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살인마의 코빌사

가끔 있는 날

사비나의 악몽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잠이 들지 않아 한참을 허공따위나 바라보다가 끝내 자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는 날. 사비나는 그런 날이 올때면 잠옷 차림으로 밖을 나선다.

좀비가 무섭지 않느냐고? 무슨 그런 말씀을. 사비나는 근 3개월간 좀비가 무서웠던 적은 없다. 조금 아픈 고통과 죽음이 싫었을 뿐이다.

집 밖의 계단에 걸터앉은 사비나가 오늘 막 구해온 새 담배를 꺼내어 한 대 입에 문다. 하필이면 재수도 없게 라이터가 망가져 있었다. 한참을 칙, 칙 소리를 내며 부시를 튕기다가 결국 켜지지 않는 불을 원망하며 라이터를 신경질적으로 던진다.


“짜증나…”


사비나는 제 무릎을 끌어안고 머리를 무릎에 박았다. 입에 물린 담배가 조금 구겨졌지만 그런걸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사비나는 그 자세 그대로 짧은 꿈을 꾼다.


세상이 푸르르고 좀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비나는 소리내어 웃는다.

저곳에 빈 집이 있다. 아주 크고 번쩍이는 집이. 사비나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숨이 턱 끝까지 찰 정도로 달린 사비나가 문을 벌컥 열어 제낀다. 사비나는 그것들을 본다.


길게 늘어져 흔들거리는 그것들을.



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와아빠와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엄마아빠아빠아빠아빠아빠아빠아빠아빠아빠아빠아빠아빠엄마아빠엄마아빠엄마아빠엄마아빠가대롱대롱엄마가끼익끼익아빠가흔들흔들엄마가왔다갔다아빠가늘어지고엄마가늘어져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이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비나는 잠에서 깨어난다. 퍼뜩 고개를 들었을 때, 잠결에 꽉 쥔 손이 저려와 이것이 현실임을 깨닫는다. 습관적으로 제 목을 더듬은 사비나가 떨리는 손을 내려놓는다.


“야. 길바닥에서 자고싶으면 더 좋은 곳가서 쳐 자지 왜 여기서 자고 지랄이야?”


사비나가 조용히 숨을 고르는데 불만가득한 목소리가 사비나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코니. 사비나가 식은땀에 젖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지만, 코니는 신경도 쓰지않고 저쪽 쓰레기장이 좋을 것 같다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얼씨구, 누가 봐도 나 악몽꿨어요~ 하는 면상이군. 그걸 왜 여기서 꾸시냐고요. 길바닥 좀도둑 출신인거 티내는거냐? 내가 눈치없이 끼어든거냐? 응?”


사비나가 미간을 구기고 에라이, 하며 코니의 정강이를 주먹으로 친다. 아픈 것은 제 손이었지만.


“~~악!”


사비나가 가여운 제 오른손을 부여잡고 호호 불어댄다. 그것들을 가만히 관전하던 코니가 참 나, 헛웃음을 흘리곤 쯧쯧 혀를 찬다. 그리곤 아이가 부모의 어깨에 올라타듯  사비나의 어깨에 걸터앉는 시늉을 한다. 사비나는 제 어깨가 곧 박살날 것이라며 이 미친 새끼, 미친 모히칸새끼!! 라고 끙끙댄다. 아무리 힘을 주고 밀어내려고 해도 점점 더 무거워질 뿐이라 사비나는 결국 포기를 택했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지만 두 팔은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릴 뿐이었다.


“내가… 허억… 내 허리가 나가면, 개새끼야 니가 나 모시고 다녀라 이 씹…”


“내가 왜 그래야하지?”


낄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목 뒤로 육중한 무게가 느껴져 사비나는 비명을 지른다. 


“이 미친새끼야아아아아악!!!!!!!!”


결국 사비나가 무게에 못 이기고 철퍽 엎어진 후에야 그 고문은 끝이 났다. 헥헥거리면서 바닥을 기는 사비나의 뒷덜미를 잡아 쑥 올린 코니가 그것을 빤히 바라보고, 사비나가 눈을 홉뜨며 코니의 머리를 빡 내리친다.


“그 힘으로 뭘 할 수 있긴 하겠냐? 젓가락 안경잡이.”


코니가 그대로 사비나를 던지곤 담배를 꺼내어 방독면 아래로 집어넣는다. 언제봐도 신기한 흡연 방식 이었다.


“그래서 여기서 왜 청승 떨고 있었냐?”


“니가 알아서 뭐하게? 방독면 모히칸.”


