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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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사탕님 커미션

 

 

그리운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다 톡, 볼 위로 꽃잎이 내려앉았다. pvc 질감의 옷이 매끈한 다리를 스칠 때마다 거추장스러운 소리가 났다. 꽃향기와 함께 풍기는 악취가 불쾌하다. 먹고 냄새를 맡는 기능 같은 건 쓸모없는데도 이 몸을 만든 사람이 만들어줬다. 피 대신 전기가 흐르고 부드럽기보다는 단단한 몸을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깜박, 눈에 담아 데이터를 인식한다. 이 세계는 알고 있는 세계,  이 장소는 내가 모르는 장소. 쓰레기들과 벚꽃나무가 가득한 길인 걸 보면 어딘가의 공원인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 걸까. 눈을 감아 기록되어있는 데이터를 정리해 내려간다. 나는 폴몬트 시티에서 인류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 어시스트 로이드, 코드 네임은 츠바키. 오너는... 알 수 없네. 정확히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오너와 관련한 데이터만 삭제한 것 같다. 어떠한 조건이 갖춰지면 자동으로 데이터가 복구되는 시스템인 것 같은데, 조건이 뭔지를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고 또 하나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면.

 

생각하는 것과 동시에 에어바이크의 소리가 들리면서 눈 앞에서 결찰로 보이는 청년이 정차했다. 

 

"거기 무신호 어시스트 로이드! 정지해라."

 

가장 심각한 문제가 제 발로 걸어왔다는 것이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해결방법 중 하나였다. 현재 나는 오너를 알 수 없는 무신호 어시스트 로이드니까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구속되거나 스크랩될 수순이었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기에 인간에게 해가 될 것 같으면 없앤다. 당연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로봇보다도 차갑게 느껴지는 이치이다. 그럼에도 츠바키라는 로봇에게 인간은 따스했다. 벚꽃이 뺨을 간지럽히는 것보다 있을 리 없는 심장의 존재가 느껴지는 것처럼 간지러웠고 인공적인 향을 가진 자신보다 본래의 체취를 가진 인간이 감각 데이터에 기록된 어느 꽃향기보다도 좋았다. 눈 앞에서 걸어오는 처음 보는 경찰의 머리카락도 따듯하다는 단어를 녹여 만들어낸 것 같이 아늑한 적갈색이었다. 눈은 거리의 그 어떤 네온 사인드보다 밝게 빛나는 태양의 색을 담고 있다. 오너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오너 외의 인간을 처음 본다는 자각은 있었다. 갓 태어난 로봇처럼 처음 마주하는 인간을 기록한다. 

 

폴몬트 시티를 지키는 경찰인 청년이 자신을 소개한다. 

 

"폴몬트 시티 폴리스의 카인 나이트레이다. 서큐리티 시그널을 꺼둔 어시스트 로이드의 외출은 금지되어 있는데, 오너는?"

 

"그게, 기억이 나질 않아. 오너에 대해서만 기억이 없는데 고장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곤란하지는 않았지만 곤란한 것처럼 표정을 꾸며냈다. 카인은 다정해 보이니까 이해해줄 거라는 게산에서 나온 태도였다. 카인은 내 표정을 보고 진짜라고 믿었는지 퍽 당황스러운 얼굴을 짓는다. 난 어시스트로이드니까 이런 감정이 꾸며낸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도. 경찰을 하기에는 너무나 순진한 인간이다. 

 

"오너에 대해서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어쩐지 곤란한 사정이 있을 것 같네. 그래도 나는 경찰이니까 어시스트 로이드가 그냥 돌아다니게 둘 수는 없어." 

 

카인은 그렇게 말하며 수첩을 꺼내들었다. 저 수첩이 어떤 물건인지 익숙한 몸이 자연스럽게 카인을 등지고 서서 고개를 숙이고 머리카락을 손으로 들어 올렸다. 훤히 드러난 목덜미에 바람이 스치면서 오싹한 감각이 인식됐다. 얼굴을 살짝 뒤로 돌아 말한다.

