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K

[텽들] 좋아한다고 下

짝사랑공 배우 X 밴드맨 For. 익명님

※ 캐해는 잘 모르겠고 보고 싶은 걸 씁니다. ※

※※ 본문은 펜슬 내에서만 감상해주세요 🫶 ※※

  잠에서 깬 태영은 눈을 끔벅거리며 익숙한 듯 낯선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덜 깬 뇌가 느리게 굴러갔다. 아, 민희 형 집. 한참의 로딩 끝에 자신이 어디 있는지 깨달은 태영이 이마를 짚었다. 민희 형한테 전화 걸까봐 전원도 꺼놨는데 왜. 어쩐지 불편하다 싶더니 입고 나간 그대로 민희의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 있었다. 그래도 코트는 좀 벗겨 주지... 상황에 안 맞게 속 편한 생각을 하며 코트 주머니를 뒤적이니 핸드폰이 손에 잡혔다. 잠금화면엔 양반은 못 되는 친구의 메세지가 떠 있었다. 내가 민희형 불렀다~(찡긋).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진짜 쓸 데 없는 짓을 해. 

  일단 빨리 이 집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무작정 연락하지 말라고 해놓고 먼저 연락한 것도 쪽팔리는데-물론 태영의 자의가 아니었지만- 취해서 신세까지 지다니. 좋은 말 들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지난 밤 기억이 없어서 불안하기도 했다. 혹시 고백한 건 아니겠지. 아니어야 해... 한숨을 푹 내쉰 태영이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는 민희가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깨지 않게 조용히 나가려던 태영의 발목이 덥석 잡혔다. 화들짝 놀란 태영이 층간소음으로 신고 당할 만큼 크게 소리질렀다. 아 시끄러... 태영의 심장이 떨어질 뻔하게 한 범인은 당연하게도 민희였다. 민희가 눈도 다 뜨지 못한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

  태영이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하자 민희가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옷도 다 입고 있고, 잠도 따로 잤고. 더한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왜 불안하게 일어나는 동작 하나에 끙끙대고 그럴까... 태영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잠만 잔 게 아니었나. 내가 못 참고 무슨 짓을 저질렀나... 순식간에 심각해진 태영을 뒤로 하고 화장실로 향하던 민희가 대뜸 으름장을 놓았다. 

  "씻고 나올 테니까 튀면 죽는다."

  "네......" 

  민희가 씻는 동안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떠올려 볼 심산으로 공손히 대답했다. 민희가 문을 닫자 여태 서 있던 태영은 침대에 다소곳이 앉았다. 일단 죄명 1. 강민희의 연락을 죄다 씹은 것. 죄명 2. 그래놓고 (타의지만) 신세 진 것. 생각나는 건 이 두 가지 뿐이었는데. 분명 그 두 가지로 끝나야 하는데. 

  불현듯 떠오른 지난 밤의 기억에 태영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 차라리 기억이 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거, 이거 꿈이지. 제발... 나 미쳤나 봐. 죽어. 그냥 죽어! 당장이라도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지만 자신이 공인이라는 것과 이곳이 민희의 집이라는 것을 떠올린 태영이 겨우 그 충동을 참아냈다. 이럴 때가 아니라 튀면 죽는다는 민희의 말을 무시하고 당장이라도 튀어야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제 입은 그대로의 옷차림 덕에 핸드폰만 찾아 손에 쥔 태영이 벌떡 일어났다. 

  운 나쁘게도 태영이 일어남과 동시에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태영의 집에서와 달리 옷을 다 갖춰 입은 민희가 나오다 말고 빤히 바라봤다. 도망가게? 말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하고픈 말이 다 전해졌다. 태영은 쭈뼛쭈뼛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 머리를 수건으로 마구 헤집은 민희가 일단 씻고 오라며 손을 휘저었다. 태영은 불편하게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았다. 이제 도망은 꿈도 못 꿨다. 술냄새 난다며 민희가 쥐여준 갈아입을 옷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 태영이 그제야 자신의 몰골을 확인했다. 어휴, 안 씻고 나갔으면 큰일날 뻔.

  겨우 자신의 미모를 되찾은 태영이 나오자 의자에 앉아있던 민희가 식탁을 쳤다. 앞에 앉으라는 뜻이었다. 태영의 앞에는 찬물이 담긴 컵이 있었다. 보통은 꿀물을 타주던가 하던데. 냉수 먹고 정신 차리라는 건가. 민희는 속을 읽을 수 없는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맞다, 나 망했지. 다시금 긴장된 태영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은 후에서야 민희가 입을 열었다. 첫 문장부터 타격이 셌다.

  "너 나 좋아하냐." 

  "...이젠 아닌데요."

  "그럼 전엔 맞다는 거잖아." 

  "그게 뭐가 중요해요."

