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차
다시 쓰기 | 세상의 끝에서
기존 글: https://posty.pe/snmbf5
“신이시여, 어디계시나이까.”
“신께 간청하니 부디 저희를 구해주소서.”
이 땅을 창조한 신들은 세상이 멸망하는 날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게 창조된 세상에서 인간들은 무수한 영광을 일구었다. 그 영광의 이면은 바라보지 않은 값을 받을 때다. 물이 끝없이 차오른다. 육지 생물이 설 자리는 사라져간다.
그렇게 덧없이 빌고 있으면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덧없는 기도는 끝내라. 너희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직시하라. 하지만 생존 앞에서 목소리는 흩어져 사라질 뿐이었다. 이 땅이 잠기는 이유를 깨닫고 바로잡아라. 더는 기도로 막을 수 없으니 그 자리에 멈추지 말라. 목소리는 끊임없이 속삭이지만 인간들에게 닿지 못했다.
“오랜 친구를 잃었어요!”
“그가 죽었어! 그이가 죽었다고! 그를 내게 돌려줘!”
“임자, 곧 임자를 만날 수 있겠소.”
세상은 잃은 자들로 차오른다. 자신들이 잃은 것이 선명해 다른 것들이 잃은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차오르는 바다 위로 눈물이 떨어진다. 바다는 비탄하는 자들의 눈물을 섞어낸다. 깊이, 더 깊이 세상의 끝을 향해 간다. 너른 하늘을 향해서는 비명이 섞여 들어간다. 공포도 슬픔도 그들에게 살아남으라 종용하지만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므로.
바다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는 수중에 남은 것이 없는 사람, 소중한 사람들은 재난 이전에 죽었고 소중한 물건들은 진작 빼앗겼다. 잃고 빼앗기더라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인간이었다. 신은 애초에 믿은 적이 없으니 살려달라 간청할 곳도 없었다. 대신 그는 생명의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이란 정말 탐욕스러운 족속들이다. 그들이 내주는 작은 자비로 겨우 연명해 살아 남았다. 그러나 자비를 준 자들은 그가 죽는다고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그 안에 온정이 아예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족속들이다. 지독히도 외로워서 같이 있을 존재를 찾아 헤맨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이 아닌 존재에게 정을 준다. 거기에 생명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나와 함께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참 이상한 것들이야….”
그래서 종말마저 이상한 걸까. 그는 벌러덩 드러누웠다. 근 한달 내리 비만 내리다 어제가 되어서야 개인 하늘은 맑았다. 바다는 차오르고 생명은 스러저가는 이 순간에도 하늘은 푸른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그래, 언제나 세상은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끝나는 이 순간까지 세상은 아름답다.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지키고 있던 것인가….”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모르는 노인이다. 계속해서 높아지는 수평선만을 바라보는 것이 딱히 누군가에게 답을 요청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노인의 눈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회한이 더 깊은 것 같았다.
“알만한 것들은 다 알았다고 생각했건만, 여전히 무지한 삶이었구마….”
노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누구를 향해 하는 말일까? 그는 궁금했지만 모르는 사람을 향해 살갑게 말을 붙이는 작자는 아니었으므로 가만히 듣기만 한다. 마치 누군가 무지를 인정하라고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지하다는 것은 알아갈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말하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다른 답이 보였다. 내 자신이 인간이래도 인간에 대해 아는 것은 일부일 뿐이다. 그는 타인의 악의로 빼앗기며 살았더라도 타인의 선의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온정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는 일어나 달려갔다. 울며 비명지르는 사람들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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