씩씩대며 돌아온 사비나가 코니의 라이터를 강탈하여 담배에 불을 붙인다. 비어버린 손을 바라본 코니가 사비나의 머리를 잡고 꽈아악 힘을 주고, 사비나는 끼에엑 하며 라이터를 코니의 얼굴로 던진다. 


“달밤에 뒤지고 싶냐?”


“뒤지고싶은건 너겠지. 난 절대 혼자 안 간다. 죽기전에 악이란 악은 다 써서 빌 깨울거야.”


“응 깨우기전에 죽이면 그만이야~”


“비이이이이이이일!!!!!!!!!!!!!!!!!!!!!!!!!”


사비나의 비명이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코니가 이 미친 새끼가 진짜 제대로 미쳤구나 싶어 사비나의 입을 틀어막지만 늦었다. 사비나의 외침을 들은 빌이 흐트러진 모습으로-그마저도 아름다워 코니가 헛구역질을 했다- 뛰쳐나온다. 갑자기 눈을 올망올망 뜬 사비나가 훌쩍이고, 빌은 후다닥 달려와 뒷목이 잡혀 들어올려진 사비나를 획 뺏어 옆구리에 낀다.


“코니!!!!”


“왜!!! 저 새끼가 먼저 그랬어!!! 저새끼가 내 면상에 라이터 던졌다고!!!!”


“그렇다고 해서 애를 울리면 어떡하나!! 자네보다 어린데 봐주는 마음이 있어야지!!!! 안되겠네. 빨리 들어오게!!!”


빌이 코니의 귀를 콱 잡아 끌고가고, 코니는 억울하다며, 이럴 수는 없다며 바락바락 악을 쓰며 끌려간다.

집 안에 들어와 코니를 소파에 앉힌 빌이 맞은 편에 사비나와 함께 자리한다. 제가 잘못한게 없고, 저 젓가락이 약해 빠진 것이 잘못이라며 계속해서 꿍얼거리는 것을 빌이 습, 하며 경고한다.


“사람이 약한건 잘못이 될 수 없어. 자네와 내가 힘이 센 것이 잘한 것도 아니고. 건강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게 약한 사람을 괴롭힐 명분이 되지는 않아.”


빌이 진지하게 말하지만 코니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약해빠진게 잘못이 아니긴. 짧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런 세상에서는 그렇게 말할수도 있겠지. 약한 자의 물건을 빼앗으며 그러게 누가 약하랬나, 하며 말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게야. 하지만 그건 잘못된 일이야. 내가 자네보다 힘이 세다고 해서 자네를 괴롭히면, 자네는 다 내 탓이라며 받아들일 수 있나?”


척 팔짱을 낀 코니는 다른 곳을 쳐다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대치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가만히 코니를 바라보던 빌이 작게 한숨을 내쉰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차를 내어오겠네. 다투지 말고 잠깐 기다리게.”


빌이 부엌으로 향하고 거실에는 적막만이 남아 코니와 사비나를 맴돈다. 사비나는 조금 질린 얼굴이 되어있었다.


“야. 그냥 그렇다고 말하면 되지 뭘 끝까지 토를 달아? 너 가끔 진짜 미친놈같은거 알지? 뭘 어떻게 살았으면 그러냐? 주변에서 미쳤냐는 이야기 한 번도 안들어봤냐?”


사비나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제 관자놀이 옆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묻는다.


“조온나게 들어봤다, 씨발아. 부모도 미친 자식이라고 생각해서 하루 종일 병원에 처박혀서 썩어봤다. 됐냐?”


짐승이 위협하는 듯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로 말 한 코니의 목에는 핏대가 서있었다.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넘기리라고 생각했던 사비나가 조금 놀란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미친 것도 아니고 반사회적 인격장애다. 됐냐? 아, 멍청해서 이렇게 말하면 모르겠지? 영화에서 나오는 사이코패스다, 사이코패스야. 사인은 안 받습니다. 사진도 안 찍어요 씨발놈아.”


“미친새끼가 왜 갑자기 급발진이야? 그냥 미친거 아니라고 알려줘서 존나게 고맙다. 없던 궁금증이 싹 풀리네.”


예전같았으면 쫄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 것인데. 지금은 목숨보다 가오가 더 중요한 사비나가 코니의 말을 끝까지 비꼰다. 

