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차
내가 되지 못한 사람
나는 노력이 힘들다. 하지만 노력 없이 아무것도 거머쥘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뭐가 될 수 있을까. 하루하루 견디는 삶조차 쉽지 않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다 타버린 재다.
과거엔 내가 그저 게으른 줄 알았다. 근데 우울증의 증상 중 하나가 노력할 힘조차 없는 거더라. 이 점이 내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내 많은 부분이 우울증으로 설명되고 있었다. 나 자신이 너무도 탁한 물로 느껴졌다. 내게 우울증이 있음을 자각한 지도 어느새 11년이다. 병원에 다닌 지는 3-4년 정도 됐다. 내 나이가 만으로 23살이니 절반에 가까운 세월을 정신병과 함께 했다. 되고 싶은 모습은 있지만 정작 나는 내가 될 수도 없었다. 모르는 모습이 될 방법이란 없으니.
우울증 증상 중에는 자극에 둔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사람이 됐다. 옛날엔 좋아했던 것 같은 걸 가져와도 흥미가 쉽게 생기지 않는다. 내가 정말 이것을 좋아했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타인의 얄팍한 선의를 믿어야 한다는 말도 사실 내게 하는 말이다. 자신도 믿지 못하는 사람이 대체 누구를 믿으리.
이런 상태로 사회복지를 공부했단 사실은 꽤나 재미없는 연극 같다. 나 한 명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살피는 일을 공부하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웃음이나 살 연극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는데 성적에 맞추다 니 이렇게 됐다. 아무것도 알 수 없던 나는 지식에 대한 욕심만 커져갔다. 그래서일까, 내 모든 것이 애매모호하게 느껴진다.
친구들 앞에서는 이런 엉망진창인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아파도 괜찮은 척을 하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가벼운 고민만 털어놓으니 친구들은 내가 가진 문제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 결과 나는 상담자로서는 꽤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친구들은 자신의 힘듦을 종종 내게 토로한다. 친구들은 내게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내 속 얘기는 거의 들은 적이 없으니 자신에게 말해주길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늘 이렇게 살아온 나는 남에게 내 힘듦을 토로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 그들의 기대를 깨버릴 것만 같다. 그러면 나를 두고 떠나갈지도 모른다. 이것은 분명 공포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유들이 모여 나는 텅 빈 사람이 되고 말았다. 딱히 재밌는 것도 없고 노력할 힘조차 없다. 한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제 그러진 않는다. 다만 살아가기 위해 나를 채울 수단으로 재밌는 것을 찾아내는데 집착하는 중이다. 나는 늘 외롭다. 사람들이 내 곁을 다녀가면 잠시만 잊을 뿐, 다시 외로워진다. 이것은 사람으로 해소할 수 없는 외로움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나를 들여다본다. 나는 정말 엉망진창이고 비루한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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