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100일 챌린지

2일차

앨라이를 찾습니다

저기 커플티를 입고 거리를 지나가는 연인이 있다. 강세연과 유화영이다. 물론 지나가는 다수의 사람들은 절친끼리 옷을 맞춰 입었구나 할 것이다. 둘의 왼손 약지에는 꼭 같은 반지가 있음은 보지 못한 채 말이다. 그래도 둘은 괜찮았다. 서로가 사랑하는 것은 확실했으니까. 서로가 있으니 세상의 인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존재한다. 적어도 둘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았는데,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외로운 것도 사실이었다. 세연은 진작 커밍아웃을 했다가 가족들과 대판 싸웠고, 화영은 그런 모습을 보며 아직까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둘은 더 가까이 붙었다. 이 세상이 만들어 내는 추위를 피해야만 했기 때문에. 둘 만의 안식처는 이다지도 달콤했다. 찬 바람을 피하는 데는 서로면 충분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냈을까. 이미 오랜 연인인 둘은 결혼을 하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 둘은 많은 의논이 필요했다.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국가로 갈지부터, 결혼식은 어디서 올릴지, 이 모든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얼마큼의 자금이 필요한지 이 모든 걸 고려해야만 한다.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일인데 어쩜 이리 힘든지. 둘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남자와 여자가 유독 가까이 지낸다면 둘이 사귀냐고 묻는 일은 심심찮게 있는데, 둘은 정말 사귀고 있음에도 그런 질문을 들어 본 일이 없었다. 문득 이게 맞는가 싶어졌다.

동성애는 죄악이라느니 자연의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라느니, 솔직히 무슨 소리인가 싶다. 성경에서 죄악이라 한 건 동성애가 아니라 소아성애다. 남자들이 어린 남자를 데리고 노는 상황에 대해서 죄악이라 한 걸 멋대로 동성애는 죄악이라 해석한 것이지. 자연의 섭리? 자연은 동성이 부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리가 없다. 실제로 동성끼리 번식행위를 하는 동물에 대한 보고가 여럿 들어온 걸로 알고 있다. 그냥 자기들이 부정하는 걸 합리화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그래서 더 결혼을 원하게 됐다. 당신네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가 존재함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결혼을 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기까지 해야 하는 이 상황이 불합리한 것을 새삼 인지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아봤다.

어느 기사를 발견했다. 어느 레즈비언 부부가 딸을 출산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과거 미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같은 해에 국내에서 혼인신고를 했다고 한다. 물론 국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둘에게 필요한 내용이라 더 찾아봤다. 전날인 7월 13일 기준으로 현재까지 총 33쌍의 동성 커플이 혼인신고를 접수하고 불수리되었다고 한다. 33쌍이니 66명이 용기를 낸 것이다.

거절당할 것이 뻔한 혼인신고를 하는 용기란 무엇인가. 더 많은 기사를 찾아보고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엔 접수조차 거부됐는데 2년 전 3월부터 동성 부부의 혼인신고 접수가 되도록 바뀌었다고 한다. 저 33쌍의 집계도 그 이후부터의 기록들이었다. 부정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지만 그럼에도 세상은 점점 우리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있다.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말을 해도 그 인정이 기꺼운 것은 사실이다. 그동안 가장 가까운 사이였음에도 서로의 법적인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었으니까.

어느 동성 커플은 혼인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변호사의 의견을 들었다고 한다. 수리가 되지 못해도 접수됐다는 기록이 남을 것이고, 동성혼이 법적으로 허용이 된다면 그 혼인신고도 인정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또한, 이러한 기록이 계속해서 쌓이면 그 자체로 투쟁이 된다. 이 사회에 우리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알리는 것이다. 존재가 통계로 기록되면 동성혼이 인정받게 할 근거가 수치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른 사례도 볼 수 있었다. 그 커플은 결혼으로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없어 연인을 입양했다고 한다. 성인이 성인을 입양하는 절차는 아이를 입양하는 것보다 간단하고, 단 하루 차이로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 사례가 적지 않게 있다고 한다. 더 알아보면 연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선택을 한 사람도 있었다. 친구로서 성인을 입양하는 건 후에 생길 문제가 달리 없지만, 결혼의 차선책으로 선택한 경우에는 나중에 동성혼이 법적으로 허용되어도 호적상 부모자식 관계기 때문에 혼인이 안될 수 있다고 한다.

세연과 화영의 논의는 어느 나라에서 혼인신고를 하느냐 대신 우리가 혼인신고를 했다는 기록을 남길지, 성인 입양으로 당장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될지를 선택하는 영역으로 옮겨갔다. 과거 세연이 크게 아파 병원에 갔을 때 화영이 보호자가 되지 못한 경험이 있어 화영은 후자를 지지했다. 세연은 우리 존재를 세상에 기록하고 싶어 전자를 지지했다. 논의는 일주일을 이어갔다.

논의가 끝나고도 일주일 뒤, 세연과 화영은 서류를 들고 구청에 방문했다. 접수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리며 그간의 시시콜콜한 추억을 나누고 있으니 금방 차례가 되어 창구로 갔다. 직원은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매뉴얼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5시간이 지나고서야 다른 서류를 받아볼 수 있었다. ‘혼인신고 불수리 통지서’. 우리의 결혼은 접수가 되었고 기록이 남았다. 두 사람은 거부당했지만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 통지서를 들고 둘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괜히 속으로 외쳐본다.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라!’.

카테고리
#기타
페어
#그 외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