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 드림] A small moonbeam

커미션 작업물

그 루나리는 몹시 기이했다. 아펠리오스는 자신이 루나리를 발견한 게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가 이제껏 죽여 온 수많은 이방인들과 꼭 닮아 있던 탓이었다. 그래서 그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했고, 달빛만이 인도하는 어둑한 산길 속에서 발걸음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우뚝 섰다. 무엇보다 이 느낌이 그옛날 ‘그 이방인’을 죽였을 때 느꼈던 감정과 무척 닮아 있기 때문이 컸다.

그 때 아펠리오스는 단순히 죄책감이 유독 크게 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밖에 다른 이유가 존재할 까닭도, 원인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어쩌면 그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하여 아펠리오스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자신과 연결된 하나뿐인 그의 쌍둥이 누이를 생각했다. 누이, 너도 느끼고 있을까, 이 감정을. 이건 내 것이 맞아? 아니면 너의 것이야?

그러나 판단은 무기의 몫이 아니었고 단지 알룬이 그 아이는 죽일 필요가 없다는 듯 잠잠했기에 그는 주어진 흐름에 자신을 맡겼다.

 

후에, 아펠리오스는 종종 자신의 손목을 잡고 이끌던 그 루나리의 가냘픈 손을 떠올렸다. 전투 같은 건 한 번도 단련한 적 없던 게 명백한 손은 아펠리오스의 악력의 3분의 1도 되지 않아 언제든 손쉽게 뿌리칠 수 있었다. 체구 또한 그보다 한 뼘은 더 작았으니 그를 역으로 멈춰 세우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아펠리오스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도착한 동굴에서,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가 내민 액체에 입을 대고 삼켰을 뿐.

판단은 무기의 몫이 아닌 법. 아펠리오스는 어떤 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루나리의 영광을 위해 주어진 일을 하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닿았던 그 가냘픈 손을 아펠리오스는 종종 떠올렸다. 자신이 그러했듯 자기만의 궤도를 따라 어둠 속을 걸어왔음이 분명한 레이라는 이름의 루나리의 손을.

 


 

“아펠리오스, 맞지? 널 만나고 싶었어. 내 연구가 효과를 보이면, 너한테 제일 먼저 주고 싶었거든.”

 

자신을 레이라고 소개한 루나리는 반갑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발랄한 목소리로 물었고, 아펠리오스는 그가 하는 말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네가 아펠리오스냐’는 말 하나에만큼은 답할 수 있어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레이가 활짝 웃으며 다시 물었다.

 

“알룬은 잘 지내? 나 그 애의 친구거든. 네 컨디션도 궁금해. 오늘 좀 어때?”

 

그건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 보는 안부 인사였다. 살아오면서 아펠리오스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그러한 것들을 물어 줄 사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 타곤 산에서 그의 존재 의의는 루나리를 보호하고 루나리의 뜻을 수행할 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며 무릇 사람은 무기에게 안부를 묻진 않는 법이었다. 하물며 알룬은 잘 지내냐니. 누이에게 이런 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그는 알룬에게 질문하는 법을 몰랐으므로 아펠리오스는 더욱 우두커니 눈앞의 루나리를 바라보기만 했다.

표정 변화도, 미세한 움직임도 없는 사람을 눈앞에 두는 게 멋쩍스러웠던지 루나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뒷머리를 긁다가 곧 이럴 때가 아니지, 하는 짧은 감탄사와 함께 몸을 돌렸다.

 

그의 뒤편에는 빛나는 꽃이 피어 있는 연못이 있었다. 깊고 넓은 동굴의 한편에서 작은 생태를 이루는 데 성공한 꽃과 물의 군락은 마치 저편에 있는 달의 가호를 받는 듯했는데, 물가에 핀 꽃들이 달빛을 닮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펠리오스에게 그 광경은 몹시 기묘하게 다가왔다. 자신이 궤도의 끝에서 마주한 새까만 어둠꽃과는 완전히 정반대이지 않은가.

이 꽃들이 그를 여기까지 데려온 목적이라는 듯 빛나는 꽃무리를 가리키며 레이가 말했다.

 

“이건 빛의 꽃이야. 어둠꽃에서 비롯되었지. 내 사명 중 하나거든, 루나리의 안전을 위해 어둠꽃의 독소를 정화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거 말야.”

그가 하는 이야기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로웠다. 아펠리오스는 가만히 누이의 반응을 기다렸다. 스스로를 누이의 친구라 소개한 이 자가 말하고 있는 게 전부 사실인가? 어떤 사술을 쓴 솔라리의 첩자일 가능성은?

그러나 알룬은 여전히 어떤 말도 없었고, 레이는 반응 하나 없는 상대를 개의치 않고 재잘재잘 자신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의 본래 성품인 듯했다.

