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ham_Springfield

훈련로그

comu 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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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 그리 불러도 좋을 신념을 속에 품고 전장 위에 섰다. 사람을 살리고 싶었다. 누군가가 슬퍼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그런 작은 소망만을 품고서 전장에 선 것이다. 베일리를 처음 잃었을 때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슬픔이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울했고 슬펐지만 나름 버틸 만 했다. 그 아이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내게는 있었으니까. 능력 속에 박제된 그 아이는 영원할 것 같이 아름다웠고 강인했다. 지치지 않는 눈빛으로 내 곁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그 아이를 두 번 죽인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그 아이를 무척 사랑했기에, 애정했고 그리워해서 그 마음이 오히려 그 아이를 묶어버린 것이다. 조금 더 똘망똘망한 눈으로. 더 커다란 몸으로, 강철같이 짜인 근육처럼, 두려움이란 것을 모르는 정신을 지닌 완벽한 무언가를 멋대로 상상하던 것이다. 내가 아는 베일리와 완벽하게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마음속에서 그 아이는 너무나도 많이 바뀌고 말았다. 더 이상 베일리를 떠올리려고 해도 옛날의 모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 애가 이제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곁에 선 것은 과연 누구일까. 이걸 베일리라고 봐도 될까. 나는 널 그리 부를 수가 없었다. 너와 다른 아이를 두고 네 이름을 감히 붙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이능력을 꺼내지도 못했다.

그러한 고민과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그리 먼 과거는 아니다. 6년 전, 그 애의 무덤 앞에서 베일리와 함께 하던 날이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대지 아래에서 같이 산책하던 중에 베일리는 아주 오래전의 일을 기억하는 듯이 힘차게 동산을 뛰며 앞으로 나아갔다. 동산 너머에는 이제 개울과 울타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곳을 탐험하던 그때로 나아가는 것이다. 만일 베일리가 시간의 흐름을 받지 않고 나와 함께 하던 그 몸으로 계속 함께 했다면 더 단단해졌고 더 성장했겠지. 그런 생각이 스치니 그렇더라. 아, 너는, 네 혼은 떠나지 않고서 내 심상에 남았구나. 너를 베일리로 보아도 괜찮겠구나. 우리는…이별한 것이 아니구나. 그 뒤부터는 조금 더 편해졌다. 적어도 품에 안고 있던 죄책감 하나가 덜어졌으니까. 별의 한계를 뚫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더욱 나아갈 수 있었다. 그래, 언제까지고 함께 나아가자. 베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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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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