쯤 되는 방향에서 뒹굴거렸다. 밖에서는 얇은 가랑비가 내린다.

"카노 씨."

"뭔데."

"당신 혹시 저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건가요?"

"으응? 왜? 갑자기 외로워졌어?"

히죽히죽 웃는 얼굴이 얄밉지만 지금은 거기에 태클을 걸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토 하루키는 자신이 끓인 홍차를 홀짝거리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제 프라이버시가 걸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설마 제가 인식하지 못할 때에도 계속 제 옆에 있는 건 아니겠죠?"

"왜 그렇게 찜찜하다는 듯한 말투야? 보통은 카노 씨 정도가 수호령으로 있으면 감사의 백팔배는 올려야 할텐데."

"기묘한 화제로 말 돌리지 말구요."

"흥."

카노는 저항이라도 하는 것마냥 홱 등을 돌려버린다. 하루키는 그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서슬에 잔에 담긴 홍차가 일렁거렸다.

"딱히 카노 씨가 소름끼친다고 말하고 싶은건 아닙니다."

"그럼?"

"그냥… 만약에 카노 씨를 제가 계속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이라면, 그건 카노 씨에게는 좀… 실례인게 아닐까, 싶어서."

"거만하긴."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새 코 앞까지 다가온 카노 아오구가 히죽 웃고있다. 파란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그가 말을 이어나간다.

"네가 나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슬퍼하기라도 할 것 같아?"

"하지만… 카노 씨, 자신을 잊지 말아달라고 하셨으니까요."

"아소 짱, 머리도 좋으면서 착각을 하네."

카노의 손가락이 아토 하루키의 이마를 스윽 통과한다.

그건 상당히 기이할 정도로 평온하고.

"생각해봐, 세상에 숨쉬는 법을 잊는 사람이 있나? 심장박동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어? 길을 걷는 방법을, 달리는 법을, 무언가를 기억하는 방식을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면 적용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을까?"

"……장기기억이라는 건가요."

"그래. 나는 이미 너의 일부야. 네가 순간적으로 나를 '의식'하면서 '시야에 담게 되는' 것일 뿐이지. 눈동자를 깜박이는 횟수를 의식하게 되면 골치아파지는 것 처럼."

나중에 가면 넌 내 모습이 보이지도 않을걸? 카노의 말은 간단하고 아토 하루키는 제 눈앞에서 일렁이는 하얀 가운을 바라보다 중얼거린다.

"쓸쓸하다고 말하면 이상할까요?"

"글쎄. 손이라도 잡을래?"

"잡힐 리가 없잖아."

카노의 손끝이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것 마냥 아토 하루키의 머리에서 빠져나와 살랑거린다. 천천히 손가락을 뻗어보아도 여전히 아무것도 닿지 않아서, 하루키는 공연히 조금 우울해지고 말았다.

03.

총성이 들린다.

퍼뜩 눈을 떴을 때 주변은 더없이 캄캄했다. 근처에 놓인 무미건조한 빛이 눈가를 비스듬히 찌르고 들어왔다. 여긴 어디지? 몇 시지? 얼마나 지났지? 냉정한 판단과 혼란이 뒤섞여 사고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 시야 속으로 하얀 머리카락의 인물이 태연하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소 짱~ 이제야 정신차렸어? 그냥 쏴버리고 나 혼자 갈까 싶었어."

"아…. ……카노 씨."

"그래, 카노 씨야~. 혹시나 그걸로 기억상실을 일으킨건 아니지?"

카노가 빙글빙글 웃는다. 그럴리가 없잖아요. 무슨 만화나 게임의 주인공도 아니고. 아소 코지라 불린 아토 하루키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천천히 바닥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금이 가고 비틀린 바닥은 빈말로라도 포근하다고는 할 수 없고 근육 여기저기가 삐걱거렸다. 최소한 그 가운이라도 덮어주시면 좋았을텐데요. 영양가 없는 농담 삼아 말을 던지면 카노가 어깨를 으쓱였다.

"겨우 5분 정도였는걸. 어리광 부리긴."

"5분인가요…."

주변을 멍하니 둘러보면, 깨진 실험관과 그 근처에 퍼져있는 거뭇한 얼룩이 보인다. 저게 팔에 들러붙는 바람에, 카노 씨가 총으로 조준하고… 그 총성과 충격 때문에 기절한 건가. 단조로운 회상만으로도 어이가 없어져 한숨을 쉬다가, 하루키는 제 손바닥에 감긴 붕대를 발견한다. 분명 기절하기 전까지는 없던 것이다.