 

“마침내 연구가 성과를 보여서 이렇게 어둠꽃을 상쇄하는 빛의 꽃을 만들어내는 데엔 성공했는데, 정말 아쉽게도…… 아직 완성 단계가 아냐. 부작용이랄까…… 아하하. 이 꽃, 어둠꽃의 좋은 면까지 전부 없애버리지 뭐야.”

 

아펠리오스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본래 태도를 마치 자신에 대한 질책으로 받아들이기라도 한 듯 레이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 그래도 정말 그것뿐이었다면 널 여기까지 데려오진 않았을 거니까! 걱정 마. 고민 끝에 일단은 빛의 꽃의 힘을 좀 약하게 만들기로 했어. 중화된 빛의 꽃 정수를 적은 양으로 꾸준히 마시다 보면 어둠꽃이 선사한 힘은 유지하면서 독의 영향은 서서히 줄일 수 있을 거야. 믿어도 돼. 여차하면 알룬을 통해 확인해 봐도 좋고. 알룬은 이 연구의 시작을 알고 있거든.”

 

알룬. 알룬의 이름이 다시 나왔지만, 이름의 주인은 여전히 아펠리오스에게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아펠리오스가 중요한 일과 맞닥뜨렸을 때 알룬이 개입하지 않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들 남매는 본래 그런 숙명을 각기 타고났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누이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심지어 그는 레이의 말을 들으며 그를 경계하고 불신하는 마음 대신, 자신의 깊은 곳 어딘가에서 어떤 일렁임이 이는 걸 느꼈다.

어둠꽃. 독. 정화와 중화. 어둠꽃이 그에게 무기로써의 삶을 부여한 이래로 아펠리오스는 자신에게 닥쳐 오는 모든 걸 그저 수용하기만 했다. 다른 길이 애초에 존재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루나리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어둠꽃의 독이 제거될 필요가 있는 루나리란 틀림없이 아펠리오스를 가리키는 게 맞을 터였다. 모든 루나리가 그를 알고 있으니까. 그는 모든 루나리의 기대를 짊어진 자니까. 그게 그의 사명이니까.

그러나 그 사명이 이런 흐름까지 포함하고 있었단 말인가?

무기란 말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저 수행하는 존재일 뿐. 인도자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면 무기는 어떻게 하는게 옳은가? 자신의 느낌을 따라가야 하는가? 아니면 인도자를 따라 침묵해야 하는가?

혼란 속에서 아펠리오스는 자신이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었기에 그저 레이가 조심스럽게 내민 은그릇을 두 손으로 받아들였다. 그릇 안에는 찰랑이는 액체가 있었고, 액체에서는 어떤 향기도 나지 않았다. 오래 전 그의 코끝으로 다가왔던 어둠꽃이 그러했듯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모두 내려가자 문득 아펠리오스는 자신의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기이함 속에서, 곧 손끝에서 어떤 감각이 느껴졌고 아펠리오스는 자신에게 어떤 버릇이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가만히 무기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 자신의 손이 무기를 가볍게 두드렸던 것이다.

 

그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걸 눈치챈 레이는 몹시 뿌듯하고 기쁜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그와 자신 모두에게.

 

“어둠꽃은 너한테서 목소리까지 앗아갔다고 들었어. 어때? 혹시 말은 나와?”

 

아펠리오스는 자신이 언제 마지막으로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어색하게 움직인 성대에서는 역시나 제대로 된 소리가 아닌 켁켁거리는 쇳소리가 나왔고, 그에 레이는 잠시 시무룩했지만 금세 기운차게 말했다.

 

“모든 게 돌아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지. 네가 다음번 정수를 마시게 될 때까지 나도 빛의 꽃을 더 연구해 놓을게. 네가 루나리의 무기가 아니라, 우리의 전사가 될 때까지.”

 

그 말은, 그와 마주한 이래로 아펠리오스가 들은 말 중 가장 기이했다. 아펠리오스는 감히 불신조차 가질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언젠가 자신이 정말로 다시금 스스로의 목소리로 말을 할 수 있다면, 그에게 고맙다 전하고 싶노라고 조용히 생각했다.

 

자신과 이야기하는 내내 인간이라기보단 인간 형태를 갖추고 있을 뿐인 무기나 다름없어 보였던 청년이 미세하나 분명한 변화를 보이는 걸 눈앞에서 본 그는 표정 가득 활짝 웃었다.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루나리들이 으레 그러듯이. 그리고 아펠리오스에게 말했다.

 

“우리는 곧 다시 만날 거야. 달빛이 우릴 인도하지 않더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날 찾아줘. 나는 물질세계에 있어, 아펠리오스.”

 

레이의 그 말에, 아펠리오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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