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빌사

자투리

사비나의 과거를 듣기 위해서는 꽤 먼 길을 돌아 올라가야한다. 하지만 사비나의 가정이 불우하였다던가, 하루가 멀다하고 얻어 맞았다는 것, 엄마가 도박 중독에 아빠가 알코올 중독이었기에 돈이 항상 부족했다던가, 그로 인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는 이전에 했으니 굳이 말하지 않겠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좋을까. 사비나는 보육원에서 지내면서도 언제나 돈에 대한 욕심과 강박에 갇혀살았다. 돈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제 목은 떨어져나갈 것 같이 뜨거워지고, 사비나는 그 감각이 미치도록 싫었다. 어쩌면 정말 미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친절한 수녀님, 착하지만 장난꾸러기인 보육원의 동생들, 다정한 언니 오빠들을 차치하고 사비나는 언제나 겉돌며 돈만 쫒았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이러지 않겠지. 어찌보면 자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기혐오는 사비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하지만 사비나의 속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덕분에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 또한 없었다.

그걸 제외하면 사비나는 나름 평범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지긋지긋하지만 평범한 학교를 다니며 가끔 친구들의 물건을 슬쩍하고 사는 그런 평범함 있지 않은가.

하지만 사비나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사비나의 도벽은 강박과도 같다는 점이였다. 사비나는 도벽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 있노라 생각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을 모르는 채로.

하루는 같은 조의 학생이 말했다. ‘사비나가 불쌍하지도 않아?’ 다 같이 하는 조별과제의 조장이었다. 사비나에게 쉬운 역할을 줬다는 다른 조원의 불만에 그리 말했다. 사비나는 불쌍하게도 부모님을 여의고 점심값을 낼 돈 조차 없어 교실에서 전부 듣고있었는데도.

이후의 일은 사비나 자신도 뜨문뜨문 기억한다. 박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죽어라 패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때문에 선생에게 불려간 것이나 교장실로 불려가 각자 보호자를 불러오라고 했던 것…. 그것이 사비나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사비나는 그렇게 하교하고, 그 길로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보육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비나를 아는 모든 이들은 사비나의 행적에 대해 궁금해 했으나-수녀님은 꽤나 절박하게 찾았던 것 같았다- 그게 끝이었다. 사비나는 그렇게 잊혀졌다.


작은 마을에서 도망친 사비나는 가진 것 하나 없이 루이빌로 향했다. 배웠던 것처럼 차를 훔치고, 이곳저곳 박고 박혔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사비나는 훔치는 법만 배웠을 뿐, 차를 모는 법은 배우지 않으니. 어렵사리 도착한 루이빌은 사비나의 생각보다 더욱 좋았다. 엄청났다! 놀이공원 한 번 가본 적 없는 사비나로써는 번쩍이는 루이빌이 기꺼울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그래. 사비나는 어린날의 언젠가에 멈춰있었을지도 모른다. 표출되어 없어져야 했을 불안정한 감정들이 이제야 쏟아져 나오는 것 처럼.

신난 아이처럼 사비나는 빈 집을 털었다.(개그가 아니다.) 그간 도둑질 해서 모은 돈과, 패물들을 팔아 마련한 돈을 모으니 조그만한 원룸을 구할 수 있었다. 사비나는 16년만에 가진 자신의 공간이 사랑스러웠지만 한 편으로는 증오스러웠다. 루이빌의 번쩍이는 건물들 중 제 것 하나 없고 겨우 이것이라는 생각에. 그런 생각이 들어 사비나는 더욱 더 강박적으로, 더 열심히 도둑질했다. 소매치기도 도둑질도 서슴치 않았다. 이제는 그것이 제 직업같이 느껴졌다. 남들이 번 돈을 훔친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은 없었다. 대체 왜 그것이 문제라는 것인가? 월급이나 급여 역시 남의 돈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논리는 구멍투성이에 모순덩어리였지만 사비나는 애써 신경쓰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자신을 지켜야했다.

그런 날이 쌓이고, 쌓이고, 쌓이자 자신의 이야기가 뉴스에도 나왔다. ‘최근 좀도둑이 기승….’, ‘금품 분실에 주의…’ 같은 것 말이다. 사비나는 그것을 보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아니, 조금은 뿌듯했나? 아무것도 못하고 목이 뽑혀 죽으리라 생각했던 자신이 좋든 나쁘든 한 획을 그었다. 신문의 한 면을 차지했다! 그것만으로도 사비나는 살아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루이빌의 요주의 인물은 분기별로 도둑질했다. 딱히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밥 먹을 돈이 부족하면 훔쳤고, 생활비가 부족하면 훔쳤다. 루이빌에서만 생활한 것은 당연하게도 아니다. 몇 개월은 웨스트 포인트에서, 며칠은 멀드로에서, 또 몇 주는 폴라스 레이크에서…. 그렇게 몇 년을 살았을까. 하루 벌어-번다고 하면 안되겠지만- 하루 사는 사비나였지만 살다보니 모이는 돈이 있었다.

그렇게 살면 죄책감도 괴로움도 없었을까? 아니. 사비나는 종종 제 자신이 혐오스러워 살 수 없었다. 웃긴 일이지. 그것으로 하여금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은 주제에.

사비나는 언젠가 털었던 작은 노부부의 집을 기억한다. 꼭 어린 날의 자신이 살던 집처럼 방 한칸과 화장실, 부엌으로 나뉜 작은 집. 사비나는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딱딱하게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방과 신발장을 나누는 저 문을 열면 목매달린 시체가 대롱거리며 저를 반겨줄 것 같았기에. 어떻게 그 집에서 나왔는지는 기억하지도 못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 밖이었고, 미친듯이 페달을 밟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시점에서 돌아가 증거를 남기지 않았나 확인하고 싶었지만 끝내 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 후 사비나가 얼마나 집에 처박혀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비나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사비나 역시 아는 이 한 명도 없었으니. 증거가 남아 잡혀가면 어떡하나 싶다가도 눈만 감으면 저를 쫓아오는 목이 늘어난 괴물이 나타나 잡혀가는 것 따위의 걱정은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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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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