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미즈] 상영관
글재활 챌린지 1회차 - 약 1900자
불이 꺼진 상영관을 조용히 가로질러 키타로는 영상의 유일한 관객의 옆으로 다가섰다. 스크린에서 나오는 빛을 받아서인지 그의 머리카락 끝이 희끄무레했다. 실제로는 흰색보다는 검은색이 더 오랜만에 보는 것이긴 했으나 키타로 속의 그는 검은 머리의 인상이 강해서인지 어쩐지 낯선 기분이 들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의 색다른 모습은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법이어서 키타로는 그의 옆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는 화면을 집중하여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열기 어린 시선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틀어 키타로와 눈을 마주쳤다.
"...매너 없는 놈 같으니라고. 얼굴에 구멍 나겠어."
"당신의 얼굴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바람에."
"이젠 멋쩍은 척도 하지 않고."
"내가 당신에게 고백하고 차인 때부터 벌써 수십년이 지났는데 그때마다 일일히 그런 반응을 하는 쪽이 이상하지 않을까요, 미즈키 씨."
한 마디도 지질 않는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뻔히 보이는 질린 얼굴을 한 미즈키를 향해 키타로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가 매정하게 굴어도 그게 진심이라고 믿어 상처받기에는 그와 같이 지내온 시간이 길었다. 미즈키 씨도 분명 그걸 알고 있겠지만, 그로서는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기에는 내면에 많은 갈등이 떠올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알았다.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는 키타로를 보며 스스로의 머리를 헤집은 미즈키가 커다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시선을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으로 돌렸다. 그를 따라서 키타로도 흘긋 스크린을 바라봤다. 그가 보내왔을 인생의 장면들이 무성영화처럼 편집되어 스크린 속을 흘러가고 있었다.
"이렇게 내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그런가요? 인간은 죽을 때 주마등을 본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쪽에도 퍼져있는 당연한 상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모든 인간이 보는 건 아니니까. 아마 내가 아는 녀석들 중에는 본 적 없는 녀석이 태반일거다. ...아, 불."
"제가 붙여드릴게요."
키타로가 손가락을 뻗어 미즈키가 빼문 담배 앞에 가져다 대자 파직, 정전기가 튀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다. 체내 전기를 활용하면 간단한 일이지만 미즈키는 그다지 좋은 얼굴을 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미즈키는 키타로가 불을 붙인 직후는 썩 좋은 얼굴을 하진 않았지만, 상황을 감안해서인지 참기로 한 것 같았다. 스읍, 크게 담배를 빨아들인 그가 키타로의 반대쪽을 향해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하잘 것 없는 인생이었어. 그저 아등바등 어떻게든 위를 향해 올라가려고 기를 쓰기나 하고. 나름대로 참 치열하게 살았는데 허무했지."
"......."
"키타로, 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전까지의 인생은 너를 만나기 위해 있었던 것이라고 그때도, 지금도, 강하게 생각한다."
"....나를 만나서 당신은 행복했나요?"
"새삼 그걸 묻는 거니?"
미즈키가 하핫, 작게 웃음을 터트리는 것을 키타로는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알고 있다고 하지만 말로 확인받고 싶었다. 그를 만나게 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될 테니까. 담배를 손에 든 채로 눈을 살짝 내리깔고 짧게 생각에 잠긴 듯했던 미즈키는 아직 한참 남은 담배를 비벼 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키타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난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행복했어. 키타로.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죽어서 네 곁에서 사라지겠지만, 내 사랑은 너에게 남기고 가마."
"미, 즈키 씨...."
키타로는 팔을 들어올려 미즈키를 마주 끌어안았다. 언제나 닿을 때면 뜨거운 사람이었는데, 자신과 비슷한 정도의 온도로 느껴져서 공연히 눈가가 뜨거워졌다.
"영화가 끝난 모양이군. 마지막에 만날 수 있어서 기뻤어."
언제나 네 행복을 빈다. 그 소리가 귓가에 떨어짐과 동시에 상영관의 불이 켜졌다. 그리고 안에 남은 것은 어정쩡하게 팔을 들어올린 채로 서 있는 키타로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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