  "이제 안 좋아하는데 키스는 왜 해."

  그 말에 자신이 한 짓이 있어서 아무 대답 못 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태영은 다시 한 번 어젯밤의 자신을 쥐어 패고 싶었다. 지금까지 몇 년을 참아왔는데 그 한순간을 못 참아서. 그것도 술김에. 저번부터 술이 웬수였다. 자신이 생각해도 최악이었다. 그렇지만, 조금 억울했다. 같은 남자한테 입술 뺏긴 거 싫을 수 있지. 근데 그 전에 그쪽이 먼저 사람 착각해서 키스하셨잖아요. 쌍방잘못 아니냐고요. 

  "그건 그냥 취해서... 아니, 멋대로 키스한 거 미안한데요, 그냥 퉁치면 안 돼요? 형 나랑 사귈 것도 아니잖아요."

  "너 연예인이 뜬지 얼마나 됐다고 연애 할 생각 하냐?"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요." 

  "그럼 뭐가 중요한데." 

  "아!!!! 나 그냥 딱 말 할게요. 맞아요, 저 형 좋아했어요. 근데 이제 안 좋아할 거예요. 솔직히 아직 마음 정리 못 해서 형 안 보고 싶거든요? 어제 키스 한 건 죄송하고 이제 내 번호 차단 해주세요." 

  핀트에서 벗어난 민희의 말에 이마를 짚던 태영이 끝내 폭발했다. 태영이 씩씩거리며 말을 쏟아내든 말든 민희는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아무 말이나 하고 있는 걸 알았다. 그것보다 문제는 태영과의 키스가 기분 나쁘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금 당황스러웠을 뿐 오히려... 좋으면 좋았지. 남자인 자신이 같은 남자와 키스가 가능하다는 생각도 못 했는데 동성과의 연애를 생각해봤을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태영이 이제 자신을 안 좋아하겠다고 하자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키스해서 죄송하다는 말이 듣기 싫고, 이게 번호 차단까지 할 일인가 싶고.

  "넌 무슨.. 평생 안 볼 것처럼 그래." 

  "...평생 되기 전에 정리되면 보겠죠." 

  "아이 왜 이렇게 급해 잠깐만 기다려봐. 생각 좀 해보게."

  "무슨 생각..."

  태영의 투덜거리는 듯한 말소리가 줄어들자 방에는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태영은 민희를 보는 대신 식탁의 불규칙한 나이테 무늬만 바라봤다. 정말 안 볼 각오를 하고 내지른 고백인데. 번호 차단해달라는 말까지 무르고 민희가 무슨 생각을 해보겠다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무릎 위에 모은 손이 정적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사납게 꼼지락거렸다. 심각한 얼굴로 한참을 곰곰히 생각하던 민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태영아."

  "네.

  "사귈래?"

  "...네? 결론이 왜 그렇게 돼요? 대체 무슨 생각을 거친 거야."

  태영은 상상도 하지 못한 문장에 얼이 빠졌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귀자는 말을 듣고도 황당하단 얼굴로 되물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민희가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운 게 고작 몇 달 전이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민희와 태영의 사이엔 두 번의 키스가 있었지만 모두 음주에서 비롯된 실수일 뿐이었다.

  민희가 골똘히 생각하던 건 자신의 낯선 감정에 정의 내리는 것이었다. 왜 태영과의 키스가 기분 나쁘지 않았는지, 왜 번호 차단해달라는 태영에게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지, 왜 태영이 계속 자신을 좋아해줬으면 싶은 건지. 무수한 생각들 끝에 민희는 깨달았다. 

  "아니... 나도 너 좋아하는 거 같아."

  "지나 누난 어쩌고."

  "걔가 왜 나와? 헤어진 지가 언젠데."

  "아.. 진짜 장난치지 마요."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좋아한다고. 나 지금 당장도 너랑 키스 할 수 있어."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은 거고. 불쑥 눈앞까지 다가온 민희의 얼굴에 태영이 숨을 참았다. 자연스럽게 태영의 시선이 민희의 입술로 향했다. 복숭아 마이구미 젤리... 무슨 상상을 하는지 끝부터 서서히 달아오른 귀가 금세 붉게 물들었다. 몇 년 동안 짝사랑만 해왔더니 현실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민희 형이 날 좋아한다고? 정말 거짓말 같았다. 꽤 가까운 얼굴에 고개를 돌려 눈을 내리깐 태영이 우물쭈물 되물었다.

  "......진짜?"

  "해볼래?"

  "근데 우린 좋아한다 하기 전에도 키스했잖아요... 심지어 형은 사람 착각한 거면서."

  "에잉 줘도 못 먹냐. 싫음 말어."

  "아니아니아니요! 키스도 하고 사귀는 것도 해요!"

  "그래."