 

"어차피 그 수첩으로 확인할 거잖아? 할 거면 빨리 해줘. 나도 데이터가 없어서 곤란하거든. 기록된 이름은 츠바키야."

 

"하하! 얘기가 빨라서 좋네. 좋아, 츠바키. 그럼 잘 부탁할게."

 

목덜미에 장갑 가죽 감촉 너머로 따스함이 전해지면서 덜컥이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꽂히는 감각이 선명하다. 입이 벌어지며 자동으로 인터페이스 포트의 정보가 흘러나온다. 

 

"NAME: 쿄우야 츠바키, ID: URAY-AM-AJUN-22"

 

자신의 정보를 자동으로 내뱉는 것이 꺼림칙했다. 카인은 내 입에서 이어서 나올 말을 기다렸지만 내 입에서 다른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카인은 나라는 모델의 랩과 브랜드를 물었지만 나라는 로봇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카인은 내 목에 꽂았던 것을 회수하고 칭찬하는 것처럼 목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 뭐, 좋아. 협조해줘서 고마워. 누군가 의도적으로 정보를 삭제한 건 곤란하네. 츠바키는 이 세게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가 있는 것 같으니 알고 있겠지만 이대로 네 신원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널 폐기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아는 사람이 너에 대해 알아봐 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런 말을 하면서 테이저건에 손을 가져가는 건 협박이야? 이대로 폐기해도 상관없어. 오너가 없는 어시스트 로이드는 쓸모없잖아?"

 

그에게 상처를 주려던 건 아니었다. 나는 인간을 위한 어시스트 로이드니까 당연히 카인, 처음 인식한 인간인 네가 그런 표정을 지을 줄은 몰랐어. 가짜일 게 분명한 죄책감의 감정을 느끼며 머리카락을 괜히 쓸어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너를 곤란하게 만들려는 건 아니었어."

 

"괜찮아. 확실히 그렇네. 다른 경찰이라면 네 말을 듣고 바로 폐기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난 너의 오너가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 방금 만났지만 너를 죽게 두고 싶지 않아. 내가 츠바키의 오너라면 지금 분명 너를 애타게 찾고 있을 테니까, 오너를 확실히 알기 전까지 너를 폐기 처리하고 싶지 않아. 하하, 너무 제멋대로 지?"

 

나는 카인의 말에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금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내가 무척이나 인간다운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아서, 들 수 없었다. 이 사람은 나를 마치 인간처럼 대우하는 것 같아. 그런 호의가 부끄럽다는 감정과 유사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신호가 경적을 울리는 것처럼 내부에서 반짝거린다. 

 

"일단 ID를 알았으니까 오너한테도 간단히 데려가 줄 수 있을 거야. 사이드카에 타 줘. 우선 엔지니어인 친구에게 데려다줄게. 그러고 ID를 풀면 오너에게 배달이다!"

 

"오너라, 무사히 내가 전달된다면 카인한테는 다행인 일인 거지? 좋아."

 

카인의 사이드카에 올라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카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고 싶지 않아. 나를 개발한 사람은 꽤나 뛰어난 엔지니어였던 것 같았다. 이렇게나 세세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어시스트 로이드라니 너무 잘 만들어졌잖아. 

 

"츠바키는 무심하지만 다정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는 건가. 너 같은 어시스트 로이드를 잃어버린 오너가 가엾네. 그럼 출발하자."

 

서치라이트가 붉게 빛나고, 에어 바이크가 공중위로 떠올랐다. 네온사인의 거리를 가로지르는 주행은 바람에 따라온 꽃잎이 피부를 스쳐서 뺨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카인이 틀었는지 에어 바이크에서는 경쾌한 음악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너에 대한 것만은 기억나지 않지만 오너가 이 음악을 틀어줬던 것 같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도 이 노래 좋아해. 단순히 오너에 의한 선호도 프로그램이겠지만."

