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살인마의 코빌사

최고의 날

(사비나의)

코니와 사비나가 서로 제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밤 이후, 사비나는 한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루 종일 병원에 자식을 처박아둘 재력을 갖춘 집…

침대에 앉아 두 눈을 꾹 감고 곰곰이 생각을 하던 사비나가 벌떡 일어나 코니의 방 문을 열어 제낀다. 이제 막 씻은 것인지 팬티 바람으로 바지를 주섬주섬 입고있던 코니와 두 눈이 딱 마주쳤지만 사비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본론을 꺼낸다.


“야. 너네 집 털러가자.”


“갑자기? 약했냐?”


신경쓰지 않는 것은 코니도 마찬가지였지만.


“니네 집 돈 많다매. 구라냐?”


“이런 씹… 내가 그딴 구라쳐서 얻는게 뭔데? 이거 진짜 보기 드문 또라이새끼네.”


“거울 봐라 드문가. 구라 아니면 털러가자.”


바지를 제대로 입은 코니가 허리를 펴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고개를 까딱인다.


“안될건 없지. 언제 갈건데?”


수락이 떨어지자 사비나는 금방이라도 방방 뛸 것 같은 얼굴이 된다. 아니, 실제로 방방 뛰었다.


“지금 당장???? 너 지금 씻은거지? 이러려고 씻은거네, 맞지??? 빌 한테 말하러 간다!!! 준비하고 있어!!!”


코니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사비나는 제 할 말만 우다다 하고선 재빠르게 뛰쳐나갔다. 코니는 역시 자기보다도 더 또라이라는 지극히 무례한 생각을 하며 제 목티를 주웠다. 

집이라, 그것들이 아직도 있으려나. 그런 생각이나 하며.


*


코니의 수락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빌 역시 좋다고 했으며 코니는 사비나의 말마따나 대충 준비를 마쳤고, 사비나는 그 날 새벽 이후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준비해놨기에 1분도 지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자, 앞장 서라. 방독면 모히칸!”


코니가 좋아 죽으려는 사비나를 한 번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사비나는 그런 것에 일일히 신경쓸 수 없었다.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로 앞장을 서는 코니를 따라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바쁜 사람이었기 때문에. 빌은 사비나의 시커먼 속도 모른 채 그저 웃으며 둘을 지켜봤다. 그 날 이후 여러모로 가까워 진 것 같았기 때문에.

셋의 베이스 캠프에서 얼마나 걸었을까. 코니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채 20분도 되지 않은, 루이빌에서 가장 부자들만이 산다고 할 수 있는 주택가였다. 사비나는 정말이지 눈물이 왈칵 나올 뻔 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어디더라… 아, 저기다.”


그리고 코니가 가리킨 곳은 그 중에서도 가장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사비나는 코니를 껴안고 우쭈쭈 하고 싶었으나 마지막 남은 이성이 그것을 거부해 빌을 끌어안고 있었다.


“어, 어, 어어어얼른 가자. 빨리. 빨리빨리!!!!”


코니가 그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보며 손가락으로 제 관자놀이의 옆을 빙빙 돌렸지만 잔뜩 상기된 사비나에게는 그것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간 코니의 (전)집은 정말 장관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1층의 전면은 유리로 되어 내부가 전부 보일 것 같지만 돈을 어떻게 처바른건지 테라스만 겨우 보이는 정도였고, 2층은 오른쪽으로 베란다가, 3층은 왼쪽으로 베란다 하나와 복도와 이어진 난간 따위가 있었다.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보는 사비나를 보고 쯧쯧 혀를 찬 코니 역시 가볍게 제 집을 둘러본다. 시간이 오래 지난 것도 아닌데 왠지 낯선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허허. 자, 어서 들어감세. 코니 자네도 챙길 것이 있으면 챙겨야지. 다른 사람들이 털지 않았다면 좋으련만.”


챙길 것이 있긴 할까? 코니의 소지품 하나, 생각 하나까지 통제한 이들의 집안에 과연 제것이 있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한 코니가 먼저 집으로 들어간다. 사비나는 달달 떨며 연신 좌우를 살핀다. 

집안 내부에 들어가고, 코니가 어딜 먼저 털어야 할지 말하려고 하는데 사비나는 무어라 말을 듣기도 전 부리나케 2층으로 올라간다. 도다다거리는 발걸음 소리를 들어보니 기가 막히게 부부침실을 찾아낸 것 같았다.

저 좀도둑 새끼는 진짜 제정신이 아니다. 코니가 한숨을 푹 쉬고 빌은 허허 웃으며 그것을 바라본다.


“나는 부엌에서 음식을 위주로 찾아볼테니 자네는 천천히 둘러보게. 말했듯 챙길 것이 있다면 챙겨보고.”


“에휴… 그래라.”


코니가 터덜터덜 층계참을 오른다. 그러고보니 그것들이 죽은 것이 2층이었나 3층이었나. 뒷 못을 긁적이며 기억을 더듬어보는데 가증스러운 소리가 코니의 귓가에 들어온다.