  키스를 무르려는 민희에 태영이 다급하게 수락을 외쳤다. 어떻게 생긴 기회인데 놓칠 수 없었다. 웃음기 가시지 않은 민희의 얼굴. 감은 눈 덕에 기다란 속눈썹이 더 잘 보였다. 실제 상황인 거지..? 꿈 아니고? 태영이 덜덜 떨며 자신의 입술을 민희의 입술에 내렸다. 떨림이 느껴지는 입술이 살짝 붙었다 떨어졌다. 뽀뽀라고 하기에도 가벼운 입맞댐.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가까운 거리에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여전히 가만히 있는 민희의 뒷목을 받친 태영이 입술을 포갰다. 방금 전은 예열이었다는 듯 깊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칠 것이라는 민희의 예상과 달리 느릿하고 진득한 키스가 이어졌다. 반쯤 눈을 뜬 태영은 집중한 민희의 얼굴에 살짝 웃음이 났다. 민희도 자신을 좋아한다는 게 그 표정 덕에 실감이 났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태영은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어떠한 충동을 간신히 참아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젖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 두 입술이 반들거렸다. 내쉬는 서로의 숨이 뜨거웠다. 태영은 다시 한 번 그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숨을 고르는 민희의 볼이 발그레했다. 술김에 실수로 한 키스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원해서 한 키스라니. 벅차는 마음에 눈물이 핑 돈 태영이 고개를 숙였다. 열이 올라 머리가 어지러웠다. 좋아서 죽겠다는 게 이런 건가. 솔직히 앉은 곳도 침대겠다 바로 뒤로 넘어뜨리고 싶었지만 꾹 참은 태영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강민희, 좋아해."

  "...나도. 너 좋아해."

  아무리 민희래도 이런 상황에서 형 이름을 막 불렀다고 핀잔 줄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다. 태영이 형 소리 안 붙이는 게 하루이틀 아니기도 했고. 사실 지금은 오히려 좀 귀여웠다. 모든 감정을 눌러담은 문장이라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서 조금 낯부끄러워도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 다시 한 번 말했다. 좋아한다고.

  "민희, 나 영화 시사회 때 올래? 티켓 줄게." 

  "그래." 

  "키스신 없어." 

  "데뷔작엔 있던데." 

  "...진짜 봤네요?"

  "당연하지 임마." 

  김태영 전매특허, 불리하거나 삐치면 나오는 존댓말 또다시 등장이요. 이번엔 전자의 이유였다. 말로만 보겠다고 한 줄 알았더니 정말 찾아봐준 게 감동이긴 한데, 막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지금 상황에 그 화제는 좀... 애초에 분위기 환기를 위해 장난쳐본답시고 키스신 말을 꺼낸 자신의 잘못이었다. 겸연쩍어진 태영이 변명하듯 말했다.

  "그거 그냥 하는 척이에요." 

  "누가 뭐래?" 

  "그냥 그렇다고요..."

  태영이 민희의 어깨에 기댔다. 그러면서도 아직 새롭게 정의된 관계가 익숙하지 않아 이래도 되나 싶어 민희의 눈치를 봤다. 민희는 별 생각 없는 듯 태영의 머리를 툭툭 토닥였다. 그 언젠가 태영이 민희를 좋아하게 된 순간과 같이.

  "우리 밴드도 신곡 나온다."

  "나오면 인스타 스토리에 홍보해도 돼?"

  "나야 좋지."

  "형, 눈 한 번 더 감아봐."

  둘이 다시 한 번 키스를 나누던 시각, 엄청난 화제성을 모은 실시간 기사가 있었다. 배우 김태영, 레디올낫 밴드 강민희와 의외의 연인.. 난리난 이유는 하나였다. 다수의 팬들과 소수의 대중들은 기사 제목에 의아함을 갖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다. 그러니까, 김태영과 강민희가 연인이라고? 

  SNS를 통해 확산되던 기사는 얼마 안 있어 정정되었다. 배우 김태영, 레디올낫 밴드 강민희와 의외의 인연.. 실수한 기자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두 팬덤의 대부분은 재밌는 헤프닝으로 보고 둘의 친목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 의외는 무슨 김태영 저 밴드 팬인 거 같던데.. 둘이 친해졌나 봄

- 오히려 좋았는데...

- 저번에 난 열애 오보도 이 분인 듯.. 여친이 아니라 친한 형이랬잖아

- 이 친목 응원합니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간엔 그저 한 기자의 실수로 뜻밖의 바이럴이 되고 있는 줄도 모르고 둘은 점심부터 한 침대에 누워 사이좋게 잤다. 그 잠이 Sleep인지 S*x인지는 둘만이 알 일이었다. 아무튼 S로 시작하는 시간을 보내는 둘의 얼굴엔 만족감이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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