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차
남겨진 사람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장례를 치르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일정 및 거리 상의 문제로 방문은 하지 못했다. 오늘이 발인이라고 하는데, 문득 내가 경험했던 장례식들이 떠올랐다.
처음 장례식장에 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외삼촌은 직업군인이셨고 암 투병 중에 돌아가셨다. 삼촌은 어렸던 우리를 꽤 잘 놀아주셨다. 특히 지금까지도 경운기에 태우고는 논두렁 한 바퀴 돌아주시던 게 기억이 난다. 경운기는 보통 운전석과 짐칸이 전부인 농기구인데, 외가에 있는 건 굉장히 짱짱하고 두꺼운 고무줄로 만든 의자가 있어 거기에 앉은 채로 돌면 경운기의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좋은 기억만 남아 아직도 가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렸던 나는 죽음이란 개념은 알지만 그것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다음은 중학교를 다닐 때였다. 친척 어른의 가족상이었는데, 정확히 누군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직접 만난 적 없는 사람이지만 친척의 일이니 가족들 다 같이 갔었다. 어른들이 술을 마시고 왁자하게 떠드는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죽어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었나 싶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해 바깥 하늘을 한참 바라봤다.
고등학교 때 가게 된 장례식에서야 그것이 가족을 잃은 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걸 깨달았다. 죽음이 슬프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본 적 없는 사람이 죽었단 소리를 들어도 마음이 허해지는데 가깝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슬픈 채로 가라앉아 있는다면 분명 지칠 것이다. 그들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애써 유가족을 웃게 만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해하는 슬픔이 많아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딱 그 사례였다.
성인이 되고 외조모의 장례를 치르면서 그것이 배려임을 여실히 느꼈다. 그렇게 잠깐 웃더라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알바하러 가야 해서 발인은 보지 못했는데, 이게 참 마음에 남아 있다. 그날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하겠다고 했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였지만 지금 생각하니 정말 부질없게 느껴진다. 그 사람의 발인은 단 한 번인데, 그깟 알바가 뭐라고.
여기까지 오니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죽으면 어디로 가는 걸까. 수많은 종교에서 그것을 설명하고 있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나는 어디로 갈까. 종교에서 설명하는 사후 세계와 무수한 창작물이 묘사하는 사후 세계, 무엇이 정답일까. 모르겠지만 어떤 사후 세계로 가든 후회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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