그렇게 잠깐의 정적. 사비나는 코니가 평소와 다름을 눈치채고 있었다. 평소같다면 눈 앞의 작은 탁자를 던지고도 남았을텐데 양 손은 팔짱을 낀 채 꼼짝도 하지 않았고, 잔뜩 힘이 들어가 평소보다 더욱 커보이는 몸집은 사비나가 아니라 누가 보아도 이 사람이 지금 무시 못 할 정도로 화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나 사비나는 저딴 모히칸 새끼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면 뭐 어떻다고? 저 새끼는 기든 아니든 변함없는 또라이 새끼인데.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비나는 끝까지 냉정하기엔 저도 모를 정도로 잔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살아있는 이래 가장 즐거웠던 한 달을 무시하지 못할만큼.

혼자 입을 삐죽인 사비나가 다리를 까딱이다가 입을 연다.


“우리 엄마아빠도 나 싫어했어.”


코니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사비나도 바닥을 바라보고 있어 상관없었다.


“제일 힘들 때에 태어났다고, 안 그래도 없는 돈 축내는 식충이라고 미움만 받았다. 너 같이 병원에 처박을 돈은 없는 주제에 내보내고는 싶어서 집 밖으로 쫓아낸 적도 많아. 못 들어오게 문도 잠궈둬서 경찰이 열어준 적도 많고.”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분명히 있었다. 코니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조금씩 숨을 고르고있었다. 그것이 사비나의 고해때문인지는 아마 아무도 모르겠지. 코니 본인도 모를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중학생 때, 둘 다 집에서 자살했어.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둘 다 집에서 대롱대롱.”


대롱대롱대롱대롱대롱대롱대롱

흔들흔들흔들흔들흔들흘들흔들

사비나가 잠시 멍때리다가 훌쩍인다.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속이 조금 울렁이는 것 같았다.


“너… 내가 집 털고 다닌거 알지? 니가 눈치 깐거 나도 눈치 깠어. 나 눈치 없으면 뒤지는 인생 살았거든. 엄마 아빠 그렇게 되고 보육원에 들어갔는데… 밤마다 꿈에 나오는거야. 아직도 나와. 내 목도 엄마 아빠처럼 매달려있는거야. 돈이 없으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길바닥 생활을 좀 했어. 언니 오빠들한테 배워서 도둑질 했어. 차도 털고, 소매기도 하고, 가끔은 간 크게 집도 털고.”


사비나가 발 끝으로 바닥을 탁탁 두드린다. 


“니가 뭐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도… 니가 또라이에 미친놈이라고 말한거 번복할 생각 없어, 미친놈아. 근데 뭐… 나도 그렇게 깨끗한 놈 아니거든. 행복한 놈도 아니고. 너도 알고 있잖아? 미친놈은 미친놈 알아보는거지.”


사비나가 잠시 창 밖을 보다가 다시 코니를 마주한다. 언제부터 저를 보고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코니는 지금 사비나를 보고있었다.

사비나도 코니를 빤히 바라보다가, 중지손가락을 올려보이고 코니는 드디어 탁자를 엎는다.

사비나가 키득키득 웃고 코니는 다시 팔짱을 낀 채 소파에 등을 기댄다.


“우리 부모는 돈 많았어. 어릴 때부터 또래 패고, 살아있는거 있으면 죽이는 자식새끼 날마다 다른 병원에 처 보낼만큼. 아직도 어이없네, 씨발…”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돌아온 코니가 중얼거린다. 사비나는 다시 발을 까딱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걍 그게 다야. 니 말대로 미친 자식이 고쳐질 기미가 안보이고, 의사도 고치는게 아니라고 하니 그냥 병원에 격리시킨거지. 집에 와서는 손 씻는 시간까지 재서 나 통제하고. 나중에는 내가 뭔 생각하는지도 다 통제했을 듯. 이 시간에 감히 하느님 생각을 안해? 존나 패는거지.”


미친새끼… 사비나가 질색한 얼굴로 중얼거리지만 코니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렇게 존나 맞고 좆같은 시간 지키고 병원에서 썩는데 동생은 정상이라더라. 그 뒤론 동생은 어화둥둥 내새끼였지. 난 뭐… 맞아야 말 듣는 개였고. 그 개새끼한테 물려죽었으니 개같이 억울해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좀비 돼서 내가 패 죽였거든.”


“속 시원했어?”


“몰라. 걍 죽이는데 그런게 있겠냐?”


“나였으면 시원했을 것 같은데. 넌 역시 미친놈이야.”


코니가 중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사비나 역시 중지손가락을 올린다. 

둘의 기묘한 대치가 이어지는 동안 빌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미 식어버린 차 위로 빌의 눈물이 떨어지고, 그런 차를 내어갈 수 없어 다시 차를 끓인다.

아이들이 마시는 차 정도는 맛있었으면 좋겠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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