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락연] 일몰 - 3
낙인
그렇게 나를 죽이고, 너를 가두고. 엔딩은?
퇴원 후 한 달, 모처럼 낮에 일어난 락연은 잘 보관된 도안을 들고 타투이스트를 찾았다.
" 이 정도 크기면 정말 많이 아플 텐데, 첫 타투로 괜찮겠어? "
" ···응. "
타투이스트는 도안을 내려다보았다. 지우고 다시 그려진 자국들이 선명한 스케치. 본래의 도안이 어땠는지는 말해주지 않아 불분명하지만 타투를 처음 하는 사람에게 진행하기에는 꽤 크고 복잡한 도안이었다. 가시나무와 단단한 사슬, 싱그러운 월계수 가지와 자물쇠가 얽혀 만들어진 검을 쥔 악마의 손이 그려진- 작업이 들어간다면 분명 상반신을 전부 덮을 큰 문신. 칼끝은 목을 향하고 있으며, 몇 번이고 수정한 자국이 있는 자물쇠의 구멍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그 어떤 열쇠도 맞지 않을 듯했다. 워낙 완성도가 높은 스케치라 디지털 도안으로 변환하는 일도 수월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선뜻 권하기엔.
" ···노파심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우기도 어려워. "
타투이스트는 직업상 많은 사람들을 봐왔고, 그 사람들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 후회하며 타투를 지우는 방법을 상담하러 오는 이들도 꽤 있는 편이었다. 연인과 헤어져서, 친구와 절교해서. 혹은 그 순간의 결심이 빛이 바래서. 그러나 한번 새긴 것을 지우는 데에는 새기는 것의 곱절은 아프고 번거롭다. 손톱만 한 크기도 그런데, 그녀가 가져온 도안은 지우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인 크기이기 때문에 망설임은 더 컸다. 그런 타투이스트의 걱정 어린 말에도 락연은 물끄러미 도안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가능하다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
" 야 서락연. "
" 알잖아. 이제 이 타투 할 사람 나밖에 없어. "
" 아···. 진짜, 난 모르겠다 이제. "
활기를 잃어 단조로운 소리를 내는 목소리로, 독백과 같이 영원을 말하며 락연은 권태로운 얼굴을 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서 할 말이 없어 타투이스트는 복잡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넘기곤 깊게 한숨을 뱉었다.
.
.
.
일련의 시간들이 지나고, 장장 일주일에 걸쳐 타투이스트의 인생작이라고 단언할 만큼 정교하게 새겨진 타투. 그 후 타투이스트가 관리를 위해 락연의 집에 머물며 한 달간 케어에 집중한 결과 타투는 큰 문제 없이 락연의 몸에 자리를 잡았다.
" ···. "
하복부부터 가슴골을 관통해 목울대를 겨눈 스몰소드 길이의 검날은 가시나무와 월계수가 얽혀 형태를 이뤘고, 단단한 사슬이 검 전체에 감겨 검의 손잡이를 쥔 악마의 양손을 결박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검의 폼멜은 자물쇠 모양이었는데, 검을 감은 사슬과 이어져 있었다. 사슬이 풀린다면 당장이라도 락연의 울대를 찌르고 그 피로 검날을 적실 듯한 형상. 그러나 열쇠구멍이 엉망으로 일그러져 다시는 풀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락연은 거울에 비친 타투를 손끝으로 천천히 짚어내렸다. 상상의 검날에 베인 락연의 손끝은 붉게 물들어 가시나무 하나하나 방울졌으며, 미끄러진 그 선홍은 월계 잎에 흘러 붉은 장미처럼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결국 손끝의 종착지는 엉망으로 일그러진 폼멜에 이르러, 결국. 결국은.
" ···. "
" 교수님. "
" 이제 알아요. "
"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어요. "
엉망으로 일그러진 자물쇠를 보며 가지런히 숨을 뱉었다. 누군가의 소망, 고통, 절규, 절망. 그 모든 악의를 낙인과 같이 새긴 어느 날. 내지르지 못한 악마의 살의에 차가운 손을 겹치고, 가만히 그렇게 있었다.
열쇠는 이미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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