"카노 씨, 이거…."

"아~ 일단 크리쳐에 의한 상처는 아니야. 넘어지면서 파편에 긁힌 모양이더라? 계속 나뒀다간 언제 감염당해서 날뛸 지 모르니까 카노 씨가 서비스 해줬어☆"

"정말 감사합니다만 조금 때리고 싶어졌습니다."

"난폭하긴."

카노가 어깨를 움츠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하루키도 삐걱대는 근육들을 재촉하며 바닥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핸드폰의 배터리를 확인하면… 61퍼센트. 아주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낙관할만한 양도 아니다. 핸드폰 조명의 밝기를 조절한 뒤 숨을 한 번 들이쉬고, 하루키는 카노를 돌아보았다.

"그럼 가볼까요."

"괜찮겠어? 무리하는거 아냐? 손 잡아줄까?"

"됐습니다."

붕대를 감아주신 걸로 충분해요. 그렇게 말하면 카노는 히죽 웃어보일 뿐이었다.

04.

"영혼의 무게는 29그램이라고 하더군요."

"아소 짱, 오래된 미신 이야기를 믿네?"

"죽은 사람의 무게라고도 하고, 양조된 와인의 증발량이라고도 하죠."

"궁금해?"

"솔직히, 궁금하네요."

아토 하루키는 (아소짱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는 당연히 아토 하루키다) 손바닥을 위로 하고 팔을 내밀어보인다. 허공을 유영하는 카노 아오구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아무래도 좋다는 얼굴로 몸을 뒤집었다. 여전히, 하루키의 손바닥에서는 멀다.

"아소 짱. 뭔가 착각하는거 아냐?"

"뭐를요?"

"나는 카노 아오구의 영혼이 아니야. 네가 인식하는 카노 아오구의 잔상이지."

둘 사이의 차이가 뭔가요? 아토 하루키는 당연한 의문을 제시하고 카노 아오구는 느긋하게 몸을 뒤척인다. 마치 자신의 몸 아래에 보이지 않는 침대라도 존재한다는 것 마냥. 이윽고 푸른 눈동자가 아토 하루키의 모습을 담는다. 지난 2015년 4월보다 살짝 머리가 자란 아토 하루키를.

"나는 네 뇌세포에서 비롯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거야."

"뇌세포, 인가요."

"그래. 네 두개골 속에서 피와 영양을 공급받아 꿈틀거리는 분홍색의 살덩이. 그게 인지영역과 상호작용하면서 평범한 풍경 속에 나라는 데이터를 집어넣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제 환상이다?"

"적어도 실체는 아니지."

카노 아오구가 웃는다.

"실체하는 증거를 바란다면 꿈 깨, 아소짱. 너는 영원히 나의 단편만을 접할 뿐이야."

"하지만 당신은 미래로 이어지는 나의 삶을 전부 저주했잖아요."

"그게 카노 씨의 끝내주는 점이지☆"

"나참, 대체 누가 비열한 건지."

아토 하루키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감돈다. 이윽고 그 손이 천천히 움직여 카노 아오구의 코끝에 닿았다. 카노의 눈동자가 아토 하루키의 얼굴을 훑는다. 여느 때고 냉정을 잃는 일 없는 탐정이 말했다.

"이러면 저는 느껴지나요?"

"……."

손끝에는 살짝 바람이 부는 것 같고.

"뜨겁네. 열 있어, 아소 짱?"

유령의 시선은 여전히 시릴 정도로 푸른빛이다.

05. (고등학교 AU)

"아소 짱, 또 보건실이네?"

"카노 선배…."

그보다 저 계속 아소짱이라 부르시는 건가요. 아소 짱도 나 계속 카노라고 부르잖아? 지난 달, 찾을 물건이 있어 학교로 몰래 들어왔다가 딱 마주쳐버렸던 두 사람이 보건실 침대자리에서 대화를 나눈다. 참고로 그때 수상한 짓을 하고 있던 사람은 카노 아오구로, 귀찮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명을 댔던 아토 하루키는 그 이후 성대하게 본명을 들켰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이렇게 서로를 가명으로 부르는 건 모종의 약속같은 것이다.