 

꾸밈없이 나를 로봇이라고 말하는 얘기를 카인은 오너가 좋은 취향을 가졌다는 말로 받아쳤다. 나를 잃어버려서 오너가 가엾다는 말은 나 같은 어시스트 로이드는 좋은 어시스트 로이드라는 의미인 거지? 그러면 카인은 나같은 어시스트 로이드를 원하고 있는 걸까. 나는 사랑받았었던 걸까?

 

"카인에게는 어시스트 로이드 있어?"

 

"없어! 츠바키도 알고 있으면서 물은 거 아냐? 나 같은 일반인은 이 에어 바이크를 감당하는 것도 벅차거든."

 

나는 조금 고개를 기울여 카인을 응시했다. 카인이 운전 중이라서 나를 보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어째서일까. 어쩌면 오너는 카인이랑 닮은 순진하고 바보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어. 

 

"나는 사랑받았을까? 내 오너가 카인 같은 사람이라면 좋겠네. 그랬다면 지금처럼 오너에 대한 데이터만 사라지지도 않았겠지만..."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츠바키는 오너에게 사랑받지 않았을까? 오너와 개발자의 정보가 같이 없는 걸 봐서는 개발자가 직접 츠바키를 만들어서 오너로 등록했다는 것 같은데, 어지간히 소중하지 않으면 보통 그러지는 않았을 거야. 그러니 난 츠바키의 오너를 꼭 찾아주고 싶어."

 

"소중한 내가 손상된다면 카인이 빚을 지게 되니까가 아니라?"

 

"윽, 아픈 곳을 찔렸네. 아하하, 물론 그 이유도 있어. 츠바키는 그 이유 때문에 내 생활을 위해서 이렇게 협조해주는 거지? 그렇게 다정한 너를 그냥 폐기 하고 싶지는 않은 것도 이유야. 이런 건 이상해?"

 

"이상해. 그래도 좋아. 내 오너를 찾을 때까지 나를 보관해줄 수 있어? 카인이  곤란 해질 텐데도?"

 

"아아, 책임지고 너를 제대로 오너에게 데려다준다고 약속할게!"

 

약속, 자동으로 기록될 텐데도 기억하려는 것처럼 약속이라는 단어를 입 안에서 굴리다 카인을 보았다. 지나치게 기뻐하는 표정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입 안을 잇새로 얕게 깨물었다. 인간처럼 비릿한 철분 맛이 나는 게 아니라 조금 따끔거리는 전류가 느껴졌다.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그에게 필사적이라는 걸 깨달은 건 처음 보는 거리와 흘러나오는 가사를 인식하기 싫을 만큼 내 감각이 그에게 향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챘을 때. 

 

***

 

 

상공을 시원하게 날던 에어 바이크가 천천히 정차하고 내린 곳은 작은 메인테너스 샵이었다. 카인의 에스코트로 사이드카에서 내려 문을 밀고 들어가자 붉은 머리와 보랏빛의 눈을 가진 어시스트 로이드가 우리를 맞아줬다. 카인은 그 어이스트로이드를 클로에라고 부르면서 라스티카라는 남성에 대해 물었다. 클로에라는 남성 형태의 어시스트 로이드는 친절하고도 귀엽다고 느껴졌다. 나는 카인이 클로에에게 나를 소개하기 전에 선수쳐서 내 정보를 밝혔다.

 

" 쿄우야 츠바키, 보다싶이 어시스트로이드고 오너를 알 수가 없어. 카인이 도와줄 수 있다고 해서 여기에 왔어. 클로에? 잘 부탁할게."

 

"나는 클로에, 라스티카의 어시스트 로이드야! 오너를 알아낼 수 있으면 좋겠네. 오너랑 함게 있으면 즐겁잖아!"

 

"그래? 오너에 대한 정보만 없어서 잘 모르겠어."

 

"소중히 다뤄지고 소중한 오너를 잔뜩 돌볼 수 있는 건 즐거우니까 츠바키의 오너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줄게!"

 

"고마워, 클로에. 다정하구나."

