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칼

오류의 수정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카롤리나 러닝 중 로그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칼을 건들여 목덜미가 간지러운 것이 느껴졌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래서 주변의 진한 녹빛 잎사귀들에 햇볕이 반사되어 반짝인다. 카롤리나는 가을이 시작되는 지점을 이리 확실하게 느껴본적이 없다. 자신에게 세상이란 주로 실내에 있었고, 바깥은 화려하고 정숙한 영애들이나 거닐던 곳이었으니까.

’클라크 양은 역시… 특이하시네요.’

그냥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해줘도 다 알아 듣는데. 찻잔을 들고 대화를 할땐 부드럽게 웃으면서, 시선은 늘 조금 아래로 둘것. 왜 그래야 하냐고 물었을 땐 그것이 예법이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그들도 날 이해하지 않으니, 굳이 나도 노력하진 않을래. 카롤리나 클라크는 효율적인 선택을 했다. 어쩌면 게으르고, 편하지만 외로운 선택을.

’들었어? 그 이리스 가의 영애가 연 교류회에서…’

쑥덕거리는 소문이 싫어 아카데미로 와도 가끔씩 들려오는 이름들은 있었다. 이리스… 이리스… 누구였더라. 언제나 가운데에 앉아서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이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법이다. 자신은 늘 곁다리에서 책만 읽다가 조용히 돌아가곤 했으니. 틈새로 보이던 웃는 얼굴은 떠올랐다. 부드럽게 눈꼬리를 휘어 접은 미소. 항상 저리 웃고 있으면 피곤하지도 않을까. 감상보다는, 조소에 가까웠을 평가. 어쩌면 질투. 그러나 곧 무관심.

대화는 익숙하지 않다. 상대의 의중을 유추하기 쉽지 않으니까. 화술은 어렵다. 언제나 진심을 말하는 것은 늘 상대에게 상처만 줬으니까. 그러니 시도도 하지 않아. 이해란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닌 잘 씹어 삼켜내는 과정이라서, 신 포도를 올려다보는 어느 우화(寓話) 속의 우자(愚子)마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처음이라는 게, 무척이나 기뻐요.”

거기엔 오류가 있어.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준 이가 너 하나뿐이여서 그래.

”방금처럼만 하시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카롤리나.”

그것 역시 어폐가 있어. 누구도 내 직설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

무릇 연구자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만 한다. 영원불멸한 이론은 이 세상에 없기에. 예외라는 것은 늘 존재하며, 인간의 이성마저도 자신의 기억을 왜곡시키고 마니까. 그런 이유를 붙여 카롤리나는 누군가의 응원에 속으로 작은 의심을 덧붙였다. 유치하고 속 좁은 생각을 직접 털어 놓지 않은 이유는…

”그러니까 당신의 모든 것에 믿음을 가지고 하면 될 것 같아요. 할 수 있죠, 카롤리나 양?”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밀색의 머리칼을 살며시 건들인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래서, 주변의 녹빛 풍경 안에 햇볕이 반사되어 반짝인다. 오늘의 하늘색과 같은, 푸른색의 눈동자 안에 자신의 얼굴이 비쳐드는 것이 보였다. 카롤리나는 자신의 신념이 이리도 부드럽게 꺾이는 것을 생전 경험한 적이 없다.

한번 믿어 볼게. 나 자신의 가능성이라는 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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