그날 밤의 일은 서로 잊지 않았다는 약속.

"진짜 허약하네. 체육시간은 맨날 견학이지?"

"아니거든요. 지난 시간에는 10분 정도 활동했다구요."

"수업시간의 5분의 1가지고 잘난체하긴."

이 사람에게서는 언제나 희미한 소독약 냄새가 난다고, 아토 하루키는 조금은 흐릿한 의식으로 생각한다. 늘 어디서 지내는 걸까. 수업을 땡땡이치고 양호실이나 과학실에서라도 지내는 걸까. 그런 상상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카노가 이마를 톡톡 두드린다. 눈을 떠서 바라보면 새파란 알약이 보인다.

"먹을래?"

"싫어요."

"먹어."

"싫다고."

수상쩍어! 일본제약법에 대해서 알고는 있어요?! 어지러운 머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노라면 카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설마 이 천재 카노 선배를 못 믿는거야?"

"믿고 자시고 너무 수상하다고요. 설마 자작약물은 아니죠?"

"맞는데."

"저 나갈게요."

일어나려는 아토 하루키의 몸을 카노 아오구가 손가락 하나로 간단히 제지한다. 젠장, 왜 사람은 누운 자세에서 이마를 눌리면 제대로 일어날 수 없는 거야! 하루키가 분하게 여기는 사이 카노 아오구가 어디서 가벼온 물병을 집어들고는 제 입에 물과 알약을 털어넣는다. 어, 설마 자기가 먹는건가?

그렇게 방심한 사이에 코를 잡힌다. 숨이 막혀 입을 벌리면 그대로 입술이 닿았다. 경악할 틈도 없이 물이 약을 싣고 목구멍으로 밀려들어온다. 생존본능에 따라 그대로 삼키고 눈을 깜빡이면 카노가 빙긋 웃었다.

"먹었네?"

"이 망할 백발안경이…!!"

이를 바득바득 갈면 카노가 슬쩍 윙크를 한다. 하루키는 진짜로 한 대 날려버리고 싶어졌다.

06.

아토 하루키가 직장에서 손끝을 베인 것은 아주 사소한 일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날이 잘 든 종이에 피부를 베이지 않던가. 다만 이번에는 상처가 꽤나 깊이 생겨서 순식간에 붉은 핏방울이 맺힌다. 서둘러 손끝을 합 물면 입 안에 그리 유쾌하지 않은 비린 맛이 퍼져나갔다. 안그래도 야근 중인데 재수없게. 그런 생각을 하며 지혈할 준비를 하던 하루키 앞에 하얀 옷자락이 펄럭였다.

"아소 짱, 그거 알아?"

"뭘요."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의 피를 바치면 되살아날지도?"

"지도? 인 시점에서 신빙성이 없잖아요."

"네가 믿을 생각이 없다면 그렇겠지."

아토 하루키는 눈 앞의 하얀 연구원을 바라본다. 타액으로 한 번 지혈되었던 손끝이 벌어지며 피가 배어나오는 감각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어떻게 바치라는 거에요?"

"글쎄?"

"거기서 글쎄가 나오면 안되잖아."

미간을 잔뜩 찌푸리면 카노가 히죽 웃는다. 아토 하루키는 거의 충동에 가까운 감각으로 손을 뻗어 카노 아오구의 뺨을 길게 훑었다. 그 뺨에 흔적이 남는 것처럼 긴 핏자국이 허공에 남았다. 그걸 본 하루키의 눈이 순간 떨렸다가, 한 번 감겼다가, 다시 뜨인다. 눈을 깜박이고보면 부자연스런 핏자국은 이미 사라진 뒤다.

"어때?"

"…어때고 뭐고."

아무 일도 없군요. 그렇게 말하면 카노가 아무 말 없이 하루키를 바라보다가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다. 유령과 성적인 접촉을 하면 넋이 나간다고 한 건 누구였더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벌어진 입술에 피비린내가 맺힌다. 어떤 감촉이 부드럽게 닿았다가 떨어져나갔다. 짧은 숨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서면, 카노 아오구가 빙긋 웃었다.

"이번에는 어때?"

"……진짜 당신 최악이야…!"

더 최악인건 귀에 몰린 열이 사라지지 않는 거지만, 아토 하루키는 굳이 그걸 발언하지는 않기로 한다. 저 열받는 얼굴이 더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고싶진 않았으니까.