 

클로에와의 대화를 듣던 카인이 자기보다 친해진 것 같다는 말을 던졌다. 그렇게 말하는 카인의 얼굴은 나한테 친구가 생겨서 기쁜 것 같은 표정이라고 인식됐다. 이윽고 클로에가 라스티카라는 이름을 부르자 안쪽에서 엔지니어같아 보이는 청년이 나타나 우리에게로 걸어왔다. 

 

"라스티카, 이 아이의 오너를 알 수가 없어서 혹시 라스티카라면 알아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데려왔어. 부탁할 수 없을까?"

 

카인을 알아본 라스티카에게 카인이 사정을 설명하고 그걸 또 클로에가 부드럽게 설명했다. 라스티카라는 클로에의 오너가 클로에를 바라보는 눈에는 편안함과 안심, 그리고 애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간단히 알 수 있었다. 클로에와 라스티카가 애기하는 동안 나를 쳐다보는 카인을 돌아봤다. 눈이 마주쳤지만 내가 눈을 피해버리고 말았다. 카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한데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 

 

"나는 카인의 눈같은 노란색을 싫어하는 것 같아. 어째서인지 너의 눈을 볼 수가 없어."

 

나의 말에 카인은 아깝다는 듯이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손에 쥐었다. 고작 인공적인 머리카락, 가발같은 건데도 카인이 소중히 다뤄주고 있다는 것이 알고 싶지 않아도 전해졌다. 

 

"아쉽네. 난 츠바키의 머리카락같은 노란색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데 말이지! 같은 노란색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잖아? 으음, 역시 나랑 눈을 맞추기 싫을 정도로 싫은 건 어쩔 수 없나. 아, 어쩌면 너의 오너가 노란색을 싫어했을지도 모르겠어. 어때? 츠바키, 너는 정말로 노란색을 싫어해?"

 

이상한 질문이다. 내 오너가 나를 만들었다는 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도 오너가 프로그래밍 했을텐데 내 의사를 묻는 건 내 정체성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똑바로 카인의 눈을 바라봤다.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똑바로 부딫혀오는 눈빛이 순수하게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싫은 게 아니라 거북한 걸지도 모르겠어. 노란색은 좋아. 그렇지만 카인의 눈은 너무 빛나잖아. 그 눈 진짜야? 노란색 유리알갱이들을 태양으로 녹여서 박아놓은 것 같아."

 

"당연히 내 진짜 눈이라고! 츠바키가 노란색을 좋아해서 다행이야. 츠바키가 스스로를 더 좋아해줬으면 해."

 

말을 끝내는 카인의 눈썹이 조금 경직돼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처음에 폐기해도 상관없다는 말이 아직까지 신경이 쓰였었던건가. 그가 풀어진 얼굴을 하고 있자 라스티카가 카인을 바라보았다. 어색한 미소를 그리고 천천히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카인을 두 팔 안에 끌어안았다. 부드럽고 반기는 인사 행위에 카인도 라스티카를 끌어안아주며 인사했다. 특별한 인사를 끝내고 라스티카가 내게 다가왔다. 

 

"오너만 알 수 없다는 건 꽤나 복잡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범죄 관련은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그래도 카인, 알고있지?"

 

"그래. 무신호 어시스트 로이드는 위험하고 범죄 관련일 수도 있지만... 지켜주고 싶다고 생각해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나는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얼굴로 클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클로에는 나를 안아주며 자신도 지켜주겠다고 말해줬다. 클클로에를 보고 있자니 사랑 받는 어시스트 로이드는 이런 존재라는 걸 자연히 알게 됐다. 꾸밈 없이 밝고 주인을 가장 신경쓰는 상냥함이 스며든다. 우리를 보고있던 라스티카가 클로에처럼 따스하게 웃었다. 

 

"안녕, 츠바키. 엔지니어인 라스티카라고 해요. IC칩을 삐기 위해서 배터리를 뺄건데 괜찮죠?"