“아이고, 아이고~ 이런 으리으리한 집을 구하시고! 이런 엄청난 것들을 가지고 계시고!!! 듣자하니 개같이 아드님을 잡으셨다는데 이런데에서 도움을 막 주시고, 아유~~~ 아이고 고마워라!!! 이것도 챙겨가겠습니다!”


사비나가 한 쪽 손으로는 코를 틀어막고 남은 한 쪽 손으로는 시체에 끼워진 결혼반지를 쑥 빼낸다. 피부가 썩어들어가 부패된 손을 잡고 몇 번 흔들자 약해진 관절이 삐그덕거리며 빠졌지만 사비나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코니의 엄마(추정)의 목걸이, 반지, 귀걸이와 아빠(추정)의 반지를 싸그리 챙긴 사비나가 싱글벙글 웃으며 일어서고, 저를 보고 있는 코니와 눈이 마주친다.


“아이고~ 도련님! 어쩜 이런걸 그동안 숨기고 있을 수 있습니까? 조금이라도 늦게 왔다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깔깔 웃으며 다음 방으로 들어가는 사비나를 바라보며, 코니는 생각한다. 저 새끼가 여기 딸이었으면 진즉에 뒤졌을거다. 패물을 뺏겨 더더욱 처량해보이는 시체들의 머리를 지긋이 밟은 후 사비나의 뒤를 따라 들어가본다. 여기엔 뭐 털 것도 없을건데.


“야. 여기 서재다. 다른데 알려줄테니까 나와.”


“얼씨구. 도련님. 영화도 안 보셨습니까? 등잔 밑이 어둡다 몰라? 이래서 양놈들은 안돼.”


그리 말하는 사비나 또한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똑같은 양놈이었지만 그것을 일일히 따지지는 않았다. 사비나의 말뽄새에 빡친 코니가 책상을 걷어차고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이 있나 보자,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사비나가 이름도 복잡한 장편 소설 시리즈를 뽑아내자 그 뒤로 처음보는 금고가 나오는게 아닌가.


“이 미친 좀도둑새끼…”


순수한 감탄에 가까웠다. 그것을 알아들은 사비나가 낄낄 웃으며 감사하다며 커튼콜을 한 번 해주곤, 금고에 바짝 귀를 가져다 댄다.


“니네 엄마아빠 평소에 무슨 암호 쓰는지 모르지?”

“... 1234”


“꺼져 걍”


짧은 듯 긴 침묵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기어코 금고를 열어버린 사비나가 내용을 확인하곤 빳빳하게 굳어버린다. 초콜릿보다 조금 더 두꺼운 두께와 반짝이는 황금색. 사비나가 돌아버린 것이 아니라면 저것은 분명한 골드바였다. 금. 황금. 금괴!


“도련님!!!!!!!!!!!!!!!!!!!”


기어코 사비나의 이성이 끊어졌다. 코니에게 달려가 꽉 끌어안고 등을 싹싹 쓸어주며 바닥에 머리를 박고 절한다. 그 누가 이러지 않겠는가. 하나 두개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척 봐도 열 개 이상의 골드바를 본다면 누구든지 그럴 것이다.


“아이고, 아이고!!!!!!!! 나 같은게 감히 도련님한테 나대고!!!! 이 나쁜 좀도둑!!! 미친 좀도둑!!!!! 미쳤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도련님!!!!”


곧 울 것 같은 얼굴로 골드바를 싸그리 챙긴 사비나가 묵직해진 가방을 등에 맨다. 무거운 가방이 저를 끌어당기는 대로 뒤로 넘어갈 뻔 했지만 버텨낸다.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집으로 무사히 옮겨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사비나를 바라보는 코니는 정말로 사비나가 미쳤노라 생각했다. 눈이 돌아가 저를 껴안고 바닥에 머리를 박을 때, 코니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등골이 오싹해지기까지 했다. 인간의 욕망과 추악함에 의한 밑바닥을 본 기분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미친새끼…”


“암요!!! 제가 미친 새끼입니다 도련님!!!!!!!”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비나는 코니가 저를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든 말든 상관 없었다. 수많은 금괴와 장신구 따위가 제 손아귀에 들어왔는데 미친 사람 취급이 대수란 말인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1층으로 내려가니 빌 역시 어느정도 물자를 얻은 듯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 챙길 것들은 잘 챙겼나?”


“그럼요!!! 빌도 챙겼나요?”


“허허. 기분이 좋아보이는구먼. 그래. 이 정도면 한 달은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을걸세.”


“... …. …… 다 챙겼으면 얼른 가자. 나 속 안좋아.”


“아니, 무슨 일 있었나?”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제가 업어드릴까요???”


“꺼져!!!!!!!!! 너 때문이잖아 씨발아!!!! 아아악 이새끼를 데리고 오는게 아니었는데!!!!!”


결국 참지 못 한 코니가 악을 쓰며 밖으로 뛰쳐나간다. 빌은 어리둥절한 낯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사비나는 그런 코니를 보며 신경도 쓰지 않고 하하하핫 웃는다. 코니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코니에게 엿을 먹일 수 있는데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사비나에게 있어 최고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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