07.

그러고보면 카노 씨에 대한 책자를 챙겨올걸 그랬나, 아코 하루키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지고천 연구소의 자료실에 있던 그 문서, 분명 정식 발행물은 아니었을 테니까 거기서 따로 챙겼더라면…. 짧은 상념은 그 후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의 물결에 휩쓸려서 잠긴다. 음, 아니야. 역시 그건 좋은 생각은 아니군. 에코백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토 하루키는 거기서 얻은 많은 정보들을 간략하게나마 개인 서류에 적어두기로 한다. 열심히 손을 움직인 보람이 있어 어떤 범죄에 관한 요약노트가 완성되었다. 그나마 기억이 휘발되어 날아가기 전에 전부 적어둘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조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펜을 내려두던 아토 하루키의 시선이 문득 카노 아오구의 본명에 심겨진 生을 향한다. 그때, 카노와 마주쳤을 때 아토 하루키가 썼던 이름에도 生이라는 한자가 들어가 있었지. 어쩌면 그래서, 그랬기 때문에, 아오기 카나오의 삶은 아소 코지라는 이름을 타고 들어와, 아토 하루키에게 전달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 몫까지 살아.'

그 저주와 함께.

하여간에, 정말로 성가시고 끈덕진 사람이다. 당신 덕분에 나는 이제 혼자 있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혼자가 아니고 그날 그때의 사건을 그저 편안하게 삶 속에 묻어둘 수도 없게 되었다…. 아토 하루키가 홀로 생각하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책상위에 놓인 서류를 스치고 지나갔다. 짧은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아마 딴 소리는 하지 말라는 의미겠지. 이런 식으로 일상에 소소한 의미 부여를 하게 되니까 곤란한거다. 아토 하루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은 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08.

사람이 바다에 빠지면 어떻게 될까? 일단 아토 하루키는 기절했다. 물론 기절한 이유에는 총격이나 추격전에 의한 체력소모라거나 이런저런 것이 있다. 유람선에서의 추격이라니, 이게 무슨 극장판 애니메이션이냐고. 시나노의 영향으로 영상 컨텐츠의 습득비중이 높아진 하루키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발이 미끄러져 그대로 빠졌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감각, 멀어지는 의식. 오리진이 익사하는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의문은 찰나의 속도로 스쳐지나가고 아토 하루키는 3일 뒤에야 정답을 배부받는다.

그럴리가.

"일어났어, 아소 짱?"

아토 하루키의 의식은 아직 멍하다. 바닷물에 의식의 일부가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아, 역시 마지막 순간에 총을 맞은 게 안 좋았던 거야. 하루키의 뇌세포가 가까스로 기능하기 시작하면 카노 아오구의 잔상이 가볍게 움직여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는 지구의 중력과는 이미 상관없는 사람이 된 지 오래이므로 무의미한 동작이다.

"정신머리는 좀 어때?"

"목말라요…."

"물병 오른쪽."

더듬더듬 손을 뻗어 물을 마신다. 수분을 마신 목이 천천히 정상 상태를 되찾았다. 그러고보면 이소이 하루키의 사인도 총상 및 익사였지. 이래저래 총과는 상성이 맞지 않는다고 실감하며 빈 물병을 떨군다. 카노 아오구가 눈썹을 쓱 들었다.

"쓰레기는 제대로 버려야지."

"카노 씨가 폴더가이스트 현상으로 어떻게든 해주세요…."

"이 쥐새끼가."

아토 하루키도 큰 걸 바라지는 않아서 그대로 자리에 몸을 누인다. 병상 바로 옆에 물병이 놓여있는걸 보면 루이가 곁을 지켜주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거나 뭐 그런 거겠지. 아직도 몸속에 바닷물이 고여있는 것 같아. 그런 생각에 미간을 좁히고 있노라면 카노 아오구가 묻는다.

"아소 짱."

"네."

"기분나빠?"

"네."

"너 무겁더라."

"네?"

눈을 번쩍 뜬다. 카노 아오구는 이미 없다. 아토 하루키는 자신이 아까 들은 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다 실패한다. 의식이 너무 빨리 심연으로 가라앉은 탓이다.

09.