 

배터리를 뺀다는 거 내가 정지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걸 알고 있기에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폐기당할지도 모른다. 설령 폐기당해도 괜찮지만 나는 카인을 믿었다. 나는 쉽게 사람을 믿는 어시스트 로이드구나. 인간에게 좋을대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내 자의인 것처럼 느껴져서 직접 의자에 앉아 상의를 걷어올렸다. 배터리가 들어있는 왼쪽 가슴을 꾹 눌렀다. 

 

"배터리는 카인이 빼줬으면 해. 내가 너를 믿으니까 부탁할게."

 

라스티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고 카인은 의외라는 듯이 놀랐지만 눈에는 기쁨이 담겨있는 걸 숨기지 않았다. 

 

"믿어줘서 고마워. 금방 끝날거야."

 

카인이 왼쪽 가슴에 살짝 손을 올리자 나의 얼굴이 경직되면서 동작을 멈췄다. 마나 플레이트가 가슴에서 빠져나와 카인의 손에 올려지고 카인이 그것을 라스티카에게 건넸다. 라스티카는 일시정지된 츠바키의 목에서 IC칩을 꺼내고 익숙한 동작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츠바키의 목덜미에 꽂히고 마나 플레이트를 카인이 집어넣었다. 점등됐던 시야가 곧 빛으로 새하얗게 빛나면서 익숙한 세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일시정지 했었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로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 건 내가 확실하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증거일 것이다. 

 

"내 오너에 대해서 알 수 있었어?"

 

카인과 라스티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클로에만이 온화하게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었다. 카인은 곤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일시정지 됐을 때 둘 사이에 어떠한 대화가 오갔고 그 애기를 나한테 쉽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인간의 감정을 읽는 게 쉬워서가 아니라 나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알아채게 만들었다. 라스티카는 입을 다물고 클로에를 바라봤다. 어떤 사실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카인도 납득이 안가는 듯 찝찝해보이는 얼굴이었다.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어째서 저렇게 신경 써주는 걸까.  라스티카는 눈을 감고 낮은 숨과 함께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미안, 카인. 나는 말할 수 없어. 츠바키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것도 사실이야. 어떻게 할래?"

 

"얘기는 내가 츠바키에게 따로 하도록 할게. 대단할 거 없는 문제잖아! 가장 먼저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하기로 하자. 오너가 등록되면 서큐리티 시그널을 발동시킬 수 있어. 그럼 츠바키가 폐기 될 위험성은 사라져."

 

"알겠어. 일단 너와 츠바키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 할게. 이 이상은 도와줄 수 없어."

 

"라스티카... 고마웠어. 뭔가 알게 된다면 알려줄 수 있을까?"

 

"미안해, 대답해줄 수 없어... "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한 라스티카가 클로에를 끌어안았다. 무척이나 소중한 걸 잃고 싶지 않은 것처럼 두려워하는 라스티카가 우리를 내보냈다. 바으로 나와서 본 카인의 눈은 결의에 차있었다. 순수하게 정의를 향하는 눈빛, 내가 아니라 다른 어시스트 로이드였어도 카인은 똑같이 행동했을 거란 걸 알면서도 나는 안심했다. 그에게 발견된 어시스트 로이드가 나라서 다행이라고. 나는 내 IC칩에 새로 입력된 정보를 확인했다. 알 수 없었던 오너가 카인으로 등록돼 있었다.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우선 나를 폐기 당하지 않기 위해 비어있는 오너를 카인으로 등록하고 서큐리티 시그널을 발동시킨 모양이었다. 나는 에어 바이크에 올라타는 카인의 옆으로 가서 나의 사랑스러운 오너를 불러봤다. 클로에가 말한 오너와 함께면 즐겁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너, 이제 난 카인의 집으로 가게 되는거야?"

 

내게서 오너라고 불린 카인의 표정은 어쩐지 복잡해보이다가도 선선히 수긍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내가 오너가 된게 마음에 안들 수도 있겠지만 기다려줘. 너의 오너를 찾기로 약속했으니까 꼭 찾아줄게. 뭐, 그때까지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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