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락연] 일몰 - 2
신이시여.
당신의 성전을 허무는 자녀마저 사랑하십니까?
락연은 그 일이 있고 무언가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강박적으로 펜을 부여잡고 뚜렷한 감정 없이 흰 도화지만을 쳐다보다 기절하듯이 잠들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세계는 자신의 역사를 써 내려가듯이 답을 조잘거렸으나 끝내 색이 입혀지지 않아 사멸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보내버린 세계가 하나 둘 늘어갈수록 락연은 창백하게 말라갔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락연의 집을 정돈하기 위해 찾아온 가사도우미가 쓰러진 락연을 발견할 때마저 흰 종이는 공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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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다.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농담 삼아 썼던 문장이 적용된 현실 속에서 락연은 가지런히 숨을 뱉었다. 의사가 무어라 락연의 상태를 정의하곤 자리를 비켜주었다. 매니저가 찾아와 상황을 정리하고 호들갑을 떨어대도 락연은 무감각한 얼굴로 천장만을 올려다보았다. 흰 천장에 스치는 한 세계의 조잘거림이 결국 사멸하고, 락연은 다시 눈을 감았다.
" 교수님 그렇게 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너까지 이러면 어떡해. 기운 내야지, 응? "
" ···. "
" 당분간 휴대폰 열어보지 말자···. 기사는 올라오는 족족 내리고 있는데 워낙 화제성이 좋아서 다 내리긴 쉽지 않나봐. “
“ ···그래도 불 꺼질 때까지 반년 정도면 충분해. 대표님도 회복기 가지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장담하셨고. ”
“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푹 쉬자. 락연아. "
" ···. "
" 나 회사 들어가 볼게. 필요하면 꼭 연락해, 알았지? "
침대 옆에서 서성이던 매니저마저 사라지고 락연은 차게 식은 손끝을 오므렸다. 숨이 멎었다. 멎어버린 숨은 서락연의 것인가? 아니면 저 사멸한 세계의 것? 아니면, 아니면···.
' 락연아. 네가···. '
꼼짝없이 얼어붙어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이어지지 않는 마디들에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웅크렸다. 들어야 하는데 듣지 못하고, 써야 하는데 쓰질 못하는 스스로의 무능이 고통스러워 신물이 났다. 그래, 평생 동안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무능한 기분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락연은 발버둥을 멈추고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었다. 밤이 찾아왔다. 목 끝까지 차오른 불안과 같은 검은 밤, 병실 창문 밖에 초승달이 떴다. 초점 없는 눈동자에 박힌 달을 보며. 그제야. 이미 허물어진 성전을 완전히 박살 내듯, 감싸 쥔 왼손에 악착같이 손톱을 세웠다.
" 주님···. "
당신이 주신 달란트를 저 어둠 속에 묻어 영영 꺼내지 않으려 합니다.
이제 당신께서는 이 어리석은 이를 당신의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아내-
끝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하실 테지요.
···그러니 이 통곡소리마저 당신의 발치에 짓밟힐까 독백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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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밤에는 매일 초승달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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