언젠가는 아토 하루키의 생일이었다. 잔뜩 축하받고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온 하루키는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씻어야 하고, 내일 출근 준비도 해야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시야에 누군가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리 놀랍지도 않은 현상이었다.

"카노 씨."

"오늘 하루 재밌었나봐?"

"시비 걸지 말아주세요."

모처럼 좋은 날인데. 그렇게 말하면 카노는 얼굴을 비뚜름하게 해서 웃는다. 설마 지금 저에게 생일 선물을 줄 수 없어서 삐지신 건 아니실테고, 뭐가 문제에요? 오랜 교제 끝에 싫어도 서로의 성향을 알게 된 아토 하루키가 묻는다. 흐릿한 유령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야말로 나에게서 바라는게 있는거 아냐?"

"무슨 뜻인가요? 또 혼자만 앞서나가긴."

"나를 인식하는 건 네 의지에 달린 문제라는거야."

아토 하루키의 시선이 카노 아오구를 향한다. 그는 언제나 아토 하루키의 시선 속에서만 머물고 다른 이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색채 갖춘 그림자로서 존재했다. 그렇다면 그가 정말로 존재하는지는 무엇에 달려있는가? 불쌍한 고양이가 죽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런가요."

"아소 짱은 카노 씨를 너무 좋아하니까~"

"악취미."

짧게 말하고 올려다본다. 카노 아오구가 천천히 시선을 맞춰왔다. 시계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은 전등의 불빛을 제외하면 어둡고 그건 마치 연인이 서로만을 바라보는 방처럼 은밀한 분위기를 자아내서.

"그래, 그럼… 생일 축하해, 아소 짱."

낮은 웃음소리가 울린다. 고작 그 말 한마디를 들었다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토 하루키는 변명처럼 얼굴을 찌푸리고는.

"그런 말 하나 순순히 해주지 않는 건가요?"

그렇게 응수한다.

10.

탐정의 사망률은 일반사무직보다 얼마나 높을까. 그런 통계가 전문적으로 조사되지는 않지만 아토 하루키는 일단 10%에서 20% 정도는 높으리라 짐작한다. 물론 오토와 탐정 사무소는 직원에게 지나친 하드보일드를 권장하지 않는 안전한 직장이지만 직장이 안전한 것과 의뢰가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굴러갈 확률은 완전히 별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토 하루키의 사망률이 올라간다. 유서를 작성해야할 당위성이 갖춰진다.

내가 죽으면.

"우와, 아소 짱이 엄청 건방진 내용을 적고있네~"

"조용히 하세요. 직업상 절차 같은 거니까."

"하지만 솔직히 필요없잖아. 너는 호스트를 넘어선 오리진이니까. 굳이 말하자면 네 신분증에 붙은 장기기증의사 동의마크를 파기하는 쪽이 좋을걸?"

"그건 이미 했어요."

"그런데도 유서를 쓰는 이유는?"

"개인적 취미랄까."

악취미네. 카노 아오구가 깔깔 웃는다. 아토 하루키도 그걸 알고 있다. 이제는 죽지 않는 몸. 어쩌면 불로불사의 영역에 가장 가까이 닿았을지도 모르는 손끝으로 죽음을 대비한 말을 남기는 우스꽝스러움을. 어쨌건 펜끝이 움직인다. 내가 죽으면.

시체를 남김없이 불태워주세요.

그리고 어떤 유언과 함께 묻어주세요.

카노 아오구는 어느 순간부터 조용하고 아토 하루키는 조금 죽고 싶어진다. 그냥 지금 죽을까. 좋아, 알파. 나 지금부터 숨 멈출테니까 질식사로 죽게 해줘. 그러자 하루키 내면의 알파가 잔잔하게 웃는다. (아토 하루키는 적어도 그렇게 느낀다) 싫어.

"아소 짱, 의외로 로맨티스트?"

"젠장! 그냥 써본 것 뿐이에요!!"

"그런 메르헨적인 이야기 이뤄질 리가 없잖아~ 순진하긴☆"

카노가 멀리 날아가고

아토 하루키는 그를 잡으려다가 실패한다.

모든 질량 없는 사랑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처럼.

"넌 내 몫까지 살아서, 너덜거릴 정도로 살아서, 끝까지 나를 기억해야 해."

왜 사랑에는 질량이 없는가.

"그 외에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건 이런 순간에 사람의 숨통이 짓눌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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